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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충돌

2007.01.19 21:00

루에르혼 조회 수:1367 추천:3

extra_vars1 루에르혼 # 2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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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바람이 불면 살짝 춥긴 하지만 햇빛 아래 서 있으면 따뜻하다. 날씨가 너무 좋다.
‘이런 날 집안에만 앉아 있을 순 없지.’

나는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날이 풀려있어서 가슴이 조금 깊게 파인 티를 입고 나왔다. 어젯 밤 눈이 내려서 아직 다 치워지지 못한 눈길을 걷고 있자니 생각보다 춥다. 자켓을 여미다가 문득 시선을 느꼈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날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예쁜건 알아가지고..

한동안 걷다보니 힘들기도 하고, 몸도 녹일 겸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알바생의 인사를 대충 건성으로 받고 바로 주문했다. 이 카페에 오면 항상 먹게되는 모카초코 케이크. 별로 단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카페의 케이크는 느끼하지 않아서 잘 넘어간다. 항상 같은 것을 먹으면 질릴법도 하지만 난 언제나 모카초코 케이크를 먹는다. 안 먹으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커피와 케익을 받아들고 내가 항상 앉는 창가로 갔다. 햇살이 비춰서 따뜻하기도 하고 밖의 풍경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자리다. 케익을 한 입 베어먹으며 여전히 푸른 하늘을 보았다. 토끼 모양의 하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지 토끼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내가 아직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는 하얀 토끼를 키웠었다. 그 토끼는 동생 햇살의 생일에 엄마가 사주신 선물이었다. 하얀 털속의 빨간 눈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햇살은 토끼를 뽀뽀라고 불렀다.
먹이를 주면 그 자리에서 갉아먹었고, 우리에서 나올 때는 항상 집 어딘가에 작은 똥을 싸놨다. 키우는데 손이 드는 녀석이었지만 난 동생의 작은 토끼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동생이 울고 있었다. 뽀뽀가 죽었다는 것이다. 뽀뽀가 죽었다는 말에 나도 동생과 함께 훌쩍이다가 건강하던 토끼가 왜 갑자기 죽었는지 동생에게 물어봤다. 뽀뽀는 동생의 실수로 죽었었다. 햇살이가 뽀뽀를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놀다가,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온 사이 뽀뽀가 책상에서 점프를 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뽀뽀는 목이 꺽여서 즉사했다. 불쌍한 뽀뽀..
그날 이후 난 며칠간 햇살이와 대화를 하지 않았었다.

어느덧 구름은 뭉개져서 토끼의 형상을 찾을 수 없게 됬다. 난 다시 케익을 먹었다. 뽀뽀를 생각하며 우울했던 생각은 떨쳐버리며.

-우웅

한참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동생의 전화였다. 뽀뽀 생각에 동생이 잠깐 미웠지만, 이미 오래 전 일 갖고 내가 왜 이러나 하며 전화를 받았다.

“왜.”
“언니, 내 검정 가방 혹시 못봤어? 언니가 가져갔어?”

검은 가방이라고 하면 동생이 즐겨 쓰는 가방인데, 또 잃어버렸나 보다. 햇살이는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도 건망증이 심해서 평소에도 이런 저런 물건을 잃어버린다.

“아니”
“아, 어떡해. 또 없어졌나봐. 언니 진짜 못봤어?”
“몰라. 너 어제 도서실 갔다왔잖아, 거기 두고 온거 아냐?”

동생은 내 말에 허둥지둥 전화를 끊었다. 아마 도서실로 가는 거겠지. 나는 케익을 남김없이 다 먹어 치우고 카페를 나왔다. 아직 날씨는 따뜻하다.

조금, 더 걸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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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은 처음거랑 비슷한데 .. 왠지 짧아보이네요 :-)
남자시점보다 여자시점 쓰는게 더 재미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