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Destiny * 운명의 일곱 가지

2007.01.29 09:08

갈가마스터 조회 수:1061 추천:6

extra_vars1 Dead Way 
extra_vars2 015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121642 
extra_vars7 1172304455 
extra_vars8
  “야, 다시 한 번 묻겠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지?”
  닥터는 ‘알랍 스가티’의 얼굴을 짓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며 위협조로 물었다. 반신이 기계로 되어 있는 알랍의 몸은 지금 온통 찌그러져 있었다. 그도 그럴게 조금 전까지 닥터가 손에 들고 있는 스패너로 사정없이 후려쳤기 때문이다. 닥터가 특유의 기계공학쪽 센스를 살려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끔 관절을 부숴놨기 때문에, 그는 지금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닥터의 발아래에 얼굴이 반쯤 짓뭉개진 채 다급하게 입술을 열었다.
  “뭐, 뭐라고? 누굴 말하는 거냐!”
  한번 짜증난다는 듯 미간을 구긴 닥터는 스패너를 들어 기계손이 아닌 알랍의 손가락을 용서없이 찍어버렸다. 손톱이 부서지고 손가락 뼈마디가 피를 흩뿌리며 부러져 기괴한 몰골이 되자, 알랍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닥터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인상을 구기며 알랍의 목젖을 발로 슬쩍 누르고 물었다.
  “같은 말 세 번 반복하게 하지 마. 닥터 니들즈, 지금 어딨어?”
  “우우, 나, 나도 몰라!”
  알랍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닥터는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알랍의 얼굴을 스패너로 후려쳤다.
  “어~이, 닥터. 내가 좀 도와줄까? 고문이라면 자신있는데 말야.”
  멀리서 아직 살아있는 녀석들이 있나 시체들을 살피던 블레어가 닥터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의 홀랑 타버린 상의 아래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전신이 아직도 열기를 이글거리며 내뿜고 있었다. 닥터는 평소와 똑같이 방긋 웃어보이며 블레어에게 말했다.
  “아~니, 필요없으니까 네 놈 볼 일이나 봐라, 블레어.”
  “쳇. 그 쪽이 더 땡기는데….”
  블레어가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리자, 닥터가 알랍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 쉐리가, 목구멍에 확성기라도 달았나.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테니까 나한테만 조용히 말해봐.”
  “저, 정말 모른다니까!”  
  “야 이 새끼야.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니까 빨리 불어. 스패너로다가 이빨을 몽빵 빼버리기 전에.”
  뭔가 시뻘건 것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닥터의 스패너가 눈에 들어오자, 알랍이 덩치에 맞지 않게 덜덜 떨며 쥐새끼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정말이야. 닥터 니들즈는 우리에게 ‘여길 사수하라’는 지령만 내리고 사라졌다고.”
  “뭐? 여길 사수해? 개수작부리지마! 내가 아는 바로 너희들의 목적은 오늘 의사당을 습격하는…”
  “정말이야, 일주일 전에 사라져버린 뒤 너무 연락이 없어서 우리들만이라도 오늘 마드라엘에서 있을 ‘대종족회합’를 막기 위해 부대를 끌어 모았던 거라구!”
  “이게 무슨 헛소리를!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일주일 전이면 이미 샷셀에 너희들이 의사당을 습격한다는 정보가 입수된 뒤라고!”
  삐-
  닥터가 스패너를 들어 알랍의 생이빨을 뽑아버리려는 그 순간, 근처에서 작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닥터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부서져있는 작은 탁자 아래로 푸른 수정구슬이 박혀 있는 네모난 나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신 깜빡거리는 수정 구슬이 꼭 자신을 주시하는 눈동자와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통신기?”
  그건 닥터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당연하겠지. 명색이 과학자인데 저걸 모른대서야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건 바로 무선 통신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정구슬에 비친 영상을 상대방에게 전송까지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력까지 담고 있는. 그것은 마법과 과학이 한데 어우러진 최고의 예술품이었으며, 일반인들은 평생동안 한번 볼까 말까인 귀한 물건이었다.
닥터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알랍을 내려놓고 통신기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눌렀다.
  “…….”
  뭘 기대한 것일까? 상대방의 말을 기다리는 닥터의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흔들릴 때, 수정구슬 너머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에뮤알.』
  잠시간의 침묵,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닥터의 눈동자가 그리운 추억을 쫓아 고통스럽게 가라앉았다. 그는 잠시 뜸을 들여 여전히 생생하게 메아리치는 그 목소리를 몇 번 되뇌이곤 자신의 모습을 전송하고 있을 수정구슬을 지그시 바라보며 조용히 저 너머에 있을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메리….”
  메리 니들즈, 지금은 닥터 니들즈란 이름으로 경멸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자. 그러나 닥터는 여전히 그녀의 밝은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갈색 고수머리를 귀찮다며 위로 틀어올려 묶고, 얼굴만큼이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던 여자, 그리고 한 때 미래를 약속했던 닥터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이었다.
  『목소리가 별로 안 반가운 것 같네? 하긴 ‘그 날’ 헤어진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럴 법도 하지.』
  그리운 추억을 회고시키는 과거의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로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그럴지도 모르지.”
  『여전하네, 그 무신경한 말투는.』
  ‘후훗’, 통신기 너머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힘없는 소리였다. 그제야 닥터는 과거라는 괴리감 넘치는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메리는 저렇게 웃는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닥터 니들즈, 옛날이야기는 그쯤 해두자.”
  닥터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힘겹게 뜨며 특유의 저음으로 말했다. 그가 그리움에 잠겨 현실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듯, 메리 니들즈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무거운 시간의 공백이 흐른 뒤, 조금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닥터 니들즈의 목소리가 마치 차가운 기계음처럼 통신기를 타고 울려퍼졌다.
  『…그래. 당신은 옛날부터 공사구분은 확실했지.』
  “당신은 지금도 매력적이고 말야.”
  닥터의 농담에 통신기에서 억지웃음이 흘러나왔다. 하긴 웃을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과거의 연인이었던 그들이 지금은 적이 되어 만났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까? 아, 그러고보니 그럴 놈이 하나 있긴 했다. 맨날 샤이란에게 차이면서도 바보같이 웃는 블레어란 멍청이가. 닥터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녀석이라면 웃겠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거짓된 웃음일지라도.
닥터는 결심을 굳힌 듯 통신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메리, 지금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옛 친구로서 부탁한다. 그만둬.”
  장시간의 침묵. 그러나 침묵 뒤 되돌아온 목소리는 너무나 차가워 낯설기 그지없었다.
  『…너무 늦었어. 에뮤알.』
  “늦지 않았어.”
  그래, 그녀는 이제 메리 니들즈가 아니다. 냉혹무도한 ‘엑셀’의 리더, 닥터 니들즈다. 그러나 닥터는 아직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희망, 언제든지 그녀를 예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이 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닥터 니들즈의 목소리는 희망의 남은 뿌리마저 모조리 도려내려는 듯 서릿발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늦었어.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까.』
  “준비?”
  콰광!
  돌연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멀리 떨어진 입구에서 시뻘건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닥터는 장내를 뒤덮은 먼지구름에 기침을 격하게 내뱉으며 블레어에게 소리쳤다.
  “블레어! 대체 무슨 일이야?!”
  “콜록 콜록! 빌어먹을, 갑자기 입구가 폭발했으!”
  “뭐라고? 이게 대체…!”
  쾅! 콰르릉! 두 번째 폭발과 함께 입구천장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폭풍이 가라앉고 눈을 뜨자, 폭발과 낙석 때문에 생긴 뿌연 연기 사이로 물셀 틈 없이 완벽하게 틀어막힌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멍한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보고 있던 닥터의 귓가에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인 메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에뮤알. 네가 내일의 아침햇살을 볼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내일이면 모든 일이 끝날거야. 그리고 내일이면 나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메리,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닥터가 통신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알랍 스가티가 핏발 선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뜬 채 통시기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이봐 닥터 니들즈! 무슨 말이냐! 아니 그전에 지금까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샷셀 녀석들이 들이닥쳐 엑셀이 초토화되었다는 걸 알고는 있나?!”
  알랍 스가티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준비가 끝났다고? 준비? 무슨 준비?”
  ‘샷셀’, ‘실바니아’, ‘의사당’, ‘종족회합’, ‘닥터 니들즈’, ‘사수명령’. 알랍 스가티는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연관성이 적어보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되새김질 하고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다가 불현듯 뭔가 깨달은 것이 있었는지, 두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창백한 얼굴로 통신기를 향해 소리쳤다.
  “닥터 니들즈! 네 년 설마 우리를 미끼로 사용한거냐?! 실바니아 녀석들의 이목과 전력을 여기에 집중시키기 위해?!”
  알랍 스가티는 자신의 뇌리를 강타한 이 불길한 예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던 일련의 퍼즐조각들을 끌어 맞추자, 단 하나의 조각만이 남아 모든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었다.
닥터 니들즈의 목적은 명확했다. 그녀는 분명 오늘 마드라엘에서 있을 ‘대(大)종족 회합’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셈이리라. 오늘 갑자기 엑셀의 본진에 들이닥친 샷셀도 그렇고, 자신들에게 이곳에 남아 본진을 사수하라고 명령한 것도 그렇고, 이 모든 일이 그 일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았다. 그녀는 엑셀의 본진을 미끼로 내놓는 걸 통해 마드라엘쪽의 감시를 허술하게 만들고 전격적으로 일을 벌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엑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라지만 지금 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 것은 바로 닥터 니들즈가 자신들을 버림패로 삼아 이 모든 일을 꾸몄다는 사실뿐이었다.
  『알랍.』
  쿠르릉!
  두 눈을 부릅뜨고 통신기를 노려보는 알랍의 귓가에 닥터 니들즈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려온 건 세 번째 폭발이 멀리서 아치형 천장을 원형으로 받히고 있던 기둥 하나를 날려버린 뒤였다. 폭발음이 사라지자, 이어지는 닥터 니들즈의 거침없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당신은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마치셨습니다. 오늘의 일은 당신과 순교한 엑셀 형제자매분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니-들-즈!”
  알랍이 분을 못 이겨 피투성이가 된 왼손으로 통신기를 내리쳤다. 그는 통신기의 귀퉁이를 으스러져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네 이년!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고작 회합 하나를 망치자고 엑셀 자체를 무너뜨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일이 성공한다쳐도 엑셀이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그렇다, 알랍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록 오늘의 회합이 인간 중심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엑셀의 이념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조직 전체를 희생해서까지 막을 가치는 없었다. 그러나 닥터 니들즈는 알랍이 원하는 대답대신 냉소로서 그를 조롱할 뿐이었다.
  『후훗. 여전히 앞뒤 분간을 못하시는군요.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뭐, 뭐라고?!”
  『어쨌든 수고하셨습니다. 저승길에 이야깃거리라도 만들어드리고 싶지만, 수다는 싫어서요. 그럼 시간이 없으니 이만 작별 인사를 나누도록 하죠. 알랍.』
  “크아아아아! 니들즈 네 이년!”
  알랍은 피투성이가 된 주먹으로 통신기를 후려쳤다. 하찮은 계집에게 자신은 물론 조직전체가 이렇게까지 농락을 당하다니. 그는 내부에서 치솟아 오르는 이 분노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갑자기 통신기 오른쪽 위 모서리에 붙어있던 붉은 등이 ‘삑삑’거리는 작은 소음과 함께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 점멸되는 속도가 점점 빠르게 변해가자, 닥터 니들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옛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충고는데, 좀 떨어지는 것이 어떨까요? 알랍 스가티.』
  “이봐! 거기서 떨어져!”
  “니-들-즈―――――――――!”
  퍼엉! 닥터가 미처 막을 틈도 없이 통신기가 망막을 태워버릴 듯한 빛과 함께 알랍 스가티의 전신을 잠식하며 폭발해버렸다.

.
.
.

  천장의 등불이 금방이라도 죽을 듯 희미하게 깜빡이는 어두운 방. 1평 남짓이나 될까? 그 정도로 비좁은 그곳은 하나 밖에 없는 입구를 제한 모든 벽면이 각종 통신 장비들과 희뿌연 빛을 내뿜는 영상 송수신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 한마디로 희한한 곳이었다. 그보다도 희한한 건, 바닥에 어지럽게 굴러다니는 서류들 사이로 군복을 입은 다섯 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는 사실과 그 중심에 검은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희미한 조명사이로 아름답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갈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잘록한 허리께까지 내려온 것이 보였다.
깜빡이는 전구가 마지막 힘을 다해 크게 번뜩이자, 바닥에 널브러진 군인들의 차갑게 식은 육신 아래로 언뜻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시체들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오공에서 피를 내뿜고 있는 그 살풍경한 광경에도, 검은 정장 차림의 여인은 마치 지옥의 문지기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닥터 니들즈. 세간에는 인류지상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엑셀’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 냉혹한 사람이었다.
  지지지직.
  문득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직육면체의 손바닥만한 상자가 시끄러운 잡음을 쏟아냈다. 그것을 한참동안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닥터 니들즈는 문득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미안해.”
  우수에 젖은 슬픈 눈빛으로 미안해란 말을 한 건, 누굴 위해서였을까. 그러나 이내 원래의 냉혹한 모습으로 돌아간 닥터 니들즈는 미련없이 그 작은 상자를 통신기가 늘어서 있는 탁자위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버렸다. 큰일을 앞둔 그녀였기에 조그마한 감정도, 티끌만한 미련도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런데 몸을 돌리는 그 순간, 하나뿐인 입구쪽에서 차갑게 가라앉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비집고 들어왔다.
  “닥터 니들즈.”
  젊고 딱 부러지는 남자의 목소리. 닥터 니들즈는 이 낯선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재빨리 시선을 들어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과연 입구너머로 누군가 맞은편 복도 벽에 등을 기대선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장신의 잘생긴 청년이 뒤로 한껏 쓸어넘긴 칠흑의 머리카락 아래에서 날카롭고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에 메고 있는 가느다란 샤벨 검집이 유난히도 눈에 박히는 남자였다.
  “홀리웨이….”
  가늘게 벌어진 닥터 니들즈의 입가에서 그의 이름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홀리웨이, 그는 바로 저스티스의 12제 중,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남자였다—비록 어디까지나 뒷세계 이야기였지만—. 특히 어두운 뒷골목에서 그의 이름을 듣고도 오금이 저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소리 소문도 없이 상대방의 생명을 앗아가며 총알조차 반으로 쪼개버리는 귀신같은 샤벨 솜씨는 둘째치고,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어둠 속에 몸을 던진 사람치고 그 옛날 뒷세계 최고의 암살 조직 ‘언더(Under)’의 수장이었던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응당 바들바들 떨어야 정상일 닥터 니들즈는 의외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에 이색을 표한 홀리웨이가 앞으로 한발자국 다가서며 말했다.
  “물을 필요도 없겠군. 당신이 닥터 니들즈인가?”
  “대답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저스티스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긴 무슨 일이죠 홀리웨이?”
  그렇다, 저스티스와는 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12제를 앞에 두고도 보통사람인 닥터 니들즈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닥터 니들즈의 계획에 관해 중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알았던들 저스티스로서는 이 일에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마냥 방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리라. 개입할 연유가 없을 12제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문득 홀리웨이가 상의 안쪽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던졌다. 스카이 글라이더처럼 팔랑거리며 날아간 종이는 정확하게 닥터 니들즈의 발치에 떨어져 그 위에 적혀져 있는 깨알 같은 글씨들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안경 너머로 그것을 내려다본 그녀는 무덤덤하게 시선을 홀리웨이쪽으로 던지며 물었다.
  “이건 무슨 의미죠?”
  흘낏 본 그 종이엔 오늘 계획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었다. 이걸 자신에게 던진 의미를 묻는 닥터 니들즈에게 홀리웨이는 기다란 샤벨을 천천히 뽑아들며 대답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만둬라.”
  “당신이 무슨 이유로?”
  은빛의 가느다란 검극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는 그 죽음의 샤벨을 바라보며, 닥터 니들즈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세상의 파멸과 혼돈을 바라는 저스티스의 12제가 검을 겨누고 자신의 계획을 가로막는다고?
  “닥터 니들즈, 계획을 세운 당신이라면 알겠지? 그 계획의 결과가 이 세상을 어떻게 파멸로 이끌 건지도.”
  “최악의 파괴자들이 모여있는 저스티스의 간부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이군요. 누구보다도 혼돈을 바라마지않는 것은 당신들 아니었나요?”
  “물론 베리도트나, 카타스트로프 같은 녀석들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원하진 않아.”
  “그런가요. 제가 하려는 일이 뭐길래 그리 극단적이죠?”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말해줄까? 네가 오늘 죽이고자하는 인물들은 각국의 대표적인 온건파 인사들이다. EU(Elf Union)의 아르카디아 수장, 진마국의 콘라드 에빌미드 국무대신, 실바니아의 보리스 이카루스 의장이 그 대표격인 인물이지. 간단하게 생각해볼까? 온건파들에게 있어서 상징적이랄 수도 있는 그들이 죽게 된다면, 멀든 가깝든 지금도 호시탐탐 타 종족들을 배제하려는 강경파들이 힘을 얻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 상징적 국가, 실바니아 공화국에서 인간중심주의자들의 조직 ‘엑셀’에 의해 그들이 죽는다면 적당한 명분도 생기겠고 말야.”
  “그거 흥미롭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가 혼란에 빠진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쪽의 상상일 뿐이잖아요. 그들이 죽는다하더라도 강경파들이 정권을 휘어잡는게 가능할까요?”
  닥터 니들즈가 냉소를 짓고 짐짓 어이없다는 듯 반문하자, 홀리웨이가 대답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그에 관한 물밑작업은 이미 끝났을텐데. 그들이 죽는다면 일은 순식간에 벌어질 거야. 수장을 잃고 혼란에 빠진 EU는 엘프지상주의자 ‘마르두스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할테고, 진마국은 국수주의자 ‘크로노스 공작’을 필두로 실바니아에 책임을 묻겠지. 무엇보다 에빌미드 마왕의 형제이자, 라이벌인 콘라드 에빌미드 공이 타국에서 죽임을 당했으니까 정권을 휘어잡는 것에 이만큼 좋은 기회는 없을 거야. 명분도 있고, 가장 큰 방해자가 사라진 거니까. 크로노스 공작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만큼 아둔한 위인이 아니지. 현마왕이 문제겠지만, 그가 아무리 평화주의자라하더라도 크로노스 공작의 세력을 무시해도 좋을만큼 그의 세력은 강하지 않아. 콘라드라는 아군을 잃은 이상, 그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지. 덤으로 이카루스 의장을 잃든, 그렇지 않든 이후 실바니아 공화국의 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어. 지금 공화국의 대다수 의원들이 전부 강경파니까. 이름뿐인 황제는 상징적인 의미 밖에 없으니 열외지.”
  홀리웨이는 잠시 말을 멈춰 닥터 니들즈의 반응을 살폈다. 비록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홀리웨이의 예리한 눈은 그녀의 등골을 타고 흐를 미세한 식은땀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의 대부분이 스니크가 가져다준 정보를 토대로 재구성한 추리였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지금까진 틀린게 없어 보였다. 자신의 추론에 더욱 더 자신을 갖게 된 홀리웨이는 이어 말했다.
  “물론, 마르두스 장군의 쿠데타에 관한 건 내 추측이다. 하지만 당신이 엑셀과 우리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춘 이틀 뒤, 그의 행적이 돌연 묘연해지더군. 게다가 그 휘하의 친위대 ‘헤드헌터’연대가 아군들은 물론 우리측의 감시에도 감지되지 않을 만큼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에 기반을 두고 추론한 거지만 네 반응을 보니 맞는 것 같군. 사건이 터져 EU 의회가 혼란에 빠지면 움직일테지. 그리고 얼마 전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자가 저스티스에 묘한 의뢰를 해왔다. 그래, ‘마왕 암살’이라는 말도 안되는 제안이었어. 누굴 지는 뻔하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오늘 있을 ‘대종족회합’, 그리고 당신이 종적을 감춘 전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군.”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닥터 니들즈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미간을 노리는 샤벨의 검극이 그 순간 놀라울 정도로 흔들림을 멈췄다.
  “이 일이 끝나면 앞날은 뻔해. 이 아이스타스 대륙에서 미묘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나라 3개가 한꺼번에 부딪히게 될 테니까. 과거 용족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던 ‘종족전쟁’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혼란스러운 전쟁이 벌어질 거야. 서로간에 타 종족을 완전히 말살하고자 하는 아귀다툼이.”
  “재밌는 추리군요. 하지만…”
  닥터 니들즈가 무표정하게 덧붙여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저스티스가, 그리고 당신이 날 막을 이유는 없지 않나요, 홀리웨이?”
  휙! 순간적으로 닥터 니들즈가 소매에서 작은 구슬을 하나 꺼내 홀리웨이를 향해 던졌다.
  “흥!”
  핑! 동시에 홀리웨이의 샤벨이 버들나뭇잎처럼 흔들리나 싶더니 가느다란 검면이 구슬을 후려쳐 멀리 날려버렸고 날아간 구슬이 섬광과 함께 복도 저편에서 폭발했다. 그러자 복도 전체가 곧 시꺼먼 연기와 화염으로 꽉 들이찼고 닥터 니들즈는 재빨리 입을 막은 채 매캐한 폭연을 시야막이로 삼아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연기를 뚫고 나온 홀리웨이의 시퍼런 샤벨 쪽이 더 빨랐다. 파공성을 내며 그녀의 눈앞을 가로 지른 샤벨은 벽에 깊숙이 틀어박히며 그녀의 움직임을 잠시동안 멈추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닥터 니들즈의 탈출시도를 지연시킨 홀리웨이는 이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벽에 거칠게 밀어붙인 뒤, 그녀의 두 눈동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두 번의 경고는 없다. 그만둬.”
  “거절한다면? 날 죽이기라도 하실 건가요?”
  “…필요하다면.”
  문득 닥터 니들즈가 요염하게 두 눈을 흘기며 홀리웨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놀란 홀리웨이가 흠칫하며 뒤로 슬쩍 물러나자, 그녀가 비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그럼 죽이세요.”
  “큭! 못할 것 같나?”
  쉭! 순식간에 소매 안쪽에서 단도를 뽑아든 홀리웨이가 닥터 니들즈의 목을 위협했으나 그녀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었다. 홀리웨이가 자신을 쉽사리 죽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이와 여성에겐 관대하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고 그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홀리웨이의 칼끝이 쉽지 않은 결정과 망설임 때문인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왜 그러죠 홀리웨이? 필요하다면 죽일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크으윽.”
  닥터 니들즈는 흘러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못하겠다면. 이제 그만 무대에서 퇴장해주세요.”
  “뭐라고?”
  홀리웨이가 미처 반응하지 못한 그 순간 닥터 니들즈가 머리카락을 넘기던 손으로 자신의 귀걸이를 움켜쥐었다.
  파삭!
  그녀의 귓불에 매달려있던 귀걸이가 맑은 소리와 함께 깨지자, 증기처럼 무색투명한 연기가 사방으로 뿜어져나왔다.
  ‘독가스인가?!’
  홀리웨이는 본능적으로 소매를 들어 호흡기를 막고 뒤로 물러났지만 그건 이미 가스가 그의 폐부로 스며들어간 뒤였다.
  “욱!”
  결국 그의 목구멍으로 한웅큼의 피가 왈칵 쏟아졌다. 샤벨을 땅에 꽂아 간신히 몸을 지탱한 그는 바닥에 쏟아진 자신의 토혈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희미한 시야 너머로 너무도 선명한 붉은 것이 그의 뇌리를 온통 붉게 물들였다.
  “피…?”

  두근!

  피를 보는 순간, 갑자기 심장박동소리가 머리를 징징울려댈 정도로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다리에서 힘이 풀려버렸나? 그는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이, 이건….”
  전신에서 힘이 온통 빠져버리고 주변의 시계(視界)가 온통 피바다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공포심에 어린 눈동자로 그걸 바라보며 그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억제할 수 없는 뭔가가 그의 내부에서 힘찬 고동과 함께 살아나고 있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복도 너머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가는 닥터 니들즈의 모습이 보였다. 급히 해독제를 투여했는지 작은 주사기 하나가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가 복도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마치 구원을 원하듯 손을 뻗었다.

  두근!

  독 때문이 아니다. 이미 수백가지의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이 정도의 독은 그렇게 큰 위협거리는 못 된다.

  두근!

  하지만 세 번째 맥동이 귓가에 울려퍼지자, 돌연 붉게 점멸되는 시야사이로 환영처럼 희뿌연 손 하나가 나타나 길게 뻗은 그의 팔을 느릿하게 쓰다듬는 것이 보였다. 처음엔 형체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던 그것은 홀리웨이의 팔을 쓰다듬으며 형상을 찾아갔고, 곧 이어 우윳빛을 띈 매끄러운 손으로 변해갔다. 마치 자신의 손을 그대로 복사한 듯 그것은 홀리웨이의 것과 똑같이 생긴 손이었다.
유령의 손이 완전한 형체를 얻어 차가운 촉감까지 느껴질 때쯤, 그것이 천천히 그의 팔뚝을 거쳐 어깻죽지로까지 이동했다. 오른쪽 목덜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호흡이 느껴진 건 바로 그 때였다.
  “아, 안돼….”
  무엇이 그리 두려운 걸까, 가늘게 떨고 있는 홀리웨이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등 뒤에 서서 마치 애무하듯 그의 어깨를 쓰다듬던 누군가가 문득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안녕, 홀리웨이?

  고개를 돌리자, 홀리웨이 자신과 놀랍도록 흡사한 얼굴이 그를 보고 있었다. 백짓장처럼 창백한 실루엣과 피처럼 붉게 물든 흰자위. 귀밑까지 길게 찢어진 그 입술은 광기로 짙게 얼룩져 있었다.
  “데, 데드웨이(Deadway)….”
  그 순간, 홀리웨이의 시야가 완전히 붉게 물들어버렸다.

  한편 닥터 니들즈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어디론가 향했다. 늦지 않게 해독제를 놓았다지만 아무래도 강력한 독이다보니 해독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힘겹게 벽을 집고 움직이는데 격한 기침과 함께 비릿한 피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위이이잉!
  뒤늦게 화재경보와 함께 맞은편 복도에서 위병들이 여럿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의사당에 세계 각국의 요인들이 몰려있는 와중에 폭발로 의심되는 화재가 일어나자 이 근처에서 무장이 비교적 가벼운 병사들만이 부랴부랴 선발대로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본 닥터 니들즈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내걸렸다.
  “위병!”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재빨리 접근해오자, 그녀는 일부러 입술을 깨물어 핏물이 베어나오게 했다. 과연 다가온 병사들의 표정이 의심에서 걱정스러움으로 돌변하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하긴 가녀린 여성이 무기도 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남자라는 족속들이 무슨 의심을 하겠는가. 어찌되었든 한 병사가 그녀를 부축하며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금방이라도 꼴깍 넘어갈 듯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스티스가. 저스티스가 저쪽에! 어서 병사들을 불러요! 어서!”
  “저스티스라고요?! 저기라면 중앙경비실 방향인데!”
  “거긴 이미 전멸했어요!”
  과연 병사들의 표정이 창백해지며 서둘러 지원병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회의장 2층, 베타 12 에어리어의 찰리 7이다! 본부, 코드 레드 발령을 요청한다! 코드 레드 발령! 상황 줄루 원이다! 반복한다! 여기는 찰리 7! 상황 줄루 원!”
  저스티스의 출현을 의미하는 상황 줄루 원을 외치며 상부에 보고한 병사들은 곧이어 닥터 니들즈를 의료실로 호송할 한명만 내버려두고 지금 홀리웨이가 쓰러져있을 곳을 향해 우루루 몰려갔다. 홀로 남은 병사가 그녀를 부축하려 하자, 그는 괜찮다고 말하며 도움을 거절했다. 잠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본 병사는 힘차게 거수경례하며 총을 짊어지고 동료들을 따라갔다. 그 사이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닥터 니들즈는 희미하게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의 장소에 도착한 병사들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오르는 복도에서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비밀 경호원이라도 되는 듯 검은 정장차림인 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샤벨로 위태로워 보이는 몸을 지탱한 채 힘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주저앉아 있었다.
병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소총을 겨눈 채 그자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섰다.
  “뭐야 이 놈은?”
  “죽었나?”
  한 병사가 소총 끝에 달아놓은 총검으로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들이던 순간이었다.
  쐐액!
  돌연 새하얀 검광이 병사의 소총을 가르고 거의 직각으로 꺾이며 총을 받히고 있는 그의 양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쉬익하고 바람가르는 소리가 뒤늦게 병사들의 귓가에 들릴 정도였다. 섬광의 끝엔 시퍼런 예기를 내뿜는 샤벨이 위이잉 울고 있었다. 샤벨의 검극엔 검붉은 핏방울이 마치 이슬처럼 맺혀있었다.
  “어?”
  뒤늦게 병사가 입을 떼는 순간, 돌연 소총과 그의 두 팔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두 동강난 채 땅으로 떨어졌다.
  “으, 으아아아아악!”
  동료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버리자,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재빨리 소총을 들어 남자를 겨누었다. 그러나 이미 그 자는 병사들의 뒤쪽에 서 있었다. 순간, 미처 그의 속도로 따라잡지 못한 듯 뒤늦게 시퍼런 검광이 병사들의 몸을 샅샅이 훑으며 지나갔다. 병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마, 말도 안….”
  “킥.”
  그가 비웃듯 입가를 길게 찢고 웃자, 돌연 조금 전까지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네 명의 병사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버렸다. 병사들이 뿜어내는 피보라가 천장이며 벽이며 할 것 없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혈우(血雨), 피로 이루어진 비를 온통 뒤집어쓴 그의 얼굴이 광기와 환희로 물들어 기괴하게 일그러져갔다.

  “하, 하하. 하하하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가 몸을 들썩이며 미친듯이 웃기 시작하자, 천장, 벽, 바닥 그리고 죽은 병사들의 몸속에서 희뿌연 형상의 악령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스르륵 흘러나왔다.
  “헉! 저, 저게 뭐야!”
  뒤늦게 몰려든 병사들이 이 해괴한 광경을 바라보며 창백하게 질려버리자, 피, 어둠 그리고 악령들에 둘러싸인 그가 광기에 찬 웃음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소리쳤다.
  “자, 춤춰라 고깃덩이들아! 내 이름은 데드웨이! 데스 위스퍼러(Death Whisperer), 데드웨이(Deadway)다!”
  비명을 내지르는 악령들이 병사들을 덮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

푸하하하하하!!! J님 드뎌 성공했심! 데드웨이 등장시켰심돠!!! ㅋㅋㅋㅋ

정확한 설정은 J님께서 만들어주시면 감사~ =3= (무책임하다!)

여튼!!! 일 다 벌려 놨지롱~ 메롱메롱~!!(헉 이런 초딩!)

ㅋㅋㅋㅋㅋ

비록 캐난감하게 끝났지만 여기까지 끝낸 이상 나머지는 다음 타자들에게 맡기겠심둥!!! 낄낄낄낄!




PS:길다고 투덜거리지 마셈!!! 뒤에 있던 데스티니 조원들 탈출장면 약 5페이지 정도는 아예 지워버렸으니께~~ 케~로케로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