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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Le Comte de Vergnette

2007.05.25 04:33

Mr. J 조회 수:1345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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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mte de Vergnette

베르그네트 백작




험악한 인상의 사내에게 안내를 받아 저택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또 한번 펼쳐진 장관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앞문 밖의 광장만큼 넓은 중앙 홀은 상아색의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들로 가득 차 있었고, 테이블 위엔 온 세상의 진귀한 요리만을 모아놓은 듯한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었다. 쇠 꼬챙이에 꿰어져 통째로 구워진 아기 돼지에 큼지막하게 썰린 칠면조 고기, 너무 싱싱해서 해산물들이 살아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브르따뉴와 부이야베스, 그리고 알레 봉골레. 먹음직스러운 사르데 인 사오르, 카르파치오, 라디치오 알라 그릴리아. 중앙의 큰 테이블 위엔 잘 구워진 파자노 타르 투파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코다 알라 바치나라가 가득 든 단지. 그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하고 이국적인 요리들이 즐비하였다. 손님들은 각자 자리로 안내되었고, 그들이 진수성찬을 즐기는 동안 여러 명의 하인들이 고급 술을 들고 다니며 손님들이 원할 때마다 잔을 채워주었다. 그 연회는 지금껏 있었던 그 어떤 연회보다도 사치스러웠으며 또 그 크기가 다른 것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어쩌면 궁전의 파티보다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손님들은 요리의 멋에 한번 감탄하고선, 또 한번 그 맛에 감탄하였다. 그들은 식사를 하며 이 굉장한 파티를 열은 이 부자 귀족 베르그네트를 예찬하였다. 여전히 그에 대한 궁금증은 한 가득 가슴에 안은 채로.

식사가 시간되고 얼마 안되어, 예의 녹색 조끼 사나이를 동반한 베르그네트 백작이 홀의 대리석 계단으로 걸어 내려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망토를 벗고 단정한 검정색 예복을 차려 입은 백작은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하인에게 작은 술잔을 받아 들었다.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본 사람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전부 그를 바라보았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진 홀을 보고 백작은 미소를 짓더니, 들고 있던 술잔을 들어 올렸다.


“식사들은 잘 하고 계십니까?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시길 바랍니다.”
그가 말하자 손님들은 제각기 대답할 말을 중얼거렸다. 백작은 계단을 내려와 홀을 가로질러 가며 손님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에게 말을 건 손님 중에는 런던의 시장 조지 히크모트, 부시장 스티븐 오’힐리, 그리고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벤 테너도 있었으며, 태양열 승용차 기업인 ‘베넷’사의 사장 제임스 베넷도 있었다. 런던 오페라 극장의 유명 극작가 브래드 에반젤리스타도 있었으며 잡지사 ‘롤리팝’의 사장 폰 아델헤이드 백작, 표백제 따위의 세제 공장의 사장으로 유명한 피터 블레이크씨, 손수건이며 직물 공장의 사장인 해리 행키씨, 런던의 뒷골목 유흥가를 쥐고 있는 패트릭 우드콕씨도 있었다.
그가 막 스무 번째 손님과 악수를 마쳤을 때, 키가 작은 대머리 남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베르그네트 백작님, 저어……. 괜찮으시다면 저쪽 테이블의 신사분들께서…….”
그는 눈짓으로 홀의 오른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은 샹들리에 불빛이 미처 닿지 않아 살짝 어두운 감이 있는 장소였다. 그 테이블엔 여섯 명의 신사가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것이 그다지 친근하지가 못했다. 게다가 이 남자는 지금 연회의 주최자인 백작이 직접 가서 그들에게 인사를 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괘씸하기 그지 없는 행동이었으나, 뭔가가 심상치 않았다. 백작이 잠시 생각을 하는데 그의 옆에 있던 녹색 조끼의 남자가 귀띔을 하였다.


“저자들은……. 여섯 마왕이라고 불리는 자들입니다.”
“여섯 마왕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야코포?”
야코포라 불린 녹색 조끼의 남자는 다급하게 대답하였다.


“일단 가서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백작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양손을 비비고 있던 대머리 남성을 따라 어둑어둑한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여섯 명의 신사들은 베르그네트가 다가오자 고개를 들어 그를 가볍게 바라보았다. 중간에 앉은 뾰족한 콧수염의 노신사가 헛기침을 하자, 양복 앞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던 대머리 남자가 그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 저…… 음, 그렇죠. 일단 여기 계신 신사분은 루스 베네딕트경 이십니다. 제 1산업지구 총 책임자 이시지요. 런던에 잠시라도 계셨었다면 이름은 한번쯤 들어 보셨으리라…….”
노신사가 다시 헛기침을 했고, 대머리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말을 멈췄다. 베르그네트는 그 노신사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꽤 많은 것 같음에도 허리가 곧았으며, 회색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고 단안경을 낀 모습은 매우 엄격해 보였다. 베르그네트가 그를 자세히 바라본 이유는, 모노클 너머의 한쪽 눈동자 속에서, 휘몰아 치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야코포가 옆구리를 찔렀고, 백작은 정신을 차렸다.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베네딕트 경.”
그가 인사를 하자, 노신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에 답하였다. 대머리 남자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얼른 그 옆의 남자를 소개하였다.


“아, 그리고 이분은…….”
그 순간,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베르그네트의 뒤에서 한 신사가 나타났다. 백작이 돌아본 그곳엔, 얼굴이 동그랗고 배가 나온 한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 신사가 서 있었다. 그의 호쾌한 웃음소리와는 다르게 작은 코걸이 안경 너머의 눈빛은 마치 칼날과도 같았다. 그는 갈색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불쑥 튀어나온 그의 배 아래, 벨트엔 금색으로 빛나는 경찰 배지가 달려 있었다.


“레, 레이드 총경!”
대머리 남자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카메론 레이드 총경, 그가 누구인가.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범인을 직접 검거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엘리트 경찰이 아니던가. 마치 촘촘한 그물망 같은 치밀한 수사계획을 짜 언제나 성공하여 신문의 1면에서 활약상을 볼 수 있는 경찰이 아니던가. 그가 ‘여섯 마왕’의 테이블에 오자, 순간 그 주변의 분위기가 차갑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베네딕트 경을 제외한 다섯 명의 신사와 대머리 남자의 표정은 석상처럼 굳어졌다. 베네딕트 경만이 조용히 앉아 찻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레이드 총경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백작의 손을 휘어잡고 거칠게 흔들며 악수 아닌 악수를 하였다.


“자네가 베르그네트 백작이로군! 생각보다 젊구만? 으허허허허허!”
베르그네트는 정신 없이 그의 손에 휘둘렸다. 순간 갑자기 레이드 총경은 백작의 손을 거칠게 잡아 그를 코 앞까지 끌어당겼다.

“마흔 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 이렇게 대단한 저택을 가지고 있다니 수완이 좋은 모양이지?”
그가 속삭였다. 백작이 뭔가를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잔인하게 속삭였다.

“아니면, 뭔가 뒤가 구린 일이라도 했을려나?”
백작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총경의 손아귀는 마치 쇠고랑처럼 단단해서 아무런 대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총경은 백작을 놓아주며 다시 호탕하게 웃어대었다.

“으하하하하! 농담이야, 그렇게 얼어붙지 말라고!”
그러나 그의 눈동자만큼은 농담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잠시동안 그렇게 웃더니, 이윽고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던 베네딕트 경을 발견하곤 웃음을 멈추었다.


“오? 베네딕트 경 아니십니까?”
그가 능글맞게 웃으며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지만, 베네딕트 경은 그 손을 한번 흘끗 쳐다본 뒤 가만히 앉아 차를 마실 뿐이었다. 총경의 얼굴은 잠시 굳었지만 다시 능글맞은 미소로 바뀌며 손을 점잖게 거두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여섯 분을 전부 뵐 줄이야. 설마 뭔가 응큼한 일에 대해 토론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탁, 베네딕트 경이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홀은 수많은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로 매우 소란스러웠지만, 백작과 총경, 그리고 여섯 신사가 있는 그 테이블만큼은 공기에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그 여섯 신사와 레이드 총경 사이에 보이지 않는 폭풍이 휘몰아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괜찮으시다면 이만 실례하지요.”
무시무시한 침묵을 깬 것은 베르그네트 백작이었다.

“제가 몸이 좀 안 좋은 관계로 잠시 올라가서 쉬어야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지요.”
그 말과 함께 백작은 야코포와 이층의 서재로 올라갔다.


“괜찮으십니까?”
야코포가 서재의 묵직한 문을 닫으며 말했다. 베르그네트 백작은 머리가 아픈지, 커다란 원목 책꽂이에 기대고 있었다.

“le coup de foudre.”
백작이 중얼거렸다.

“예?”

“le coup de foudre……. 알 수가 없는 일이군.”
백작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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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포 (Jakopo)
백작이 과거에 만난 동료. 지금은 집사 일을 하고 있다. 얼굴에 난 길다란 흉터가 인상적인 인물이다.

#루스 베네딕트 경 (Sir Ruth Benedict)
야코포에 말에 의하면 런던의 '여섯 마왕'중 하나인듯 하다.
단안경과 뾰족한 수염, 뒤로 빗겨낸 회색 머리카락. 60살은 족히 되어보이는 노 신사이다.
아직 알려진 바는 별로 없고 북쪽 제 1 산업지구의 총 책임자라는 것만이 알려져 있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