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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Le Comte de Vergnette

2007.05.24 13:41

Mr. J 조회 수:1458 추천:5

extra_vars1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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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mte de Vergnette

베르그네트 백작




지구에 존재하는 단 한 개의 제국, 네온 제국.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기적과도 같은 속도로 문명을 발달시켰다. 2000여 년의 역사는 그의 절반도 채 안 되는 500여 년 만에 그 대부분이 이루어졌다. 그 대신 인류가 얻게 된 것은 전에 없던 환경오염이었다. 인공 대륙 딜문의 외곽엔 엄청난 규모의 산업단지들이 즐비했고, 그것들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은 낮의 하늘도 밤처럼 검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산업지구들은 땅에서 제 2의 석유라 불리는 ‘적황’을 뽑아내고 있었는데, 적황을 태움으로써 얻는 에너지는 지금까지 존재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인류의 엄청난 재활 속도 역시 적황의 덕이 컸다. 그러나 땅에서 적황을 추출해 내면, 흙이 푸석푸석해 짐과 동시에 어떤 생명체도 자라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오염되었다고 표현하기보단, 그냥 죽어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한 모습이었다. 겉이 시커멓게 되더라도 드릴을 좀더 깊숙이 박아 넣으면 적황을 추출해 낼 수 있었기에, 한번 산업단지가 만들어 지면 그것들의 수명은 꽤나 긴 편이었다. 더 이상 적황을 뽑아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척출기의 자리를 조금 옮기면 되었다.

물론 인류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었던 땅에선 아무것도 척출할 수 없었고, 그 남는 땅엔 사람들이 살기 좋은 거대한 도시들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도시로부터 산업지구의 오염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인간들은 매연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거대한 돌 벽을 도시 주변에 깔았다.


인류는 막 대홍수 이후로 잃어버린 과학력을 슬슬 되찾아 가는 때였기에, 아직까진 서기 2030년 이후의 과학 기술까지 성취하진 못하였다. 빠른 속도로 회복을 하고 있었지만, A.C. 534년 네온 제국의 수도 런던은 서기 19세기 영국의 런던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붉은색과 암갈색 벽돌로 지어진 고딕 풍 건물들과, 검정색 돌로 정교하게 깔린 도로. 벽난로를 피워 굴뚝에선 연기가 흘러 나왔다. 매일 거리는 검정색 양복과 점잖은 모자를 쓴 신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매일 아침이면 구리 색 자전거를 탄 신문 배달원이 이 집, 저 집에 신문을 배달하였다. 간혹 길거리에선 신문지 뭉치를 한 가득 품에 안고서 ‘특종! 특종!’을 외치고 다니는 코흘리개 소년도 볼 수 있었다.


런던은 황제의 궁전이 위치한 장소인 만큼, 부유한 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부유층보단 좀 못한 중반 계층들은 런던의 외곽에 살았고, 하급 계층은 땅값이 비싼 런던 안에서 살 수가 없었다. 가난할수록 사람들은 오염방지 벽 근처에 살게 되었다.

런던의 온갖 유명인사들과 부유층이 모여 사는 궁전 주변엔, 거대한 저택이 하나 있었다. 궁전 다음으로 컸던 그 저택은, 주인을 잃은 지 매우 오랜 세월이 흘러 그 때의 영광은 전부 이끼와 넝쿨줄기에 가려졌지만 그 웅장함만큼은 가려질 수 없었다. 정원 내에 작은 호수가 있었고, 수십 개의 방으로 구성된 저택 주변의 정원은 작은 숲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저택을 둘러싸는 담장도 매우 견고하고 높게 지어져서, 쇠창살로 된 정문 사이로 들여다 보기 전엔 담장 너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조차 없었다. 그 담장을 기준으로 저택은 런던의 다른 거리와는 마치 다른 세상의 무언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 저택은 수십 개의 공장을 소유한 네온 최고의 부호가 살고 있었던 저택이었는데 자손 하나 없던 그가 죽고 나서 저택은 경매에 올려졌지만 그 가격이 너무나도 높아 그 누구도 함부로 살 염두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저택은 버려진 것이 아니면서도 버려지게 되었고, 늙은 관리인만이 저택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택은 누가 사는 곳이라는 느낌보단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인식되어 런던의 사람들은 그저 길을 가다가 한번씩 아무 생각 없이 저택을 보며 지나칠 뿐이었다. 쇼 윈도우의 물건 따위처럼 저택은 가지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안 되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 대 저택은 이미 ‘사는 행위가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리라.


어느 화창한 봄날, 심심한 런던의 주민들에게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겼다. 런던 거리를 바쁘게 활보하는 한 무리의 ‘전달자’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금색 실로 고급스럽게 무늬가 수 놓인 붉은 옷을 입은 하인들이 손에 편지인 듯한 것들을 서너 개씩 들고선 이곳 저곳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런던에 위치한 모든 부호들과 유명인사들의 저택을 돌아다니며 그 ‘편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 하인들은 ‘그 저택’에서부터 왔다는 것이 밝혀졌고, 저택을 구입한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이야기가 귀부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가십 거리로 올랐다.


“황제의 사촌이라지요?”
뚱뚱한 스펜서 부인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어머, 저는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비쩍 마른 브래드포드 부인이 점잖은 체 하며 말했다.
“북쪽? 런던도 아닌 곳에서 무얼 했는데요?”
스펜서 부인이 묻자 키가 작은 보일 부인이 대답했다.
“북쪽엔 산업단지가 많다잖아요? 누가 알아요? 산업지구 사장님인지.”


곧 하인들이 전달하던 편지들은 저택에서 열릴 파티의 초대장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런던의 이름있는 유명인사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초대되었다. 그들도 분명 대 저택을 구입한 귀족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서 어쩔 줄 몰랐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검정색과 짙은 파란색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초대장에 쓰여진 ‘베르그네트 백작의 연회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라는 글귀를 읽고 또 읽으며 파티 날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저택의 쇠창살 문 앞에 몰려들었지만 거대한 쇠창살 문은 천막으로 덮여 그 안을 바라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건장한 경비병들이 문 앞에 서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연회의 날. 쇠창살 문에 걸쳐져 있던 천막은 걷어내려 지고, 문은 활짝 열렸다. 초대장을 받은 손님들의 행렬이 거리에서 거리로 이어졌다. 모두들 아무도 살 수 없었던 그 대 저택을 구입한 엄청난 부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부인들은 한껏 멋을 내고 그들의 남편과 아이들이 단정하게 차려 입었는지를 수십 번 확인했으며, 남편에겐 반드시 저택의 주인, 베르그네트 백작과 친해지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으며, 아이들에겐 점잖게 행동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젊은 처자들은 미혼일지도 모르는 백작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치장을 하고, 최신 유행의 옷을 입었으며, 최고급 향수를 뿌렸다.


경비병에게 초대장 검사를 받고 들어선 처음 손님들은 저택의 새로운 모습에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그 넓은 정원의 나무들은 전부 손질되어 있었고, 잔디는 잘 깎여 있었다. 게다가 전엔 없던 각종 꽃이 심어져, 그 아름다움이 굉장하였다. 저택의 앞에 있던 ‘작은 호수’는 깨끗이 청소되고 분수와 전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가의 조각품들이 새로 깔린 회색 자갈길 곁에 놓여져 있었고, 밝고 고급스러운 주황빛을 발하는 가로등이 길가에 일렬로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택의 겉에 덮여있던 이끼와 넝쿨이 전부 정리되어, 새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된 저택의 호화스러움이 다시 살아나 있었다. 그 웅장함에 할 말을 전부 잃은 손님들은 그 찬란함에 경직되어 혼이 빠진 사람들처럼 움직이며 대 저택의 문 앞에 도착했다.

금칠이 되어 있는 대 저택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저택 앞 광장에 도착한 손님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알 수 없는 상황에 우왕좌왕 하였다. 그리고 그때, 문이 열렸다. 안쪽엔 문을 연 건장한 하인 둘과, 하인이라고 하기엔 비교적 화려하게 차려 입은 남성 하나가 서 있었다. 녹색 조끼와 가죽 모자를 쓰고 끝부분이 도금된 작은 지팡이를 든 남자는, 얼굴에 길쭉한 상처가 나 있었다. 천박해 보이진 않았으나 또 그렇다고 해서 귀족의 위엄을 가진 사내는 아니었다. 군중들은 그의 정체가 궁금한지 웅성대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그가 양 팔을 벌리며 외쳤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에게 이 대 저택의 새 소유자 – 베르그네트 백작을 소개합니다!”
그가 양 손으로 저택 위를 가리켰고 군중들의 얼굴은 전부 그곳을 향하였다. 저택 위의 어두워 지는 밤 하늘에선, 거대한 열기구가 천천히 착지하고 있었다. 관중들이 경탄하자, 기구 위에서 동아줄들이 내려뜨려지더니, 빛나는 치장을 한 곡예사들이 줄을 타고 내려오며 아찔한 묘기를 선보였다. 바닥에 내려온 곡예사들은 그 밧줄을 잡아당겨 기구를 저택 위에 안전하게 착지시켰고, 기구에 달린 작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치장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망토, 금 실로 무늬가 수 놓인 가죽 조끼, 칠흑 바지와 윤이 나는 부츠. 커다란 녹색 보석이 순금 손잡이에 박힌 검정색 지팡이. 그의 짙은 회색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흘러내려왔고, 수염은 정돈되어 있었으며 살짝 탄 갈색 피부와 잘생긴 외모는 그를 고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야말로 귀족의 걸음걸이라 할 수 있었으며, 그의 자태야 말로 부호의 자세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저택 옥상의 발코니에 섰다. 군중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이 베르그네트 백작이란 인물을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고개를 바짝 올려 세웠다. 발코니의 백작은, 양 팔을 크게 벌리고 상체를 숙여 인사하곤, 입을 열었다.

“환영하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그 한마디를 하고는 바로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