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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팬픽 사립 학원 ACOC

2007.05.09 21:30

하코 조회 수:2307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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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무도회장이 되어버린 강당은 시끌벅적했다. 강당 중심에서부터 원 모양의 테두리로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 한 가득 음식이 차려져있었다. 그리고 강당 중심에는 커다란 양탄자가 깔려있었다. 그 용도야 당연히 춤을 추기 위한 것이겠지만, 춤을 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이사장이 제공한 테이블에 앉아 음식만 씹으며 투덜댈 뿐이었다. 천무가 무안한 듯 밤무대 복장으로 열심히 춤을 췄지만, 무대 위 조명만 쓸쓸히 천무를 반겨주었다. 학생들은 강압에 못 이겨 입은 양복을 구기며 작품을 쓰고 있을 뿐이다. 강당 스피커에서 딴따라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당이 시끌벅적한 이유는 저 음악 때문이지 결코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싸늘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젠장.”


러크는 왜 지금 자신이 이따위로 앉아있을까 고민했다. 일단 이 분위기와 맞지 않은 엄숙한 양복 -준비물에 적혀있던 양복의 용도가 엄숙한데 쓰일 거라 착각했다- 부터가 창피했다. 옷이 신체 사이즈 보다 더 커서 온 몸을 덮는다는 것이 부끄러움의 큰 관건이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음악이나, 홀로 외로이 댄스를 추는 천무까지도 왠지 창피해졌다.
원래 이 행사는 엄연한 ‘글쓰기 대회’ 일 것이다. 하지만 천무가 ‘모두가 따분해 할 거다!’ 라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물을 흐려놓는 것도 모자라서, 강당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반응이 안 좋으니까 홀로 춤을 추고 있는 것일 것이다. 분명히 타 학교가 안다면 개망신 당할 일 이라고 러크는 생각했다.
신입생들 사이에서 ‘시건방진 러크’ 라고 불리는 자신이었다. 그런 별명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시건방지게 다니는 자신이 이렇게 쪽팔린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쪽팔릴까하고 하지 않던 남 걱정까지 저절로 들었다. 분명 자신이 이런 행사를 만든 것도 아니고, 피해자의 입장일 뿐인데도 너무 창피했다. 이유도 모르게 창피하고 짜증났다.

가문에선 명문 학교에 입학했다고 크게 기대하고 있을 텐데. 러크는 왠지 모를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괴로워도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시끄러워! 가뜩이나 쪽팔려 죽겠는데 무슨 긍정적이야!”


그리고 옆에 늑대소년이 있다는 것도 상당히 괴로웠다. 이놈은 뭔데 다 타버린 속을 또 긁는 걸까. 늑대소년은 이런 분위기가 부담스럽지 않은지 태연한 표정이었다. 손을 기계적으로 옮기며 테이블 위에 음식을 꼭꼭 씹어 먹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소화가 잘 되는 걸까. 러크는 언제나 그렇듯 신기한 동물 보듯이 늑대소년을 주시했다.

찰랑이는 은발 밑에 한 쌍의 귀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입고 있는 검은 무도회용 예복은 평범한 편에 속했지만, 옷걸이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보통 예복 같은 옷은 아직 어린 학생들이 입기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늑대소년은 예외였다. 신비한 은발 밑에 자리 잡은 지적이고도 침착한 눈동자, 언제나 신중한 표정. 그리고 신체까지도 예복에 딱 맞게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 길던 다리에 검은 예복이 붙으면서 더 길어보였다. 그렇게 옷을 입은 늑대소년을 보면 한명의 ‘신사‘ 같았다. 어떻게 들으면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나 부정적으로 보나 뭔가 신비한 분위기였다.


“뭘 그리 보는 겁니까, 부담스럽게. 마음이 있으면 있다고 해주세요.”


“뭔 헛소리야! 이 기분 나쁜 놈!”


물론 러크에겐 한없이 재수 없어 보일뿐이었다.


“기브씨, 그 옷차림은 뭐지요.”


“그게 무슨 꼴이냐, 기브. 크큭.”


누군가 터덜터덜 걸어오며 늑대소년의 옆에 앉았다. 뭔가 상당히 특색 있는 복장의 사람이었다. 늑대소년은 이 특이한 복장의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아는 채를 했다. 러크도 마찬가지였다. 그 특이한 복장의 주인공인 기브는 굳어진 표정으로 좌절하고 있었다.
어딘가 어색한 노란색의 나비넥타이, 심하게 실용성 없어 보이고 딱히 장식용으로 보기에도 어색한 스티커 도형들, 그리고 몇 십 년대인가 기억도 안 나는 추억의 나팔바지. 심지어 붙여진 스티커는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당연히 주위의 시선과 비웃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굳어진 기브의 얼굴과 옷차림을 보고 웃던 사람들은 이내 그 옷차림이 어떤 사람과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다. 누굴까, 누구일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무대에서 홀로 춤추는 천무를 보고 느꼈다. 천무의 복장과 똑같다!


“늦게 나가다가 이사장님한테 붙잡혀서 이 옷을 입게 됐어, 젠장.”


기브는 좌절한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 뱉었다. 러크는 대 놓고 비웃으며 천무와 기브의 복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늑대소년은 기브가 올 때 한번 신경 쓰더니 다시 자기 일에 빠져있었다. 왼손으로는 음식을 집어 꼭꼭 씹어 먹으며, 오른손으로는 글을 쓰고 있었다. 기브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한번 내 두르더니 주위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자신도 종이와 연필을 집었다.

강당은 한 없이 침중해지고, 천무의 원맨쇼도 아무 성과가 없게 되자 찰드는 자신이 나서야함을 느꼈다. 그리고 2층으로 뛰어가더니 요리실로 들어갔다. 몇 초후, 찰드는 애플쨈을 데리고 나와 무대 위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서 찰드는 애플쨈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풀거리는 옷자락, 한 없이 가벼워 보이는 그 춤을 보는 사람은 할 일없는 러크 혼자뿐이었다. 그 외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멋진데.”


러크의 의미없는 한마디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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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미워하지 마십쇼. 다만 귀차니즘을 미워하십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