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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배틀로얄

2007.12.30 21:33

베넘 조회 수:367 추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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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쥐어준 데이 팩을 들고 교실을 나온 후에도, 소년은 한동안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싸늘하게 식어버린 분위기며, 웅성거리는 소리는 멍하니 복도에 서 있는 그의 머리에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뭐지? 대체 뭐야, 이 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전개는? 아, 혹시 꿈인가?
그는 가만히 왼 손을 들어 뺨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픈가?'

아픈 것도 같지만, 왠지 평상시보다 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역시..
곧 다시, 그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무슨 어이없는 생각이람..'

조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해 보자는 의미에서, 그는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꽉 쥐었다 펴 보았다.
이런 행동들이 상황을 파악하는데 얼마나 많이 기여를 할지는 미지수지만, 어쨌거나 뭔가 결심할 때 으레 하는 행동을 해봄으로써, 스스로 냉정해 진 듯 한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하니까.

'침착하게. 최대한 침착하게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해 보는 거야. 땡중아..'

그러나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 봐도 현재의 상황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결론뿐이었다.
창조도시 동계 정모.
단지 그는 평소 인터넷을 통해 친분을 쌓았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참가 신청을 했었다. 결코 서바이벌 게임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평범한 웹사이트의 평범한 정모에서 대체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제 43회이며 신청자는 천무님....

문득 뇌리를 스치는 조금 전 양복 사내의 한마디.
천무님이라면, 분명 그가 드나들던 사이트 운영자의 아이디였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소년은 그가 알던 천무라는 사람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장난 끼가 많긴 했지만, 유쾌하고 가입자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 좋은 사람- 적어도 그는 여지껏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그 사람이 진심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땡중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운영자들 몇몇이서 짜고 몰래 카메라나 뭐 그런 깜짝 쇼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정모에 모인 사람들을 놀리려고...'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심히 악질적이긴 하지만, 평소 이런저런 장난을 치길 좋아하던 천무님이라면 충분히 그런 발상을 해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저 군인들은 모두 코스프래 한 운영진들이고, 누군가 총을 쏘면 총알 대신 페인트 탄이 나가는, 그런 패턴이겠지...?'

이 쯤 되면 거의 추리가 아닌 바람으로만 똘똘 뭉쳐진 가설이었으나, 땡중은 왠지 일말의 희망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의 가정으로 인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일까, 그는 그 제서야 발을 옮겨 분교를 빠져나왔다.
교문을 막 지나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땡중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 중 두 사람은 금방 싸움이라도 시작할 기세로 서로 노려보고 있었는데, 둘 중 하나는 분명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듯 했다. 이윽고 나이 많은 쪽이 뭔가 양아치 같아 보이는 불량(?) 소년에게 멱살을 잡히기에 이르자, 땡중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뒤에 서있던 - 역시 땡중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소년은 태연한 얼굴로 수류탄을 던졌다 받았다 하며 가지고 놀고 있었다. 수류탄이 가짜인 걸까, 아니면 타고난 담이 큰 걸까.. 그러고 보면 시비가 붙은 두 사람에게서도 불안감 같은 것이 도통 느껴지지 않았다.

'여유 있네, 저 사람들은... 굉장히 강할 것 같은데, 왠지 무섭다.'

먼발치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땡중은 두려움과 동시에 막연한 부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나도 어릴 때 내가 바랬던 대로 엄마가 소림사로 보내 줬으면, 지금쯤은...'

그의 다소 엉뚱한 신세한탄은 불량소년 쪽이 권총을 끄집어냄과 동시에 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본격적으로 당황하기 시작하며, 땡중은 두리번두리번 몸을 숨길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 않아서 지금까지 꾹꾹 눌러 왔던 '현실 감각'이란 녀석이 총을 보는 순간 터져 나와, 한꺼번에 밀려 올라오는 그런 느낌.
급한 대로 그는 근처의 큰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저 저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의 신경이 자신에게 쏠리기 전에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꺄아악-!"

몸을 숨기기 위해 뛰어든 곳에서 난데없이 비명소리가 튀어나오자, 땡중의 심장은 뛰다 못해 터질 지경이 되었다. 뭐든 우선 몸을 보호할 작정으로 들고 있던 데이 팩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리자, 그와 부딪힌 -나무 뒤에 숨어있던 사람은 땡중이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 여겼는지,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사..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아무..."

간신히 숨어있던 사람의 모습이 땡중의 시야에 들어왔다. 여자였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는데, 울기라도 했었는지 끼고 있는 안경은 덜 닦인 채 말라붙은 눈물로 다소 흐릿해 져 있었다.
그 모습 덕에 공포감은 순식간에 사그라졌으나, 조금 전의 긴장이 너무 심했던 탓인지 데이 팩을 쥔 손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땡중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어..."

느닷없이 자기가 있던 곳으로 달려든 사람에게서 공격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가 주저앉은 채로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흘긋 땡중을 쳐다본 여자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설픈 자세로 팩을 든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까까머리 소년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비쳤으리라. 고작 이런 상대에게 겁을 먹고 소란을 피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이 스쳤다.

"넌 뭐니?"

"에..예?"

순식간에 돌변한 여자의 태도에 땡중은 황당해졌다.

"왜 남이 숨어있는데로 함부로 뛰어들고 난리야? 괜히 놀랐잖아! 다른데로 가, 얼른! 너무 눈에 띈단 말야-"

확실히...저도 제가 지향하던 스타일이 이 상황에선 매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긴 하지만, 방금 누님이 지른 비명소리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이 다 듣고 남았을 텐데요..? 아니 그보다,

"...여긴 곧 금지구역이 된다고 했잖아요? 계속 여기 숨어계실 건가요?"

"시..시끄러!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장 꺼져!"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그녀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땡중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시킨대로 순순히 사라져 줄 것 같지 않자 그녀는 이번엔 옆에 있던 데이팩에 손을 집어넣어 무기를 꺼내쥐었다. 그것은 권총이었다.
땡중은 머리에서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왜 이사람도 저 사람도 화나면 권총부터 꺼내 쥐고 보는 거지??

"꺼.. 꺼져. 10 셀 때 까지 안꺼지면 진짜로..."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숫자를 보통 10부터 세는지, 1부터 세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도 땡중은 곧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아나 주었으므로, 그녀에게 숫자를 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땡중이 도망가지 않더라도 그녀가 정말로 총을 쏠 수 있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을 시험해 볼 용기도 모험심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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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소년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베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본연의 목적을 상기하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시비가 붙었던 자들이 서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 자리를 비롯해, 분교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 틈에 다들 가버린 거야?"

거칠어 보이는 녀석들이라, 틀림없이 제대로 싸움이 붙어서 사상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싸움 깨나 할 것 같아 보이는 녀석들이었는데...'

둘 중 이기는 자가 있다면 요령껏 동료가 되자고 꼬드겨 볼 생각이었다. 방금 그 동자승 녀석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좀 더 지켜볼 수 있었을 걸... 이래선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잖아? 곤란해. 정말 곤란해져 버렸어. 이걸 어쩐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고, 그녀는 좀 전에 땡중과 부딪혔을 때 바닥에 떨어뜨렸던 지도를 주워들었다. 다행히도 녀석들이 간 방향은 짐작해 볼 수 있다. 여길 지나 아래로 가지 않은 건 확실하니, 아마도 위쪽으로 갔겠지? 적당히 숨어서 녀석들의 행적을 찾는다면..
찬찬히 지도를 훑어가던 그녀의 눈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하지만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할 텐데?'

누구든 동료가 있다면 발각되더라도 뒤에 숨을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섣불리 덤벼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자 혼자 다니다 누군가에게 발각되어 버린다면 그야말로 손쉬운 표적이 된다. 잔뜩 불안해진 마음에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베넘의 시야에 문득 누군가의 인영이 잡혔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으나, 눈에 익은 모습. 교실 안에서 만난 그 성격 좋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분명 '기브'라는 닉네임의...

'급한 대로 같이 다니자고 말 해 볼까?'

반쯤 일어선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망설이다, 그녀는 곧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않았다.

성격이 좋아 보이면 뭐해? 세 보이지 않는걸. 괜히 급하다고 아무한테나 붙었다가 그대로 팀으로 고정되어 버린다면 그건 아주 곤란해. 나란히 같이 죽기 딱 좋을 테니. 기왕에 동료를 구한다면...

'최후까지 살아남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어야만 해.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남는 거야.'

그리고 거기까지 성공한다면 그 다음은...? 그런 강한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지?

그녀가 받은 무기, 베레타 M92F. 베넘은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던 그 묵직한 물건을 들어올렸다.

'...지금 총알은 들어있나?'

앞으로의 일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싸우게 된다면 필시 이것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자신의 무기가 총기류인 것은 다행이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슬라이드를 깨작깨작 움직여 보았다.

'그러니까, 여길 뒤로 당겨서... 이거 굉장히 빡빡하네? 그리고 탄창은...'

권총을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살피던 베넘의 머릿속으로 문득 기발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

그녀는 웃옷을 살짝 들어 총을 바지 사이에 끼운 후, 스웨터로 덮었다. 그리고 잠시 이리저리 재어 본 다음 다시 총을 꺼냈다.

'...이건 아니다. 움직이기 불편해. 흠... 차라리 다리에 묶어서 바지로 가리면 대충 되려나?'

신고있던 목이 긴 양말에 총을 끼워본 다음, 잠시 다리를 왔다갔다 움직이며 관찰하던 그녀가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통바지를 입고 오길 잘했어.'

그리고 다음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자, 곧 원하는 물건이 만져졌다. 소지품을 모두 압수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까...
잠시 후 베넘이 주머니에서 끄집어낸 것은 손톱을 손질할 때 쓰는 작은 끌이었다. 그것을 꺼내어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일단 동료만 찾고 나면, 난 싸우지 않아도 돼. 내 무기는 이걸로 하는 거야.'

서로가 무슨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참가자는 어차피 모르고 있을 테니, 의심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가방에서 쪽가위를 끄집어내는 애도 봤는데, 이정도면 뭐 훌륭하지.'

그러나 일단 그렇게 정하고 보니, 아까 그 대머리 꼬맹이 앞에서 총을 끄집어낸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그야 앞으로 녀석을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만, 쓸데없는 불안 요소를 하나 더 만들어버린 셈이다.

'뭐, 어리버리 약해보이는 녀석이었으니 오래 살아남진 못하겠지? 그래. 그러길 빌어야지...'

베넘은 가방 속에 들어있던 여분의 총알을 꺼내어 손에 쥐고, 지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일행이 향했으리라 생각되는 북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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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넘이 혼자 요상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무렵, 분교에서 제법 떨어진 남쪽 숲에서는 도망친 땡중이 헐떡거리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뛰어와서인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차갑게 식은 바위에 기대어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자니 머리까지 식어 냉정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 그 누나, 진짜로 쏠 생각이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만약 쏘려 했다고 쳐도 그 상황에선..'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고 했었던가?
조금 전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던 여자의 모습이 땡중의 머릿 속에 아주 생생하게 떠올랐다.

'분명 그 때 가방에서 막 총을 꺼내들었었지? 장전도 안 하고 발사되진 않을 텐데.. 게다가 아직 잠금장치도 안 풀어놓은 것 같았고....'

그럼 이렇게 꽁지 빠지게 도망칠 필요는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조금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도 그 누나 이상으로 멍청하게 굴었으니... 전부 연극이니 뭐니 쓸 데 없는 가설이나 세우고 말야...'

물론 누군가의 장난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계획된 연극일지 모른다는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우물쭈물 하다가 총에 맞기라도 하면? 진짜라면 그대로 세상 끝. 죽는 것이다. 돌이킬 수가 없다.
바로 그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부분이 견딜 수 없이 두려웠다. 한마디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시한부라면 그래도 몇 달은 살겠지만, 지금의 그는 내일 죽을지 당장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아닌가.

'아, 총...'

그러고보니 그는 자신의 무기가 뭔지 아직 보지도 않았다. 나야말로 -멍청해서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 참으로 여유만만 했었구나...
그는 지급받은 데이 팩을 열었다.

'...어라?'

무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막연히 총기류를 상상하던 그에게는 다소 의외의 물건이었다.
땡중은 가방 안에 있던 길쭉한 두 개의 막대기 중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액션 영화 같은데서 경찰들이 쥐고 휘두르는 그거잖아?'

그는 팩 속에 있는 나머지 톤파를 꺼내어 쥐고 최대한 그럴싸 하다고 생각되는 포즈를 취해 보았다.
그러나 그 자세에서 한 번 휘둘러 보려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기왕에 둔기류의 무기라면 봉이나 쌍절곤 같은거면 좋았을 텐데...'

그는 어릴 때부터 소림사를 동경해 왔기 때문에 곧잘 영화를 보며 동작을 흉내내곤 했었고, 봉술 같은 거라면 간단히 한 두 동작 정도 그럴싸하게 따라할 수 있었다. 약간 들뜬 기분으로 톤파를 쉭쉭 휘둘러 보던 땡중은 문득 다시금 밀려오는 현실 감각에 우울해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내가 생일 선물로 장난감 받은 어린애 기분 내서 어쩌자는 거야...'

그야 나는 이런 휘두르는 무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현 상황이라면 역시 총기류를 받는 쪽이 나았다. 설사 이걸 멋지게 휘두를 수 있다 한들 총을 든 상대를 만나면 수가 없는 거잖아? 멀리서 '빵' 쏘면 무슨 수로 당해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순간 저 앞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총구의 형상. 어라? 아까의 데자뷰인가?

'그래. 저 정도 거리에서 빵하고 쏘면...'

이윽고 총을 쥔 손과 그 뒤쪽 사람의 형상이 보였고, 땡중은 순간 숨이 멎어버리는 기분을 느꼈다. 나무들의 그림자에 뭍혀 잘 보이지 않았을 뿐, 누군가 정말로 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까 베넘이 그에게 총을 겨눴을 때는 당황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섬뜩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었는데.. 그러나 지금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남자였다. 게다가 진짜로 쏠 기세다!

"으.. 으아악!!"

남자의 손이 조금 움직였다고 생각한 순간 땡중은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달려갔다. 그가 실제로 총을 쐈는지 안쐈는지를 판단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작정 정면을 향해 있는 힘껏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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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중이 떠난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와 숲이 우거진 자리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땡중에게 총을 겨누던 기세와는 달리 그는 당장에 총을 쏘아대거나 도망치는 그의 뒤를 쫓거나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진짜로 땡중을 쏠 생각은 없었으며 단순히 겁을 줄 목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소년이 놓인 상황을 가까이서 본다면 지금 그가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우울해 보이는 인상의 그 소년은 잠시 멍하니 도망치는 땡중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오른쪽 뒤에서 자신을 향해 석궁을 겨냥하고 있는 소녀를 쳐다보았다.

이 여자앤 어느틈에 나타난 걸까, 그러고보니 내 다음으로 데이 팩을 받았던 여자애로군.. 슈나.. 뭐라고 부르던데, 혹시 아는 사람이 없다고 앞 번호인 날 따라왔던 건가?

"...그걸로 뭘 어쩌려고?"

석궁을 들고 있는 소녀를 처음 발견했을 땐 그=리온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 상태로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의외로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방아쇠에 걸린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가락과 긴장의 기색이 역력한 하얗게 질린 얼굴. 언뜻 보아도 쉽게 방아쇠를 당길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쏠거냐?"

"쏘...쏠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리온을 위협하기 위한 소녀의 발언은 본 목적과는 정 반대의 역할만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에 가득 담긴 불안과 두려움의 정서가 그녀는 결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으리라는 리온의 판단 쪽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너도 저.. 애를 쏘려고 했잖아."

"...저 동자승이랑 아는 사이?"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녀석따위, 질색이야."

"그래서 넌, 아무렇지도 않게 날 죽이겠다고?"

"아, 아무렇지도 않다니..."

그러나 이미 소녀의 활끝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더라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만큼, 그에게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소년은 이제 완전히 안심해도 좋다고 생각해 버린 모양으로, 다시 시선을 땡중이 있었던 자리로 향했다. 거기에는 그가 얼떨결에 두고 간 데이 팩이 적당히 널부러진 모습으로 뒹굴고 있었다.

"....난 중이 싫어."

"..뭐?"

"특히나 톤파같은 걸 휘두르며 싸움 연습이나 하고 있는 엉터리 동자승은 딱 질색이야."

그의 말을 이해 못했는지, 약간 멍해진 얼굴의 소녀를 쳐다보며 리온(Leone)이 말했다.

"그럼 이제 내 행동, 정당해 진 거지?"



【남은 인원 : 4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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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긴장감있는 분위기에 제가 찬물을 끼얹어 버린 것 같네요... ㅜㅡ


땡중님, 아바타도 열심히 달리고 계신데 소설에서까지 계속 도망만 다니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ㅁ^;;;
(더구나 중요한 짐까지 잃어버렸네요.... 맹세코 고의가 아님!!)


흠...제 캐릭 베넘은 만들어 놓고 명줄은 길지 않을까 싶었었는데, 뻘짓 하는걸 보니 의외로 금방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론 그 뻘짓, 제가 시켰지만??)


완전 아무 생각 없이 써 제꼈기 땜에, 여기 나온 인물들의 행보는 뒷분들이 맘대로 하셔도 됩니다. ^_^/
(<- 잔뜩 벌여놓기만 하고 수습은 뒷전?)


사상자는 아직 없는데, 그게 캐릭터들 통성명 정돈 어느 정도 되고 나서 죽는 사람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다 함께 건전한 배틀로얄 문화를 만들어 가자구요~~ (<- 거...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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