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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릴레이연재 [포춘 디거] 인피니움 사가

2010.02.20 06:25

드로덴 조회 수:284 추천:6

extra_vars1 맥더먼의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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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에 새벽빛이 어리기 시작한 이른 시각이었다. 기름이 다 떨어졌는지 몇 촉 되지않는 램프의 불빛 옆에 내 손이 비치었다. 널찍하니 큰것이 망치나 들면 어울리겠는데 너무 곱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고있을 시간이었지만, 나는 요즘 통 단잠을 자본적이 없다. 도끼병이라도 걸렸는지 누가 자꾸 날 지켜보는것 같아서.. 아마 그게 맞을것이다. 뭐.. 며칠 전 만찬에서 은수저가 새까맣게 되었던걸 생각하면 진짜 노려지는 것일는지도.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창 밖 도로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인기척은 무척이나 요란했는데, 야밤에 누군가와 밀애를 나누려는 로맨티스트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두꺼운 가죽을 때리듯하는 발소리가 3층에 있는 이 방까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진짜 시끄럽네. 잠을 못자서 예민해진 탓에 짜증이 배가 되어 치솟는다. 그 소리가 멀리 사라져가길래 한숨을 푹 쉬는데,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옷자락 비비는 소리 빼면 발소리도 안들린다. 도둑질이라도 하나-싶은데 왜 그 옷자락 소리가 이리로 다가오는거야! 예의를 모르는 사람인지, 주먹으로 노크를 했다. 어떻게 아냐고? 손등으로 경쾌하게 두드리면 저렇게 돌쩌귀가 삐걱거리진 않거든!


 


 "누구-"


 


 다음 순간 내 말을 잘라버린 그 목소리는 속삭이듯 작았다.


 


 "쉿! 난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있어. 어서 문 열어! 급하게 전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당신이 날 알면 뭐 어쩌라고요? 난 당신을 모르는데."


 


 "말장난할 시간 없어! 며칠 후면 네 모가지가 분수대에 걸릴 예정이라고!"


 


 내가 무슨 말장난을 했다고 그러나.. 내가 누군지 알면 나한테 반말을 함부로 하진 않을텐데? 빽 좀 있으신 방문자인가보다. 하지만 모가지가 어쩌고하는 이야기는 허풍이 아닌것 같은데.. 도끼병이 착각이 아니었던걸까? 문 앞의 누군가를 들여놓는게 걱정되긴했지만, 난 몸이 건장하니 함부로 어쩌지는 못할테지. 아 그나저나 참 마음에 안드네. 당신이랬다가 너랬다가..


 


 "들어와요."


 


 상대가 목소릴 낮추니 나까지 속삭이게된다. 상황의 힘이란게 이런건가.. 첫인상에 대해 뭐라고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격렬한 명령조의 말이 쏟아져나왔다.


 


 "시간이 없으니 필요한 말만 하지. 당장 짐을 꾸리도록 해. 되도록 간소하게! 아니, 꾸릴 짐도 없어보이니 그냥 노잣돈 몇 푼만 들고 튀어나와."


 


 "아니, 내 목이 어쩌고 한 이야기는.."


 


 "두말하게 하지마! 설명같은건 내가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될때만 한다. 때가 된다해도 네가 부탁하기 전엔 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분위기 파악해서 제깍제깍 움직여!"


 


 갑자기 이게 뭐야! 내가 왜 이 신새벽에 이유도 모르고 짐을 꾸려서 나가야하는건데? 거기다 이 사람은 내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인양 행동하고 있어. 마치.. 자기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될것처럼.


 


 "얼굴 꼬라지를 보아하니 뭐라고해도 납득하기전엔 안 움직일 모양이군. 이번 한번만 내 스스로 설명하겠다. 똑바로 들어! 호스펜 법령에 따르면 부족한 노동력의 손실을 막기위해 거인과 인간 사이의 성행위 및 출산을 금하고있지. 하지만 너는 바로 그 금지된 행위로 인해 태어난 혼혈아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


 


 "입 다물어. 법령 자체는 그렇게 위시할것이 못되지만, 네 가문의 적대 세력이 그것을 알아버렸다."


 


 "어떤 가문이죠?"


 


 "임투페라쉬. 내가 이걸 말해주는건 니 몸뚱아리 이끌고 쳐들어가서 뒈지란게 아니므로 몸이나 사려라. 하여튼, 임투페라쉬 가에 정보가 들어가면서 너에 대한, 정확히 말하자면 네 가문 개르두에 대한 적대가 정당한 것이 되었지. 임투페라쉬 측에서는 이 사적인 정보를 공적인 정보로 만든뒤 개르두 가를 단죄하려 하고있다. 안그러면 얇은 귀로 한 가문을 몰락시킨 죄로 저들도 단죄당할테니까. 먹고먹히는 점에선 인간도 다를게 없지."


 


 단죄라..


 


 "이에 대해 개르두 가 내에서는 두 입장으로 나뉘었다. 이제라도 너를 죽이고 임투페라쉬의 야욕을 무산시키자는 강경파. 물론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않기 위해서 네 죽음은 사고사가 되겠지. 타살로 밝혀지면 개르두 가 쪽의 수작으로 의심하기엔 충분한 말미니까. 그럼 네 출신성분에 대한 의혹은 사실로 꾸며질테고 개르두 가는 몰락하겠지. 그리고 다른 한쪽은 당연히 온건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네 무조건적인 생존은 아무런 지지도 얻지 못했다. 네 아비가 사비를 털어 날 고용했다만, 그래봤자 얼마못가 우리 둘다 죽을것이다."


 


 "그렇게까지 비관적이면 대체 왜 날 닥달하는건데요. 그냥 죽게 놔둬도 아무 상관없지 않나요? 당신의 말대로, '솔직히' 제 생존은 지지를 얻지 못하잖아요. 당신도 내가 사는 것을 원하지 않잖아."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고, 난 직업 윤리상 널 지켜줄 뿐이다. 설명이 길어져서 내 대가리까지 너그럽게 늘어졌군. 한번만 더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 네 뒷구멍을 꿰메버린다. 더 이상 말은 않겠다. 이제 움직여!"


 


 설명을 듣는동안 나는 이름 모를 '그'의 생김새를 살폈다. 솔직히, 첫인상은 누군가를 지키고 이끌기엔 한참 모자라보였다. 가운데가 시원하게 벗겨진 흰머리에, 얼굴 가죽은 뼈에 붙다시피했다. 보통 사람이면 꽉 조였을 갈색 가죽옷을 입고있었는데, 그런 옷조차도 품이 남아 헐렁거릴 지경으로 몸이 앙상했다. 동네 골목에서 구걸하다가 불량배한테 갈취당하는 거지의 모습이 저절로 겹칠 지경이었다. 거기다 여자들이나 입는 클로크를 걸치고있다! 옷이 얼마나 없으면 그런 걸 부담없이 걸칠수 있지?! 얼마나 돈이 급하면 이런 노인네가 내 목숨을 위해 제 목숨을 걸까, 이런 저렴한 사람을 고용해서 보내온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가, 아니 그것보다 이거 모두 연극아닌가.. 이 상황을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그의 눈을 보기 전까진.


 


 ..그의 동공은 세로로 찢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