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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배틀로얄

2008.03.01 17:47

베넘 조회 수:304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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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AM 4시, A-2 구역.]



"뭐, 뭐야, 이건..."

하코는 경악에 찬 눈빛으로 저 앞에 널부러져 있는 두 구의 시신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멀찍이 서서, 조심스레 시신을 살피던 그는 잠시 후, 그들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신 하고 나서야 천천히 시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나무에 기댄 채 죽은 한 명의 어깨에는 소방용의 도끼가 깊숙하게 박혀 있었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다른 한 명은 끔찍하게도 얼굴에 총을 맞고 죽은 듯 했다. 자신이 아이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일지 어떨지 둘 다 완전히 낮선 얼굴이었으나, 지금의 하코에게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래... 상당한 수의 무기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
무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그들을 죽인 것이 제 3자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했다. 이 둘은 분명 서로 싸우다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코는 주변을 조금 살펴본 결과, 곧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것인 듯 한 짐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아낸 데이 팩은 역시 안팎이 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그가 대충 확인한 무기의 수만 해도 20가지는 족히 넘어 보였다. 사람은 둘인데, 가방은 셋. 둘 중 한 명은 가진 무기가 한 가방 안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많아 가방 두 개를 들고 운반해 왔다는 얘기다. 방송이 나올 때마다 매번 놀라울 정도의 사상자를 만들어낸 것은 저 둘 중 한 사람이 분명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다른 살인마와 싸우다 죽었다. 그걸 제일 먼저 발견한 게 자신이란 것은...

'행운이다. 이건 엄청난 행운이야.'

그래도 의지하고 있던 레이와 헤어진 후, 사실 그는 적잖이 후회하고 있었다. 매 시간 사망자는 빠르게 늘어가는 상황에, 다리에 부상까지 입어 도망치기도 힘든 자신이 혼자라는 불안감은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염치불구하고 레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지만, 대체 무슨 놈의 장난인지 그들이 헤어졌던 장소는 곧 금지구역이 되어버렸고, 그는 다시 숨어있기 좋을만한 곳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A-2구역을 찾아온 이유는 단지 여기가 외진 곳이며, 주위가 금지구역으로 둘러싸여 언제 고립될지 모르는 구역이기에, 살인마라도 일부러 찾아오진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갑작스레 이런 행운이라니.

하코는 시체와 가방을 한 데 모은 후, 그들의 무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각종 총기류가 대략 10개. 맥가이버칼을 포함 칼이 7개. 그 중 하나는 부러져서 쓸 수 없다. 그리고 방탄조끼, 석궁, 전기충격기, 소방용 도끼, 쌍절곤, 곤봉, 금속배트, 낫, 와이어톱, 송곳, 포크? (이건 또 뭐야, 이건 무기야, 소지품이야?) 그리고 수류탄 2개... (이거 좋은데?) 그런데 이건...
짐 속에서 작은 야전삽을 꺼낸 하코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내 무기...'
그 때 잃어버렸던 자신의 무기를 이런 곳에서 다시 찾게 되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잠시 삽을 쳐다보다,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GPS를 꺼내들고 하코는 미소를 지었다.
'이거 굉장한데? 위치 탐지기잖아?'
이런 걸 가지고 있다면 도망치는 것도, 상대를 공격하는 것도 훨씬 쉬워 진다. 다리를 다친 그이기에 실로 절실하게 필요했던 아이템이다.
행운도 이런 절묘한 행운이 또 있을까? 하늘은 분명 내 편임에 틀림없다. 이 배틀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던 거다. 이 두 구의 시체가 누구였고 또 뭐하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녀석들은 그야말로 날 위해 무기를 모았고, 날 위해 싸웠고, 날 위해 죽은 것이다.

"게다가 바다 바로 근처라니, 정말 적절한 위치에서 죽었단 말이야..."

아무리 쓸모 있는 무기가 많다 해도, 혼자서 이 많은 걸 다 가져갈 수는 없었다. 더구나 불편한 다리로는 더욱 더.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고 가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하는 것 역시 안 될 말이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가져갈 무기를 몇 개만 고른 다음 나머지는 모두 바다로 던져버리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죽은 위치가 바다와 가깝다는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잠깐 동안 짐을 뒤적이며 고민한 끝에 그가 선택한 무기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빠른 연사가 가능한 잉그램. 그러나 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한두 번일 테지. 그 이상은 총알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가능하면 연사 기능은 아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총으로 글록17. 그리고 베레타. 다리가 멀쩡하다면 리볼버도 하나쯤 챙겼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번거롭다.
칼도 3개만. 장비하기 편한 다이버나이프. 휴대하기 편하고 실용적인 커스텀 나이프. 그리고 다용도의 맥가이버 칼.
수류탄 2개와 위치추적기, 그리고 방탄조끼.
무기들 중 손상이 심하거나 무거운 것, 사용이 번거로워 보이는 것들은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남은 무기들을 해안의 절벽까지 옮기는 것은 의외로 힘들었다. 무기를 떨어뜨리기 좋은 절벽을 찾느라 한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고생 끝에 결국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가는 데이팩들을 보며, 하코는 왠지 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방을 바다로 던져버린 후, 그는 GPS를 꺼내어 들고 섬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탐지기에 잡히는 건 나까지 포함해서 6명뿐인데...'

어젯밤 12시 방송 때까지 남은 사람은 8명이었다. 그 사이에 두 명이 더 죽은 걸까? 어쩌면 저 두 사람이... 아아, 모르겠다. 몇 명이 남았는지는 다음 방송 때 알 수 있겠지.
탐지기에 잡히는 사람들의 위치로 미루어 2명씩 팀을 이루고 있는 것이 2팀. 이 중 한 팀에는 아마도 레이 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이 1명.

'그럼 이제부터 뭘 어쩐다...'

하코는 멍하니 GPS의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가히 복권 당첨에 비교할 정도의 행운으로 무기들을 발견한 것은 좋았지만, 아직 살인 게임은 끝나지 앟았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은 확실히 나아졌지만, 결코 안전을 보장받은 것은 아닌 것이다.

'일단은 남은 사람들의 동향을 살펴보자. 이 5명이 서로 공격할 분위기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모두 숨어있거나  도망 다니는 분위기라면...'

모니터를 쳐다보는 하코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가, 내가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면, 내가 죽여야 한다. 그러니까, 설령 상대가 레이 형이라고 해도. 그래...
GPS를 쥔 하코의 양 손이 점점 거세게 떨려 왔다.

'그래. 레이 형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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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AM 5시 42분, D-6 분교.]


"보안? 지금 누가 누구한테 그딴 소릴 지껄여!!?"

깨끗한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변에서 보초를 서거나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군인들이 일순 움찔 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움직인 건 EMP를 사용할 정도의 조직이다. 대가리란 걸 달고 있으면 생각 좀 해보라고! 그 정도의 큰 조직이 움직였는데, 그런데도 너희는 아무것도 몰랐어? 말이 되나?! 정보 관리국은 월급이나 받아먹으려고 허수아비 세워놓고 운영하는 곳인가? 지금 정보과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우리가 배틀 진행하면서 외부의 움직임까지 알아서 신경 써 주고 조사도 직접 해야 한다, 그 말 아닌가!!"

다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양복 사내의 얼굴이 점점 볼만하게 일그러져 갔다.

"철저히 대비하긴 뭘 대비해? 그쪽에서 정보를 아무것도 안주는데, 우리더러 뭘 어쩌라고? 당신들은 그렇게 놀면서, 남한테는 일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면 다야?!"

몹시 짜증이 난다는 듯, 그는 쥐고 있던 볼펜으로 전화기가 놓인 책상을 벅벅 그어대기 시작했다.

"말로만 열심히 조사하지 말고 조사 결과나 빨리 보내!!"

마지막으로 그렇게 외친 후, 그는 수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등신 같은 놈들, 머리가 그렇게 안돌아가니 보안이 그따위지...
그는 책상을 긁어대던 볼펜을 아예 벽으로 집어던져 버렸다. 그러나 한 번 치솟은 짜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 43회 배틀은 여러 가지로 맘에 안 드는 일투성이다. 지나칠 정도로 빠른 사이클과 일방적인 살육은 그렇다 치고, 룰 위반자를 처리하러 갔다가 도리어 봉변을 당하질 않나 EMP 폭탄이 터질 않나, 정찰하러 갔던 군인들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한 명은 행방불명. 아마도 죽었겠지. 무엇보다 그런 대규모의 소동이 일어난 후,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잠해 진 지금의 상황이 최고로 기분 나빴다. 자신들은 잠시나마 이곳으로 침입해 들어왔을 적들의 정체도, 목적도, 행동도, 결과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마치 집에 도둑이 들어서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갔지만, 대체 뭘 훔쳐갔는지를 알 수 없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
가만히 벽을 노려보며 화를 삭이고 있던 양복사내의 귀에 따르릉거리며 알람시계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규 방송을 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알람을 끄고, 책상 위에 놓인 다음 방송 내용이 적힌 종이를 쥐어들고 방송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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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0일 6시 방송을 시작 하겠습니다.
우선, 저번 방송부터 이번 방송까지 사망자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사망자는 19번 브라이언, 24번 프리크, 이렇게 두 명입니다.
다음으로 금지 에어리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시간 후 8시 금지 에어리어는 H-9 구역, 4시간 후 10시 금지 에어리어는 I-5 구역, 6시간 후 12시 금지 에어리어는 B-8 구역 입니다.
고지가 멀지 않았으니, 최후까지 힘내 주시길 바랍니다.


[30일 AM 6시, G-5 구역.]



"8시 H-9, 10시에 I-5, 12시에 B-8이라..."


니얼은 중얼중얼 읊조리며 지도를 꺼내어 방금 방송에서 불러준 금지구역에 시간을 적어 넣고, 크게 X자를 그었다. 그리고 참가자 명단을 꺼내어 두 명의 사망자 브라이언과 프리크의 이름에 줄을 죽죽 그었다.

'그나저나 게임 시작 38시간 만에 생존자는 고작 6명이라니...'

자신은 네모에게 '악질 살인마가 있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지껄였었지만, 그건 완전히 빗나간 이야기였다. 이 속도를 보아선 살인마가- 그것도 상당히 전문적인 살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놈이 둘 이상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건 누구일까...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있겠지? 니얼은 참가자 명단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뭐라 해도 제일 유력한 후보라면 당연히 이 사람이겠지. 6번, 레이. 듣기로는 21살의 젊은 나이로 벌써 인턴 과정을 마친 천재 의사라고 했다. 남은 사람들 중 기술 좋게 살인을 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이 사람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리고 다음은 기브. 이쪽은 닉네임을 들어본 적 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일 테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니얼이 곧 실소를 터뜨렸다.

'아니,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군.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건 내 경우에도 해당되는 얘기니까.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어. 아니면...'

니얼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생각했다.

'위급할 땐 동료를 저버릴 정도로 비열하거나. 나처럼..'

잠시 멍한 얼굴로 데이 팩 안에 챙겨온 네모의 식량과 짐을 쳐다보던 니얼은 곧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비굴하게 살아남기로 정해 놓고선 뭘 새삼스레 우울해 하고 있는 거야? 다 쓸모없어. 네모에 대한 것은 이제 잊어버리자. 그러면 되. 이기적이든 어떻든 일단은 살아남고 보자. 사람이란 매사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자기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게 가능한 참으로 간사한 존재가 아니던가.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나중에 가서 얼마든지 자기합리화 시키는 게 가능할 테지. 죄책감도 금세 사그라질 것이다. 니얼은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삭-

문득 멀리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군가 니얼이 일부러 곳곳에 깔아두었던 잔 나뭇가지를 밟은 것 같았다. 니얼은 긴장한 얼굴로 지도와 참가자 명단을 가방 속에 넣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앉아있던 곳은 주위에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몸을 숨기기는 좋은 숲이었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다른 누군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니얼은 그의 전방의(뒤쪽은 절벽이라 일단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넓은 반경에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 그리고 비닐 등 소리가 잘 나는 것들을 최대한 자연스런 모양새로 깔아놨었던 것이다.
설령 이 곳으로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그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오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러므로 나뭇가지가 좀 많이 깔려 있거나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테지.
지금 소리가 들린 것은 대략 10시 방향. 나는 반대 방향인 5시 방향으로 조심해서 빠져나가 버리면 된다.
그러나 나뭇가지를 밟은 사람의 걸음은 일순 멈추었고, 발소리가 멎자, 니얼도 그대로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잠시 후 나직하게 마른 잎이 바스라 지는 소리가 추가로 들렸다.

'...뭐야?'

처음 나뭇가지를 밟아서 난 소리에 놀라 최대한 조심조심 발을 떼고 있다.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곳으로 오는 상대는 명백하게 발소리를 죽이려 애를 쓰고 있다. 어째서..?

'설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다가오고 있었던 건가?'

니얼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해 뒷걸음질 치며,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다. 1. 내 위치를 알고 있는 참가자다. 2. 망할 진행요원이다. 3. 그냥 괜스레 과민반응 하고 있는 조심성 많은 참가자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든 지금 니얼이 취할 행동은 하나뿐이다. 도망가는 것.
니얼은 자신의 데이 팩을 집어 들고 조심조심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략 30미터 쯤 이동했을 때였다.

바삭, 바삭-

이곳으로 오고 있던 상대의 발소리가 순간적으로 요란해졌다.

'...당황했다? 설마 내가 도망가기 시작해서?'

니얼은 조금 전 세웠던 가설 중 3번의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일부러 내게 접근하는 것이 목적이었나?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다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1. 날 공격하려 하고 있다. 2.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2번은 아닐 거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 뭐라고 소리라도 쳤겠지. 아마도 공격하는 것이 목적. 다른 경우의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봤자 시간 낭비다.
그렇지만, 나뭇가지가 깔려 있다는 걸 눈치 챘다면 요령껏 피해서 발을 디디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텐데, 어째서인지 녀석은 발소리를 죽이는 데 무지하게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상대는 자신의 기척을 죽이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해 버린 듯 했다. 수풀을 헤치고, 낙엽을 밟는 소리가 제법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든 조심조심 숨을 죽이며 아래쪽으로 빠져 나가던 니얼은 곧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상대가 정확히 자신이 도망치고 있는 방향으로 다가온다는 것. 녀석은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이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단 얘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결코 빠른 속도로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 상대는 걸어서, 그것도 다소 느린 걸음으로 쫓아오고 있다. 덕분에 니얼이 발밑을 신경 쓰느라 도망치는 속도를 올리지 못하고 있어도 거리가 좁아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괜스레 불안감마저 들었다.
내 위치를 안다면 달려서 따라잡으면 금방일 텐데, 어째서 뛰어오지 않는 걸까. 성격이 너무 느긋해서? 내가 어딜 가든 위치를 알기에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그게 아니면 다리라도 다쳤나? 그러고 보니 발소리가 조금 거친 것이 한쪽 다리를 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만약 그럴 경우, 이렇게 날 쫓아오고 있다는 건 가진 무기에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쯤 되면 이대로 멈춰 서서 저 상대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 내려갔을까, 니얼은 갑작스레 들려오는 또 하나의 인기척에 당황하며 몸을 틀어 주위를 살폈다. 그가 진행하던 방향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자신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얼굴의 소녀였다. 그리고 니얼이 그녀를 발견함과 거의 동시에 그녀도 니얼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히.. 힉!"

굉장히 당황한 듯, 소녀는 나직한 비명을 내지르며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작은 총을 꺼내들었다. 소녀의 작은 손으로 감싸 쥘 수 있을 정도로 앙증맞은 총이었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폼이었기에, 니얼은 재빨리 들고 있던 데이 팩을 집어던졌다. 소녀의 시야를 교란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소녀는 서둘러 방아쇠를 당겼지만, 순간적으로 가려진 시야가 조준 방향을 완전히 틀어놓았던 것이다. 니켈은 그 틈을 노려서 몸을 숙이고 앞으로 달렸다. 그런데...

짤칵-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소녀의 총에서는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어? 어라?"

소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반복해서 방아쇠를 당겨 보았지만, 여전히 짤칵, 짤칵,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역시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총알이 바닥난 것이다.
니얼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데이 팩을 집어 들고, 소녀에게 다가가 그녀가 들고 있던 작은 총을 낚아챘다. 완전히 무기력해진 듯 멍한 얼굴로 소녀는 니켈에게 순순히 총을 내어줬다. 아니,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니켈을 빼앗은 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 장난감 같은 총에 대해서라면 어느 책에선가 얼핏 읽은 적이 있다. 장탄수가 2발? 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여자애는 자신이 들고 있는 총의 장탄수가 2발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설마 벌써 총알이 떨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하지만 그 두 발의 총알을 다 썼다는 얘긴, 얘도 사람을 쐈던 걸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연-!!"

저 아래에서 한 소년이 소리치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연?' 니얼은 곧 이 둘의 정체와 관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니켈과 아연. 자신들을 쌍둥이 남매라고 소개해 창조도시에서 잠시나마 제법 화제가 되었던 아이들이다. 이 여자애가 아연이라면, 저 서브머신건을 들고 있는 녀석은 십중팔구 쌍둥이인 니켈이겠지.
'잠깐, 서브머신건? 이런 제길...'
니얼은 황급히 오른팔로 아연의 몸을 둘러 팔을 결박하고, 왼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들어올렸다. 저 소년이 혹시라도 자신에게 총을 쏘지 못하도록, 아연을 방패막이로 삼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니.."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니켈에게 무어라고 대답을 하려던 아연은 갑자기 니얼이 자신을 붙들고 총을 들이대자 사색이 된 얼굴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갑자기 얼마 전 브라이언에게 목을 졸렸을 때의 공포가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무서워, 무서워.'

머리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생각까지 모조리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나마 의지하고 있던 총이 무용지물이 되고 나니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일종의 무기력함이 조금 전부터 아연을 지배하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자신이 처음 지급받았던 무기, 쪽가위를 떠올렸다. 하다못해 지금 그거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적어도 뭔가 공격을 시도해 볼 수는 있을 텐데.
하지만 그 쪽가위는 지난번 니켈이 밧줄을 자를 때 빌려준 이후로 아직 돌려받지 않았다. 새삼 최고로 쓸모없다고 여겼던 그 무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아연은 좌절했다.

마이크로 우지를 들고 달려온 니켈은 총을 니얼을 향해 겨누며 외쳤다.

"이 자식, 아연을 놔!"

니얼은 자신을 노려보는 니켈을 마주 쏘아보며 대꾸했다.

"내가 이 애를 놔주면 네가 날 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지?"

"쏘지 않을 테니, 놔."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물었어."

니얼의 말이 곧 무기를 버리라는 뜻이란 것을 깨달은 니켈은 고민에 빠졌다. 무기를 버리고 나면 니얼이 자신들을 쏘지는 않을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기다리던지 지금의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니켈이 막 결심하고 무기를 던지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제 3자의 인기척이 그들의 구도를 흐트러뜨렸다. 좀 전까지 니얼을 쫓아오던 그 '누군가'였다.

'이런, 저 쪽을 잊을 뻔 했다.'
니얼은 눈살을 찌푸리며 인기척이 들리는 곳을 향해 흘긋 시선을 던졌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니켈의 행동을 주시하는 동시에 추적자에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다니.

그리고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 것은 니켈 쪽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을 견재해야 하지?'

그러나 어렴풋이 보인 침입자가 이쪽으로 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니켈은 재빨리 니얼을 겨누던 총구의 방향을 틀어 침입자를 향해 한 발을 발사했다.

탕-

니켈에게 총을 쏘려고 했던 침입자는 도리어 자신이 먼저 공격을 받자, 당황하며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니켈은 아예 몸을 돌려 침입자 쪽을 향한 다음, 그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아연을 붙잡고 있는 저 녀석은 당장에 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훨씬 위험해 보이는 저쪽을 처리하는 게 먼저야.
니켈은 우지의 레버를 연사 쪽으로 맞춰놓고 견착대를 펼친 다음, 하코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그가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니켈의 행동을 지켜보던 니얼은 아연을 붙잡고 있던 팔을 슬그머니 풀었다.

'이건.. 도망칠 기회다. 니켈이 저 추적자를 상대하는 동안 여길 빠져 나가는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추적자가 숨어있던 방향에서 날아오는 무언가가 니얼의 시야에 잡혔다. 그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깨달은 니얼은 아연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곧장 몸을 틀어 무작정 아연을 끌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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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는 나무 뒤에 숨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총이다. 총을 들고 있어. 방탄조끼를 입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섣불리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얼굴이나 다른 곳에 맞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하코는 이틀 전, 황제에게 총을 맞았을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문득 하코는 뭔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이럴 때를 위한 무기를 가지고 있잖아?'

그는 데이 팩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지고 온 수류탄 하나를 꺼내들었다.
수류탄을 처음 다뤄보는 긴장에 안전핀을 뽑는 손이 가늘게 떨렸지만, 생각 외로 안전핀은 간단하게 뽑혔다. 다행히 니켈은 신중히 하코의 동향을 살피느라 섣불리 이쪽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하코는 니켈이 있는 방향으로 힘껏 수류탄을 던졌다.

콰앙-!!

안전거리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기어가, 몸을 숙인 채 귀를 막고 있던 하코는, 이윽고 주위가 잠잠해 지자 숨어있던 나무 밖으로 몸을 내밀고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일까, 끔찍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니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다른 둘은?
보이지 않는다. 도망가 버린 것이다. 거리상 잘 하면 그 둘에게까지 폭발의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상상외로 행동이 빠른 녀석들이잖아?
그는 GPS를 꺼내들고 니얼과 아연이 있을 위치를 살폈다. 역시나, 이곳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두 개의 붉은 점이 보였다.

"쳇, 기왕이면 셋을 한꺼번에 처리해 버리고 싶었는데... 뭐, 괜찮아. 그래도 제일 위협적인 무기를 들고 있던 녀석이 죽었으니까."

하코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니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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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은 바닥에 누워 초점을 잃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수류탄이 터지고 짧은 순간, 사지가 뒤틀리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갑자기 주위 풍경이 소용돌이치듯 빙빙 도는 환상이 보인다 싶더니, 이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연은..?'
왜인지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는데, 조금 전까지 아연과 또 한 명이 서 있던 자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기한 일이라고 느끼면서, 그는 동시에 아연이 이미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이대로 죽는 걸까..'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허무해. 너무 허무하다고. 이렇게 죽는 건...'

- 아니. 오히려 잘 된 거야.

지척에서 자신을 향해 속삭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니켈은 다시 잘 움직이지 않는 눈동자를 굴렸다. 누구지? 누가 말하고 있는 거지?
문득 축 늘어진 다리를 질질 끌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니켈은 흐릿한 시야에서 검은 윤곽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 인영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니켈의 얼굴을 한 그 검은 그림자가 히죽- 웃으며 말한다.

- 어때, 기쁘지 않아?
넌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돼.
넌 이제 아연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돼.
넌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지 않아도 돼.
넌 이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더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사실 목소리는 그림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귀에서 솟구쳐 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뭐, 아무러면 어떤가.

'아아. 그래..'
니켈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끝났어. 이제 모두 끝난 거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니켈이 가진 총을 회수하기 위해 그의 시체로 조심스레 다가가던 하코는 갑자기 니켈이 자신을 쳐다보며 웃자, 깜짝 놀라 몇 발작 뒤로 물러섰다.
'아직 살아 있나..?'
하코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니켈을 살펴보다 잠시 후 다시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동공도 풀렸고, 맥도 없다. 죽었다. 완전히. 그런데...
'어째서 웃었던 거야? 뭐가 그렇게 웃겨서?'
그러나 딱히 죽어가는 상황에 웃을만한 이유가 하코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이 녀석, 날 비웃은 거야?'

비웃어? 누가 누구를? 싸움에 진 패배자인 이 녀석이 나를?

"너 따위에게 비웃음 받을 이유는 없어. 난...."

하코는 묘한 미소를 띠고 있는 니켈의 얼굴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살아남을 거야. 이 게임에서 승리할 거라고! 어떤 짓을 해서든, 소중한 목숨이니까. 안 그래?"

그나저나 난 왜 이미 죽은 녀석에게 이딴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군. 니켈의 어깨에 걸려 있는 마이크로 우지를 벗겨내며 하코는 피식- 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 총은 이제 어쩐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총이라 해도 머신 건이 두 개나 필요치는 않다. 부담스러우니까. 하지만 이걸 버리러 일부러 바다까지 가는 건 시간 낭비야. 차라리 땅 속에 묻어버릴까?
잠시 마이크로 우지를 쳐다보며 고민하던 하코는 곧 총을 자신의 데이 팩 안에 집어넣고 도망친 두 사람을 쫓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 남은 인원 : 5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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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리 봐도 맘에 안들어 죽겠어요. ㅜㅜ
이번화는 특히 너무 맘에 안들어서 올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엄청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ㅜㅡ

끙... 실은 내용 초반부에 기브를 각성(?)시키고 후반에 블랙 레이가 각성하는 장면도 넣으려고 했었는데, 역시 쓰다가 맘에 안들어서 중간에 날렸습니다.


참, 앞부분 내용을 죽 보다가 발견했는데, 10화에서 뱀신의 교주님 대사가 6화에 나온 이노의 대사랑 굉장히 흡사하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모양이예요. 레이님 ㅈㅅㅈㅅ..
절대 고의는 아녀요... T_T

그럼 마지막은 뒷 타자 분들이 멋지게 마무리 지어주실 걸로 믿고....
전 이만 잠수함 타고 도망갈렵니다~~ (후다닭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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