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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Prisoner Princess」

2006.06.21 14:12

갈가마스터 조회 수:2153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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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2066. 3. 15. AM 05:00 체코와 폴란드 국경지대 수데텐 산맥(Mts. Sudeten)]

  아직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수데텐 산맥. 해발고도 천에서 천오백 사이의 수데텐 산맥은 가장 높은 스네슈카 산이 1603m일 정도로 비교적 낮고 완만한 고원형태의 산간 분지들로 이루어져 있는 산맥이었다. 체코와 폴란드 사이의 국경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 낮은 산맥은 이 주변 여러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복잡한 곳으로서 과거에 많은 혼란기를 겪은 곳이기도 했다.

  쿠우우우우.

  그 낮은 산 그림자의 사이로 육중한 검은색 전함이 고요한 계곡을 진동시키며 유영하고 있었다. 마치 묘기라도 부리듯 요리조리 방향을 틀며 지나가고 있는 이 거대한 ‘괴물’은 겉으로 드러난 무장이 거의 없고 통상 다른 전함들에 비해 양 옆이 크게 부풀어 있는 걸로 보아 전함이라기보다 수송함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렸다. 뭉툭하게 튀어나온 함수의 측면에 그려진 두 자루의 검과 후드를 눌러쓴 사신이 그려진 방패 문양, 그리고 그 아래 쓰여 있는 ‘EWS(Earth Word Ship)003. Phantom Black'이라는 문장은 이 함선이 어스워드(Earth Word) 소속의 3번함 팬텀 블랙(Phantom Black)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함의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함교에선 지금 1만 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함선으로 좁은 지역을 통과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부리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진로 0-1-5로 변경. 기관속도 1/3 노트. 지면의 암반에 주의하며 고도 1600 피트까지 상승.”
  “진로 0-1-5! 기관속도 1/3 노트! 고도 1600 피트까지 상승!”

  노엘 부장의 지시에 항해장이 따라 호령하며 세세한 지시를 마저 내렸다. 그들의 명령에 따라 함이 방향을 틀고 바다를 호령하는 고래처럼 천천히 상승하며 좁은 계곡의 틈새를 빠져나갔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조함능력. 평범한 함장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팬텀블랙의 함장 마리아 슈나이더와 함교요원들은 이렇듯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후우.”
  “피곤하십니까? 함장님.”

  한숨을 푸욱 내쉬며 피곤한 듯 미간을 누르는 마리아 함장의 모습에 옆에 서서 조함을 지시하던 부관 노엘이 물어왔다. 허리까지 탐스럽게 내려오는 긴 갈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땋아 묶은 이 공부벌레 같은 인상의 여자아이는 ‘노엘 브라이트’라는 이름의 비록 어려보이지만 유능한 부관이었다. 노엘은 10시간이 넘는 지루한 항해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듯, 주근깨 가득한 얼굴 위에 쓴 커다란 안경 안쪽에서 머리카락색과 비슷한 밤색 눈동자를 빛내며 함장에게 말했다.

  “오드라 강 유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함장님. 우호국인 슬로바키아 영내로 들어서면 루마니아까지 저만으로도 충분하니 이제부턴 저와 항해장에게 맡겨주세요.”
  “아니, 마음은 고맙지만 수타텐 산맥을 빠져나갈 때까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지. 카르파티아 산맥에 들어서면 쉬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이대로 진입하면 좌현이 산사면에 닿는다. 우현으로 2도 정도 틀어.”
  “야볼(Jabohl). 항해장! 속도 5노트 줄이고 진로 우현으로 2도 변경!”
  “아이아이 써(Aye-Aye Sir)! 기관실! 속도 25노트로 감속! 헨리! 관성으로 틀면 늦는다! 함 우현으로 2도 기울이고 부력노즐을 이용해 방향을 틀어라!”

  항해장 알렉세이의 호령과 함께 함이 우측으로 미묘하게 기울었다. 마리아 함장이 말한 바처럼 함은 아슬아슬하게 측면을 산사면에 스치며 지나갔고, 함을 조종하는 금발의 헨리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며 이마에서 땀을 훔쳤다.

  “어이, 헨리!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조종간에서 손을 놓지 마!”
  “아! 아 예!”

  늙은 집사처럼 깐깐하고 성질 더럽게 생긴 항해장 알렉세이의 호령에 헨리는 화들짝 놀라 다시금 조종간에 손을 가져갔다. 알렉세이는 1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신참같은 헨리의 미숙함에 걱정스럽게 혀를 끌끌 차며 뒷짐 진 자세 그대로 신경을 곧추 세우고 정면 3D 지면 스캔을 주시했다. 약간의 빈틈만 있어도 이 1만 톤이 넘는 느림보 거북이는 꼼짝없이 산에 부딪혀 버리기 때문에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역시나 마리아 함장님이다. 자칫하면 놓칠 2도 정도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다니.’

  백발이 성성한 알렉세이는 냉철한 녹색 눈동자에 존경심을 가득 담아 가느다랗게 빛내며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는 과감한 행동력을 자랑하는 ‘마리아 슈나이더’ 함장. 그리고 신중하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줄 아는 ‘노엘 브라이트’ 부관의 명석한 두뇌와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용병술. 다른 함의 용병들은 함장과 부관이 모두 여자인 ‘팬텀 블랙’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함교요원들을 위시한 팬텀 블랙 내의 승무원들은 어느 누구도 이 두 사람을 무시하거나 경시하지 않았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늘 이들의 생명을 구원해준 함장과 부관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음?”

  삑. 게슴츠레한 눈으로 레이더 화상을 바라보던 마리아 함장은 전방에서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진 붉은 점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노엘, 방금 그건 봤나?”
  “예, 함장님. 새였을까요?”
  “아니, 새치곤 사라지는 게 너무 부자연스러웠어.”

  노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함장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아마도….”

  콰과광! 돌연 팬텀 블랙이 진입하는 계곡의 가파른 절벽 꼭대기 양쪽에서 불꽃이 번뜩이며 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Prisoner Princes」
Wish to the Star
제 4 화. 포위





  “에? 마, 말도 안돼!”

  팬텀 블랙 내부의 한적해 보이는 AT격납고, 갑자기 가냘픈 비명소리가 어슴푸레한 빛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도미니크였으며 그는 지금 길버트와 체스를 두던 중 순식간에 체크 메이트를 당해버려 패닉 상태에 빠져있었다. 왕을 잡아먹기 위해 눈을 부라리는 기사(Knight)와 좌측 대각선 너머에서 압박을 가해오는 승정(Bishop). 게다가 오른쪽 아래의 접전지에서 도미니크가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하고 있던 여왕(Queen)을 잡아먹고 요사스럽게 눈을 흘기고 있는 검정 아줌마(=Queen)를 바라보며, 도미니크는 사방으로 포위당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왕(King)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문제는 저것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방금 체크 메이트를 외치며 내리꽂힌 한 마리의 병사(Pawn)라는 사실이었다.

  “이, 이건 말도 안돼.”
  “큭큭큭. 자, 싸게 싸게 패배를 인정하시지. 넌 병졸의 뭉둥이에 개처럼 맞아 뒈지는 거야.”

  양손으로 주황색 머리카락 움켜쥐고 중얼중얼거리는 도미니크를 바라보며 길버트가 이죽거렸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처럼 쓰고 있는 회색 캡(cab) 아래에서 검은 눈동자를 실실거리며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도미니크의 패배선언을 기다렸다.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솔직히 말해 방금 전까진 분명 도미니크가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길버트가 미끼로서 내놓은 한 마리의 병사를 성벽(Rook)으로 잡아먹으면서부터였다. 뭔가 ‘날 좀 잡아잡수’하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타난 병사 한 마리 때문에 도미니크의 진영은 순식간에 허물어졌고 좌익의 나이트, 비숍, 룩을 한 마리씩 차례차례 제압당한 뒤 마지막으로 순백의 여왕까지 잃어버리자 이제는 일개 하급 병졸 따위에게 왕의 생명을 위협받는 불쌍한 처지에까지 이른 것이다. 저걸 먹어버리면 대가리 위에서 시꺼먼 십자가를 꿈틀거리는 검은 승정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하나 남은 기사를 마저 제거해 버릴 테고, 다음 순간 기회를 노리는 흑기사와 검은 성벽이 도미니크의 마지막 보루까지 점거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절망에 빠진 왕에게로 시꺼먼 여왕이 다가와 그 요사스러운 입술로 숨통을 틀어막겠지….

  그래도 이정도면 ‘아 고놈 정말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구나, 비록 무참하게 깨졌지만’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문제는 길버트의 말처럼 왕을 움직이지 않으면 병졸에게 개처럼 두드려 맞아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이었다.

  ‘아, 신이시여.’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도미니크는 평소엔 찾지도 않던 신을 부르짖으며 구원의 길을 찾아 이미 허물어진 자신의 진영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미 어떻게 하면 멋지게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녀석에게 길이 보일 리 만무했다.

  “길치 녀석이 길을 찾아봤자지, 헛수고라고 헛수고! 우하하하!”
  “아앍! 이럴 순 없어!”
  
  절규하며 고개를 숙이는 도미니크에게로 두 명의 건장한 정비반 대원이 실실거리며 다가왔다. 그들이 마치 죄인을 심문하는 비밀경찰인 마냥 양 옆에 도열하자 도미니크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곤 절망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 안돼….”
  “큭큭큭, 자,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이익!”
  “어딜! 잡아!”

  길버트의 호령에 따라 도미니크의 양 옆에 도열한 정비반 대원들이 도망치려던 도미니크의 양 팔을 꽉 붙잡아 고정했다.

  “크흐흐흐… 자, 그럼 네 ‘소중한 것’을 받아가도록 할까?”

  변태같은 얼굴로 돌변한 길버트가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탐욕스럽게 핥으며 다가오자, 도미니크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갔다.

 “그, 그것만은 제발! 안돼에에에에!”
  “안되긴 뭐가 안돼! 에에잇!”

  길버트가 달려듦과 동시에 도미니크의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한 뒤 길버트의 손에 들어온 것은 한 장의 손바닥만한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는 그의 눈동자가 돌연 가느다랗게 찢어지더니 입에서 기쁨에 찬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다.

  “오옷! 그래 이거야 이거! 금발의 미소녀! 남자의 로망~!”

  사진의 안쪽엔 귀여운 금발의 소녀가 활짝 웃음 짓고 있었고, 체스 내기의 상품이자 도미니크의 가장 소중한 것이란 다름아닌 바로 이 사진이었던 것이다. 길버트가 도미니크의 품속에서 이 사진을 뺏어들자마자 다음 순간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아저씨’들이 눈에 불을 키며 길버트에게로 몰려들었고 그 와중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도미니크가 그들의 발치에 깔려 저승사자를 영접할 뻔했다.

  몰려든 아저씨들은 사진 속의 아름다운 소녀를 보며 감탄한 듯 크게 소리 질렀다.

  “오오오오! 귀여워!”
  “바, 반장님! 저도 좀 보여주세요!”
  “이, 이것들이 줄을 서라! 줄을 서!”
  “그, 그만둬! 이 로리변태아저씨들아! 에밀리는….”

  에밀리 쉘, 사진 속의 여자아이는 바로 도미니크 쉘의 배다른 동생이었고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여동생의 사진이 구질구질한 아저씨들의 손에 농락당하는 것을 보자, 도미니크는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에, 에밀리이이이이이!”

  걸레짝처럼 엉망이 된 도미니크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울며 소리쳤지만, 여자에 굶주린 ‘아저씨’들의 마음엔 오직 사진 속에서 웃음 짓는 아름다운 소녀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에밀리래~ 에밀리!”
  “오옷? 이름도 귀여운데!”
  “아, 에밀리~”

  그들의 반응에서 절망을 맛본 도미니크가 고개를 힘없이 떨구며 중얼거렸다.

  ‘에밀리, 미안하다. 널 더럽혔어! 크흑! 어머니, 죄송해요 에밀리를 지키지 못해서…. 역시 세상은 썩었어요.’

  요즘 들어 이상하게 옛날에 말씀하신 어머니의 명언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쿠구궁!

  그 때, 약한 진동과 함께 뭔가 지진이 난 듯한 소리가 어수선한 정비반 내에 울려 퍼졌다.

  “뭐지?”

  위잉! 위잉! 위잉!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그들의 귓가에 싸이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 것은 함선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강하면서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
.
.

  “알렉세이! 기관 전속! 500피트까지 하강!”
  “기관 전속! 부력노즐 최소로! 500피트까지 하강!”

  콰르르릉! 쏟아지는 바위들과 하늘을 뒤덮으며 무너지는 절벽,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팬텀 블랙을 살린 것은 마리아 함장의 빠른 대처와 그 명령에 대한 승무원들의 빛과 같은 반응 속도였다. 순식간에 전함의 속도가 50노트를 넘어 100노트에 육박했고 거의 땅을 스치듯 아슬아슬한 기동으로 무너지는 절벽 사이를 돌파했다. 그 와중에 거대한 바위들이 함의 여기저기를 두드렸지만 다행히도 함의 외벽이 약간 구겨진 것 외엔 이상 없었고, 아슬아슬한 곡예 직후 팬텀 블랙은 결국 산사태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쉴 틈도 없이 그들은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을 맞이했다.

  “쿠퍼! 우현 밸러스트 엔진 컷(cut)! 헨리! 조종간 최대로 당겨!”
  “예, 예!”

  정신없는 와중에 마리아 함장의 말에 반응한 조타수 헨리가 조종간을 확 잡아당겼고, 오른쪽 밸러스트 탱크의 엔진이 완전히 멈추자 함이 균형을 잃고 우현이 땅에 닿을 듯 크게 기울어졌다. 헨리가 조종간을 잡아당김에 따라 함의 선수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크게 올라갔고, 그 순간 함장의 생각을 눈치 챈 알렉세이가 번개같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전후방 부상노즐 2:1 비율로 최대 출력! 전방이 2다!”

  콰르릉! 폭음이 울려 퍼지며 팬텀 블랙의 선수, 선미 아래에 달린 부력노즐에서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그에 따라 수직으로 기울어진 채 크게 상승하는 선수부와 반대로 하강하는 후미가 절벽을 부수며 아슬아슬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절벽에 착면했고, 거체에 부딪혀 바스러지는 절벽을 뒤로 하고 팬텀 블랙이 서서히 가속했다. 함이 균형을 회복하자마자 레이더를 보던 오퍼레이터 나오미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함장님! 방위각 0-7-0, 거리 18k, 6000 피트 상공에 소속불명의 전함 2척이 나타났습니다! 각각 침로 2-6-0도와 1-5-0도로 30노트로 이동 중! 본 함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각각 시에라 1, 시에라 2의 코드를 부여합니다!”
  “이런! 함포 사격 고도로 이동하는 건가? 전자전 실시! 오로라 코트(Aurora coat) 전개…!”
  “늦었습니다! 시에라 1에서 발포! 이쪽을 향해 발포했습니다!”
  “시에라 2에서도 발포!”

  이쪽이 전자전을 실시할 틈도 없이 적함에서 포격이 시작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마리아 함장은 어금니를 뿌드득 갈며 소리쳤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콰광! 쾅! 쾅!

  시뻘건 불꽃들이 굉음을 내며 팬텀 블랙이 있는 계곡으로 쉴 새 없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명중탄은 하나도 없었고, 포탄들은 모조리 팬텀 블랙의 앞쪽에 떨어지며 계곡들을 무너뜨릴 뿐이었다.

  “뭐, 뭐지 저건? 일부러 빗맞힌 걸까요?”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재밍(Jamming)을 위한 오로라 코트를 전개한 것도 아닌데 이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세 번씩이나 목표물에서 빗나갔다는 이상한 사실에 마리아와 노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면 계곡 붕괴. 함장님, 지시를….”

  위급 상황에서도 품위와 냉정을 잃지 않는 항해장 알렉세이의 권고에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마리아가 중얼거렸다.

  “그렇군. 녀석들 우리를 포획할 생각인가.”
  “네?”
  “알렉세이, 정지시켜.”
  “어이, 정지! 정지다!”

  쿠우웅! 갑작스런 정지에 함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 와중에 마리아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노엘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이렇게 가까이까지 접근해서 격침이 아닌 단순한 진로방해만 하고, 방금 전 그 소심한 함정…. 만일 격침시킬 요량이었다면 저렇게 요란하게 계곡을 무너뜨리는 짓을 하진 않았겠죠.”
  “그래, 계곡을 무너뜨린 건 함선의 움직임을 멈추기 위한 술책. 녀석들은 우릴 격침시킬 생각이 없어.”
  “그렇다면 상승은 불가군요.”
  “그래, 이미 녀석들이 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떠오르는 순간.”
  “일제히 은신을 풀고 우리를 겨냥하겠지. 녀석들의 락온(Lock on)에 포착되는 순간 우리는 지는 거야.”

  마리아 함장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노엘에게 다음을 지시했다.

  “노엘, 라이더들 브리핑 룸으로 부르고 AT 대기시켜. 지금부터 비상 전투태세로 전환한다. 적색경보(code red) 발령.”
  “야볼! 적색경보! 알렉세이! 함내 총원전투배치! 각 AT 라이더들과 B급 이상 전투 요원들을 브리핑 룸으로! 나오미! 적함 식별은 아직인가?!”

  노엘의 복창과 함께 함선 내부가 붉게 물들며 사이렌과 함께 적색경보가 발령되었다. 붉게 물든 레이더 창에서 깜빡이는 적함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입가에 냉기서린 미소가 걸렸다.

  ‘우리 어스워드를 상대로 장난을 치다니 저쪽의 지휘관도 그리 똑똑한 편은 못되는군. 하지만 무슨 생각이지? 설마 N(니나)이 가지고 온 그 회색 기체를 노리는 건가?’

.
.
.

  “이, 이건 대체….”

  도미니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몸이 붕 뜨고 바닥에 처박히질 않나, 함선이 완전 수직으로 기울면서 바닥을 찾지 못해 허우적대다가 죽을 뻔하질 않나. 살았나싶더니 갑자기 내부 등불이 시뻘겋게 물들어버리며 사이렌만 윙윙 울려대고….

  “어이! 신참!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여기 일이나 좀 도와!”

  멀리서 기자재를 옮기는 길버트가 멍하니 서서 구경만 하는 도미니크에게 소리쳤다.

  “저… 말입니까?”

  멍청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도미니크를 바라보며 길버트는 짜증난다는 듯한 어투로 외쳤다.

  “으이구! 쓸모없는 놈! 됐다 됐어! 그냥 방구석에나 처박혀있어! 괜히 나돌아댕기다가 뒈지지나 말고!”
  “아, 눼에….”

  도미니크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비상계단 쪽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계단을 오르려고 하니 위쪽에서 파일럿슈트로 갈아입은 퀸과 하빈 그리고 아직도 검은 드레스따위를 입고 있는 라비니가 느긋하게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빌어먹을 하여간에 이놈의 집구석은 느긋하게 쉴 틈도 없구만.”
  “또 불만이세요? 그럼 함장한테 따지던가 해요.”
  “…….”

  퀸은 파일럿 슈트가 갑갑한지 연신 넥카라를 잡아당기며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고 그의 뒤에서 라비니가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즐거운 듯 연신 ‘쿡쿡’거리고 있었다. 짧은 곱슬머리가 유난히 도드라진 하빈이라는 사람은 냉정하게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심 즐거운 듯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는 것이 어쩐지 겉모습과는 달리 은근히 싸움을 즐기는 타입 같았다.

  “어? 신참 넌 여기서 뭐하냐?”

  그 때, 도미니크를 발견한 퀸이 물어왔다.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서인지 퀸의 표정은 그닥 곱지 못했고 마치 쓸모없는 짐짝이라도 보듯 도미니크를 흘겨보았다. 하긴 도미니크는 지금 식객이나 다름없는 처지이다. 정식으로 배정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함내 요원으로 등용된 것이 아니니 쓸모없는 취급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냥 여기저기….”
  “여기저기?”
  “…그게, 저 할 일이 없어서….”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듯 작게 말하는 도미니크를 바라보며 라비니가 측은한 듯 중얼거렸다.

  “당신이란 사람 참 쓸모없네요….”
  ‘으윽!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딴 소릴 지껄이지 마!’

  가슴 한 구석을 비수로 후벼 파는 듯한 라비니의 한마디에 도미니크는 심장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루에 두 번이나 쓸모없다는 소릴 듣는 사람의 기분 따위 지금의 도미니크말고는 알 수 없으리라. 가까스로 평정심을 찾은 도미니크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듯 퀸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니나…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니나? 글쎄, 지금쯤 아마 A-32 갑판에 있을 거야.”
  “아,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도미니크가 스쳐 지나가자, 라비니가 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괜찮겠어요? ‘지금의 니나’를 보여줘도?”

  라비니의 걱정스러운 듯한 물음에 퀸은 듬성듬성 지저분하게 자란 회색 머리카락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뭐, 저 녀석도 언젠가는 알아야 하니까.”

  도미니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옅은 미소를 띤 하빈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것보다, 저 소년이 과연 니나가 있는 곳까지 찾아갈 수 있을 지를 걱정해야 할 듯싶습니다만?”
  “헉!”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뜨끔한 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뭐, 운에 맡겨야지. 난 보모가 아니라고.”

  행운의 여신에게조차 버림받은 초불행아 도미니크의 앞길엔 한 치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
.
.

  한편 팬텀 블랙의 함교는 지금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마치 때를 기다리는 야수처럼 그들의 침묵은 살을 에는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 기다림의 고요함 속에서 노엘이 문득 손목시계를 흘겨보곤 함장에게 보고했다.

  “작전개시까지 앞으로 420초 남았습니다. 함장님. 녀석들이 과연 연락을 취할까요?”
  “글쎄? 연락해줬으면 좋겠지만 안한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녀석들이 만약 우릴 포획하려한다면 항복 권고를 위해서라도 연락을 취해올 거야. 물론 자기들 딴엔 완벽히 포위했다고 여기고서….”

  삑. 삑. 삑. 그 때 바로 콘솔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통신을 맡고 있는 흑인 오퍼레이터 ‘사무엘’이 불량스럽게 풍선껌을 푸욱 불곤 말했다.

  “함장님~ 기다리시던 통신 도착. 회선 열까요?”
  “글쎄? 잠깐 뜸을 들여 볼까, 레이디를 기다리게 한 벌이야.”

  가벼운 마리아의 농담에 노엘을 비롯한 함교요원들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이내 사그라졌고, 냉정한 미소를 짓는 마리아가 무미건조한 어투로 사무엘에게 말했다.

  “사무엘, 열어.”
  “Aye~Aye~ sir~”

  사무엘이 마치 랩을 하듯 대답하며 회선을 돌리자, 약한 방해전파에 의해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적함으로부터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신가? 쥐새끼 여러분.』
  “첫 대면에선 이름부터 대는 것이 레이디에 대한 예의일텐데? 그 특징적인 억양을 보아하니 ‘스코틀랜드’ 촌놈 같군. 영국식 예의를 기대하는 건 무리이려나?”
  『이거이거 실례를 범했군. 좋아, 정식으로 인사하지. ‘그린 살라만더스(Green salamanders) 용병단’의 1번함 ‘코모도 드래곤’의 함장, ‘스튜코프’다. 자긍심 있는 ‘잉글랜드’ 출신으로서 레이디에 대한 무례를 사죄하지.』
  “그린 살라만더스? 아, 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애새끼들이로군. 그래 무슨 용무이신가? 못난이(stupid boy).”

  빠직. 통신기 너머로 맥주 캔 구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는 듯한 스튜코프의 목소리가 잔잔한 함교 내에 울려 퍼졌다.

  『잘 들어, 암퇘지 년아. 남 이름가지고 장난질하는 네 년의 그 잘난 혀는 현 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돼! 뒈지고 싶지 않으면 1분 줄 테니 무장해체하고 항복이나 하시지!』
  “부탁하는 태도가 영 아닌데? 그것보다 우리 ‘어스워드’를 습격하다니 간도 어지간히 부었군. 네오 제네시스사의 보복이 두렵지 않나?”
  『헹! 그건 네 년이 알 바가 아니지. 애시당초 우리는 네오 제네시스와는 상관없는 몸이야.』
  “바이에른인가?”
  『훗, 글쎄? 짱돌 굴리는 건 나중에나 하라고. 여튼 얘기는 여기까지다 1분 후에도 무장해제의 낌새가 보이지 않으면 경고 사격 없이 발포하겠다. 살고 싶으면 잘 처신하는 게 좋을 걸? 큭큭큭.』

  삑. 일방적인 통보로 통신이 끊어지자 마리아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린 살라만더스 용병단, 바이에른, 포획 의뢰인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꽤 많은 단서를 얻었군. 노엘, 그린 살라만더스의 파견 전력은 얼마 정도로 산출할 수 있을까?”
  “그 규모론 많아봐야 AT 중대 3개(약 12기~15기) 규모와 산하 레인저 연대 1개 정도. 2개 전함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최대 전력입니다.”
  “그렇군, 녀석들의 배치는?”

  삑. 팬텀 블랙의 위치를 중심으로 3D 입체 지형지도가 앞에 나타나자 노엘이 손가락으로 몇 군데 중요한 지점을 집으며 말했다.

  “무인 정찰기가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주력 AT는 비트사의 헌터 시리즈로서, 디어 헌터(Hunter-05c, Deer Hunter)가 총 10기, 베어 헌터(Hunter-02d, Bear Hunter)가 3기, 대함 미사일 런처 4기가 본함 후방에 산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저 녀석들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무인 정찰기로 살피는데 몇 번의 경고 사격을 하면서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주더군요.”
  “이 정도 규모의 완벽한 포진이다. 자기들의 세를 과시하면서 항복하길 바라고 있겠지. 그게 목젖을 틀어막을 줄도 모르고…. 작전시간은?”
  “앞으로 53초 남았습니다.”
  “좋아, 그럼 느긋하게 구경이나 할까?”
  “맡겨만 주세요, 함장님. 작전개시까지 앞으로 50초! AT부대 스탠바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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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도미니크는 당연하게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A 갑판까진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32번 출구가 어디 있는 지 당최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으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으악! 도대체 어디가 어디야!”

  지도를 펼치고 여기저기를 뜯어보았지만 32번 출구가 있어야할 자리에 15번 출구가 있지를 않나, B 갑판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이 나오질 않나 도미니크는 살다살다 이렇게 꼬인 곳은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베를린의 슬럼가도 꽤나 복잡하지만, 여기는 그보다 더한 것 같았다.

  “어?”

  고개를 휙휙 돌리며 상하좌우 모두를 살피던 도미니크의 눈에 문득 굳게 걸어 잠긴 문 하나가 들어왔다. 그건 바로 15번 출구 옆에 뚫린 계단 끝에 우뚝 서있는 작은 문이었다. 문  표면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하얀 글은 분명 'A-32 deck'이란 글씨였다.

  “찾았다!”

  도미니크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계단을 휙휙 뛰어 올라갔고, ‘A-32 deck' 문 앞에 서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난생 처음 자력으로 길을 찾는데 성공한 것이다. 웬만해선 감동하지 않는 무신경한 도미니크였지만 지금은 감격의 눈물이 솟구칠 것만 같았다.

  “아아, 왠지 기도라도 올리고 싶은 기분이야.”

  감격에 겨워 문을 열려하는데 문득 문고리 위에서 깜빡이는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어? Air… lock?”

  ‘Air lock', 통상 비행기의 출입구에나 쓰일 법한 글씨였다. 그것은 밖의 기압이 낮으니까 죽기 싫으면 함부로 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구이기도 했다.

  “이거 설마 밖으로 통하는 문인가?”

  여기서 도미니크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이 문이 과연 자신이 찾아 헤매던 ‘A-32' 갑판으로 연결되는 문일까 아닐까에 대한 쓰잘데기없는 의문과 함께 이 문을 열까말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실 너무 재수가 좋았기에 그로서는 더 불안했던 것이다.

  괜히 문을 열었다가 기압차로 인한 폭풍에 휘말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도미니크는 더없는 불안감에 빠져 허우적댔다.

  ‘그래, 사나이 까짓 거 한번 죽지 두번 죽냐?’

  고작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를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 사나이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을 무시하며 도미니크는 용감하게도 손잡이를 돌렸다.

  덜컹!

  “에그머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자물쇠가 해제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도미니크는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들어오자 그제야 벌렁벌렁거리는 심장을 가까스로 잠재우며 문을 잡아당겼다. 괜스레 볼이 뜨거워지며 창피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그는 남이 볼세라 재빨리 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철끼리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살을 에이는 싸늘한 바람이 노도처럼 밀려왔다.

  “으억! 추워! 디게 춥네! 우덜덜덜.”

  전신을 엄습해오는 추위에 오한을 느끼며 도미니크는 양 팔을 감싸 안고 밖으로 나왔다.

  “와아.”

  밖으로 나오자, 난간 너머로 아름다운 산사면이 눈에 들어왔다. 산사면이 보인다는 것으로 팬텀 블랙의 고도를 짐작한 도미니크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침엽수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잠시 추위를 잊었던 도미니크였지만 이내 자신이 여기 온 목적을 깨닫곤 덜덜 떨며 니나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익숙한 모습의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에 보라색 눈동자, 바람결에 찰랑거리는 비취 빛깔의 청록색 단발 머리카락. 바로 니나였다. 그녀는 강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난간너머의 숲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니나….”
  “…….”

  도미니크가 반가운 듯 손을 흔들며 인사했으나 니나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평소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비록 니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녀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도미니크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니나가 일어서며 뒤에 숨기고 있던 검고 긴 뭔가 꺼내 난간에 걸쳤다.

  “어?”

  총신이 길고 원통형 길쭉한 스코프가 몸통 위에 달려있는 그건 분명 영화에서나 보던 '저격소총'이었다. 이름이 아마 ‘드라구노프’라던가? 여하튼 굉장히 유명한 저격총이었던 걸로 기억되었다.

  “뭐, 뭐뭐뭐…뭐.”

  철컥.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던 도미니크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할 말을 찾지 못해 버벅거리는 동안, 노리쇠를 뒤로 잡아당겨 총알을 장전한 니나가 이어폰에 대고 중얼거렸다.

  “N 작전 위치에.”
  『작전 개시까지 10초 전, N은 오로라 코트가 전개되는 순간, 적 정찰병을 저격하라.』
  “방아쇠는 이쪽에서, 타이밍은 그쪽에서.”
  『오케이.』
  
  무표정한 얼굴로 스코프에 눈을 가져가는 니나를 바라보며 도미니크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거릴 뿐이었다.

  『작전개시 5초. 4, 3, 2…』
  “자, 잠깐 이게 무슨 일이야!”
  
  도미니크가 허둥대며 니나에게 다가서려 할 때 이미 그녀의 눈은 멀리 숲 속에 숨어서 이쪽을 훔쳐보고 있는 정찰병을 보고 있었다. 3인 1조인 정찰 부대는 자신들의 머리가 조준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작전개시!』

  탕! 탕! 탕!

  작전개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니나의 드라구노프가 세 번 연이어 불을 뿜었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간 세 줄기의 빛은 빠르고 정확하게 정찰병들의 머리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며 사라졌고 뇌를 잃은 육신들은 피를 뒤로 흩뿌리며 힘없이 쓰러져갔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단 세 방으로 적 정찰분대 하나를 장사지낸 니나가 귓가의 이어폰을 누르며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미션 컴플리트. 지금부터 작전구역을 이탈합니다.”

  도미니크는 한동안 주저앉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니나가 총을 쏘는 순간 전신을 엄습한 살기와 한기는 순식간에 다리에서 힘을 앗아갔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아…. 도미니크."

  니나는 그제야 도미니크를 발견했다는 듯 싸늘하게 굳어있던 얼굴을 부드럽게 풀며 인사했다.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변한 니나의 분위기에 도미니크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 뭐야 도대체….”

  무표정하게 사람을 죽이고 손바닥 뒤집듯 뒤집힌 니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쩐지 도미니크에게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펑! 펑! 펑!

  그 직후, 굉음과 함께 팬텀블랙의 좌현에서 작은 해치 수십 개가 동시에 열리며 원통형의 뭔가를 수차례 발사하였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것들은 일정고도에 도달하는 순간 일제히 폭발하며 반짝거리는 것을 사방으로 흩뿌렸는데 그것이 바로 팬텀 블랙의 장기, 오로라 코트(Aura coat)였다. 반짝거리는 물질들은 대기 중에서 고루 흩어지면서 반응하여 하늘에 투명한 실크 커튼 같은 것을 생성했는데 그 하늘거리는 모습이야말로 북극에서 보일 법한 오로라 그 자체였고, 이것이 바로 오로라 코트라고 이름 붙인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오로라 코트는 전개되자마자 반경 50km에 걸친 어마어마한 범위의 통신과 레이더 전파를 혼란시켜 무력화했고 그것은 일반적인 재밍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위이이이이잉!

  밤하늘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오로라의 아름다움에 취할 틈도 없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팬텀 블랙 후미의 사출 게이트가 위로 올라가며 왼쪽 어깨 장갑에 스페이드 에이스 무늬가 그려진 청색의 AT(에이스 J)와 기형적으로 부푼 어깨에 독특한 해골 무늬가 그려져 있는 호랑이 무늬의 AT(트랜치스트 오우거)가 그 육중한 모습을 드러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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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라 코트 전개 완료! 각 AT 캐터펄트 위치에!』
  『적 AT부대 및 시에라 1, 시에라 2는 아직 움직임 없음!』
  『팬텀 블랙 고도 4000 피트까지 상승 완료! 함미 3번 4번 캐터펄트 입력된 좌표에 AT 사출 준비 완료!』

  “휘우, 바쁘시구만.”

  퀸은 ‘에이스 J’의 내부 콕피트에서 몇 가지 기기들을 조작하며 성가시다는 듯 중얼거렸다. 오퍼레이터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는 통에 머리까지 윙윙 울려댈 지경이었으니 인내심이 좀 부족한 퀸으로서는 바로 통신을 끄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웬만해선 이 녀석을 타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워낙 중요한 일이니 안 탈 수도 없고 나 참….”

  퀸은 기체 상태와 각종 밸런스 상황을 살피면서도 뭐가 불만인지 이래저래 투덜거렸다.

  삑삑삑삑.

  바쁜 와중에 라이더 전용 통신기가 시끄럽게 울려대자 퀸은 귀찮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회선을 열고 말했다.

  “어이, 하빈 너 또 내기나 하자고 연락한 거지? 가뜩이나 귀 따가워 죽겠는데 너까지 아우성이냐!”

  작은 창에서 얼굴을 드러낸 하빈은 늘 같은 반응만 보여주는 퀸이 재밌다는듯 가볍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안 하면 섭하잖습니까. 후훗.』
  “으이그, 하여간에 너란 녀석은…. 좋아, 조건이나 말해봐.”

  겉으로는 뚱한 표정을 하고 있어도 내심 도박이라는 아슬아슬한 것을 즐기는지 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건은 전과 같이. 대장이 이기면 격납고 청소하는 거고 제가 이기면 부쿠레슈티에서 대장님이 쏘시는 겁니다.』
  『앗! 하빈! 누가 또 멋대로 내기하래요?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엔 저 안할거에요!』

  갑자기 하빈의 얼굴 옆으로 새로운 화면이 뜨며 모습을 드러낸 라비니가 볼멘소리로 멋대로 내기를 하려는 퀸과 하빈에게 불평불만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저번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기의 희생양이 되어버려 억울하게 청소를 하게 된 만큼 이번엔 어떻게든 청소하는 것만큼은 피해보려는 시도였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라비니, 대신 내가 질 경우 네 술값은 없다는 것만 알아둬.”
  『에엑? 치사해요!』
  “치사하긴 뭐가 치사하냐? 원래 승부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 모 아니면 도야. 패를 던질 용기가 없는 겁쟁이는 빠져주는 게 이쪽으로선 더 좋은 법이지.”
  『맞습니다, 대장. 오랜만에 옳은 소릴 하시는군요.』
  『맞긴 뭐가 맞아요! 하여간에 남자들이란! 알았어요! 참가하면 되잖아요! 흥!』

  삑, 라비니가 뚱한 표정으로 사라지자 이번엔 사출 관제 오퍼레이터의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전방 게이트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해치 오픈. 각기는 캐터펄트 사출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위로 올라가는 해치 사이로 찬 공기를 머금은 바람과 함께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 어스름을 휘감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녘의 흐릿한 별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하늘과 오로라 코트에 의해 발생한 인공적인 오로라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퀸은 나지막한 휘파람으로 그 경관을 칭송했다.

  “아, 맞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퀸이 라비니와 하빈에게 말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모두들 몸조심해라. 내기에 목숨 거는 놈만큼 추한 건 없는 거야.”
  『라져.』
  『흥! 빨리 나가기나 하세요.』

  아직도 삐진 듯 툴툴거리는 라비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캐터펄트의 옆에서 붉은 형광등을 들고 있는 사출 관제 요원이 형광등을 힘차게 내리며 소리쳤다.

  『1번기 발진! 1번기 발진!』
  “그럼, 1번기 퀸 스페이드 A! 발진한다!”

  쿠우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캐터펄트가 퀸의 ‘에이스 J’를 가속시키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출했고 공중을 날아오르는 푸른색의 AT는 유성같은 시퍼런 잔광을 남기며 단숨에 목표지점 상공까지 날아갔다. 이어 하빈의 ‘트렌치스트 오우거’가 사출되었고 그와 동시에 팬텀 블랙의 기수가 남서쪽으로 돌며 1만 톤이 넘는 거대한 몸을 이끌고 서서히 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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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팬텀 블랙의 서북서 1km 지점에 매복하고 있는 ‘그린 살라만더스’ 제 53 AT 중대는 밤하늘에 드리워진 오로라의 아름다움에 취해, 때 아닌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통신기기와 레이더가 삽시간에 불통이 되어버리자 각자 당황하며 연락을 취하기 위해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니나에 의해 정찰병이라는 눈과 귀를 잃은 이들에게 팬텀 블랙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들어올 리가 없었다.

  “여기는 도마뱀 1! 도마뱀 둥지 나와라! 도마뱀 둥지! 응답하라고 빌어먹을!”

  콰앙! 투타타타타탕!

  그 때 갑자기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불꽃이 숲 저편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분명 그쪽은 대함 미사일 트레일러가 배치되어 있는 곳이었고, 저 불꽃과 함께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와 둔중한 70mm AT 소총의 총성은 다름 아닌 ‘적’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이! 멍청히 서있지 말고 가봐!”

  제 53 AT 중대의 중대장 브라운하이크 4급 용병은 지휘 차량 밖으로 뛰쳐나와 멍청하게 서 있는 AT 라이더들에게 육성으로 소리쳤다. 유선을 뺀 모든 무선 통신이 완전 엉망이 되어버렸기에 지금으로선 아이러니하게도 원시적인 방법이 더 효과적인 연락수단이었다.

  부우웅! 쿠웅! 쿠웅!

  그의 명령을 받자마자 어두운 녹색으로 도장된 AT 디어 헌터(Hunter-05c) 세 기가 특이한 고글형태의 아이카메라를 빛내며 호버링으로 땅을 스치듯 날아갔다. 산악전용에 맞게 경사변화가 심한 지형에서도 디어 헌터들은 놀라운 밸런스를 자랑하며 순식간에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이, 너!”

  디어 헌터 소대를 보낸 브라운하이크는 다른 부대에게 위급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가는 병사하나를 붙잡아 세우며 급히 소리쳤다. 신참인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급 용병은 전투 상황이 처음인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브라운하이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신병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명령을 내렸다.

  “어이! 너는 지금 당장 AT 대대 사령부로 가라! 가서 지금의 상황을…!”

  콰아앙!

  그가 막 명령을 끝맺으려는 찰라, 갑자기 숲 속에서 굉음과 함께 디어 헌터 한 기가 허겁지겁 튀어나오더니 숲 쪽을 향해 미친 듯이 소총을 갈겨댔다.

  투타타타타타탕!

  “뭐, 뭐야! 미친 새끼야! 이게 뭔 짓이야?!”

  브라운하이크는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는 총성과 우박처럼 쏟아지는 탄피들 속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디어 헌터를 향해 소리쳤지만 디어 헌터의 라이더는 패닉 상태에 빠졌는지 미친 듯이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며 총을 쏠 뿐이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를 상대로 가련한 인간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악!』

  펑! 펑!

  그 때, 폭음이 계속되는 숲 저편에서 두 줄기의 굵직한 불꽃이 길게 꼬리를 이끌고 소총을 난사하는 디어 헌터에게로 날아왔다. 120mm 대전차 철갑탄의 불꽃은 순식간에 디어 헌터의 헤드와 흉갑을 관통했고 라이더가 절명한 AT는 영혼을 잃은 시체처럼 뒤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 뒤로 거짓말처럼 사방에서 들려오던 총성이 멎었고 브라운하이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불길에 휘말리는 숲 저편을 바라보았다. 간헐적인 총성은 간간히 들려왔지만 AT와 전차들이 내뱉어야할 육중한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서, 설마! 전멸이라고?! 이 짧은 시간에?”

  파슝! 브라운하이크가 말을 미처 끝맺기도 전에 순식간에 날아온 유탄이 지휘차량과 함께 그를 산산조각으로 흩어놓았다. 사지가 뿔뿔이 흩어지는 순간 그는 불타는 숲 속에서 사파이어빛으로 싸늘하게 빛나는 거인을 본 것 같았다. 두터운 어깨 장갑 위에 마치 사신과도 같은 스페이드 A 문양을 달고 있는 거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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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팬텀 블랙 북쪽 15km에 포진하고 있는 ‘그린 살라만더스 용병단’의 1번함 ‘코모도 드래곤’은 오로라 코트와 팬텀 블랙의 전파 방해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53, 42, 21, 22, 131 AT 중대 시그널 로스트(Lost)! 101 레인저연대, AT 대대 사령부도 완전 불통입니다!”
  “아직도 통신은 복구되지 않았나?”
  “통신뿐이 아닙니다! 레이더도 전자파의 간섭이 너무 강해 엉망입니다!”

  코모도 드래곤의 함장 스튜코프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험상궂게 구기며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바스러져라 움켜쥐었다. 약한 맥주 캔은 그의 우악스런 손힘을 견디지 못하고 누런 맥주와 거품을 내뱉으며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함장님! 적함 시에라 1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침로… 남남서”
  “뭐야? 그걸 왜 이제야 보고하는 거야?!”

  망원경을 들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팬텀 블랙을 살피던 함교요원 하나가 그제야 멀어지는 팬텀 블랙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레이더와 컴퓨터 기기에 의존만 하던 세대라 그런지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서의 숙련도는 상당히 미숙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스튜코프는 신경질적으로 맥주 캔을 집어던지며 씩씩거렸곤 이내 붉은 수염을 파르르 떨며 명령했다.

  “빌어먹을! 기관 전속! 쫓는다! 브루너! ‘더스트스피어(대함 미사일)’ 발사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레이더파가 혼란을 일으키는 현 공역에선 미사일의 전개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함포라도 계속 쏴! 맞추진 못해도 적함의 움직임은 견제할 수 있겠지! 이쪽의 속도가 저쪽보다 빠르다! 접근해서 한방만 먹여줘도 우리 승리야!”
  “Aye sir! 기관 전속! 함포 사격 개시! 방위각 1-9-0도 앙각 15도!”

  퉁! 퉁! 퉁!

  함수에 달린 127mm 함포가 육중한 기염을 토해내며 분당 100발의 속도로 포탄을 쏘아댔다.

  “건방진 짓거리를 하다니! 빌어먹을 암캐 같은 년! 바이에른이 의뢰한 회색 기체와 그 여자아이만 손에 넣으면 네 년은 조각조각 찢어 발겨주마!”

  이빨을 으드득 갈며 팬텀 블랙을 노려보는 스튜코프 함장의 귓가에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나이트스코프로 팬텀 블랙을 살피는 한 함교요원이었다.

  “함장님! 적함 후방 갑판 위에 정체불명의 AT 발견!”
  “뭐라고?”
  “앗?! 발포? 발포했습니다! 이쪽을 향해 발포했습니다!”

  괜히 호들갑떠는 관측병을 바라보며 스튜코프는 짜증을 버럭 내며 소리쳤다.

  “허둥대지마라! 어차피 안 맞아!”

  레이더의 도움도 없이, 그리고 이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서 그것도 AT가 쏘는 포에 맞을 리가 없다고 스튜코프는 낙관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걸 그는 죽는 순간까지 알 수 없었다.
  
.
.
.
.

  “고스트 플룻, 저격 준비 완료.”

  팬텀 블랙의 후미 갑판, AT 사출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라비니의 ‘고스트 플룻’이었다. 몸의 배는 넘을 듯한 거대한 라이플(MALC-7 Type3, 205mm)을 땅에 거치하고 누워서 오로라 장막이 쳐진 밤하늘을 겨누고 있는 이 괴물은 라비니의 기체답게 검은색으로 도장되어 있었다.

  『아하암…. 라비니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저게 보여?』

  라이플의 후폭풍에 휘말릴까봐 멀찌감치 떨어진 방에서 고스트 플룻을 바라보고 있는 길버트가 하품을 길게 내뱉으며 물었다. 길버트의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음성에 기분이 나빠진 라비니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말했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거예요, 길버트씨?”

  라비니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캉!

  마치 로켓이 내뿜는 불꽃처럼 총구에서 길게 솟구친 불꽃과 고막을 찢는 굉음. 그와 함께 방출된 굵직한 광탄(光彈)은 대기 중에 파공성을 내며 이내 점이 되어 사라졌다.

  『흥, 그럼 그렇지.』

  잠시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자 길버트가 코웃음을 내뱉으며 비웃을 때쯤이었다. 멀리 밤하늘에서 불꽃이 하나 번뜩이더니 여기까지 울리는 거대한 폭음이 이어졌다.

  『헉! 말도 안돼!』

  10km나 떨어진 전함을! 그것도 반동이 엄청난 205mm 대함 라이플로 단 한방에 명중했다는 사실에 길버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라이플에 명중당한 전함은 시꺼먼 연기와 불꽃을 내뱉으며 서서히 지상으로 추락해갔고, 그걸 본 다른 전함은 당황했는지 허겁지겁 기수를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런 괴물 같은 녀석!』

  아무리 오로라 코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 육안을 통한 저격이었다고는 해도 이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곡예가 아니었다. 왜 아무리 능숙한 포병이라도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기 위해선 적어도 세 번은 쏴야 한다고 하질 않던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하는 길버트는 무시한 채 라비니는 함교에 임무 완료를 보고했다.

  “목표, 시에라 1 침묵.”
  『와아아아아아!』

  잠시 함교로부터 환호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기쁜 듯 한층 밝아진 노엘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다, 고스트 플룻. 이젠 좀 쉬어도 좋다고 말하곤 싶지만, 잠시만 더 수고해줘.』
  “네.”

  통신을 마치자, 함교로부터 포격을 위한 좌표와 현재 퀸과 하빈이 있을 위치가 전송되었다. 그 둘의 퇴각을 돕기 위해 지원 포격을 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투캉! 투캉! 투캉!

  연이어 205mm 라이플을 발사하는 라비니의 입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아, 나는 왜 맨날 이런 역할이냐구요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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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와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처음으로 올리는 글이군요~ 음허허허

이제부터 불타봅시다 여러분!!!



자세한 설정은.... 잠시 다음 기회에......




하려다가 그냥 열라게 썼음. =ㅅ=;;;


<무기>

1. 오로라 코트 : 건담으로 치면 미노프스키 입자같은 것. 통신과 레이더를 비롯 모든 전자파를 혼란시킨다.
                      영구적인 것이 아니며, 한번 뿌리면 1시간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
                      이번 화에서처럼 반경 50km 이상의 넓은 지역에 영향을 주기 위해선
                      약 10~20발 정도를 넓은 지역에 걸쳐 골고루 뿌려줘야한다.
                      피아의 구분이 없으며 범위내의 모든 전파를 혼란시킨다.

2. MALC-7 Type3, 205mm 대함 라이플 : Military Ammo Long-ranged Cannon의 약자, 7은 제식번호,
                Type1 : 155mm 장거리 지상 제압 지원화포
                Type2 : 125mm 대AT 파괴 전용 대구경 스나이퍼 라이플

3. 비트(BEAT)사의 헌터 시리즈

      1) Hunter-02, Bear Hunter
        : 일명 곰 사냥꾼, 장갑 두께 200mm정도의 중장갑에 50mm 대구경 개틀링포(분당 3천발),
          70mm 다연장 로켓런쳐, 5cell 미사일 포트를 장비하고 있는 직접 화포 지원기.
          a~d까지의 다양한 버전이 있으며, 버전이 높아짐에 따라 장착할 수 있는 무장의 수도 많아진다.

      2) Hunter-05, Deer Hunter
        : 일명 사슴 사냥꾼, 비교적 가벼운 경장갑에 산악 게릴라 전용 AT다. 기본 사양으로
          70mm AT용 돌격소총과  간단한 대인 제압 기관총및 지뢰를 탑재하고 있으며, 산악전용답게
          굴곡이 심한 지형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을 정도로 밸런스 제어 프로세서가 각별하다.
          현재 a~c까지의 버전이 나왔으며, 대 AT전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들어 c형에서는
          대 AT 전용 무기탑재가 가능하도록 개장했다.


<등장인물>

1. 노엘 브라이트 - 마리아 함장의 부관겸 팬텀 블랙의 부함장, 2급 용병.
       나이 : 25세
       외모 :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을 한데 땋아 묶은 머리.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안경과 볼에 남아 있는 주근깨.
                밤색 눈동자를 지닌 공부 벌레 같은 인상의 여자.
       성격 : 사람 보는 안목이 대단히 좋아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용병술이 발군.
                머리가 대단히 좋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25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마리아 함장의 눈에 들어 부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2. 알렉세이 그란코로비치 - 팬텀 블랙의 항해장, 2급 용병.
       나이 : 55세
       외모 : 벌써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 가늘게 찢어진 눈에 녹색 눈동자를 지녔다.
                길쭉한 얼굴에 헬쓱한 볼, 창백한 피부. 꽤나 깐깐한 인상의 남자.
       성격 : 늙은 집사 스타일의 엄격한 완벽주의자.
                부하들이든 웃사람이든 상관없이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꼬인 사람.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품위를 잃지 말자가 좌우명.

3. 나오미 - 레이더 담당 함교요원, 4급 용병.
       나이 : 22세
       외모 : 나오미~ 맘대로~
       성격 : 쓰는 사람~ 맘대로~ 그때 그때 달라요~

4. 사무엘 레드- 통신 담당 함교요원, 3급 용병.
       나이 : 28세
       외모 : 흑인, 언제나 선글라스와 목에 헤드폰을 걸치고 다닌다.
                검은 드레드 머리. 트레이드 마크는 늘 입에 달고 다니는 풍선껌.
                별 일이 없을 땐 음악을 듣고 랩을 사랑하는 청년
       성격 : 유쾌하고 깔끔하며 적극적인 성격. 겉으론 껄렁해보이지만 일처리하나만큼은 깔끔해서
                별소리 안듣고 산다. 약간 낙천주의자.

5. 헨리 D 미터마이어- 조타수, 4급 용병.
       나이 : 28세
       외모 : 백인, 짧게 친 금발 바가지머리. 별 특징 없음.
       성격 : 소심하고 꾸중에 극히 약한 심약한 성격.
                그래서인지 맨날 알렉세이 항해장에게 꾸중만 듣는다.
                그래도 맨날 혼난 덕인지 조타실력은 꽤나 수준급이 되어 그나마 쓸모가 있어졌다.
                부임한지 1년이 다되가지만 아직도 신참소리를 듣는 약간 한심한 남자.

6. 쿠퍼 - 기관통제사
       나이, 외모, 성격 불명(????)

<등급에 관해>

1. 어스워드
니나나 라이더 같은 전투 담당 에이전트는 A~F 급으로 나누고.
함선을 조종하거나 정보 기관에서 일하는 비전투요원은 1~8급으로 나눈다. 함교 요원은 1~4급까지만.
각 급에 따라 받는 급여나 지위가 다름.

2. 그린 살라만더스 (참고)
비전투요원이든 전투요원이든 무조건 1~10급으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