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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Prisoner Princess」

2006.05.15 08:43

영원전설 조회 수:2194 추천:3

extra_vars1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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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oner Princes」
Wish to the Star
제 2 화. 바이에른.



  검은 정장을 입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을 가진 남자가 비가 내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거의 300미터의 상공에서 바라보는 회색의 대지는 내려다보면 아찔하기 그지없지만 그 남자의 방은 여지없이 위험하고 축축한 바깥과 따뜻하고 안전한 방안을 단지 유리 한 면만으로 갈라놓았을 뿐이다.
  수많은 빗줄기들이 유리에 부딪혀 이내 매끄럽게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끊임없이 유리창에 달라붙어 생존하려 하지만 이내 다른 물방울들에 밀려서, 혹은 강제로 합쳐져 끝엔 모두 아래로 떨어진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처음부터 구름 안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으로 인하여 저희 바이에른사의 I-FODex는 무려 10대 정도가 수리 불가능이고 나머지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

  “I-FODex의 피해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실 텐데요.”
  흑색 장발의 남자가 날카롭게 쏘아 붙이자 조용한 목소리로 보고를 하던 비슷한 검은 정장에 올백 회색 머리칼의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  네오 제네시스의 어스워드라 했습니까?”

  “‘창공의 그랑기뇰’의 청색 A.T와 어스워드의 3번 함정 팬텀블랙이 영상에 잡혔습니다.  이것은 그것이 어스워드의 ‘창공’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그 문제의 A.T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입니다만..”

  수려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그의 얼굴에 실핏줄이 몇 개 터져 나온다.

  “그런 보고서는 필요 없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간결하게 말씀해 주시죠.”

  자꾸만 말을 자르는 그 자의 행동에 당장 들고 있는 보고서로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싶기도 하건만, 그에게 보고하는 자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잇는다.

  “습격은 정확히 오늘 아침 7시 반에 시작되었습니다.  조직된 움직임으로 보아 처음부터 목적은 우리 측의 공장.  고공비행을 하던 팬텀 블랙은 목표 지점에 하강하여 단 두기의 A.T.만을 투입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적의 출현에 맞서 공장 주변의 모든 A.T.들이 응전했지만 신출귀몰한 창공과 신원불명의 A.T, 그리고 함선의 지원사격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결국엔 그것이 탈취당하고 말았습니다.”

  “....”

  “..  크루거 회장님?”

  “..  도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그들은.”
  크루거란 사내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는 힘들게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말 역시 그가 상당히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  그들이 니르바나를 목적으로 작전을 세웠다는 것은 믿기 힘듭니다.  습격이 그 곳뿐만이 아닌 독일 전역에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을 보아 비밀공장에 대한 정보는 있었으나 어떤 공장이 무엇을 숨기고 있었던 지에 대해선 자료가 부족한 것으로 봅니다.”

  “..  운이 좋았단 소리인 겁니까.”

  “운만으론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론 다른 가설을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둔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주먹과 유리창이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보통 유리가 아닌 듯 하지만 그게 보통 유리든 특별한 유리든 상관없이 크루거의 주먹에선 여지없이 피가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 입니까.”

  “...”

  “마텔 랑게르, 당신도 알다시피 저희 회사는 네오 제네시스에 비해서 재력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모든 것이 그들에게 한 수 뒤쳐져 있습니다.  저희가 그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숙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텔은 심하게 떨어 마치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은 그의 상사를 말없이 쳐다본다.  이 남자가 이토록 흥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하긴, 그 문제의 제네시스사에 항상 당하고만 사는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화를 안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엘 크루거.  그가 18세의 나이로 회사를 인수 받은 때엔 이미 바이에른사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었다.  이 곳 역시 유성우 낙하 사건 이후로 발전한 신흥 업계였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 다른 많은 회사들처럼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부터 희박한 성공률을 가진 것을 회사의 아이템으로 착안한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운석 사건 이후 넘쳐나는 자원과 그 자원을 확보하려는 기업들 사이에 끼어 사업을 벌인 것이 잘못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바이에른 사의 파산에 일조한 원인은 네오 제네시스와 자원 확보 밑 권리문제로 처음부터 적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시작된 제네시스사의 일방적인 착취.  회사를 인수받은 엘 크루거에게 남겨진 건 제네시스에게 골수까지 빨아 먹힌 초라한 건물 하나.
  바이에른 사가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건 그로부터 약 4년 후이다.  용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을 착안하여 자원보단 무기 산업에 종사하며 조금씩 재력을 수복하던 그들의 회사는 그때만 해도 무명에 불과했던 희대의 과학자 카렌티어스 프라이아를 고용한 뒤 개발한 인간형 기동병기 Assault Trooper를 시장에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병기의 성능도 성능이었지만, 바이에른사의 생산기술을 따라올 기업은 그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회사는 정상의 자리를 향해 단독질주 할 수 있었다.
  카렌티어스와 그 소녀의 납치사건은 바로 이러한 바이에른 사의 황금시대 때 일어났다.
  마텔은 엘 크루거의 전속비서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소녀가 A.T.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모른다.  단지 그 소녀와 그녀가 사라짐으로서 바이에른사의 발전에 크나 큰 제동이 걸린 것은 숙지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A.T.는 아직도 고성능이지만, 이제 A.T.는 더 이상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의 뒤로 이제 여러 기업들이 바싹 쫒아오고 있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각 기업의 A.T.의 품질은 평준화 될 수밖에 없으며, 그 뒤론 그들과 가격경쟁을 벌여야 할 수 밖에 없다.
  네오 제네시스가 그 쫒아 올라오는 기업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가격경쟁은 바이에른 사에게 있어 무리한 수다.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 이번엔 A.T.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모델을 고스란히 탈취 당했으니.

  “후우..  어스워드의 포섭, 가능합니까?”
  
  갈라진 크루거의 목소리에 마텔은 상념에서 깨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어렵습니다.  제네시스사의 직속용병이라 할 정도로 그들과 일하는 용병단인 만큼, 그들이 받는 보수는 도저히 현 회사의 재정상황으론 어찌할 수 없습니다.  무리해서 그들을 포섭한다고 해도 제네시스사가 보수를 더 높게 책정한다면 그들은 여지없이 그들에게 되돌아갈 것입니다.  결국 저희는 그 수론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습니다.”

  크루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곤 천천히 몸을 돌린다.  평상심이 되돌아오는 듯 그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졌다.  A.T.라는 병기로 회사가 일어섰지만, 그렇다고 크루거의 기업수완을 경시하는 자는 이 회사 내에 아무도 없다.  그는 회장이 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단 한 치의 주저도 하지 않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했으며, 반드시 그것을 이루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는 자신감이 넘쳐 흘려 맞대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마저 그의 손아귀에 놓여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그에게 있어 주변의 모든 것은 도구였고, 그는 도구를 다루는 대에 있어 가히 천재였다.  그는 도구를 감시하고, 부수고, 살리고, 유린하고, 속이고, 배신하여 목적을 이루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바이에른 사를 이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 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런 그에게 있어 제네시스사는 껄끄러운 존재다.  그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확실히 그 기업의 회장인 그리드 아스카로스란 영감은 크루거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의 제어 영역의 바깥에서 움직이지 않는가.  하긴, 연륜이란 게 괜히 옵션으로 붙어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도 30년이란 세월의 차이는 그리 간단하게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스워드만이라면...

  “어스워드 용병단의 멤버명단은 아직 입니까?”

  “이미 각 멤버의 모든 자료를 기재해 놓았습니다.  3일 이내로 정리하여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각 지부의 용병단에게 어스워드를 최우선 타겟으로 정하라 이르고 회색기체를 탈취한 이들에게 상금이 있을 거라 전해 주세요.”

  “그것으로 사태해결이 될까요?”

  “그럴 리가.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을 내놓기 위해선 그 명단이 필요합니다.  손 놓고 있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아셨으면 이제 그만 나가 보시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마텔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자 크루거는 의자에 앉아 사념에 잠겼다.  분명 어스워드만을 공략한다 해도 그들의 직속 상사인 네오 제네시스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 카렌티어스를 제외한 그가 탈취당한 물건들이 모두 어스워드에 있다는 것은 제네시스사가 그들의 중요성을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최대한 빨리 다시 빼 내와야 한다.  만약 그들이 그것들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제네시스사와 감히 경쟁 따위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 그때가 되면 그들은 기업이라고 하기도 뭐하겠지.
  ..  반대로 자신이 그들을 다시 빼올 수 있다면 바이에른 사는 최고가 될 것이다.

  “가만히 있었던 곳에 머물러 있었으면 편했을 것을.  여러 가지로 속을 썩이는 군요.”

  그의 입가에 조금만이나마 미소가 걸렸다.  제네시스사는 자신의 트럼프 카드를 거의 모두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가 살아남으려면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인정사정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득 그는 다시 한 번 창밖을 바라본다.  바깥은 아까 전보단 덜하나 아직도 빗방울들을 대지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살아남으려면 처음부터 구름 안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저 빗방울들뿐만이 아니라 현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비유법이다.  구름 안에 있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그것은 크든 작든 빠르든 느리든 모두 아래로 추락하여 차가운 바닥에 부딪혀 수만 개의 물 입자로 깨져버린다.  혹은 서로가 바닥에서 뭉치고 고여 썩어간다.   이것은 구름 안에 살아남지 못한 모든 빗방울들의 절대적인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두 개의 거대한 물방울중 하나가 추락하려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추락하는 쪽이 제네시스라는 물방울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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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텀 블랙의 내부는 복도와 방들로 얽히고 섞여 있다.  모든 전함들이 대부분 그럴 테지만, 복도는 직육면체의 모습으로 폭이 3미터, 높이가 3미터 정도로, 그것의 벽은 온갖 색깔의 전선과 배기구, 그리고 은색 빛깔의 패널로 어울려져 있다.  왜 하필이면 은색이냐고 따져 보아도, 디자이너들에게는 딱히 떠오르는 색깔이 없었다고 해두자.  그래도 회색보단 덜 투박하고 흰색보다 더러운 티가 덜 나지 않는가.  뭐, 최적의 색깔이라고 생각한 건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함선 제작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이니까.  실제로 몇몇 함장들은 내부 색을 자신의 임의로 정하기도 하는데, 그건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레인보우 색깔도 나왔었는데 무슨 상상이든 못할까.
  하긴 지금 여기에 함선 내부 색깔이 텔레토비 시리즈(보.빨.초.노.)정도의 부조화를 토해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는 하다.  아, 색 자체는 상관없지만 문제는 저기서 흐느적거리며 복도를 걷고 있는 인영이다.  마치 가는 길에 오물을 뿌리면서 오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질질 끌고 있는 이것은 주위에 똥색의 오로라를 뿜어내며 반짝반짝 제멋을 내는 은색 패널의 빛을 바래게 하고 있다.  얼굴은 다크서클에 쾡 한 것이 마치 삼일 연속으로 죽자구나 술 마시고 그 다음날 해장하러 국물 마시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 게워낸 뒤의 아프더매스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고, 눈깔은 일주일 썩어 비틀어진 도미 눈깔, 어깨는 축 쳐져 있고, 허리는 구부러진 채로 걸어, 아니 기어 다니는 게 가히 좀비도 무서워 뺨을 후려칠 것 같은 자태다.
  그냥 척 보면 마치 인생 다산 듯 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것의 나이는 아직 파릇파릇한 16세.  도미니크 쉘이란 이름을 가진, 오늘 내로 얼렁뚱땅 어스워드의 일원이 된 사내자식이다.  자신이 그리도 동경하던 용병 단에 어찌되었든 입사했으니 좋아서 날뛸 만도 하건만, 색깔변신 도마뱀마냥 옅은 주황색의 머리칼마저 똥색으로 변색이 되고 있는 듯 한 이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가.

  “..  나, 잘 못 선택한 것은 아니겠지?”

  아, 그래.  처음에 우연찮게 만난 그 아리따운 소녀분.  이름이 니나였던가.  아하하.  30세 유부녀라 했지, 아마?  그래, 그 외모에 그 키에 그 발육.. 아니, 이건 넘어가고.  어쨌든 그 모습에 30세 유부녀란 말이지.  그래, 바깥세상은 정말 대단하구나.  나이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 것이야.  그냥 다 뜯어 고치는 구나.  음.  게다가 정력도 좋지.  아이가 도대체 몇 명이였지?  척 보면 아이들과 나이 차도 별로 나지 않는 것 같아.  아이들은 그런 것에 괴리감도 못 느끼는 건가?  뭐, 그들이 천진난만해서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같은 건 모른다고 쳐도, 왜 하고 많은 모습 중에 저런 어린 모습이지?  보통 사람들은 20세 초중반 정도만 고쳐도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줌마인데도...  로리.  그런 건가.  아하하.  그렇군.  로리였어.  그래, 모든 게 설명이 된다. 된다구.
  ..  말이 되냐.
  문득 도미니크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어머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러니까 하신 말씀이, 바깥세상은 타락했으며, 기도를 통해서만 이 세상이 정화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 때 어머님은 한참 종교에 대해서 그와 동생들에게 설교하신 듯하다.  그때야 신이나 기도 같은 거 믿지 않았으니까 상큼하게 무시했지만, 지금 와선 딱 한 점은 수긍이 팍팍 온다.

  “..  어머니, 세상은 썩었어요.”

  “내가 보기엔 네 놈 자체가 썩었다.”

  도미니크는 전기 충격 받은 개구리 마냥 놀라며 뒤를 돌아다 봤다.  회색 모자를 눌러쓰고 입가엔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있는 한 인영이 흑색 눈동자로 그를 마치 외계인 보듯 쳐다보고 있다.  옷은 바지와 윗옷 모두 회색에 주머니가 많이 달렸고 안에 하얀 셔츠를 입은 것이 그다지 안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얼굴이 각지고 짧은 턱수염이 빳빳한 게 왠지 험악해 보이는 인상이다.

  “..  저 말입니까?”

  “지금 여기서 썩어가고 있는 생물이 너 말고 더 있냐?  근데 못 보던 얼굴이군.  신입인가?”

  “아, 네.  도미니크 쉘입니다.  오늘 입단했어요.”

  “오늘?”

  그의 눈초리가 올라가는 것이 가히 좋지 않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둘러대야 한다.  왠지 저렇게 한 없이 올라갔다간 지금 여기서 똥색 오로라를 풍기는 생물에서 똥색 오로라를 풍기는 누더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그에게 마구마구 전해져온다.

  “아, 네, 그러니까, 오늘, 3월 14일, 에, 이곳으로 어스워드가 온다는 것을 알고 뛰어가던 중 우연찮게 니나라는 분과 만나게 되어..”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

  그의 인상이 험악해지기 시작한다.  안 좋다.  무지 안 좋아.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어스워드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적의 레이다 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만전의 준비를 취했다.  그 쪽에서도 우리가 온다는 것을 몰랐었는데 네 녀석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냐?”

  음,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그들이 이곳에 와서 벌인 짓은 소리 소문 없이 행한 습격이었고, 그를 위해 재밍이며 스텔스며 별 짓을 다한 거였군.  어쩐지 오늘 아침 아저씨네 통신 시스템이 개판이다 했더니만.  음,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그거랑 이거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도미니크는 이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를 도저히 찾지 못해 썩은 도미눈깔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그를 쳐다보며 남자는 굳은 표정을 조금 풀고 입을 열었다.

  “일단 너를 함교까지 데려가야겠군.  어차피 신입이라면 한 번쯤은 가봐야 되고, 인사를 안했다면 함장에게 인사도 해야 되니까.  의문점이 있다면 거기서 풀어도 될 터이고.”

  “아..  그, 함교라는 데에 아까 전에 스피드 A씨가 가라고 해서 가던 중이었지만..  길을 잃어버려서..”

  “..  스피드 A?  그건 또 누구야?  A놈은 앞에 스페이트일텐데?”

  “아, 네.  맞아요.  스페이트입니다.”

  “그 놈이 길 안 가르쳐 주든?”

  “...  가르쳐 주셨습니다.”

  “함선 평면도는?”

  “주셨습니다.”

  “...”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제길슨.  그래, 나 길치다.  그런데 길치가 아니어도 처음 탑승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이드라도 붙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니나의 진실에 충격을 받고 기절한 뒤 깨어나 보니 어느 좁은 방에 침대에 누워 있었고,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그 스피드인가 뭔가 하여튼 모 A씨가 들어와서 깨어났으면 나가서 함교로 가보라고 이 평면도와 갈 길만 가르쳐 주고 발길질을 해대서 어떻게 돌아다녀 봤지만은,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어떻게 아냐고!  여기 처음 오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알아보지도 못하는 종이 쪼가리와 알아듣지도 못한 말 뿐으로 어떻게 함교를 가란 말이야!

  “..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내가 함교까지 같이 가주마.”

  어이, 눈빛이 왜 그렇게 측은한 거야.  동정이냐?  동정이야?  동정의 눈빛인거야?  그런 거야?  
  한참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도미니크에게 그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한다.

  “길버트 라우렌스다.  함선의 정비사지.”

  “아, 저는 도미니크..”

  “이미 말했잖아.  닥치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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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겨우 썼네요.  근데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흠, 침체기에요.  OTL  음 그리고 길버트 라우랜스에 대해선 특별히 설정 한 것은 없어요.  그냥 42세 정도의 나이에 전직 라이더 정도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