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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테창-릴레이완결] Tialist

2006.12.21 07:54

아란 조회 수:56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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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창-릴레이소설 완결]
제목(팀명) : Tialist
장르 : SF
총화수 : 전 25화 완결
팀장 : 아란
팀원 : 다르칸, 영원전설, 높새바람(핏빛노을.), 카에데
연재기간 : 2004년 10월 24일부터 2005년 4월 9일 전 25화 완결

[Tialist] 11 : 파괴하는 자와 지키는 자
글쓴이 : 영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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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본부'란 분위기가 딱딱하고 왠지 사람이 살수 있는 최소한의 물자만을 공급해 준 후 직원들을 마음대로 부려먹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곳이 인류의 최후의 보루라 하더라도 직원들이 편안하게 쉴 곳을 마련해 주기는 하다.  항상 목숨을 거는 일터에서 편안한 곳이 어디 있겠냐 만은..  하여튼 간 그런고로 본부에선 직원들을 위한 편리한 시설들을 자금이 깨지지 않는 한도까지 만이라도 제공해 주었다.  간단한 아침, 점심을 먹는 이곳 카페도 그 '편리한'시설 중의 하나이다.  항상 하던 데로 아침을 먹으러 카페에 들어가는 문을 여는 카렌티어스를 보자 유우키가 손을 흔들며 불렀다.

  "여."

  카렌티어스는 그 소리에 황당해 하는 표정으로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다가갔다.

  "오랜만이네.  저번에 아카라를 데려간 후론."

  "..  당신, 그렇게 태연하게 커피 마시면서 있어도 괜찮습니까?"

  유우키는 잠시 커피 잔을 바라보다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별로 상관없는데."

  "아니, 아니.  일본말입니다.  일본."

  "아, 그거.  별 걱정을 다하는 군."

  그는 커피 잔을 가볍게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은은한 커피의 냄새만으로도 행복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유우키를 카렌티어스는 한심하게 바라보며 그의 반대 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설마 셰나님에게 일을 다 떠넘기고 아무 이유 없이 심심해서 오셨다, 라고 하실 겁니까?"

  "하하하, 잘 알면서 그러는구만.  하지만 이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냐."

  그의 목소리에서 난데없는 심각함이 묻어 나왔다.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시큰둥하던 카렌티어스는 자연히 관심을 보였다.

  "..  꼭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커텔님도 어디 가신 것 같고.  하지만 이제 됐어.  너라면 말해 줄 수 있겠지."

  아직 뜨거울 터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품위 같은 거 다 내다 버리고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 마셨다.  그렇게 순식간에 비워진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한숨을 쉰 그는 카렌티어스에게 물었다.  

  "그 트론, 그거 도대체 뭐였나."

  "..  예?"

  "우리를 그 괴물에게서 구해준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말야.  그런 걸, 아군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도대체가, 몸을 재생시키고 맨손으로 그 거대한 몸을 찢어발기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한 행동.  그건 도대체 뭐지?  너희들은 무엇을 만들어 버린 거야?"

  카렌티어스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이내 한숨을 쉬면서 상관없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어차피 나온 거니 말해도 이젠 괜찮겠지요.  그 트론의 코드는 Tron - mark 02 Skadi.  예전 트론 프로젝트가 개시되었을 때 트론 프로젝트를 선두 지휘했던 티아세리스 에르나가 3번째로 건조한 기체이죠.  사용된 코어는 티아리스트의 코어의 조각중 하나인 '혼돈.  예전 테스트를 강행했을 때 폭주 해버린 기체로..

  유우키는 카렌티어스의 말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야 아무 3류 해커라든지 갔다가 쓰면 금방 나올 수 있는 공식 자료야.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그런 괴물을 조종하고 있는 파일럿이다."

  카렌티어스는 잠시 움찔했다.  파일럿을 알고 싶다니.  이 남자는 자신에게서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나돌고 있어.  소문이.  비밀병기란 것은 강력한 만큼 정보도 꽤 빠르게 퍼지니까.  실화든 과장이든.  하지만 이건 분명 짚고 넘어가야겠어."

  유우키는 자신의 웃옷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는 동안에도 그는 말했다.

  "..  파일럿의 성이 프로브..  라지, 아마?"

  카렌티어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알 수 있는 거지?

  "..  사실인가 보군."

  "..  파일럿은 SS-X00라는 코드로서 불릴 뿐입니다."

  그는 라이터의 부싯돌을 세게 당기며 가스를 열었다.  마찰로 인해 빚어진 작은 불꽃은 라이터에서 새어나오는 가스를 타고 올라가 파랗고 붉은 원반형의 불덩어리를 현상했다.  유우키는 마치 물에 담그듯이 자신의 담배 끝을 불에 잠시 맡겼다.  그의 입에서 연기가 나자 유우키는 가스를 닫고 라이터를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후 카렌티어스를 사납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날 그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었나?  내가 무슨 정치적이라든지 군사적이라든지 라는 목적으로 정보나 캐 가는 사람으로 보이나?  섭섭하군, 카렌티어스.  누가 커텔님의 아들내미 아니랄까봐 무의식적으로 동화되어 가는 건가?"

  "..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갑자기 성질을 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카렌티어스에게 유우키는 태연하게 담배를 물며 답했다.

  "아니.  그저 만약 나라면, 자신의 친족을, 시즈미를 그런 괴물에 태울 수 있는지 몰라서 말야."

  다시 한번 담배 연기가 그의 입에서 길게 뿜어져 나왔다.  마치 유우키의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려는 듯.

  "나라면 말야..  그렇게까지 해서 용을 죽이려고 하지는 못 할 것 같아."

  "..  죽이지 않으면 죽습니다."

  "..  뒤져버린다면 그건 본부 속에서 명령이나 하는 놈이 아니라 직접 싸우고 있는 네녀석 친족이겠지."

  "죽지 않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스카디는 무적입니다.  파일럿 또한 크로킹 없이도 동조 율이 200%를 육박하고요.  절대 죽을 리 없습니다."

  "'절대'란 말을 난 절대 믿지 않아.  이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어.  나 역시 너와 같았다.  뭐, 너완 달리 근거 없는 소원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시즈미가 트론을 움직였을 때, 그리고 네가 그녀의 폭주를 막고 함께 용을 물리쳤을 때, 난 너희들이 절대로 용 따위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좀더 평화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지."

  유우키는 낮게 웃다 담배연기에 걸려서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겨우 기침을 멈춘 그는 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크흠..  얘기가 조금 센 듯 하지만, 어쨌든 요점은, 그렇게 된 이상 친족을 잘 보살펴 주라는 거지.  시즈미가 너에게 해준 것처럼.  바로 잡아주라구."

  "..  결국 결론이 그겁니까?  당연한 말을 갔다가 빙빙 돌려서 말하는 재주가 있군요, 당신은."

  "..  당연한가?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구만."

  이제 막 일어서려는 카렌티어스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살펴 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 지 알고나 있는 거야?"

  "..  뜻..  말입니까?"

  "그것은 소모품의 인간으로서의 가치의 인정이다."

  "..  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네녀석.  당연하잖아.  그 어떤 것이든 한 생명을 어차피 없어질, 일회용 방패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놈이 소모품을 보살펴 준다면 서로 상처만 받을 뿐.."

  "유리카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카렌티어스는 두 손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말하다 이내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  뭔가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  게다가 여자냐?  그렇다면 더욱 더 힘들겠구만.  꽤 민감하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네가 그녀와 다른 트론 파일럿들의 사이에 선을 그을 수 있어?  없을걸.  어느 한쪽을 망가뜨리지 않는 한.  그리고 망가지는 쪽은 그녀일 가능성이 많지."

  "..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대체."

  그는 담배를 카렌티어스에게 향했다.  마치 막대기나 회초리로 상대를 지목하는 듯이.

  "그녀가 나타남으로서 넌 알게 모르게 소모품들과 가까워지게 될 거다.  하지만 커텔님이라던지 여러 높은 분들에게 네가 그들과 얼마나 가까운지 어떤지는 상관 안 해.  모든 소모품들은 그들에겐 자신들을 지켜주는 고깃덩어리들일 뿐이야.  물론 유키라란 사람도 그들에겐 일개의 방패막이일 뿐이야.  조금 단단한 방패랄까.  하지만 그 뿐이지.  너는 갈림길에 들어 설 수밖에 없을 거다.  소모품들과 같이 걷던지, 아니면 그들과 같이 걷던지.  그들의 길은 서로에게 이질적이야.  공존하고 있는 건 공통의 적을 가진 지금 뿐.  어느 곳으로 들어서나 다시 되돌아 올 수는 없을 거다."

  타 들어가 힘을 잃은 담뱃재는 중력에 의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청소부가 아니라도 일단 실내이다 보니 누구라도 보면 당장에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릴 일이겠지만 지금 카렌티어스나 유우키에겐 그런 사소한 것까지 눈에 하나씩 들어오지 않았다.

  "..  너를 위해서 말하는 거다, 카렌티어스.  유리카란 존재는 너에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처하게 만든 거야.  물론 두 길 모두 그 나름대로의 가시밭을 지니고 있어.  아프지 않은 곳은 없다."

  "..  또 모르죠.  제가 다른 숨겨진 길을 찾아낼지도."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난 그 숨겨진 길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말야.  뭐, 예언가도 아니니까."

  유우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린 뒤.

  "하지만 말야.  만약 선택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오면....  난 네가 올바른 길을 걷길 바란다.  시즈미도 물론 그걸 원하고 있을 꺼야."

  "..  둘 중에 올바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까?"

  "그건..  네가 무엇이 '올바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달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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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텔은 만족한 듯 스크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살육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이 스카디의 두 번째 출전.  대략 열 마리를 육박하는 용들의 공격에 경악해 혼란에 빠진 본부에 카렌티어스와 유리카를 호출해 본부 방어 명령을 내린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마에 적색 원뿔모형의 코어를 지닌 흑색의 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보아하니 유럽에서 자주 출몰한다던 '헬 하운드'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일부러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코어가 그들에게 있어 스카디와의 싸움에 치명적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일단 리치가 짧아 쉽게 동화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유럽 쪽은 어찌되었지?"

  옆에서 놀라운 것을 넘어서 황당해 하며 넋을 잃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유 박사는 갑작스런 커텔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네.  오늘 아침, 우리 시간대로 9:32분쯤에 오직 네모 함장이 다루는 한 척의 함정과 12사도만이 살아 돌아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커텔은 자신의 손가락을 탁자에 리드미컬하게 두들겼다.  그 많은 트론과 함정을 사용해도 안 되는 것인가.  베히모스의 힘이 그리도 강대한 것인가.  아니면..

  "..  그렇게 무식하게 마구잡이로 돌진 해 들어가니 너덜너덜 해져 돌아 올 수밖에.  차라리 소수의 엘리트 그룹들을 침투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었는데 말이야."

  화면에서 스카디가 돌진해오는 헬 하운드의 머리 뿔을 또 한번 잡았다.  마치 고양이가 잡아먹기 전 쥐를 가지고 노는 듯 몇 번 이리저리 흔들며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 후 스카디는 한 손으로 그 용을 동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로서 7번째 희생양.

  "..  정말 쉽게도 처리하는군요."

  "그렇지.  200%의 동화율.  재생 능력.  흡수 능력.  동화능력.  저런 것을..  완벽하다고 부르는 것일까."

  "..  당신이 추구하는 '완벽함'은 그런 것이었습니까?"

  "유 박사는 아닌가?"

  그녀는 잠시 턱을 괴고 머뭇거리다 이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는...  조금...  다릅니다."

  커텔이 흥미를 가지며 물어보기도 전에 오퍼레이터가 다급하게 외쳤다.

  "마크 20, 0, 5!  마크 20, 0, 5!  좌표 24, 12, 3에 용 두 마리 출몰!  그다지 본부에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진 않으나.."

  마침 스크린에서 마지막 헬 하운드를 곤죽으로 만든 스카디는 어느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론 마크 02 스카디 목표 변경!  새로운 용들에게 빠르게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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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괜찮아!!  내가 다 죽여버릴께 - !"

  -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유리카.  다른 트론에게 맡길 수 있는 문제야.  벌써 10마리나 되는 놈들을 상대했잖아.

  "괜찮다니까!!  이 녀석들, 너무 약했어!  좀 더 필요하다고!  단지 똑같은 놈들이 아니길 바랄 뿐이야!"

  유리카는 같이 있지도 않는 카렌티어스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는 앞에 보이는 두 마리의 생명체를 목격함과 동시에 더욱 더 커졌다.

  "있다, 있어!  와, 트론과 비슷한 크기잖아!  뭔가 도마뱀 같기도 하고 말이야!!  재밌겠는데!!"

  유리카의 전투에 대한 욕망에 대답하기라도 하듯이 스카디는 그의 오른 손을 뒤로 젖혔다.  그것의 듀거 란스는 그 팔에 융합된 체 태양에 비춰져 그 날카로움을 자랑했다.

  "자, 일단 하나 GO -!"

  스카디의 듀거 란스가 황색의 덩치가 있는 용을 향해 빠르게 찔러갔다.  그리고 듀거 란스는 그것과 강도가 비슷한 것과 불꽃이 튀길 정도로 강한 마찰을 일으키며 쇠가 서로 긁히는 소리와 함께 퉁겨져 나갔다.

  "어..  어라?"

  유리카가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기도 전에 고기가 잘려지는 소리와 함께 스카디의 오른팔이 듀거 란스와 함께 날아갔다.  놀란 표정으로 스카디의 재생되는 오른 손을 잠시 바라본 유리카는 동시에 마치 비웃고 있는 듯한 모습의 청색용이 건물에 옆으로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찌르려 한 황색의 용 보단 크기가 작았지만 그것의 오른 팔은 무릎까지 미쳤고 게다가 붙어있는 크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인해 그것의 몸보다 도 큰 오른 팔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헤, 이 녀석들, 제법인데?"

  유리카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 청색용을 향해 도약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에 손을 데기도 전에 무언가가 스카디의 발을 끌어 당겼다.

  "아앗?!"

  엄청난 힘에 의해 날아가 건물에 부딪히기 전에 유리카는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판자 모양의 각질을 지니고 있는 한 쌍의 거대한 구기를.

  "쳇, 놀고 있네!!"

  그녀의(카렌티어스의) 눈에 등에 한 쌍도 아닌 두 쌍의 거대한 방패 구기를 달고 있는 황색의 용이 보였다.  은근히 부아가 치민 유리카는 괴성을 지르며 이번에는 황색의 용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청색용은 그녀가 다른 용에게 달려드는 것을 가만히 보지 못했던지 어느새 스카디의 등에 착지해 그것의 손톱을 트론의 어깨에 파들어 가면서 땅바닥으로 함께 곤두박질 쳤다.

  ********************************************************************************

  "..  이거, 흥미롭군."

  마치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인 마냥 커텔이 무미건조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유 박사는 그런 그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제 눈으론 스카디가 지금 용에게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렇게 보이는 가?"

  유 박사는, 이렇게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커텔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감인가?  스카디는 그 어떤 용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자신감인가?  하지만 도대체 그 자신감을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단지 레비아탄을 찢어 죽였다는 것으로부터?  물론 레비아탄을 단신으로 죽여버린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용의 관점으로 봐서, 과연 유리카가 죽인 레비아탄은 센 존재였나.
  스크린에서 스카디가 여태껏 쓰지 않았던 트라이 건을 왼손으로 동화시켜 마구잡이로 황색용에게 쏘기 시작했다.  견제용인 트라이 건이었지만 스카디의 손엔 미니건과도 같은 화력을 자랑하며 대량의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쏘던 스카디는 이내 먼지로 인해 목표를 제대로 잡을 수 없자 총격만을 멈춘 체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정도 화력이면 죽었을 지도..?"

  유 박사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억측을 비웃기라도 하 듯 난데없이 청색용이 먼지의 대지에서 튀어나와 순식간에 스카디의 왼손을 잘라나갔다.

  "..  빠르군."

  "하지만 스카디도 저 정도의 속력을 낼 수 있지 않나요?"

  "물론.  하지만 지금 그녀는 목표를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스피드를 낼 수가 없는 거야."

  커텔은 팔을 모아 자신의 턱을 괸 체 말을 이었다.

  "저 용들은 우리가 이제까지 싸워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똑똑해.  만약 한 놈 씩 스카디와 싸웠다면 그들은 몇 분도 가지 못하고 그녀의 먹이가 됐겠지.  한 용은 속력과 날카로움.  한 용은 방어와 힘.  그 둘이 서로를 보완해 주며 싸우고 있기에 스카디를 저렇게 까지 코너에 몰고 갈 수 있는 것이지."

  "다른 트론들을 준비시킬까요?"

  유 박사의 물음에 커텔은 낮게 웃었다.

  "상관은 없는데."

  "하지만 아까 전에 당신은 그들이 스카디를 코너에 몰고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코너에 몰고 있다고 했지 스카디를 진짜 죽일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은 아니야.  말했잖은가.  스카디는 무적이다.  저런 것들에게 당할 리가 없어."

  유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커텔의 말에 반론했다.

  "'스카디'가 무적이지 '유리카'가 무적인 것은 아닙니다.  유리카는 아직 10살 밖에 안된 어린애이고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카라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때 완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유 박사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면을 응시하는 커텔에게 등을 돌리며 그녀는 말했다.

  "정비시키고 오겠습니다.  말해 둬야 할 것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스크린에서 다시 한번 청색용에게 몸이 뚫리는 스카디를 뒤로 한 체 문을 열고 통제실에서 나갔다.

***************************************************************

  "으아아아아악!!!!"

  고통에 의해선 지 분노에 의해선 지 이젠 분간할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유리카는 황색용이 4개의 넓고 단단한 구기로 만드는 '방패'를 주먹으로 마구 쳐댔다.  하지만 그녀의 트라이건을 이용한 무차별적인 총격이라던 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찔러 들어오는 듀거 란스도 뚫지 못한 그것을 주먹으로 부서뜨릴 수 있다면 그건 환상일 것이다.

  "부셔 버릴 수 없다면...."

  그녀는 손바닥을 펴 용의 방패에 밀착 시켰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팔 주위에 액체성의 물질이 방패로 스며들었다.

  "먹어버리겠어!!"

  하지만 승리의 미소도 잠시 뿐.  스카디의 손은 이내 청색용의 날카로운 손톱에 의해 몸과 분리되어 소멸했다.

  "이익..  짜증나네, 이거!!"

  - 유리카, 본부에서 지원이 온다.  일단 합류하기 좋게 뒤로 빠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이 딴 놈들도 처리 못할 것 같아?!!"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말한 말과는 달리 그녀는 두 마리의 용에게 계속적으로 농락 당했다.  커텔이 말한 대로, 한 마리 당의 능력으로 스카디를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렇게 서로 번갈아 가며 협공을 하니 유리카는 누구 하나에게 전략이라던 지 화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완해주고 또한 보호해주며 서서히 자신들의 적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뜻밖의 기회가 유리카에게 찾아왔다.  청색용이 스카디의 머리를 손톱으로 그은 다음 착지 할 때 잠시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유리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당연한 이치로 본래 그리 단단한 몸을 가지지 않은 청색용은 그 한 방에 멀리 날아가 한 건물에 무참하게 부딪혔다.

  "쳇..  치지 말고 잡아서 찢어 버렸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일단 잠시만이라도 황색용만을 상대할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마치 연극을 끝내려고 강제로 명령을 내리는 감독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동작을 해 보이는 악역을 맡은 배우처럼, 황색용은 그 커다란 구기들을 스카디에게 뻗어 댔다.  유리카는 각각 다리, 몸, 어깨에 박히는 나머지 3개의 구기를 무시한 체 두 손으로 한 구기를 단단히 잡고 침식시키기 시작했다.  

  "게임 끝났어, 빌어먹을 놈아."

  유리카는 드디어 웃었다.  조금 오래 걸렸지만, 결과는 역시 그녀의 승리였다.  그녀와 스카디는 무적이다.  그녀와 스카디를 이길 것은 없었다.  그녀는...
  갑작스런 위화감이 그녀의 온 몸을 휘감았다.  안간힘을 쓰며 빠져 나오려는 노력에 빳빳해져야 하는 구기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이건..  뭐랄까, 잘려져 버린 도마뱀의 꼬리를 짓밟고 있는 포식자의 그 허무맹랑한 느낌이랄까.

  "뭐..?"

  그녀에게 현실은 무슨 일인지 깨닫게 하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단지 건네 준 것은 스카디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불태워 버리고 날려 버리는 하얀빛의 폭발 뿐.  



  "뭐지, 저 폭발은?"

  트론 마크 06 시엘의 파일럿인 지나가 목표지점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고 물었다.

  - 서둘러야 되는 거 아닐까.  무슨 일이 일어 난 것 같은데.

  드로우를 타고있는 지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누구에게나 그러치만) 걱정이 가득 베어 있었다.

  - 스카디에게 뭔 일이 있겠어.  그저 뭔가를 발사했거나 했겠지.

  이번엔 언제나처럼 이시스를 조종하는, 이중에서 가장 많은 실전 경험을 지닌 에릭이 말했다.  하지만, 항상 지나가 그와 대하면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의 목소리 어딘가는 마치 바람이 지나다닐 것만 같은 구멍이 있는 듯 했다.

  - 아니, 믿지 못하겠지만 스카디가 당했다.

  카렌티어스의 목소리가 지나에게 울려 퍼졌다.  항상 냉소적이고 차갑다고 생각한 그의 목소리.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를 온기와 마치 비가 올 것만 같은 습기를 지니고 있었다.

  "에?  무슨 말이야, 그게?"

  - 나도 묻고 싶군.  그게 말이 돼?

  - 확실히 완전히 침묵된 것은 아닐 테지만, 지금 당장은 연결을 할 수 없다.

  "용이..  그렇게 강한 거예요?"

  그녀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렀다.  아직 용과 대면하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옷은 이미 흘러내린 땀들로 인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마치 옆에서 지켜본 듯이 지수가 말했다.

  - 걱정할 것 없어.  넌 그냥 그걸 황색의 용에게 쏘면 끝나는 거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  고마워요, 언니."

  확실히 유 박사가 말한 대로, 자신이 할 일은 오직 황색의 용에게 '그것'을 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청색용이 아무리 빨라도 제대로 대처하기는 힘들 테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상황이 인간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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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해는 중천에 떠 폭발과 건물의 잔해로 뭉개진 대지를 비추었다.  황색용은 그 빛에 조금 눈이 부시는지 낮게 크르릉 거리며 자신의 일을 마저 끝내기 위해 스카디가 묻힌 건물더미로 그 큰 몸을 움직였다.  그때 청색용이 어느새 그의 옆에 착지해 자신이 마무리하겠다는 듯 오른 손에 힘을 주었다.  황색용은 가만히 아무 소리 없이 뒤로 빠졌고 청색용은 탐욕스럽게 건물 더미를 향해 뛰어갔다.
  그때 황색용은 거대한 힘이 자신에게 강림하는 것을 느꼈다.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재생 된 구기로 막으려 했을 때 그것은 보았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 같은 붉은 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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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들었어?  그것의 구기는 아무리 강력하다지만, 무적은 아닐 꺼야.  그저 순식간에 재생 되 우리가 못 본 것뿐이지만, 듀거 란스로 조금이나마 그 방패에 상처를 입히는 걸 확인했어."

  유 박사의 말에 에릭이 끼여들었다.

  "그럼 더 강력한 것을 쏘면 일단 방패를 뚫을 수 있다, 그겁니까?"

  "물론 방패를 잠깐이나마 뚫을 수는 있겠지만 금방 재생 될 거야.  그러니까 플랙시온 거너를 쏜 다음 재생되기 전에 끝내 버려야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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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또 한방을 똑같은 곳에다 쏘아 데었다.  워낙에 범위가 넓기도 한 공격이라 한 목표에 집중 포화라는 게 좀 무색하긴 하지만.  이 것으로 충전된 3방은 모두 쏘았다.  이 정도 화력이면 아무리 재생이 빨라도, 아무리 방패가 단단해도 틈이 보일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유 박사가 예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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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도록 이면 먼지 바람이 가시기 전에 찔러 들어갔으면 해.  코어가 어디 있는지는 이미 확인했어.  그것의 몸 정 한가운데에 코어가 있다.  찌르기만 하면 돼.  방패를 너무 믿는 나머지 몸 자체는 그리 단단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유 박사는 지수를 보며 말했다.

  "눈이 나빠도 그 정도면 문제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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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화염의 회오리가 몰아치기에 더 이상 시야라는 것은 필요치 않았다.  지수는 그보다는 기계에 부착되어 있는 코어 추적 레이더와 황색의 용이 플렉시온 거너에 맞기 전에 서 있었던 좌표를 일치시키기에 바빴다.

  "..  여기다!!"

  상당한 속도로 폭풍을 헤쳐 나가며 그녀는 어렴풋이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플렉시온 거너의 위력에 의해 구기들은 아예 소멸해 버렸고 그것의 몸조차 성한데 없었지만 자줏빛을 발하는 코어는 계속적으로 그것의 몸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코어에게 한치의 자비도 주지 않은체 지수의 드로우는 그대로 플라즈마 커터를 그것에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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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저는 왜 출격하는 거죠?"

  에릭이 조금 불만스러운 듯이 유 박사에게 물었다.  유 박사는 상당히 즐거운 듯 유쾌하게 그 질문에 답했다.

  "그 용들이 스카디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가졌던 것은 순전히 그것들의 팀플레이여서 이지.  그렇다면 우리도 똑같이 보여주면 되는 거야."

  그녀는 마치 마침표를 찍듯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공격과 방어의 팀플레이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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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로우가 황색용의 코어를 찔러 들어갔을 즘 먼지 바람이 조금 걷혔다.  조금 정신이 없었던 청색용은 금새 황색용의 처지를 보고 황급히 그것을 도우러 달려갔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저 무기가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게 하지만 않는 다면..
  너무나도 드로우에 집착한 나머지 청색용은 이지스가 그들의 사이를 막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손톱으로 이지스의 몸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의 기대와는 달리 희미하게 보이는 어떤 장벽에 의해 오히려 찔러 들어가던 손톱이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청색용이 뒤로 빼는 순간, 황색용의 코어는 밝은 빛과 함께 파괴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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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냈어!'

  지나는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깊게 내쉬며 편안하게 자신의 몸을 좌석에 기댔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카렌티어스는 차갑게 질책했다.

  - 아직 일은 반 밖에 끝내지 않았어.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마.

  "아, 네, 넷!"

  무의식 적으로 마치 상사에게 보고하듯(상사이긴 하지만 역시 나이가 엇비슷한 카렌티어스를 대부분은 '반' 반말로 대한다) 대답한 지나는 이내 이변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황색용이 소멸되자 청색용은 아예 공격 할 생각도 안하고 그들의 반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저거?!"

  - 젠장, 꽁무니를 빼기는!

  - 쫓아가야 해!

  - 지나!  더 멀리 가기 전에 저격해라!

  "저격하라고 해도..!"

  그녀는 허둥지둥 K-11A2 레이저 저격 소총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이내 소용없는 짓이란 것을 깨달았다.  청색용이 달아나기도 전에 스카디가 묻혀있는 건물더미에서 갑자기 촉수와도 같은 물건이 튀어나와 그것의 몸을 관통한 것이었다.  등뒤에서 공격을 받아 피하지도 못 한체 청색용은 그렇게 허무하게 소멸했다.

  "아.  스카디가 정신이 든 것 같네요."

  - ..  아냐..  이건..

  머뭇거리는 카렌티어스의 목소리는 곳 이어지는 귀가 찢어질 듯한 괴성에 묻혀 버렸다.  잠시 후 스카디는 자신을 누르고 있던 건물 파편들을 여기저기에 날려버리며 모습을 들어냈다.
  그리고 아직 정체 모를 색깔에 뒤덮여 있는 스카디의 촉수(사실 그것은 철봉과도 비슷한 물체와 동화된 트론의 오른손이었다)는 드로우의 오른 쪽 어깨를 순식간에 찌르며 나아갔다.

  - 꺄아아아아악?!

  - 무슨 짓이야, 유리카!!

  카렌티어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스카디는 계속 자신의 팔을 드로우의 어깨에 찔러 들어갔다.  스카디의 파일럿 이름이 유리카라는 사실은, 그리고 그 카렌티어스가 파일럿을 코드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사실은 지나의 귀엔 비명을 지르는 지수의 목소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웃음소리에 의해 지나에게 무시당했다..

  "그만둬, 이 괴물녀석아!!"

  지나는 시엘의 보조무장인 트라이 건과 양 무릅에 부착되어 있는 M450a1 155mm 레일건을 들어 에릭, 지수, 그리고 유리카가 있는 곳으로 거리를 좁히며 촉수를 향해 동시에 쏘아댔다.  몇 발의 정확한 사격으로 재생이 되기도 전에 촉수가 끊어진 동시에 지나는 스카디와 드로우의 중간에 섰다.  에릭의 이지스는 지수에게 달려가 본체와 떨어져 소멸되어 가는 스카디의 팔을 드로우에게서 뽑으며 부축해 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같은 아군이란 말이야!!"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스카디는 지나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곤 재생된 팔을 이번엔 시엘에게 마치 죽이려는 듯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공격이 오리라는 듯 대충 예상한 지나는 그 즉시 팔을 향해 집중적으로 쏘아됐다.
  문제라면, 스카디의 재생능력으로 인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그녀의 화력과 맞서고 있는 것뿐일까.

  "으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른다고 없는 화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도 괴성을 지르는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독기, 분노, 그리고 증오가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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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카!!  뭘 하고 있는 거야!!  당장 그만 둬!!"

  - ..  다 죽여버릴 꺼야..  다 찢어 버릴 테다!!  밟고 찌르고 씹고 잘라버리고 말 꺼야!  꺄야아아악!!!!"

  카렌티어스는 당황했다.  이런 적은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기에 더욱 더 당황했다.  확실히 폭주상태는 아니다.  폭주라면 기체와 파일럿이 따로 움직이는 것.  지금 스카디는 완벽하게 파일럿에 동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유리카는 이 정도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가.

  "유리카.  잘 들어!!  용들은 이미 죽었어.  네가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군이야!  정신 차려!!"

  - 이제 다 필요 없어!!  아군이든 용이든 사람이든 트론이든 죽여 버릴 꺼다!!  아무도 날 업신여길 수 없어!!  모두 다 없애 버릴 꺼야!!

  카렌티어스는 어떻게든 자신의 동생을 설득시키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 안쪽에서부터 강한 충격이 일어 난 것이었다.  고통스럽게 구토를 하며 그는 점점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  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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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엘과 스카디는 서로 좀처럼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지나는 계속 총을 쏘고 있었고, 유리카는 맹목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자신이 트론과 싸우는 것인지 용과 싸우는 것인지 이미 그런 건 정신적으로 분간이 불가능한 지나에게 한가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의 총탄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마치 그녀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이 트라이 건이 철컥 소리를 내며 자신의 탄창이 비었다는 것을 알려줬다.  동시에 순식간에 재생되어 그녀에게 달려드는 스카디의 오른 팔.

  "아.."

  죽음이 문턱까지 왔는데도 지나는 왠지 허무했다.  어쩐지 남의 죽음을 느린 동작으로 지켜보는 것처럼.  마치 잘려져 버린 흑백 영화 테이프처럼 짧았던 그녀의 인생의 추억이 눈앞에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의 숨소리 역시 더욱 더 가빠졌다.  스카디의 팔이 그녀를 뚫기 전에 먼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  지수 언니.."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새 눈을 감고 있던 지나는 아직도 자신의 숨소리와 턱에서부터 떨어지는 땀방울을 느끼자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지나는 그녀를 막아주고 있는 에릭의 트론 마크 04 이지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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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뭘 하고 있는 거야, 스카디.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없잖아."

  에릭은 낮게 목소리를 낮추며 얘기했지만 그의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스카디의 공격은 비록 건물 뼈대를 동화시킨 것뿐인데도 그 정도로 위력적인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앞에 안 보이겠지만, 이미 목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고 또한 유리카가 장님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에릭에게 쓸데없는 정보일 뿐이었다.

  - 내 이름은 스카디가 아니라 유리카야!!

  "그래, 그래.  유리카.  어쨌든 이제 그만 멈춰."

  - 안 멈추면 니가 어쩔 건데?

  갑자기 스카디의 공격의 강도가 늘어나자 에릭은 이를 악 물며 이지스 실드의 강도를 더욱 더 높였다.  아까 전 시엘이 한 것처럼 이번엔 이지스가 그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 어쩔 거냐고 묻고 있잖아!!  이렇게 막기만 하면서 뭘 어쩐다는 거야!!  응?  응?!

  그녀가 한 번씩 자신의 팔로 이지스의 실드를 칠 때마다 에릭은 양 어깨의 판넬에 무리가 가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도 연기까지 세어 나오고 있었다.

  - 다 죽여 버릴 테다!  다 파괴 시켜 버릴 꺼야!  날 아프게 하고 날 화나게 만든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시켜주고 밟아준 뒤 웃어 줄 테다!!  아하하하하!!

  "..  그렇게 다 없애 버릴 거냐?  최강의 트론에 탄 체 기분 잡쳤다는 그딴 이유로?  정말로 그럴 거냐?"

  에릭의 말에 유리카는 더욱 더 화가 난 모양인지 악에 받쳐 외쳤다.

  - 그러니까 묻잖아!!  대체 니가..  뭘 어쩔 거냐고!!!!!

  갑자기 스카디의 주먹에서부터 감당하지 못할 힘이 들어오면서 이지스의 실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체 몇 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져 버렸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에릭은 비명을 질렀고 이지스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 꺄하하하!  어차피 어쩌지 못하는 힘에 무릎을 꿇고 비명이나 질러댈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무너질 것 같은 벽일 뿐이야.  쓸데없이 명령에 의해서만 쓸모 없는 것을 지키는 쓰레기!!

  "..  쓸모 없는 걸 지키고 있다고..?  내가?"

  - 나는 달라.  다 부셔 보일 테다.  그 다음엔 누구도 날 업신여기지 못할 꺼야.  누구도 날 아프게 하지 않을 꺼야!

  이지스는 서서히 일어났다.  판넬이 파괴 된 충격으로 인해 비틀거리면서, 하지만 완고하게 일어섰다.

  "..  그딴 이유로 이곳을 파괴하려 든다면..  난 끝까지 지킬 거다.  끝까지 지킬 꺼야.  네가 파괴하지 못하도록."

  갑작스런 그의 기세에 유리카는 조금 주눅이 들은 듯 했지만 이내 코웃음을 치며 아직도 건물의 한 부분이 동화되어 있는 날카로운 그녀의 오른팔을 이지스에게 날렸다.

  - 죽어!!

  하지만 스카디의 팔은 중간에 이지스의 팔에 잡혀 버렸다.

  "..  지켜 보이겠어.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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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텔님!!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이러다간.."

  커텔은 안절부절못하는 유 박사를 한심하게 쳐다보다 이내 차갑게 말했다.

  "지금 나에게 유리카를 멈추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아마 이지스가 파괴될 수 있겠지.  파일럿도 즉사하고 말이야.  어쩌면 모든 트론이 스카디의 손에 파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정도 손실은 스카디의 가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유 박사는 황당한 표정으로 커텔을 쳐다보았다.  이 남자, 진심인 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요즘 자네는 너무 감정적으로 치 닫고 있어.  물론 한대 한대의 트론은 비싸지만 스카디가 그 정도로 화가 풀릴 수 있다면 난 몇 대라도 희생시킬 수 있다네.  당연한 거 아닌가?"

  유 박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오퍼레이터 중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트론 마크 04 이지스 엘레멘탈 코드 발동!!"

  "뭐?"

  커텔과 유 박사는 동시에 스크린을 주시했다.  스카디의 오른 팔을 잡고 있는 이지스의 앞으로 희미한 빛이 생기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엘레멘탈 코드 타입..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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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칼날과도 같이 빛은 스카디의 오른 팔을 잘라내며 거대한 막을 형성했다.  두께로 보면 이지스 실드에 비해 너무나도 연약해 보였지만 겉모습만으로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건 성급한 결론이다.  실제로도 분에 찬 유리카가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두르는 데도 불구하고 막은 꿋꿋이 에릭을 막아 주고 있었다.

  - 이아아아아아악!!

  멋대로 포효하고 있는 유리카에게 에릭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분노해서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싶은 지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만둬.  정말 쓸데없잖아?!"

  - 크크..  내가 무슨 이유로 분노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확실히 에릭도 알고 싶었다.  용에게 농락 당한 화풀이 치곤 그녀의 공격은 너무 살의가 깊었다.

  - 모를 꺼야.  같은 소모품이라 해도.  10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한 체 언제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을 네가 알아?  평생을 암흑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하나밖에 없는 오빠라는 존재를 손으로 밖에 느끼지 못하는 그 고독을 네가 알아?  모르겠지?  알 리가 없어.  소모품이란 딱지만 똑같을 뿐이지, 멀쩡한 눈이 있고 멀쩡하게 걸어다닌, 보통 '인간'인 주제에 나를 어떻게 알아?  이해하려고도 하지 마!!  어차피 이해 같은 거 할 수 없을 테니까!!  상상도 못하겠지?  내가 이제까지 겪었던 멸시와 증오, 그리고 지금도 짊어지고 있는 이 어둠을!!  

  유리카에 대해 지금에서야 이름정도 밖에 알지 못했던 에릭은 지금 대화로부터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런 일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 그런 아픔을 짊어지고.
  하지만 그는 그녀와는 또 다른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  분명, 난 이해하지 못해.  너의 그런 상처들, 겪어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말야, 그렇다고 해서 뭐 잘난 듯이 응석 부리지 말라고!!  난 분명 멀쩡한 두 눈을 지녔어.  그리고 멀쩡한 사지를 가졌지.  하지만 말야, 그렇기 때문에 난 너와는 다른 아픔을 겪었어!  물론 어떻게 비교해 보면 내 상처가 조금 더 작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의 잣대를 도대체 누가 재는 거지?!  너인가?  나인가?  아니면 다른 '인간' 들인가?  다른 사람들이 상처 없이, 시련 없이 자라왔고 자신만 그런 아픔을 겪었다는, 그런 오만한 생각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지 마!!  비웃고 싶으니까!!"

  - 누구를 비웃는 다는 거야!!

  스카디가 있는 힘껏 실드를 내려치자 에릭은 무언가 뜨겁고 붉은 액체를 토해냈다.
  
  - 누가 누구를 오만하게 내려다본다는 거야?!  내가?!  아니겠지!!  그건 우리를 조종하는 그 '인간'들이겠지!!  다 죽여 버릴 꺼야..  이 놈이고 저 놈이고!!  

  "..  그러니까..  내가 막을 거다.  날 쓰러뜨리기 전엔 아무 것도 파괴하지 못해."

  - 어차피 조금 있으면 이것도 파괴 될 뿐이야!!  무얼 위해 그렇게 까지 하는 거야?!  차라리 아무렇게나 공격이라도 해봐!!  그래, 그 실드를 사용해서 날 묶어보기라도 해봐!  왜 그렇게 지키려고만 드는 거야?!  

  에릭은 유리카의 질문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이다.  자신은 무엇을 이리도 지키려고 하는가.  왜 지키려고 하는가.  '지킨다'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말 본질적인 것을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지스의 여기저기에서 조금 씩 피가 스며 나왔다.  기체 자체가 스카디의 공세에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몰랐었는데..  말야.  지금에 와서야 미란이가 그때 무슨 기분이었을지 대충 알 것 같아."

  - ..  뭐?

  "내가 그저 본부를 지키고 싶다, 인류를 구하고 싶다, 뭐 그런 것으로 지금 너를 막고 있는 게 아니란 거야.  난 그저, 내 앞에서 누군가에 의해 알던 자가 죽어 나가는 게 보기 싫을 뿐이야.  하지만 때론, 맹목적인 공격으로 구하지 못할 때가 있지.  때론 방어가 남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일 때가 있는 거야."

  - ..

  스카디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지만 유카리는 확실히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에릭은 왠지 자신이 그녀에게서 수긍을 얻어 가는 듯 싶었다.

  "물론 이지스의 실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난 결국 미란이를 구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래서 더 더욱 지키고 싶다.  그녀가 지키고 자 했던 것을.  그녀가 태어나고 숨쉬고, 그리고 나를 만났던 이 곳을.  그녀가 구하고자 했던 것을 계승해 대신 지켜주고 싶다.  그녀가 남아 있기를 원했던 거를.  왜냐하면 그때 난 방패를 가지고도 구해주지 못했으니까.  그녀를..."

  에릭의 뺨에서 땀과 함께 전혀 엉뚱한 것이 흘러내렸다.  눈에서부터 태어나는 물.  억눌렸던 감정과 기억이 서로 엮이면서 밀어내는 것.  한 줄기의 눈물을 시작으로 에릭은 울기 시작했다.  미란이가 생각나서이기도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방패가 깨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더 이상 방패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듣기 좋게 말을 하긴 했지만 행동이 받쳐주지 않는 한 그것들은 모두 쓸모 없는 잡소리일 뿐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그와 이지스는 스카디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주저앉을 텐가.  그런 행동은 정말로 자신이 했던 모드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죽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아아아아악!!!"

  에릭의 방패가 한 순간에 나마 강해졌다.  심지어는 공격하고 있는 스카디의 팔을 녹여버릴 정도의 특별한 능력까지 보였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막 보다는 이지스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여러 곳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파트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손가락, 팔목, 팔꿈치 이런 식으로 땅에 떨어져 나가다 그 다음엔 다리가 위고 팔 전체가 차가운 땅바닥으로 낙하하는 등 꼴이 가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은 굳건하게 버텼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스카디는 더 이상 막을 치지 않았다.  그저 이지스의 앞에 서 있을 뿐.

  -  ..  난 미란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네 아픔이 뭔지도 몰라.  별로 상관하고 싶지도 않고.

  아까 전에 분노에 찬 소녀가 아닌 것 같은, 왠지 슬프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 하지만 너도 잘났다고 그렇게 떠벌리지 말아.  나도..  소중한 사람쯤은 있어.

  스카디는 힘없이 이지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동시에 이지스의 막이 점점 얕아지고 있었다.

  -  ..  오늘 일은..  정말..  아..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까지 막아주어서.

  하지만 에릭에게서 더 이상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그저 다리까지 무너져 가만히 하늘을 쳐다볼 뿐.  노을로 인해 붉어지는 하늘 저편에선 BR-C2 수송기들이 전투에 지친 트론들을 옮기기 위해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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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빠?!"

  유카리가 휠체어에서부터 몸을 일으켜 한 걸음에 달려나가려는 것을 유 박사가 간신히 말렸다.  트레이닝은 받고 있지만 아직 까진 약한 그녀의 다리를 위해 주어진 휠체어가 오늘은 그녀에게 방해가 되는 듯 싶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병실 침대에 앉아있는 카렌티어스는 어찌 할 줄 모른 체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였다.

  "오빠, 이제 괜찮은 거야?  이제 머리 안 아파?"

  "아..  응.  괜찮아."

  "정말이야?"

  "괜찮다니까."

  유카리는 계속 '괜찮다'를 연발하는 그녀의 오빠를 그래도 믿지 못하는 지 걱정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고 나선 침대시트에 얼굴을 파묻혀 흐느끼기 시작했다.  카렌티어스는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더욱 더 당황하면서 무슨 말도 하질 못한 체 그저 그녀의 머리를 다독거려 주었다.

  "..  미안해..  난 정말로 오빠를 좋아하는데..  정말로 지켜주고 싶은데..  오히려..  오히려 아프게나 만들고.."

  카렌티어스는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듯 했고 또한 그녀가 이렇게 까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에 대해 사뭇 감동했다.

  "아아.  괜찮아.  정말 별거 아니야.  또 유카리가 잘 해주었으니까.  기분이 정말 좋아졌어."

  "..  진짜?"

  "응."

  그녀는 손으로 카렌티어스의 얼굴을 더듬었다.  아예 눈이 망가져 버린 유카리에겐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카렌티어스의 입장에선 조금 불편하다면 불편했다..

  "나 정말 열심히 할께.  이젠 절대로 오빠를 안 아프게 해줄 꺼야.  많이 가르쳐 줬어.  그 사람이.  이젠 절대로 이런 실수 같은 거 하지 않을 꺼야.  근데..  뭐였지?  그의 이름?"

  이름이라..  하긴, 그들에겐 코드뿐만이 아닌 그들만의 이름이 있었지.

  "..  에릭이야."

  "응.  에릭.  오빠가 인제 괜찮은 거 아니까 에릭에게도 다녀올 깨.  내가 많이 아프게 했거든."

  "그래.  난 이제 괜찮으니까."

  기쁘게 손을 흔들며 유 박사의 도움으로 나가는 유리카의 뒷모습을 보며 카렌티어스는 잠시 생각했다.  사태를 들어보니 아슬아슬 했지만 그 일로 인해 그녀와 다른 트론 파일럿과 관계가 어느 정도 호전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위해서 좋은 일일까.  무슨 일을 예견하는 오멘일까?

  "제발 용 이외에 다른 일이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더 이상..  누구도 상처 같은 건 바라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