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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테창-릴레이완결] 물망초 #제1장

2006.12.20 17:15

아란 조회 수:48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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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창-릴레이소설 완결]

제목(팀명) : 물망초
장르 : 판타지
총화수 : 전 23화 완결
팀장 : 아란
팀원 : [vk]파멸, 이블로드, 기브, 장사장, jedai, EnEd
연재기간 : 2004년 2월 7일부터 2004년 4월 6일 전 23화 완결


[물망초] #제1장 - 04
글쓴이 : 장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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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그만, 그만! 일단 이곳을.. 에, 엣취!.. 좀 벗어난 뒤에 이야기 하자고.. 에, 엣취!.. 예린양. 평생 이곳에서 사, 사, 엣취!.. 사, 살아온 예린 양은 모, 못 느끼겠지만, 이곳은 빌어먹을 한의 최북단이, 이라고, 엣취!」

  루시엔은 짜증을 내며 다시 코를 훔쳤다. 그녀도 방방 뛸 때는 몰랐지만 말 그대로 여기는 한의 최북단에서도 천산이라고 불리는 살인적인 추위를 내뿜는 곳이다. 외투를 두텁게 준비하라는 메리의 충고를 무시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그녀로선 별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산 아래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메리는 예린의 입장이 측은했던지 마을까지만 이라도 기어코 데리고 가겠다고 우겼다. 루시엔도 분명 예린이 불쌍하게 여겨지고 무명이라는 책임감 없는 망할 놈을 혼내주고도 싶었지만 일단은 한시라도 빨리 따뜻한 마을 여관을 찾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으잉.. 제가 또 실수한 거군요. 나쁜 예린이 또 실수...」  
  「으아악~ 나 미치겠네~ 그만둬! 이유 없이 자책하는 짓도 제발 그만두라고!」

  루시엔은 한껏 짜증을 부리곤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자연스레 움찔한 메리와 예린도 말없이 그녀의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엘프로서는 어린 나이인 222세의 삶 동안 루시엔은 이렇듯 강한 추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기회가 없었다고나 할까. 엘프가 굳이 푸르른 숲을 벗어나는 일도 드물뿐더러 모험을 즐기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었다. 그 드문 케이스인 루시엔이 지나치게 덜렁대고 대책 없다는 것은 그 자신에게도 동행인 메리에게도 아주 골치 아픈 약점이었다.

  「그래, 그래 추위도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 결국은 수련이 부족한 탓 일거야, 정신통일, 정신통일!」

  지독하게 낮은 기온은 살인적인 추위를 몰고 왔고 살인적이 추위는 지진 같은 피부의 경련을 불러왔다. 루시엔은 나지막하게 정신통일을 중얼거리며 피부의 경련을 극복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세 일행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응? 아, 그래 안녕.」

  예린이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채 걸어가던 예린은 문득 위로 고개를 45˚ 쳐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춘 것이 아니었고 여전히 걷고 있었다.

  「에? 어딜 보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린?」

  메리 역시 비슷하게 빠른 속도로 걸어가며 고개만 옆으로 돌려 물었다. 루시엔은 여전히 정신통일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리나요. 정말 귀엽게 생기지 않았나요? 헤헤..」

  예린은 혼자 실없이 웃더니 다시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그리곤 허공에게 마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메리로선 그런 그녀가 이상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되물었다.

  「세리나가 누군가요? 어디 있는 사람인가요?」
  「안보여요? 여기 위에 둥둥 떠다니잖아요.」

  그때, 앞서 걸어가는 루시엔의 '정신통일' 중얼거림이 멈추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메리는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두, 둥둥 떠다닌다고요? 무, 무슨 말인가요?」
  「여기 위에 공중에 떠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잖아요. 흰 옷을 입고 검은 머리는 풀어헤치고.. 어? 그러고 보니 뭘 잘못 먹은 건가, 입 주위가 온통 빨갛네.」

  메리는 등이 서늘해져 옴을 느꼈다.
  예린이 희희낙락 웃어재끼고 있는 동안 사태를 파악한 메리는 살며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루시엔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었다.

  「진정해요, 괜찮아요, 루시엔. 혼령이라고 해서 꼭 포악하다거나.... 응? 루, 루시에엔~」
  「꺄아아아악~」

  예린과 메리가 방심한 사이, 루시엔은 괴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배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멈췄다. 스산한 바람이 돛을 스쳐지나가고 바다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배는 그 파동에 몸을 맡긴 채 두어 차례 울렁거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험난한 항해를 지나온 유령선이라도 되는 양.

  「신원을 밝혀라!」

  크리스킨의 항구수비대 대장 클라크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원래 중앙에서 사무직을 보던 관리였는데 갑자기 전시상황에 돌입하여 부족한 인원 때문에 항구수비대장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실전경험은 전무했고 무기를 만져본 것도 가끔 상급관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함께 사냥을 나가 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백기를 돛 위에 단채로 유유히 흘러들어오는 배 하나를 보고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배를 포위하고 있는 항구 수비대원들이 자꾸 손에서 빠지려는 검을 다시 다잡으며 전투상황에 대비하고 있을 때, 갑판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양 손을 위로 든 채 천천히 걸어 나와 말했다.

  「이 여객선의 선장입니다! 이 배는 한 대륙의 소예항에서 왔습니다. 전투선이 아닙니다, 단지 여객선일 뿐입니다.」
  「뭐? 한 대륙에서 왔다고?! 그럼 한 사람들도 있을 것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만, 위험한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그것보다도 승객들이 불안해합니다만, 하선을 승낙하십니까?」

  클라크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손톱을 깨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크리스킨 사람도 있고 한 사람도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여객선일 수도 있지만.. 혹시 비밀 작전을 위한 한의 전투선은 아닐까?
  클라크는 계속해서 손톱을 깨물어 뜯었다. 엄지손톱에서 새빨간 피가 가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클라크는 전시에 일어나는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정리했다.

  「하선을 허락한다! 어서 내리도록.」

  클라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부관의 귀에 대고 뭐라 뭐라 속삭였다.
  배에서는 잔뜩 긴장한 채 눈치만 보던 사람들이 선장을 필두로 하나둘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서슬이 시퍼런 검을 뽑아 들고 있는 수비대원들을 피해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무명은 검을 가리기 위해 선장이 전해준 크리스킨의 옷을 덧입고는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다.

  「모두 내린 건가?」

  클라크가 선장에게 물었다. 선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네, 크리스킨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 한 대륙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한 대륙 사람들은 따로 모이게.」

  한 대륙 사람인 선장은 수십 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대다수가 한 대륙의 사람들이었고 크리스킨 대륙의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곳에는 커다란 후드를 깊게 눌러 쓴 무명도 있었다.
  선장이 한 대륙 사람들의 대표같이 앞으로 나섰다.

  「다 모였습니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귀화해야 하는 겁니까?」
  「그럴 필요 없네.」

  클라크는 돌아섰다. 순간, 대기하고 있던 수비대원들이 달려들어 그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전혀 무장하지 않고 있었던 한 대륙의 일반인들은 속수무책으로 그들에게 베여졌다. 살점과 선혈이 여기저기서 튀었다. 선장은 당황하면서도 그동안 항해하면서 배운 경험으로 검을 피하고 있었지만 반격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30여초 만에 한 대륙의 사람들은 모조리 학살당했다. 피가 흐르고 흘러 바다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선장은 마지막까지 반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련한 움직임으로 그들 사이를 비껴가며 검을 피하던 그도 결국은 체력의 한계 때문인지 수비대원 한명의 검에 찔리고 말았다. 이내 십 수 자루의 검이 선장의 몸을 관통했다. 그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클라크는 부관에게 그렇게 말하곤 크리스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빙긋 웃었다.

  「여러분들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십시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몇 안 되는 크리스킨 사람들은 줄행랑을 쳤다. 사람들이 앞에서 베여지고 피가 마구 튀기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졌지만 검은 망토에 후드를 눌러쓴 한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한 친구를 잃은 직후였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무명은 망토 속에서 손을 허리에 있는 검 쪽으로 가져갔다. 손을 검 자루로 가져가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피에 잔뜩 절어 있는 검은 직관적으로 피의 냄새를 맡고 환희의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야, 너. 뭐하고 있어 어서 따라오지 않고.」

  검 자루로 가던 손이 멈췄다. 클라크와 무명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의 엘프가 무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 엘프?」

  클라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리스킨도 한도 아닌 엘프?

  「왜요? 문제라도 있나요? 쳐다보는 게 심히 불쾌하군요.」
  「아, 아닙니다. 너무 아름다우..」
  「집어치워요. 인간으로서 엘프에게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그다지 효용이 없을 뜻 하군요.」

  금발의 미녀 엘프는 차갑게 대답했다. 클라크는 문득 앞에 서 있는 무명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왠지 수상한 기색이 보이는 차림이었다.

  「이 사람은 누구죠?」
  「내 종이에요. 상관하지 말아요. 크리스킨 사람이니까.」
  「종이요? 하핫, 엘프가 인간을 종으로 부린다. 그것 참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발상이 아니라 현실이에요. 엘프들이 언젠가 인간족을 종으로 부릴지도 모르죠.」

  순간, 클라크의 인상이 싸늘하게 굳었다. 금발 엘프는 그것을 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무명을 붙잡고 끌고 가듯이 그 자리를 피했다. 클라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인간족을 종으로 부려? 웃기는군.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 주제에...」




  무명은 조용히 엘프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항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이 전시상황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는 듯 했다. 활기에 찬 그곳에는 장사꾼들의 구성진 목소리와 왁자지껄한 생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금발의 엘프가 그 한중간에서 문득 멈춰 섰다. 무명 역시 멈춰 섰다.

  「나보다 곱절은 살았다더니, 그 대책 없는 행동은 뭔가요?」
  「순간적으로 너무 흥분했어, 주위를 환기시켜줘서 고맙지만 더 이상 상관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무명은 그렇게 말하곤 돌아섰다. 하지만 이곳은 크리스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을 죽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는 검을 들고 있었고 검 밖에 들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망설였다.

  「갈 곳이나 있나요?」
  「내가 할일은 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군.」
  「그렇겠죠, 의뢰인이 한의 사람인데 한의 대륙으로 갈수 없으니.」

  엘프는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순간, 무명이 엘프의 뒤로 돌아들어가서 검 자루로 그녀의 허리 쪽을 눌렀다.

  「넌 누구지? 어떻게 날 알고 있는 거지? 만족할만한 대답이 없으면 널 죽이겠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코웃음정도는 쉽게 파묻힐 정도로 왁자지껄한 곳이었다. 항구의 광장은.

  「그래요? 그럼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신의 친구에게서 들었다고 하면 날 죽일 건가요?」

  무명은 손에 힘을 주어 검 자루를 더욱 세게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별 아픔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었다.

  「허튼 소리마. 그 녀석이 나에 대해 이야기 할리가 없어. 죽고 싶나?」
  「속고만 살았나보죠? 엘프의 말을 믿지 않다니.」
  「시끄러워! 녀석이... 나에 대해 말할 이유가 없잖아.」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봐요, 누누이 말하지만 난 엘프라고요. 인간처럼 거짓말도 그렇게 죽죽 내뱉지 않고 남의 약점을 잡거나 하지도 않는다고요. 난 단지 그 친구로부터 당신에게 안정적이고 합법적인 일거리를 맡게 해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무명은 검 자루에서 힘을 뺐다. 금발머리의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무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흠,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니 대충 인정은 하는 모양이군요. 좋아요. 검사로서 실력이야 방금 뒤로 돌아간 스피드만 봐도 알겠네요, 좀 감정적인 게 흠이긴 하지만.」
  「넌 뭐하는 놈이지? 네 말대라면 엘프가 사람에게 시킬 일은 없을 텐데 설마 진짜로 종을 시키지는 않을 테고.」
  「오? 그래요? 확신할 수 있어요?」

  무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농담이에요. 따라와요, 합법적이고 안정적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일을 주죠.」
  「너, 뭐라고 불러야하지?」
  「끝까지 반말이시군요, 뭐 성격이라고 해두죠. 내 이름은 셰라자드 이르 데 세비지 엔드리아... 아, 그냥 셰라자드라고 불러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미소를 흘리며 돌아섰다. 무명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득 누군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는 성큼성큼 사람들 사이를 스쳐 그녀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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