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대사] 늑대

2008.01.06 08:49

할론 조회 수:2249 추천:4

extra_vars1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사슴이 보인다.. 아니.. 무리를 지어온것을 보니 늑대인 모양이다. 사실 그놈이 무엇인가인가는 상관없다. 먹을수 있는 것이기만 하면 된다. 당에서 내려온 모신나강을 빼어 스테인드 글라스 너머를 겨눈다. 그리고 별로 조준 할것도 없이 한방 쏜다.


 


"파아앙!"


 


우두머리인듯한 놈이 고꾸라진다. 다른 놈들은 숨기 바쁘다. 한발 더 위협사격을하자 뿔뿔히 도망친다. 늑대가 동료애를 따진다는것도 다 헛소리다. 놈들이 사라지는것을 보고 그 사냥감을 손질하기 위해 내려갔다. 가까이서보니 나이꽤나 먹은듯한 숫놈이었다. 나는 그놈을 뒤져서 가장 맛있는 부분을 찾아내었다. 빵주머니, 역시 짬밥이 있는놈이었는지 꽤나 두둑하다.


 


사실 이 근처를 지나는 놈들은 늑대도 사슴도 아닌 군인들이다. 내가 이 교회에 남아있게된게 10월 말이었던거 같다. 저 우랄산맥에서 늑대나 잡던 무지렁이가 저 위대한 붉은군대의 일원이 되어 사람을 잡다니..


역시 사냥꾼이셨던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            A                "


그 노친네가 뭐라고했던 나는 나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냥 "쏴서 죽이면" 되는 총잡이일뿐이다. 아니 백정이다. 난 그냥 되는데로 총을쏘았고 당에서는 나의 능력을 인정하여 쩨뻬르스까야 교회에 나를 붙박이로 남겨놓았다. 나의 능력을 인정한것인지, 아니면 나의 몰인정함에 공포를 느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상관은 없다. 난 뭔가 쏴서 죽일것이 필요할 뿐이지 거추장스럽고 시끄러운 동료같은것이 필요한게 아니었다.


 


언젠부턴가 당으로부터의 보급이 뚝 떨어졌다. 사실 어느 멍청이가 나를 여기로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여기에 박힌지 얼마 안되서 저 독일놈들은 이 마을을 휑 하니 돌아서 진격해 가버린것이다. 나를 여기로 보낸놈도 지금쯤은 총알에 다진고기가 되어있으리라. 적이 잘 보이지 않아서 총알은 여유가 있었지만 문제는 먹을것이었다. 결국은 적을 죽여서 먹을것을 뺏지 않으면 안되었다. 적이 나를 죽일까봐 죽이는게 아니라 굶어 죽지 않기위해 적을 죽이게 된것이다.


 


언젠가부터 독일놈들이 사람으로 안보이게 되었다. 그냥 고기와 피복을주는 늑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쏘아야할 대상에대한 경외심 같은것은 없었을뿐더러 사람을 죽인다는 일말의 가책마저 털어버리게 되자 나의 총알은 한점 벗어남이 없게되었다. 그래도 인육을 먹는다든가 하는짓은 하지 않았다. 순전히 총통님의빵이 인육보다 입맛에 맞았던 탓일까? 아무튼 군에서 쓰는 정체불명의 탄으로 잡은 고기를 뜯기는 싫었다. 그리고 어느날 난 아군을 쏘았다.


 


정찰온건지 낙오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나에게 보인것은 한마리의 사슴이었을뿐이다. 위대한 조국이건 뭐건 나를 이런곳에 버린놈들이건 뭐건 상관없다. 그냥 고기와 피복을 주는 사슴동무였을뿐이다. 아무렴, 나는 이 사슴동무로부터 자신의 몫의 빵까지 나눔받은것 뿐이야.


 


4월이 다되간다. 이 악마의 교회에서 나의 집도아래 새로운 세례를 받은 짐승들만해도 한개 중대가 다되어가고있었다. 겨울이 끝나면 다시 우랄 너머로 돌아가야겠다. 이 두발달린 늑대들은 빵맛은 있었지만 우랄의 그놈들에 비하면 잡는 손맛은 영 형편없었다. 전쟁이고뭐고 난 그냥 뭔가 즐거운 사냥을 하고 싶었던것 뿐이었다.


 


그생각을 하고있었을때쯤 또하나의 길잃은 늑대 하나가 절뚝이며 나타나고있었다. '저놈이 마지막이야.. 저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볼것도 없이 단숨에 고꾸라뜨렸다. 잠시뒤 빵을 챙기면서 그놈의 이름표를 한번 살펴보았다.


" B "


" 응? B? C! 크하하하~ "


" 쩨뻬르스까야의 식인늑대라더니 별로 조심성은 없는놈이군 "


어느샌가 뒤통수에 Kar98총구의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고있었다.


" 내 유령을 쓰러뜨린 기분이 어떤가. 늑대? "


" 니놈이 저 B라도 된다는건가? "


" 사실 저 이름표는 내꺼야. 남에게 내 군복을 입고 죽게해서 나는 안죽게 한다는거지. "


" 사냥감에게서 받는 공포를 남에게 전가시켜버린다라.. 획기적이군. 마음에 들어. "


" 당신때문에 생각해낸 방법이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자 어때? 우리랑 함께 가지 않겠나? 당신정도의 비정함이라면 얼마든지 더 많은 사냥감을 죽일수 있다고. "


" 뭐.. 난 됬어. 내가 잡고 싶은 사냥감은 이젠 4발로 걸어다니는 놈들이니까. 누구 명령 받는 타입도 아니고. "


" D "


갑자기 B는 총구를 내리고 뒤로 물러났다. 흠.. 하지만 나는 분명 한번 죽은 목숨이다. 이런 목숨으로 늑대들을 잡아도 무슨 감흥이 있을까.. 한동안 걸어가던 나는 순간 뒤로 돌며 B를 향해 총을 겨눴다. 하지만 B가 더 빨랐다.


 


B는 방금 자신이 쓰러뜨린 소련놈의 빵과 군복을 뺏은후 그 군복으로 갈아입은후 악마의 교회안으로 들어가서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냈음에 만족해 하면서.


 


- B는 창도인 아무나 집어넣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