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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상자 속 그 고양이는 울고 있었을까

2010.09.10 15:57

윤주[尹主] 조회 수:31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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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세기 초였을까, 한 과학자가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커다란 상자가 있고, 그 속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이 고양이에 주목할지어다. 잠시 후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심지어는 그 어떤 베스트셀러 인물들보다도 더, 고양이가 될 테니까.



 모종의 장치를 이용해 과학자는 고양이가 든 이 상자 안에 치명적인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다. 설치가 끝나고, 시작 소리와 함께 과학자는 장치 전원을 올린다. 지지지지직. 잠시 후 과학자는 전원을 끈다. 실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작동을 멈춘 기계. 어떠한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는, 고양이가 들어 있던 커다란 상자.



 여기서부터 문제다. 상자 속에 들어간 고양이는 과연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도 가능하고, 경험론적 철학에 근거한 대답도 가능하다. 혹은 이 과학자가 주창한 대로, 양자역학적 접근도 가능하리라.



 상식이 된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바로 이렇게 탄생했다. 필시 간밤 뒤숭숭한 꿈자리도 따지고보면 이 이야기에서 온 것이리라.


 


 다시 본이야기로 돌아오자. 소녀는 여전히 밖을 보면서, 마치 자동인형처럼 감정 없는 얼굴로 이야기를 이었다.



 "전요, 신이란 것도 다 그 고양이랑 마찬가지일 거라고 봐요."
 "어디가?"
 "태어날 당시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을 여지를 얻었다는 점이요."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건, 대체 어떤 걸 염두에 두고 하는 소리일까?



 "크로스 카운터라고 하나요? 예기치 못한 반격으로 상대를 넉다운시키는 기술이요."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한 덩치 하는 두 흑인 선수가 절묘하게 서로의 팔을 교차시켜 상대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는 장면이다. 아슬아슬하게 갈리는 승패, 고조된 긴장감이 단 하나 정지화면에 극도로 응축되어 전해져온다. 권투는 잘 모르지만, 그 장면만은 어딘지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에둘러 말하자면, 고양이나 신에겐 그 크로스 카운터를 날릴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이미 날렸거나, 앞으로 카운터를 날릴 예정이거나. 혹은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인지도 모르죠."
 "상상이 잘 안 가는데."



 고양이가 날리는 크로스 카운터 따위, 상상이 안 간다기보다 생각만 해도 우습기만 하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자칭 '인간의 왕' 소녀는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얘기를 시작했다.


 


 "할 수 없죠. 반주도 없이 본풀이를 할 순 없고, 되풀어 이야기로 전할 수밖에요.



 잘 들으세요. 이건 태초의 이야기에요. 어딘가 문득 들어본 듯하면서도, 다시 보면 낯설게 느껴질 그런 얘기죠.



 언제부턴가 세상은 자연스레 그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늘도 어느 날 갑자기, 땅도 어느 날 갑자기. 애초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거죠. 그 위에서, 마치 어린아이가 손으로 대충 빗은 듯 조잡한 사물들이, 생명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색동옷인 양, 당의 원삼인 양, 형형색색 아름다운 생명들이 꽃피고, 자라고, 열매 맺는 그 동안 딱 한 가지 버려진 듯 잊힌 게 있었다죠.



 천으로 치자면 자투리 조각들, 돈으로 치자면 5원어치 거스름돈, 혹은 통장에도 찍히지 않는 소수점 이하 이자금 같은 것들입니다. 제멋대로 태어나버린 생명들이 쓰고 남은, 쓸모없는 고깃덩이 조각들이 라죠.



 버려진 조각들, 남은 살덩이들에겐 아무 이름도, 형태도 없었습니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인 잉여분이라, 누구도 그것들이 있단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심지어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게, 그것들은 그저 버려진 것에 불과하잖아요?



 그런데 억겁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누군가 그들을 눈치 챈 겁니다. 눈치 챈 것뿐이라면 좋은데 이 여자, 버려진 더미들에게 신경을 써주는 거예요.



 '너희는 누구니' 물어도 대답이 없을 수밖에. 버려진 그것들은 이름도 성도 없고, 입도 손발도 없고, 심지어 다 같이 하나인지 아니면 따로 인지 자신들도 모르는걸요. 놀라기야 했죠. 그저 버려진 자신들을 그녀가 '너희'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것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그런 식으로 지칭할 수 있단 사실조차 몰랐던 거예요.



 '그럼 너흰 그냥 바리데기, 바리로구나.'



 신기하지 않아요? 누군가 의미 없이 던진 한 마디가, 진짜 이름이 되고 생명력을 줄 수 있었단 게.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버려졌던 '그것들'은 '바리'가 되었습니다. '바리데기 바리'는 너무 기니까 그냥 '바리'에요. 여하튼 그게 '바리'가 되었던 그 때가 바리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바리는 이미 생명 하나를 품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리는 건강한 딸을 낳았습니다. 사랑하는 딸, 어화둥둥 우리 딸, 고통 받고 한스러워 세상을 등지고 귀신들 품에 안길 그 딸.



 그래요. 태초의 찌꺼기였던 바리, 귀신들의 딸을 잉태한 바리. 그게 바로 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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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게 자르려다가 좀 길게 잘라봅니다.


 


 화면으로 글을 읽는 게, 제겐 아무래도 부담이 있더라고요;;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할지가 항상 고민이 되요...


 


 보통은 종이 한 바닥가량 올리는데, 이번엔 두 페이지가량 올려 봅니다. 지금 쓰는 워드 프로그램이 좀 괴악해서, A4기준인줄 알았더니 한글 A4보다 여백을 좀 많이 잡더군요;;


 


 어쨌거나 이번 이야기 요약하자면, 소녀의_정체_1.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