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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상자 속 그 고양이는 울고 있었을까

2010.09.09 23:32

윤주[尹主] 조회 수:165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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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할게요. 저는 '인간의 왕'입니다."



…….



 "뭐라고?"



 대뜸 소녀가 던진 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인간의 왕'이라니. '왕'은 당연히 흔히 생각하는 그것을 의미하겠지? 하지만 인간의 왕이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고구려의 왕, 일본의 천황, 왕처럼 군림하는 독재 대통령.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왕이 있어왔지만, 인류 전체의 왕을 자처한 이가 지금껏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자칭 인간의 왕이란 소녀를 홀로 마주한 내 상태는 문자 그대로 망연자실, 흡사 해설 없는 답지를 보고 좌절한 꼴이었다.



 "혹시 풀이 없냐?"
 "풀이라니요?"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대뜸 '인간의 왕'이라고 해도, 난 그게 뭔지도 모르는걸. 그러니까 조금 설명이라도 해주란 말이지."
 "으음, 풀이라…….일단 본풀이는 있는데요. 짤막하게나마."
 "뭐, 암튼 설명이란 거지? 한 번 얘기해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다. 어차피 애들끼리 지어낸 소꿉놀이 얘기일 테니까, 적당히 장단 맞춰준다 생각하고 듣지 정도였을 뿐.



 가벼운 마음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 앉아 이야기를 기다리는데, 테이블 맞은편에서 격하게 목을 푸는 소리가 났다. 대기실에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오페라 가수처럼 한참 목청을 트이게 하더니, 소녀는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준비 다 됐는데요."
 "얘기해봐."
 "이제부터 할 텐데, 뭐 아무것도 없어요?"



 또 뭐가 필요한 거냐.



 "아니, 장구라던가, 징이라던가, 태평소라던가. 반주 맞춰줄 거 말이에요."
 "아예 판을 차리시게?"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 마디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럼 판도 벌이지 않는 본풀이도 있어요?"



 진짜 굿이라도 할 생각인가?
 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소녀가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손뼉을 딱 쳤다.



 "아저씨, 본풀이가 뭔지도 모르죠?"
 "설명이라며, 아냐?"



 설명이 맞기는 하지만, 하면서 소녀는 머리를 짚었다. 조금 후 다시 물었다.



 "아저씨, 신은 믿어요?"
 "주말에 교회는 나가지만."
 "평소엔요?"
 "아니, 애초에 교회 나간다고 딱히 믿는 건 아니야. 내 경우엔 모태신앙이었고, 어려서부터 부모님 따라 주말마다 다니다보니 습관처럼 가는 것뿐이라고."
 "그거 몰라요? 가신 먼저, 그 다음이 동신, 국가신. 교회는 가장 마지막에 챙기는 거라고요."



 어째선지 양쪽 모두 저마다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깐만. 가신이니 동신이니 해봐야 전혀 이해 못한다고. 교회 다니면서 할 얘긴 아니지만, 솔직히 난 신이 있단 것도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기보단 상관없다고 해야 하나."
 "신이 있단 걸 믿지 않나요?"



 진지한 눈으로 소녀가 물었다.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있단 증거가 어디 있겠어?



 소녀는 돌연, 유리창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덩달아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그쪽을 보았다. 블라인더가 내려진 유리창을 보면서 소녀는 말했다.



 "저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겐, 우리가 보이지 않겠죠?"



 나도 그러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때도, 혹은 지금까지도 소녀는 타월 하나 몸에 걸친 채니까.



 소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말인즉, 저들에겐 우리가 여기 있단 증거가 없는 거네요?"
 "잠깐만, 그건 다른 문제잖아. 신이 있는지 없는 지랑, 우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뇨, 같은 문제에요."



 너무나도 확고하게 단정 지어 말하기 때문일까. 나는 주눅 들어 좀처럼 그녀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소녀는 거듭 두 개가 서로 같은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왜냐면, 둘 다 상자 속에 들어간 고양이 얘기와 마찬가지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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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칭 '인간의 왕' 소녀의 본풀이, 혹은 내력, 유래 풀이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오전 일찍 수업이라 오늘은 좀 늦게 올리네요;; 왠만하면 이후로도 계속 아침 시간에 올라갈 것같습니다만, 별 상관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