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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상자 속 그 고양이는 울고 있었을까

2010.09.06 17:01

윤주[尹主] 조회 수:296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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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간의 왕'이 존재하건 그렇지 않건 우선 하나는 짚고 넘어가자. 먼저 그딴 얘기를 꺼낸 건 대체 누구냐? 눈앞에 저 꼬맹이인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누가 저 애 입을 열었던가. 처음 이야기를 시켜서 이딴 되도 않는 말을 시킨 게 어떤 작자냐? 장 모 씨냐? 이 모 씨냐? 아님 당신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나였다.



 소녀와는 오늘 처음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차라리 내가 끌고 들어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오해받을 소지만 키우는 걸까? 흠흠, 적당한 표현을 찾아보자면…….글쎄, 보호 중이라고 해두자.



 대낮인데도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는 카페에 오로지 소녀와 나 단 둘뿐이다. 갑자기 분위기 이상해지는데? 착각하진 말자.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니까. 대낮에 카페에 손님 하나 없는 것도, 그 카페에 나와 소녀만 있는 것도 다 의도한 결과는 아니란 말이다.



 모든 건 아침부터 쏟아져 내린 비 탓이다. 우산을 쓰고도 바짓가랑이 젖는 건 어쩌지 못할 정도로 심한 폭우 속을 뚫고 이런 골목길 작은 카페에 일부러 들릴 사람이 있을 리 없어서, 사람 하나 없는 가게를 나 혼자 반나절을 멀뚱히 앉아 지키던 중이었다. 문득 라디오라도 틀까, 하고 생각한 게 정오쯤이었다. 너무 오래 홀로 있던 탓일까.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카운터 위에 MP3 한 대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라디오는 되는 모델이었다. 그 MP3을 집어 들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세찬 빗줄기와 함께 쓸려 내려갈 것만 같은 커다란 유리창가로 다가가 밖을 보면서, MP3 전원을 눌렀다. 이어폰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액정을 보며 전원을 여러 차례 눌러도 MP3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건전지 생각이 났다. MP3 뒷면을 열어보니 건전지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당연히 건전지가 들어있겠지 지레짐작하고 혼자 바보짓을 한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내 눈 앞에 그 애가 나타난 건.



 유리창 너머 나타난, 열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는 가게 앞을 종종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늘색 원피스 위에 흰 블라우스를 걸치고, 분홍색 단화 구두를 신은 차림만 보면 소풍이라도 나가는 양 보였다. 하지만 소녀는 철철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다 맞으며 보도를 따라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내가 소녀를 가게 안에 들인 건,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그 모습이 몹시 처량하고 안 돼 보였기 때문이다.



 가게 안에 들어온 소녀를 보니 그 몰골이 더 안쓰러웠다. 검은 머리칼은 축 늘어져 창백한 살갗에 달라붙어있었다. 몸이 젖어 추운지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일단 몸 좀 닦아야겠다."



 그 와중에도, 젖은 블라우스 아래 하얀 어깨며 팔 살갗이 언뜻 비춰 보이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하늘색 원피스는 펠트 비슷한 것으로 블라우스처럼 속이 비춰 보이지 않았다.



 스텝 실에 마침 나무의자가 있었다. 그걸 꺼내와 애를 앉혀두고, 바로 옆 편의점에 갔다. 젖은 몸을 닦을 수건 서너 장, 비닐우산 하나를 골라 카운터에 내려놓자 계산대를 지키던 알바생 표정이 퍽 이상했다.



 "형, 카페에 수건이 왜 필요해? 애들 우산은 또 뭐에 쓰게. 뭐 사고 쳤어?"
 "아냐, 인마."
 "또 답답하게 이러신다. 얘기 좀 하고 삽시다. 나랑 형, 얼굴 하루 이틀 보는 사이야? 아니잖아."
 "가게나 잘 보고 계셔."



 이딴 거만 눈독들이지 말고. 소위 아는 동생이란 녀석 앞에 놓인 모니터를 힐끗 보며 타박을 놓았다. 답답하게 비좁은 화면 안을 빌빌대며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캐릭터,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들. 게임 중독자인 녀석은 주위에서 뭐래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넉살좋게 웃으며 슬금슬금 눈치만 살필 뿐이지.



 한편으론, 그 한심한 녀석이 형, 형 하면서 엉겨 붙는 걸 놔두는 것이 바로 그 기막힐 정도로 비위 좋은 성질 탓이기도 하다.



 "나 간다. 수고해라."
 "아, 형. 언제 동생 밥 한 번 안 사주나?"



 알았수다. 하도 기가 막혀 대충 대답하고 가게로 넘어왔다. 문을 닫고 가게 안을 향해 뒤로 돌자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내가 꺼내준 의자 위에 다리를 모아 안은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신발은 의자 발치에 벗어두고, 양말 또한 벗어서 신발 위에 놓아둔 채였다. 부끄럼을 타는지, 내가 들어오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혀를 찼다. 이건 마치, 들 고양이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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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그런거죠. 1회보다 2회가 어색하고, 그보단 3회가 더 어색하고;;


 


 암튼 들고양이 소녀와의 썸씽(?)은 내일 다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