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인연살해

2010.09.16 02:44

이웃집드로이드 조회 수:265 추천:2

extra_vars1 미친 빌과 귀신늑대: (2) 
extra_vars2
extra_vars3 145624-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숱한 가정의 재앙 같은 도적놈들!”
 빌의 징 박은 장갑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던 소녀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그녀가 쉽게 나동그라지자 주변의 여성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들은 악명 높은 미친 빌이 자신들을 모두 저 자루까지 쇠인 이상한 전투도끼로 찍어 죽여 버릴지도 몰라 벌벌 떨었다. 뺨을 맞은 여성만이 불꽃같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다짜고짜 저주하다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시론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이에 게드 장로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였다.
 “뭐, 북부인을 이렇게 싫어하면 생존자들에겐 꼬리칠 수 있겠지. 아, 남쪽으로 간다 했던가?”
 빌과 그 동료들은 노예만이 아니라 신입들도 만났다. 활대를 강철로 만든 염소 발 장전식 석궁을 하나씩 가진 그들은 지점의 하역창고에서 노예들과 같이 있었기에 느닷없이 벌어진 사건 앞에서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빌은 그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시끄럽긴 하지만 이 정도 여자들이면 북쪽이나 남쪽이나 나쁜 값은 안 받겠지. 사자. 그리고…….”
 빌은 가장 중무장한 젊은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젊은이는 철판 위에 가죽을 덧붙인 구식 중부 갑옷을 입었다 챙이 달린 개방형 투구는 짧은 길이의 검과 함께 벨트에 매달아 놓았는데, 무장과 분위기로 보아 이 젊은 패거리의 지도자급임을 추측하기는 쉬웠다. 빌은 그에게 질문했다.
 “자네, 모리 놈이 말한 신입 석궁병인가?”
 “아, 예. 틸리라고 합니다. 빌 대장이십니까?”
 지목 받은 병사는 당황했지만 즉각 대답했다. 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공식 명칭은 빌 사이커 보병대위다. 자네가 이 애송이들의 대장인 모양이군.”
 “예.”
 “자네 빼곤 다들 무기가 좀 빈약한데. 시론.”
 “왜?”
 “규율 읊어봐.”
 시론은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감은 채 규율을 하나씩, 차례대로 읊었다.
 “西파롤의 국왕에게 충성한다.”
 “다음.”
 “십오세 미만 미성년자와 오십세 이상 노약자 입단 사절. 간부 제외.”
 “다음.”
 “사람 잡는 실력 보고 채용한다.”
 “다음.”
 “적의 수가 적은데 도망가는 놈은 대장 손에 뒈지기 전에 내 손에 뒈진다.”
 “다음.”
 “우리 중 누가 당하면 나머지가 까러 간다.”
 “다음.”
 “주둥아리 함부로 놀려서 사기 떨어뜨리는 놈은 맞는다.”
 “젠장. 생각보다 많군. 무장 부분만 읊어.”
 “대장 허락 없이 무기나 방어구를 팔아먹는 놈은 내 손에 뒈지기 전에 대장 손에 뒈진다.”
 “그것 말고.”
 “검이나 도끼, 투구, 단총이나 창을 갖춘다. 방패나 갑옷은 있으면 좋다. 석궁 사수는 석궁, 화살 서른, 도끼나 검, 투구를 갖춘다. 방패나 갑옷은 있으면 좋다.”
 빌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검은 비싸니까 손도끼라도 하나씩 장만해줘. 꼭 검을 사고 싶다면 사도 상관없지만. 그리고 무기 값은 월급에서 제해.”
 첫날부터 돈 뜯기게 된 젊은이들의 표정은 결코 좋지 못 했다. 석궁만 해도 돼지 이상의 가격을 부르는 비싼 물건인지라 목돈을 들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원래 계약금은 무기와 방어구 값으로 사라지는 운명이다. 빌은 다음 사안으로 넘어갔다.
 “실전경험은?”
 “저는 오르트만에 종군했습니다.”
 당장 빌의 얼굴이 “거기가 어디야?”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에 당장 부연 설명이 따라붙었다.
 “동북쪽으로 걸어서 보름 거리에 있는 요새입니다. 두 백작이 통행세 문제로 한판 붙었죠.”
 “요즘은 어딜 가나 통행세가 문제군.”
 “그 통행세 문제 때문에 유명해지셨잖습니까.”
 빌은 오물이라도 본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로서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었다.
 “그건 실패했어.”
 “하지만 역사에는 남을 겁니다. 도시 하나를 공략하려고 마음먹은 북부 병대의 지휘관은 빌 대장이 유일하니까요.”
 “그게 지원 동기라면 포기하게. 다신 안 해.”
 북쪽으로 갈수록 도시는 남부의 대도시들에겐 비교도 안 되게 작아져서, 인구가 일만 명만 되어도 상당히 큰 편이다. 하지만 엄연히 도시다.
 그 도시를 상대로 백 명의 전투원이 싸움을 걸었다.
 싸움은 곧 북부인 무장선대 몇 개와 다른 용병대가 합류하면서 그 규모가 조금 더 커졌다. 하지만 끝내 도시의 일부만을 포위할 수 있었던 빌은 도시의 보급로를 차단하지 못했다. 결국 빌과 그의 동료들은 지루한 공성전 끝에 물러나야만 했지만, 마법왕국의 귀족들과 기사들이 시퍼렇게 눈을 뜬 땅에서 치고 빠지기도 아닌 2달이 훨씬 넘는 기간의 공성전을 펼쳤다는 사실은 미친 빌의 명성을 드높였다. 西파롤의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다른 사략수적들도 엄두를 못 내던 일에 홀로 도전했으니 실패했다 한들 전설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지금도 그 도시에서는 미친 빌이란 말이 최고의 악몽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런 모험담을 떠들 기회가 언젠가 오겠지요. 때론 돈도 만질 수 있겠고.”
 “안 한다니까.”
 신입은 별로 상관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언젠가 그런 날이 꼭 온다는 뜻인지 모를 웃음을 흘리곤 그의 옆에 서 있던 여자 노예들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 6명이었는데, 다들 뛰어나진 않더라도 꽤 쓸 만한 얼굴이다. 잘 골랐다는 말이 적절했다.
 “이걸 어디다 파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올해는 남쪽으로 가는 항로를 생각 중이니, 거기서 처분할 수 있으면 해야지. 노예 시세가 안 좋으면 선단에서 대충 부려먹다가 북쪽에 팔아도 돼.”
 “북쪽? 개척민은 건장한 남자만 산다고 들었습니다만.”
 “개척민 노총각에게 팔아치워도 된다. 하지만 더 비싸게 팔려면 생존자 놈들에게 팔아야겠지.”
 “사자의 왕이 저주한 기형아들 말입니까? 본 적은 없지만, 소문대로라면 여자가 너무 아까운데요.”
 긴 설명은 게드 장로의 몫이었다. 그는 낄낄 웃으면서 신입에게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비싸게 팔리는 거야. 돈은 있는데 신체가 불완전한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나? 사지 멀쩡한 여자들을 씨받이로 쓰면 좀 더 나은 후손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만 해. 팔 2개, 다리 2개, 얼굴 하나 달린, 가능하면 치열도 가지런한 자식을 말이야.”
 신입은 당장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고, 노예들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생존자 놈들은 북부인을 싫어할 텐데 거래가 됩니까?”
 “이 동네 사람들은 남부 제국과 왜 무역을 하지? 툭하면 싸움박질 나기 일쑤인데?”
 장로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자 신입의 입이 닫혔다. 바다 건너 이교도들과의 거래는 투키 시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게 있어 부의 원천이었다. 역시 자유도시의 고객 중 하나인 성태양기사단은 성전에 방해가 된다며 입에 게거품을 물겠지만 말이다. 휴전과 개전을 거듭하면서도 남부 제국과의 교역만큼은 끊을 수가 없었다.
 “세상사는 돈과 피로 굴러가는 법이지. 시론. 노예들을 끌고 가. 제2회관에 놔두도록.”
 시론은 빌의 명령에 즉각 행동했다. 그는 빌에게 뺨을 맞고 쓰러진 여성의 턱을 잡곤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장. 얘는 입 안이 터졌는데.”
 “그쯤은 금방 낫는다.”
 “알았어. 곱게 처박아두지.”
 시론은 쓰러진 여성의 오른팔을 붙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워서는 끌고 갔다. 아무 저항 없이 끌려간 그녀를 뒤따라 노예들은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황금 가마를 지고 온 총병 둘이 그들의 뒤에서 따라갔다. 이젠 신입들과 장로, 빌만 남았다. 빌은 신입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환영회는 저녁이다. 그때까지 재단 제2회관에 모여라. 해산.”
 신입들은 잠시 주저했으나 빌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곧 짧은 인사말을 건넨 다음 흩어져버렸다. 빌은 그제야 몸을 돌려 건물 밖으로, 번화가를 향해 걸어갔다. 게드 장로는 그의 옆을 따라 걸으며 질문했다.
 “또 헤매러 가냐?”
 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북부재단도 못 찾는데 자네가 찾을 순 없어.”
 충고에도 불구하고 빌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장로는 다시 말했다.
 “좀 쉬지 그러나?”
 “쉴 수 없다. 20년이 넘었어. 이제 그만 끝내야지.”
 “그렇긴 하지만, 자넨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야. 쉬지 않으면 큰일 나.”
 “그래. 장로가 아니고서야, 후임자에게 계급값 받고 은퇴해야 정상인 나이지.”
 게드 장로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카락이 다 빠져나간 두피를 벅벅 긁어댔다. 빌의 동향 친구인 게드는 빌의 성격을 잘 알았다. 빌에게 군대 일은 별로 안 맞다. 그는 빠른 은퇴를 누구보다 고대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찾아야하니까.
 “그럼 이번엔 어디로 갈 건가? 홍등가? 도박장? 시장바닥? 거지소굴?”
 “언제나 그렇듯, 닥치는 대로.”
 그다운 대답이다.
 남쪽 대륙의 사막에서 좁쌀을 찾아야 한다면, 빌은 그 넓은 사막을 전부 뒤진다. 사막의 주인에게는 협력을 요구한다. 사막을 넘어 말로만 듣던 숲의 나라에 닿더라도. 그를 방해하는 놈은 모두 쓰러뜨린다.
 장로는 빌을 말리길 포기했다.
 “적당히 해두게. 싸움 내지 말고, 비약 좀 쓰지 말고.”
 “내가 쓰고 싶어서 쓰나?”
 “젠장. 첫 단추가 잘못된 거야. 이건.”
 자신이 잔소리꾼 역할을 해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현실은 별로 달갑지 않다.
 “제발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그래야지.”
 “자넨 항상 대답만 그렇지.”
 빌의 대답에 게드 장로는 몇 마디를 더 투덜거리고는 다른 길로 발걸음을 돌려버렸다. 빌은 그 뒷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는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묵직한 투구가 머리를 짓누르는 가운데 더 없이 밝은 햇빛이 빌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번화가의 공기를 만끽했다. 사람이 붐비는 장소는 숲이나 촌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가진다. 그 공기를 좋아해 찾아다니는 건 않지만, 오랜만이라 반갑다. 이 공기 속에 반가운 소식이 있길 바라면서 행하는 산책은 정신건강에 그럭저럭 괜찮은 행위다.
 찢어지는 목소리의 저주만 빼면 기분이 한결 편할 텐데.
 “명성 높으신 전사님.”
 생각지도 못 한 가늘고 고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빌은 누군가 하여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러자 지점 건물 벽에 기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생머리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하얀 피부의 소녀가 킥킥 웃고 있다. 상체에 착 달라붙어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녀의 옷은 목선이 사각형으로 깊게 파여 있어 가슴 윗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목걸이 하나 없이 흰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젊은이들 혼을 빼놓기엔 더할 나위 없이 자극적이다.
 “여인네를 대하시는 태도가 너무 거칠지 않은지요?”
 유창한 북부 언어였다. 빌은 그녀가 방금 후려친 노예를 보고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까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빌은 그녀가 매춘부인지 아니면 숙녀인지도 헷갈렸다. 옷이 간소한데다 장식품도 별로 화려하지 않다. 돈 있는 집 숙녀는 아니다. 북부 여행자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면 매춘부일지도 모른다. 빌은 자신이 아는 투키 시의 매춘부 복장규제 등을 여러 가지 떠올려봤지만 곧 이를 단념했다. 지난번에 이 도시를 왔을 때만 해도, 매춘부에 대한 여러 규제는 유명무실해져 조롱거리가 된 지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그 규제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지켜질리 없다.
 “무슨 볼일이냐?”
 “가련한 소녀가 말을 거는데 겨우 그런 말 밖에 못하시나요?”
 “북부인 거주지는 매춘부 출입금지 구역일 텐데.”
 소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런 규정 안 지킨 지 오래 되었다던데요.”
 빌은 그녀의 대답과 복장을 보아 그녀가 돈 없는 외지 매춘부라 생각했다. 이 근방만을 돌아다니는지도 모른다. 빌은 코웃음을 치곤 그녀에게 충고했다.
 “난 바쁘다.”
 “그럼 도와드리죠.”
 요것 봐라? 빌은 다른 대답을 돌려줬다.
 “관심 없다.”
 “말 상대도 필요 없으신가요?”
 포기하질 않는 모습에 빌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충고는 둘이면 충분하다. 협박의 때다.
 “살다 살다 미친 빌의 말 상대를 자처하는 매춘부는 처음 봤군. 돌았나?”
 북부인에겐 드높은 명성일지라도, 다른 지방에선 미친 빌을 악몽의 대명사처럼 쓴다. 부하들이 가끔 “대장 때문에 여자들이 다 도망간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덜거릴 정도였다. 호기심 등에 의해 빌에게 접근했던 여자들은 빌의 무뚝뚝함이나 주먹, 때론 도끼날만을 직시해야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헤어지게 하는데 재주가 좀 있으시다는 이야길 듣긴 했지요.”
 소녀는 물러서질 않았다. 오히려 빌에게로 한 발짝 다가왔다. 그 순간 빌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그건 본능이다.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 느끼는. 위장에 익숙한 사냥꾼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느끼는 종류다.
 “소녀를 벌써 잊으셨나요?”
 온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투구와 갑옷의 무게마저 잊어버렸다. 사슬갑옷에 눌린 모직 옷에 다 흡수되어야 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착각이 들었다.
 도끼나 검을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녀가 빌의 곁에 선 시점에서.
 “너는…….”
 빌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부하들이 본다면 기겁할 일이다. 실제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소녀의 안전을 염려하던 몇몇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빌이나 그들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빌의 더딘 발걸음보다 빨리 움직였다.
 “가요. 좀 더 즐겁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소녀가 빌의 왼팔을 낚아채 팔짱을 끼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녀의 눈은 웃지 않는다.
 빌의 입이 거칠게 닫히면서,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