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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상자 속 그 고양이는 울고 있었을까

2010.09.13 16:35

윤주[尹主] 조회 수:325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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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한 얘기, 생각나요? 상자 속에 든 고양이 얘기요."



 물론 유명한 얘기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소녀는 미소를 띠곤 얘기를 계속했다.



 "그러고 보니 맨 처음 어딘가 나갔다 왔었죠?"



 대충 짐작이 갔다. 옆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왔을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누가 있었죠? 틀림없이 평소 아는 얼굴이었을."



 소리 내어 대답할 필요는 없다. 여전히 카운터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볼 '아는 동생'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소녀는 대화를 이었다. 대답 따윈 애초에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



 “그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아까 봤던 그대로겠지, 뭐. 지가 어디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더니 즉각 기분 나쁜 비웃음으로 화답해준다.



 “머리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다른 예를 더 들어보죠. 아까 MP3 들으려 했었죠? 제가 오기 전에 말예요. 결국 못 들었죠?”
 “넌 그걸 어떻게 아냐?”



 섬뜩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지른다. 소녀는 배시시 웃었다. 타월을 몸에 두른 그녀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 같고,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만 같아서.



 내가 놀라든 말든 소녀는 상관하지 않는 눈치다. 물론 얘기 또한 차분히 계속했다. 갈수록 기가 막힐 따름이다.



 “당신은 그때 건전기가 분명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실제로는 건전지가 들어있지 않는 데도요. 당신이 만난 그 역시 마찬가지에요. 방금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아나요? 지금쯤 어떤 이유로 이 가게 바로 문 앞까지 와서 막 안을 들여다보려는 중일는지.”



 두말할 것도 없이 식겁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와 문 사이에서 잠시 동안 우왕좌왕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 문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잡는다. 밖에 인기척은 없는 듯하다. 혹시나 싶어 문을 살짝 열어 본다. 잠시 후 입에서 절로 안도하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문 밖에는 ‘아는 동생 놈’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걔 지금은 어디 있지?”



 재빨리 문을 닫아걸고 난 후, 나는 즉시 소녀 쪽을 보며 물었다. 소녀는 너무도 태연히 대답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잖아요. 저도 여기 앉아 있는데.”



 순간 다리가 풀렸다. 아아, 여태 난 뭐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이 소녀 주도하에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쩌면 화장실에라도 앉아있을지 모르죠. 갑자기 일이 생겨 나가진 않았을까요? 여기 앉아 있으면서는 절대 알 수 없어요. 마치 MP3에 건전지가 들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전원 눌러보기 전엔 모르는 것처럼. 혹은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모르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무리인 일도 아니다. 소녀가 얘기한 일은 간혹 있을 수도 있는 사건이고, 그 외에 가판대 정리라든지 하는 이유로 가끔 카운터를 떠나는 등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봤을 때 그가 가게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슈뢰딩거 씨가 상자 속에 고양이가 절반은 살아 있고 절반은 죽어 있다고 말하는 것. 엄밀히 보자면 두 가진 같은 의미에요.  '아는 동생'도 계산대란 그 상자 안에 50% 있다고 할 수 있단 말예요. 어쩌면 그 사람 시점에선 우리 역시."



 소녀의 해설 속에서 홀연히 어릴 적 기억이 떠올려낸 건 전혀 맥락 없는 행동은 아니리라.



 우리가 어렸을 적엔 과학 만화가 꽤 인기를 끌었다. 누군가 한 질을 사면, 친구들끼리 한권씩 돌려 보곤 했으니까.



 소위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처음 본 건 그 책에서였다. 절반쯤 죽고, 절반쯤 산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을지 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긴 주변에 사례가 전혀 없진 않았다. IMF 때문에 실직하신 아버지께선 당신 하루의 절반을 수면으로 때우느라 죽은 듯 지내셨고, 그해 늦가을 갑작스레 치매가 찾아온 옆집 할머니는 아주 가끔을 빼곤 사람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분들도 절반쯤 살고, 절반쯤 죽어 계셨는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론 아니었을지 몰라도.



 순진무구한 시절 그 책을 읽고 난 후로 나는, 과학자들이란 '절반쯤 살고 절반쯤 죽은 상태'란 걸 이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나 또한 상자 속 고양이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곧바로 과학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여겼다.



 그 생각대로라면 나는 적어도 반쯤 과학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장래 희망 란에 과학자라고 적어 내는 아이들은 모두 반쯤은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생에 시작이 있다면, 그건 꿈꿀 때부터다. 멋진 말이니까 어딘가 적어 두라고.



 지금의 나는 과학자완 지구와 시리우스별만큼이나 간격이 있다. 중학교 땐 지구와 화성 거리만큼 멀어졌던 과학자의 꿈은, 다시 고등학교 들어 해왕성궤도만치 튕겨나가 버렸고 모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한 이후로는 아예 태양계를 벗어났다 할 수 있겠다. 이제는 과학자가 될 확률은 눈곱만치도 없고, 도리어 이상한 꼬맹이에게서 실험용 고양이 취급이나 받고 있다…….



 "말도 안 되잖아. 그건."



 방금 전 대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치솟는 분노를 애꿎은 소녀에게 돌려 본다.



 "내가 절반 있다고? 어디서부터 절반 말이야? 발에서 허리까진가? 허리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혹시 좌우 절반은 아니겠지!"
 "비꼬지 말아요. 실은 저도 그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 말을 하고 싶었다고? 소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게 제 내력뿐인가요? 당신이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 가게 안에 우리가 있단 걸,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알아요?"



 이제껏 소녀가 꺼냈던 이야기 가닥 하나하나가 조금씩 모여들어간다. 소녀는 그 가닥들을 한데 모아 뭉치로 만들곤, 거기에 심지를 꽂아 불을 붙였다.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 고양이가 울기라도 하기 전에는."



 아뿔싸!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딱 두 가지였다. 조금 전 대화에 실린, 고양이의 카운터펀치 한 가지, 그리고 슬슬 이야기가 끝나 간다는 사실 또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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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전 여전히 완결을 서툴게 내립니다ㅠㅠ


 


 그리고 이제 다음 회면 완결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끝은 가벼운 정리로 맺으려 합니다....뭐 평가는 내일이면 알 수 있겠습니다만;;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