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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09 06:23

윤주[尹主] 조회 수:292 추천:2

extra_vars1 #3. 귀신들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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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요, 계속하시겠어요오?"



 물론이지! 대답 대신, 현아는 배트를 내려든 채 재빠르게 '사랑하는 딸' 품으로 파고들려 했다. '사랑하는 딸'이 뒤로 물러섰기 때문에 뒤이어 현아가 풀스윙으로 날린 배트에는 아무 것도 맞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는 딸' 높은 콧등 끝이 차가운 배트에 잠시 동안 살짝 스쳤을 뿐이다.
 '사랑하는 딸은 바로 창을 바로잡아 연달아 지르며 현아를 밀어붙였다.



 "야구 배트, 따위론, 이기지, 못할 걸요오!"



 서너 번 찌르고 들어오다 마지막에 좌에서 우로 크게 휘두른다. 현아는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뒤이어 '사랑하는 딸'이 거리를 좁혀 들어오자 깜짝 놀라 배트를 휘두른다. 어째서 파고드는 거지? 배트를 휘두른 덕분에 일단 '사랑하는 딸'이 돌진하던 걸 멈추긴 했지만 현아는 왜 그녀가 거리 이점을 버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붙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현아가 혼란해하는 사이, '사랑하는 딸'은 또 연달아 공격을 해온다. 이번엔 뱀처럼 빈틈이 생기는 어느 곳이건 사방 군데서 찌르고 들어와 현아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며 전진해 온다. 적당히 피하고 때로는 막아 쳐내며 뒷걸음질 치던 현아는 자신이 구석으로 몰리고 있단 사실을 깨닫곤 황급히 몸을 빼내려 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사랑하는 딸'은 또다시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저리 가!"



 현아는 또 한 번 배트를 세차게 휘둘렀다. 이번엔 뭔가 제대로 맞았단 느낌이 전해졌다. 그녀일까? 미처 보진 못했지만 현아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딸'이 맞았다면 최조한 신음이라도 흘렸어야 했다. 어쨌거나 '사랑하는 딸'은 또다시 멈칫거렸고, 현아는 다시 숨을 고르곤 이번엔 제 쪽에서 거리를 좁히고 들어왔다.



 "!!"



 별안간 '사랑하는 딸'에게 뛰어들던 현아가 별안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배트를 두 손으로 쥔 채 현아는 경계하듯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사랑하는 딸'은 다소 안타까워하는 듯 말했다.



 "언제 알았죠오? 처음부터였던 것 같진 않았는데에."
 "방금 전부터."



 거리를 둔 채 지켜보는 현아에게 '사랑하는 딸' 주위를 가까이 맴도는 푸르스름한 불꽃들 서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자유롭게 사방을 돌아다니면서도 그 불꽃들은 '사랑하는 딸' 주변을 떠나려 들지는 않았다. 이유는 그녀가 옷에 단 작은 카메오 때문인 듯하다. 불꽃 모양이 그려진 카메오 위에는 '사랑하는 딸' 주위를 맴도는 불꽃들과 똑같은 모양과 색을 가진 불꽃이 서려 있었다.
 '사랑하는 딸'은 넉살좋게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다.



 "급하게 진도 빼려다 홀랑 타 버릴지도 몰라요오?"
 "어머, 미안하지만 나도 애인 있거든. 네가 심장을 갈기갈기 찢었던."



 현아가 비로소 자신이 여기 온 목적을 밝혔지만 '사랑하는 딸'은 일부러 모른 척했다. 이선과 현아가 어떤 사이란 것 정도는 그녀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현아가 찾아온 게 복수 때문이란 것 역시도 그녀가 여기 발을 들이밀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이 궁금해 하는 건 단 한 가지, 그녀가 자신들과 같아질 수 있는지 없는 지였다. 그녀는 슬쩍 추파를 던져 보았다.



 "어때요, 한 때 불장난일 뿐인 거얼."



 '사랑하는 딸'이 하는 말에 현아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그녀에게 한 때 불장난인 사랑은 없다. 한 번 사랑하면 죽을 때까지, 자기 손에서 놓지 않아야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딸'이 건넨 제안은 역겹고 혐오스런데다 무책임하기까지 한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비난하는 대신, 이 사랑의 폭군은 제 생각을 우회적으로 돌려 말했다.



 "됐네요. 어차피 넌 내 취향 아냐."



 피식, 하고 '사랑하는 딸'은 웃었다. 상대방은, 현아는 자신과 너무나도 다르다. '사랑하는 딸' 자신이 차별 없는 사랑을 얘기하면, 현아는 취향을 이야기했다. 다시 그녀가 숭고한 희생을 이야기하면, 현아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결코 손에서 놓지 않는 지독한 독점욕을 말했다. 서로 전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사랑하는 딸'은 생각했다. 그녀에게 자기 말이 통할 리 없다. 본래 현아를 쉽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왔던 그녀는 이제 슬슬 물러서야 할 때라고 여겼다. 상대는 예상보다도 훨씬 더 고집불통이었다.



 현아는 다시 배트를 고쳐 잡고 진지하게 나가려 했지만, 갑자기 '사랑하는 딸'은 창끝을 내려들고 도도하게 선 채 현아를 보았다. 조금 열린 입술로 노래인지, 시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가 새어나온 건 그 때였다.



 "혼은 흐늘흐늘 하늘하늘
 백은 보슬보슬 부슬부슬
 혼은 태우고 태워 올려서
 백은 녹이고 녹여 내려서……."
 "뭐라는 거야?"



 현아는 별 희한한 짓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그녀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불과 '사랑하는 딸'로부터 몇 발자국 앞에서 현아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패턴도, 색채도 없는 바닥이 왜인지 조금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분명 바뀌었다. 그렇다기보단 바닥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치사한 년!"



 상황을 파악한 현아가 뒤로 물러섰다. '사랑하는 딸'은 어느새 자기 뒤로 다가온 '적막' 위로 올라타 현아를 바라보며 승자의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상대할 시간이 없네요오. 대신 선물 하나 드릴게요오. 좀 상대하기 까다롭겠지마안, 그냥 제가 제공하는 작은 오락거리라고 생각해 주세요오."
 "야! 너 지금 당장 안 내려와! 빨리 와! 돌아오란 말이야!"



 현아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사랑하는 딸'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유유히 떠나갔다.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현아 앞에 '사랑하는 딸'이 불러낸 정체모를 귀신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기에도 거대한 존재였다. 현아 정도는 한 입에 삼켜버릴 정도 커다란 입에선 쉴 새 없이 혀를 날름거리고, 성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도 다 안을 것 같지 않은 두꺼운 몸통으론 똬리를 튼 채 고개만 꼿꼿이 세워 든 상태로 현아를 노려본다. 크다는 것 외에 보통 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가 전부 열 개나 된다는 정도일까.



 현아는 스무 개나 되는 소름끼치는 눈초리들을 되받아쳐 눈싸움을 벌였다. '사랑하는 딸'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몰아세우지 못하고 그냥 보내준 게 못내 아쉬웠다. 상대는 생각보다 노련했다. 거기에 현아는 알지도 못하는 이상한 술수를 쓴다. 불꽃이라던가, 눈앞에 이 뱀이라던가. 단순히 홧김에 무작정 덤벼들기엔 그 영악한 꼬마는 제법 까다로운 상대였다.
 물론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겨우 광신도쯤에게 꼬리를 내린다면 폭군이란 이름이 아깝지.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 고함 소리를 신호로, 열 개 머리를 가진 뱀은 일제히 현아에게 덤벼들었다. 현아는 들고 있던 배트를 꽉 쥔 채 그것에 정면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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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이 끝났네요...


 그냥 마음이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