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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별의 음유시인

2010.10.07 08:34

민희양 조회 수:327 추천:2

extra_vars1 (마비노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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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칙한 회색빛의 벽돌. 이 벽돌들로 지어진 이멘마하 성. 내가 사는 곳이다. 나는 성주의 딸로 어렸을 때부터 줄곧 성에서만 자랐다. 엄격한 방침으로 성 밖으로 나가본 적은 없다. 바깥 이야기는 종종 사교모임에 나가시는 어머니에게 조금씩 듣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성의 생활에 불만은 없다. 쭉 이곳에서 살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너도 곧 시집 갈 나이구나. 내가 아는 귀족 중에 점찍어 둔 청년이 있으니 한번 만나게 해주마.’
  아침 식사시간에 아버지의 말씀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일단 대답은 ‘알겠어요. 라고 했지만 어디도 나간 적이 없는 내가 한 번의 인연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다니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



   어디선가 감미로운 멜로디가 들린다. 일주일에 한번 씩 오는 악사에게 음악을 배우긴 하지만 저런 음악은 처음이다. 규율에 어긋나 있으면서도 잊으려 하면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선율. 음악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발코니로 발을 내딛는다.



   “저기…그 것은 무슨 음악인가요?”
   밑에서 알 수 없는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에게 물어본다. 그 남자는 내 목소리에 답하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나를 응시하였다.


   “이 곡은 ‘당신을 기다리며’ 라는 곡입니다. 지금 방금 제목을 생각해냈습니다. 한마디로 즉흥곡이죠.”
   “즉흥곡인데도 참 아름답군요. 그 악기는 무엇인가요?”
   이번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건 ‘리라’라는 악기입니다. 음유시인들이 쓰는 악기죠.”
   “음유시인?”
   “네. 나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을 음유시인이라고 하죠. 저도 음유시인 중 한사람입니다."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이 곳엔 어떻게 오셨나요?”


   내가 바깥세상을 잘 모른다는 것을 눈치 챈 것처럼 체념의 포즈를 취한 뒤 결심이라도 한 듯 자세를 고쳐 편하게 선다.


   “음유시인들은 발이 가는대로 강에 물이 흐르듯 어디든지 다닙니다. 오늘은 이 근처를 지나다가 아름다운 성이 보이기에 잠시 들렀고 당신을 만난 것입니다.… 그나저나 성에서 아주 곱게 자라신 것 같군요.”
   “네. 저는 이 성에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답니다.”


   음유시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그렇다면 당신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매일 이 시간에 찾아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신가요?” 라고 묻는다.


 


   약간의 생각에 빠진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좋아요. 저에게 바깥세상에 대해 알려주세요.”
   기쁜 표정을 지으며 그는 뒤돌아선다. 천천히 내려가며,
   “오늘처럼 별이 뜨는 이 시간이 이야기를 하기엔 가장 좋습니다.” 라고 혼잣말 비슷하게 말한다.



   그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바라본다. 남자와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 본 것은 처음이라 약간 설렌 느낌이었다.


 


 


 


   다음날 같은 시간 그는 약속한대로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숙녀분. 오늘부터 당신께 이야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히 인사를 한 뒤 천천히 여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성 밖은 많은 도시와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기도 하고 슬픈 일이 있기도 하죠. 도시에는 여러 가지 장소가 있지만 그 중 최고의 장소는 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으로 저속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곳입니다……”



   그는 한 밤이 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는 일 년 넘게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언제나,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나 눈이오나 와주었다. 그는 나의 인생의 일부가 되어갔다. 그러는 동안 나의 강력한 반대로 결혼은 취소되고, 그가 오는 시간에 있는 많은 일과들은 연기되었다.


 



 


   그는 항상 가기 전에 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별은 이 세상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과 이별을 할 때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하지만 떨어진 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별은 지상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깃들기 위해 떨어지는 겁니다.” 라고 말하곤 하루에 이야기가 끝날 때 마다 별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별의 음유시인’ 이라고 불렀다.


 



 


   1년이 조금 넘은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내일은…특별한 날이니 제가 매일 오는 뜰에 나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매일 만난다곤 하지만 막상 얼굴을 가까이에서 본다고 하니 긴장이 되면서도 기쁜 마음이 든다. 사실 그녀는 언젠가부터 그를 마음 한편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취소한 것도 그가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를 만나는 시간에 방해되는 것을 모두 미룬 것도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일은 그를 꼭 잡겠어.’



   다짐을 한 그녀는 다음날 만날 것을 기대하며 준비를 했다.


 



 


   별이 약간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성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빨리 내려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미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셨군요. 가까이서 보니 더욱 아름다우시군요.”
   약간 듣기 쑥스러운 말을 한다.
   “과찬이에요. 당신도 멋지신 걸요. 그나저나 아래서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대감에 부푼 나머지 먼저 물어본다. 그는 그의 앞에 놓인 삼각대 위의 깔때기 모양의 물건을 가리키며 말한다.
   “오늘은 이것을 통해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나오게 했습니다. 혹시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깔때기 양 끝에 투명한 유리가 있고…뭔가 특별한 것 같다.



   “전 잘 모르겠네요. 무엇인가요?”
   “네. 그것은 망원경이라고 합니다. 멀리 있는 것을 볼 때 쓰지요. 이리 와보시겠습니까? 자세히 보여드리죠.”



   무엇일까 궁금해 가까이 선다.
   “이쪽을 좁은 쪽을 보시면 됩니다.”



   “―――”
   망원경을 통해 마을을 바라보니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다.



   “그럼 이제 하늘을 볼까요?”
   망원경을 하늘 쪽으로 올리자 밤하늘의 별들이 크고 자세하게 보인다.



   “예쁘네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반짝이는 별들의 강이다. 감상에 젖어 한참을 바라보니 그가 말한다.



   “이제 시간이…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제 이쪽별을 봐주십시오.”
   크고 밝은 별이 있다. 그 옆에 작고 희미한 별이 있다. 그 둘은 너무 대조가 돼서 약간 마음이 아프다.



   “그 두 개의 별이 중요한…별입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그 크고 아름다운 별은 당신의 별입니다.…그리고 그 옆의 작고 초라한 별이…저의별입니다.” 라고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로 설명한다.



   “제가 예전에 한말을…기억하십니까? 별 하나하나는 우리사람들과 이어져있다고…떨어져서 소중한 사람에게 간다고…”
   한동안 말이 없다. 나또한 그 두 개의 별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저의별은 처음부터…당신의 별과 만날 운명이었습니다.…지금처럼요.”
   그는 나의 목에 펜던트를 걸어준다.



   그 순간 작고 희미한 별이 사라지더니 하늘에서 유성우가 내린다.
   “제가…마지막으로…음유시인의 인생을…당신과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갑자기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


 



 


   “―――”
   그가 별을 바라보며 누워있다. 나는 그의 몸을 나의 눈물로 적실 수밖에 없다는 것에 실망을 한다.



   “당신을…별의 음유시인을…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준비해 두었던 반지를 그에 손에 끼워주며 그의 눈을 감겨주고 그의 품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