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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14 04:21

윤주[尹主] 조회 수:280 추천:1

extra_vars1 #6.그림자의 군주, 그리고 해와 달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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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과 현아가 꿈꾸는 동안, '사랑하는 딸'은 그녀들을 상대로 형언하지 못할 기괴한 의식들을 벌였다. 몸이 산산이 찢겨 나갔다 다시 붙고, 이어졌던 것들은 끊어지고 끊어졌던 것들은 다시 이어졌다. 피와 살점이 튀는 끔찍한 광경을 한가운데 두고서, 네눈박이 귀신들은 무명천을 흔들며 춤추고 꽹과리를 시끄럽게 치며 노래 불렀다. 거실에 있던 마술사까지도 방 안이 끔찍이도 소란스럽게 느껴져 무슨 일인지 보려고 방에 들어가려다가 문 앞에 지키고 선 귀신들에게 가로막혔다.



 "지금 들어가면 부정 타 모든 것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귀신들은 그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마술사를 쫓아냈다. 말하자면 이선과 현아는 방 안에서, 의식을 잃고 또 마술사의 도움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들 몸을 전적으로 내맡긴 꼴이 되어 버렸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채로도 여전히 숨 쉬는 현아 머리를 보며 '사랑하는 딸'은 속삭였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죠오."



 이번엔 똑같이 몸통에서 분리된 이선 머리를 보고 또 속삭인다.



 "당신은 어떤 사랑이라도, 심지어 강압적이고 상처 주는 사랑마저도 그저 감내할 수 있다고 했고요오."



 '사랑하는 딸'이 이선을 마주친 건 그녀가 이선을 붙잡아 심장을 산산 조각낸 그 때 뿐이다. 이선과는 아무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그녀가,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전 당신들을 예전부터 알았었죠오."



 비로소 '사랑하는 딸'은 그들에게 자신에 대해 고백하기 시작한다. 이선과 현아에겐 들릴 리 없건만, '사랑하는 딸'은 두 사람이 의식을 잃은 이 기회를 빌려 자신이 두 사람에게 건네고자 했던 말을 털어놓았다.



 "당신들은 사랑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소중한 감정을 오로지 서로에 대해서만 쏟았어요오. 당신들 틈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든단 건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죠오."



 그래서, 조금 질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려다가 '사랑하는 딸'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질투했기 때문에 두 사람 관계에 흠집을 낸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맺은 강력한 관계에 상처를 주려 했던 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모든 귀신들과 공유하는 그녀의 이상을 위해서였다.



 "이 세계의 기준이라는 당신들, 당신들 두 사람만 바뀌면 세상 또한 바뀔 거라고 생각했어요오. 당신들이 서로에게서 눈을 돌려, 그 같은 사랑을 주위 모든 사람에게로 향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죠오. 그건 정말이지, 행복한 환상이었어요오."



 의식은 완료되었다. '사랑하는 딸'은 손을 재빠르게 놀려 마지막 정리를 서둘렀다. 달이 가진 심장 절반을 해를 위해 뛰도록, 그리고 두 사람 모두에게 비어버린 분만큼은 '사랑하는 딸' 자신의 그림자로 채워 버리자.



 "이제 당신들은 함께 웃고 떠들 수 없어요오. 함께 본 것을 이야기 나눌 수도, 같은 음악을 들으며 공감하지도 못해요오. '혼인'이란 주술은 그러한 것. 서로가 서로에 대해 더욱 가까워질수록, 서로에 대해 보다 더 무관심해지는 것. 그럼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서로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겠죠오?"



 모든 게 끝이 나자 '사랑하는 딸'은 허리에 두른 검은 천을 풀어 이선과 현아 두 사람에게 덮어 주었다. 처음에 허리까지 덮었다가 서서히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덮는다. 완전히 두 사람을 덮기 전, 사랑하는 딸은 이선과 현아를 번갈아 보았다. 먼저 이선을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이제 낮 동안은 자유롭게 살 수 있겠지만 밤 동안은 상대를 위한 관상용 인형이 되겠죠오."



 마찬가지로 현아를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밤 동안은 지금처럼 멀쩡하게 살겠지만 낮 동안은 몽유병자처럼, 꿈속을 헤매고 다니게 될 거에요오."



 다만 완전히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시간, 혹은 해가 서산 너머로 모습을 채 감추지 못한 저녁 시간 잠깐 동안은 두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만남의 시간이 될 테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사랑하는 딸'은 검은 천을 두 사람 머리끝까지 덮었다. 귀신들은 앞서서 미리 자리를 떴다. 방을 뒤덮었던 붉은 천은 아직 걷지 않은 상태다. '사랑하는 딸'은 느긋한 걸음으로 방을 나설 참이었다.



 그때 탕, 하고, 그녀 등 뒤에서 결코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랑하는 딸'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의식을 치루는 동안 옷 또한 찢겨져나간 탓에 완전히 벌거벗은 현아가, 언제 챙겨왔는지 자신의 기병총을 겨냥한 채 '사랑하는 딸'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은 문득 저릿한 느낌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이 나는 자리에 손을 대어보니 뜨끈한 붉은 액체가 그대로 묻어나왔다. 설마하니, 하면서 '사랑하는 딸'은 현아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애초부터 잠들지 않았었단 건…가요오?"
 "네 말대로,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었어."



 세상에나. '혼인' 의식에 따르는 고통을 알기에 '사랑하는 딸'은 현아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지독한 아픔을 지금까지 꾹 참고 있었던 걸까? 대사제가 아닌 다음에야 애초부터 미친 사람 아니고선 끝까지 제정신으로 지켜볼 수 없다는 그 끔찍한 광경을, 그녀는 온전한 상태로 전부 보았던 걸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사랑하는 딸'이 현아를 바라보았다. 현아는 단 한 마디로 그녀의 의심 여지를 깨끗이 날려 보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둘께. 난 여전히 이선이만을 사랑해. 그게 언제든, 그녀가 무엇을 하건. 그녀도 나에 대해선 마찬가지고."



 그래, 결국 당신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지. 사랑하는 딸은 씁쓸히 미소를 흘리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문득 그녀의 두 눈에 창 밖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달이 보였다. 아, 저 달빛! 이 모든 걸 마쳤을 때가 하필, 현아가 눈뜨는 그 외롭고 어두컴컴한 시간만 아니었더라도…….



 '사랑하는 딸'이 마지막 숨소리를 내었던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선은 겨우 눈을 떴다. 처음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유난히 눈이 아프다고 여겼다. 그러다 자신이 '사랑하는 딸'에게 심장이 빼앗겼던 걸 떠올렸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익은 가구들, 좀 과도하게 푹신푹신하다 생각되는 매트릭스. 이선이 눈을 뜬 그곳은 다름 아닌 자기 방이었다.



 이상하게 생각될 만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딱 두개 있긴 했다. 하나는 자신이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 또 하나는 자기 옆에, 역시 벌거벗은 채 앉아 있는 현아가 있단 것.



 "안녕, 일어났어?"



 현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넸다. 이선은 잠시 고민하다가 별안간 얼굴을 붉히고는 이불을 끌어당겨 눈 아래를 가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현아에게 이선은 부끄러운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설마, 한 거야?"
 "무슨 소리야, 자다 일어나서."



 현아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선은 착각이었나 하고 긴장을 풀었지만, 스스로 그런 착각을 했다는 게 오히려 더 부끄러웠기 때문에 머리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숨어 버렸다.
 그런 그녀 귓가에 현아가 덧붙인 말이 들려왔다.



 "했으면 또 어때. 애인 사이에."



 곧바로 현아는 이선이 던진 베개를 맞고 크게 한 번 휘청거려야 했다. 이불에서 빠져나온 이선은 귓불까지 빨개져 현아를 쳐다보았다. 그런 이선을 보고 현아는 또 웃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두려워 웃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워 마냥 웃었다. 될 수 있으면 '사랑하는 딸'이 말한 그 순간, 자신이 인형처럼 변하고 이선은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진 행복해지고 싶었다. 이기적이지만, 그게 어쩔 수 없는 그녀 자신의 성격이었다.


 


 "어? 저기 하늘 좀 봐!"



 문득 창밖을 보던 이선이 놀란 듯 말했다. 현아도 그녀가 가리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밤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 해가 산 너머에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을 새벽 시간이지만 밖은 대낮처럼 환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 곳곳에서 새하얀 빛줄기 수십 개가 땅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이선과 현아는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들이 방에서 본 하늘 한 군데서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 사방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가득했다. 마치 돔 형태 천장이 군데군데 무너져 그 틈새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듯이, 알 껍데기가 갑자기 깨어지며 그 안으로 바깥 빛들이 삽시간에 밀려들듯이 그녀들을 둘러싼 온 세상이 어딘지 음울해 보이는 빛줄기들의 침공을 받고 있었다. 이선은 두려운지 현아에게 꼭 달라붙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게 무서운 건 현아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는 빛줄기 세례 앞에서 이선은 겨우 입을 열어 떨듯이 말했다.



 "몰라, 이거…….내가 잠든 사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당황스러운 건 현아 역시 마찬가지어서, 그녀 또한 이선이 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아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다, 이선에게로 시선을 돌려 빤히 그녀 얼굴을 들여 보곤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아무것도 몰라도 돼."
 "응?"



 이선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 고개를 돌린 순간, 현아의 입술이 그녀 입술로 포개져왔다. 처음엔 깜짝 놀랐던 이선은, 이내 현아에게 순응해 그녀 하는 대로 제 몸을 내맡겼다. 진한 키스를 하면서 현아는, 머릿속으론 온통 이런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몰라도 돼, 너는. 그저 행복하게만 지내면. 이제는 내 것 아닌 대낮의 거리를 네 마음껏 배회하면서, 아무 신경 쓸 것 없이 그저 행복하길 바랄께.



 그날, 두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은 그 진한 딥키스와 함께 끝이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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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로 <당신이 잠든 사이> 본편을 마칩니다. 읽어 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ㅎㅎ


 아직 여담으로 한 편 더 남아있긴 하지만 그건 뭐 보충 개념이니....사실상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라고 보면 될 거 같습니다.


 뭐....시원섭섭하네요. 이제 읽어주실 다른 분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 주실지, 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남은 편은 내일 또 올리기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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