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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12 04:16

윤주[尹主] 조회 수:235 추천:1

extra_vars1 #5. 사랑하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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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하는 딸


 


 한때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칭송받았던 은빛 기병총은 여러 사람 손을 타고 비로소 현아에게까지 왔다. 현아는 그 총을 장롱 안에 팽개치고는 이내 잊어버렸다. 총이 필요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현아는 평생 자신이 이선을 위한 전사로 싸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랬었는데…….



 "이번엔 숨어있어도 소용없어."



 탕, 소리와 함께 어둠 속 저편에서 무언가가 땅바닥으로 풀썩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주변은 마치 원숭이 우리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시끌벅적했다. 신기한 일이다. 본래 귀신들에겐 감정도, 사고도 없기에 공황 역시 없어야만 하는데도.
 탕. 또 한 발 현아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어김없이 살기는 귀신 하나를 쓰러뜨렸다. 아니, 하나가 아니다. 근처에 있던 서넛이 한꺼번에 그 기병총 앞에서 생명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현아는 그들이 떨어진 바닥에서 뭔가 푸르스름 빛나는 연기 줄기 서넛이 비틀거리며 줄을 지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현아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혼이 타오르고 있어……."



 한 녀석이 혼 불이 오르는 광경에 취한 현아를 등 뒤에서 몰래 덮치려 했다. 그가 현아 가까이로 다가갔을 때 그녀 손에 들린 기병총은 전신에서 새하얀 빛을 일제히 쏟아냈다. 너무도 눈부신 그 빛을 귀신은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었다. 총을 든 현아는 그 빛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서 바로 자세를 잡아 근처까지 다가온 녀석을 주저 없이 쏘았다.



 중얼 중얼중얼…….
 중얼중얼 중얼…….



 작지만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현아는 그 소리가 왠지 기분 나빴다. 탕, 탕 하고 두서너 발인가가 웅성거림을 향해 발사되었다. 하늘로 피어오르는 혼 불은 예닐곱 종이나 되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한 번에 모두 죽일 수도 있어어, 뭐 이런 건가요오?"



 일방적인 폭력을 참지 못하고 비로소 왕, '사랑하는 딸'은 모습을 드러냈다. 일전에 보았던 큰 창을 들고서, 또다시 커다란 개 적막에게 시중을 받으며 우아하게 자기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랑하는 딸'을 현아는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사랑하는 딸'이 창을 들면 자신을 찌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리고는 현아는 재빨리 은빛 기병총을 들어 눈앞에 있는 소녀를 정조준 했다. 장총치고는 짧고, 권총치곤 지나치게 긴 그 아름다운 철물을 '사랑하는 딸'은 눈으로 훔쳤다.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장식 없이 세련되게 잘 빠진 은빛 총신에는 옛 장식 서체와 유사한 낯선 언어가 적혀 있었다. 총 주인인 현아는 그 글씨를 읽을 수 없다. 우스꽝스럽게도 총신에 쓰인 글씨를 읽을 수 있는 건 총구 앞에 놓인 소녀뿐이었다.



 "'이 기병총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게 바로 그 전설적인 총인가보죠오?"
 "이 언어를 알아?"



 현아가 반문하자 '사랑하는 딸'은 씨익 웃었다.



 "당연하죠! 제가 모르는 마술은 없답니다아. 왜냐며언, 제가 바로 이 시대의 대사제기 때문이죠오."



 확인했다. 그것도 본인 입으로 직접. 현아는 치밀어 오르는 조바심을 애써 억눌렀다. 흥분하면 안 된다. 지금 우위에 있는 건 자신이지만, 언제 저 꼬맹이가 지위를 빼앗아갈지 모른다. 긴장했기 때문에 다음 순간 현아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네가, 대사제란 말이지?"
 "물론이죠오."
 "그럼 넌, 할 수 있어? 심장을 원래대로 고치는 일말이야."
 "심장이요오…….아, 그 여자 걸 말하는 거군요오?"
 "그래, 그녀 말이야. 그러니까 제발 닥치고 내 말 들어."



 홧김에 현아는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사랑하는 딸'은 입을 다물긴 했지만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는 여전했다. 도리어 총을 든 현아가 불안불안해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기어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야, 꼬맹이 너. 잘 들어. 네가 말한 그 얘는 이선이라고 해. 내가 사랑하는 친구고, 또 내가 지켜줘야 할 태양이었어. 그리고 네가! 네가 다 망쳐 버렸고!"



 '사랑하는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총구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어떤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 바닥을 드러내놓는 계기, 그래서 '사랑하는 딸' 자신이 마음속에 파고들 틈을 내놓을 계기를 음흉하게 노리고 있었다. 일단 틈이 생기면, 그녀는 교묘한 말과 환상으로 틈을 벌리고 오래된 상처를 헤집는다. 그것이 현실에선 결코 낫지 못할 병이란 것도 이해시킨다. 상대가 그 수법에 걸려 넘어가면, '사랑하는 딸'은 비로소 상대를 자기 품에 끌어안는다. 영원한 어둠, 모두 잊어버리는 어둠, 상처 따윈 받지 않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어둠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여전히 틈을 기대하면서도 그녀는, 한편으론 현아가 하는 얘기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난 번 만남이 서로의 차이만을 느끼게 했던 것이라서였을까. '사랑하는 딸'은 어째선지 현아가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넌 뭐가 사랑인지 몰라. 그게 뭔지 알기엔 넌 겉도 속도 전부 다 너무 어린걸! 넌 사랑이 따스하단 건 알지만 그걸 얻기 위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 진 알지 못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익숙할지 몰라도 단 한 사람에게 사랑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 언제나 칭찬받고 격려해주는 사랑은 경험해 봤겠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 적은 없었을 거야. 어리광쟁이 사랑이란 게 다 그렇지. 가끔은 말이야, 상처를 보고 피를 봐서라도, 상대가 고통 받고 내가 좌절하는 한이 있어도! 기어이 손에 얻고 싶은 사랑도 있는 거라고! 알겠어?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다 그래! 귀신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생명이란 송곳니 깊숙이 품은 맹수들 것이란 사실을!"



 몸에 있는 힘을 전부 쥐어 짜내듯 으르렁대며, 분노를 드러내며, 슬픔을 터트리며 현아가 자기가 가진 모든 감정을 전부 토로했을 때, '사랑하는 딸'마저 그 기세에 위압되어 제자리에 선 채로 경직되었다. 그런 식으로 난폭하게 말하는 사람을 그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생명 가진 모든 것이 맹수이며, 맹수는 빼앗기 위에 산다는 식의 말을 그녀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다른 사람 입에서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사랑하는 딸'은 절실히 체감했다. 이 여자, 현아는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이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사랑하는 딸'은 뭔가를 결심했다. 현아가 든 총구에 손을 올리자, 방금 전까지 가볍게 떨리던 총이 멈칫거렸다. '사랑하는 딸'은 총구를 가볍게 밀어 자기 눈앞에서 치웠다. 그렇다 고해서 조준선으로부터 완전히 피한 건 아니다. 도리어 그녀는 현아가 든 총구를 제 심장을 향하도록 놓았다.



 조금 놀란 현아에게 '사랑하는 딸'이 말했다.



 "저와 당신은 분명 달라요오. 생김새도 다르고, 옷 입는 취향도 다르죠. 손에 든 것도 다르고 심지어 서로 쓰는 언어마저도 다른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에요오."



 동양식 붉은 드레스와, 캐주얼한 재킷에 청바지. 커트해 정리한 머리와 길게 늘어뜨린 머리. 창과 기병총. 어째서 이제야 깨달은 걸까 싶을 정도로 자신과 상대가 확연히 대비된단 사실을 현아는 '사랑하는 딸' 말을 듣고선 알았다.



 "당신이 하는 말은 제게 와 닿지 않고, 제가 하는 말은 당신에게 가닿지 않았죠오. 그런 저라도 딱 한 가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이 있어요오."



 사랑, 하고 그녀는 현아에게 답을 속삭였다. 현아는 그녀에게 얼굴이 닿지 않도록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사랑하는 딸'은 그저 웃었다.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단 말만은, 저도 알아들었어요오. 그러니 물을께요오. 사랑하는 신부를 위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걸 해줄 수 있죠오? 대답하세요. 찢겨진 심장을 돌려놓는 건 웬만한 희생 가지곤 불가능한 일이니까아."
 "예를 들면?"



 현아가 '사랑하는 딸'에게 물었다.



 "예를 들면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 거지? 하늘에 별을 따와야 할까? 무지개 끝에 묻힌 보물이라도 캐올까? 저 먼 나라에 있다는, 바닥이 없는 호수 밑바닥에서 조개껍질이라도 건져올까?"
 "설마요. 그렇게 까진 필요하지 않아요오."


 


'사랑하는 딸'은 깔깔대며 웃었다. 현아는 스스로 바보가 된 것 같아 얼굴을 붉혔다.
 '사랑하는 딸'은 웃음을 멈추고 정색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이 어느 정도로 각오하고 있는지는 잘 알았어요오. 제가 요구하는 건 그것들보단 적은 희생이에요오. 어쩌면 훨씬 큰 희생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마안.
 이스 계통 현아 씨. 당신은 신부를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죠오? 설령 신부를 살리기 위해서 당신은, 자기 삶의 절반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참인가요오?"



 대답은 금세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은 현아가 그 문제를 놓고 주저하고 있지 않단 걸 그녀 표정에서 읽었다. 현아가 금방 대답을 하지 않은 건, 그녀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의심하고 있는 건 다만, 이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진실한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의 의도였다. '사랑하는 딸'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확신을 심어 주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전 언제 누구를 위해서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아. 이건 제 사명이에요오. '사랑하는 딸'이라는 이름이 괜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사명 말예요오."
 "나도 마찬가지야."



 현아가 비로소 의심을 걷고 답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기꺼이 내줄 수 있어."
 "그 대답을 바라고 있었답니다아."


 


 사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만 말이죠. '사랑하는 딸'은 쿡쿡 웃었고 현아는 그런 그녀를 빤히 보다가 이내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두 사람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 우린 많이 닮아 있구나, 하고.



 사태은 의외로 쉽게 풀릴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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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번째, <사랑하는 딸>도 한번에 몰아 올립니다.


 약간 길진 모르겠는데, 끊어지는 타이밍을 잡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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