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순수/단편] Sunday morning

2010.10.11 07:05

핑거프 조회 수:271 추천:1

extra_vars1 137840-1 
extra_vars2
extra_vars3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조금의 사치를 누리고 싶은 이런 일요일 아침. 이젠 숨을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바스락거리는 이불과 늦게까지 동침을 한다.


 얼마만인가! 땀에 젖어 깨지 않은 것이, 이불의 소리를 듣는 것이! 드디어 가을이 왔다.


가을이 온 일요일 아침! 얼마나 호사스러운 여유인가. 오늘 난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즐겨보리라 작정했다.


 늘 먹던 찬 밥 대신에 TV속 사람들처럼 베이글에 크림 치즈를 발라보며 느긋하게 토마토도 집어보았다.


이런 날엔 새파란 피아노 소리가 어울리지! 오늘은 가을의 첫 일요일이다. 어디론가 나가고 싶다.


오늘 하루는 폼 내고 각 잡고 잡지 속 사람들처럼 바쁜 척, 시계를 보고, 안경을 올리고, 급박한 통화를 하며, 택시를 타보고,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신문을 보고! 그래 오늘 이걸 해보자. 나는 뭣도 없이 밖으로 향했다. 오늘 난 가을을 맞이한 바쁜 사람이다. 난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야.


 


 


일요일 아침의 길거리는 매일 출퇴근 시간에 보던 거리와는 달랐다. 아아, 이 거리를 걷는 것이 얼마지? 항상 차로만 지나갔던 이 거리. 그래 난 정말 얼간이었나? 이런 곳을 매일 지나치면서도 정작 참을 알지 못했다니. 어리석음에 탄식하며 바쁜 척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한 발짝 앞으로 건너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옆에 누가 숨을 쉬는지 알지도 못하며 걷고 걸어서 구름이 태양의 손을 뿌리칠 때 까지 발을 옮겼다, 결국 그 곳에 있는 것은 시계점. 잘난 척 시계점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시계 좀 볼게요.


 


 


아아, 이것이 미디어 속 사람들의, 모든 사람들이 쫓는 사람들이 주로 차고 다니는 그런 시계란 말이야? 반갑네요 시계'님'. 저금통장에서 얼마가 빠졌는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왜? 오늘은 기분 좋은 가을의 아침이니까. 게다가 일요일이다. 나는 그 번쩍거리는 시계에 목덜미를 잡히고 밖으로 나왔다.


아아 하늘이 더 화창한 것 같아. 안 그래요, 시계'님'? 이제 뭐가 남았을까?


아, 그래 안경을 올려야지. 코 끝에서 덜렁거리는 안경의 숨을 집고 밀었다, 코 위가 조여왔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어, 엄마. 어떻게 지냈어? 나야 뭐 요즘 바쁘게 지내고 있지.


오늘은 회의가 있어서 신문조차 제목만 읽었어, 아니 읽을거야. 시간이 없거든. 엄마, 요즘 사람들의 시계는 참 좋더라.


내 팔목에도 하나 걸려 있어, 하하하. 사실은 시계가 나를 잡고 있는지도 모르지. 벌써부터 코 끝이 시큰해져오거든.


엄마는 그런 적 없어? 아, 엄마 잠깐만. 나 지금 끊어야 할 것 같아. 화창한 가을의 일요일인데, 지금 할 게 너무 많이 남았거든. 미안해 엄마, 보고싶어도 참아줘. 택시!


 


아저씨, 딱 삼십 분 걸리는 카페 거리로 가 주세요. 어딘지는 잘 모르겠어요. 바쁘게 살려구요, 이젠. 하하, 재밌다구요? 예, 저도 재밌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까요! 그런데 아저씨, 아저씨는 이런 시계 차 본 적 있으시나요? 하하, 저도 오늘 처음 차 봅니다. 이게 말이죠, 720만원 짜리에요. 720만원. 로렉스라고 아세요? 하하, 그래요 그 축구 할 때 자주 나오는 그 회사요. 예, 그겁니다. 알, 오, 엘, 이, 엑스. 이름 참 멋있죠? 이게 말이에요, 화이트 다이알로 만들어진 거에요. 캬, 폼나죠? 저도 이제 바쁜 사람이 됐나봐요.


런데 이상한 게 말입니다. 분명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라고 있는 물건일 텐데, 이건 참 이상한게 시간을 보는 게 아니라 시계를 보게 되는 거 있죠?


초침이랑 시침은 하나도 안 보이고 흠집이 났나 참 궁금하더라구요. 다이아몬드, 멋있는데 눈이 부셔서 시간이 보이질 않아요. 아아, 눈이 멀 것 같아요. 벌써 다 왔나요?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이 시계 사시지 마세요. 받지도 마세요. 왜냐면 이건 시계를 빙자한 옷걸이니까요. 거스름돈은 팁이에요. 안녕히가세요.


 


이 집은 뭐가 특히 맛있나요? 그래요? 아메리카노 한 잔과 블루베리 초코 케이크 주세요. 이름 참 기네요. 여기요. 나머지는 가지세요. 예? 그럴 수 없다구요? 하하, 그렇다면 그 나머지에 해당하는 걸 전부 케이크로 주시면 되겠네요.


자리 한 번 참 좋은 것 같다. 그래 나도 이렇게 살아보는거다. 팁을 주고, 뭐라는지 이름도 외우기 힘든 케이크도 먹어보고. 그런데 케이크 이름은 왜 그렇게 긴 거야? 아메리카노? 아메리칸? 하하, 뭐든 좋다. 이건 바로 TV 속 사람들이 참 좋아요, 행복해요, 기분 좋아요 라고 외치는 그 삶이 아닌가!


 


보이는 것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바쁘게 살고 있구나. 나 행복해요, 써 붙이면 행복할 수 있는건가? 케이크가 나왔다. 참 달다. 달디 달다. 이 단 게 내 숨을 조이고 있다. 이미 시계를 산 순간 내 시간은 한계가 그어졌고 안경을 올린 그 때 눈은 멀어버렸다. 아아, 이젠 내 속도 속이 아니다. 이 달디 단 설탕과 크림의 덩어리가 뭐라고 우리 집의 …! 아니다, 오늘은 기분 좋은, TV 속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옆에서 신문을 집어 테이블 위에 폈다.


 


음, 오늘의 사건은 이거군. 오늘도 다른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죽었어. 오늘도 다른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사고를 냈고. 다른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쫓겨났구나. 아아,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사건의 연속. 새로운 것은 없나? 그저 이름? 하지만 그 이름은 전화번호부에도 있다. 그래 이건 분명 신문사의 농간이 분명해. 그들은 세계의 전화번호부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그리곤 매일 같은 사건에 다른 이름만을 가져다 붙이는 것일 뿐이야! 아아! 세상은 참 케이크 같구나!


 


이렇게 눈도 멀어보이니 이젠 뵈는 것이 없다. 나는 720만원 짜리 시계를 차고 30분에 10만원짜리 차를 타고 이동했으며 화창한 일요일 오후에 카페에서 신문을 보며 8만원짜리 빵쪼가리와 검은 물을 마신 사람이야! 벌써 오늘 내 하루의 인생은 738만원의 가치를 가진 셈이 되었다고!


 


기왕 할 거 오늘 천 만원을 채우자. 그리곤 나는 천사가 되자. 아아, 이 얼마나 멋있는 숫자일까! 나는 '천'만원짜리 '천'사가 되는 것이다. 결코 738만원으로는 '천'사가 될 수 없다. 달리는 차 사이로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직원은 나를 쫓아낼 기세로 유심히 훑어보더니 내 손목에서 시선을 멈췄다. 나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어서오세요 손님. 그녀의 얼굴은 얄궃게도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아아,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옷 한 벌을 보려고 하는데요. 위 아래 다요. 이 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예. 이 색은 어떠세요? 참 중후한 이 색이 손님과 어울리는데요. 천사들은 이런 검은색 옷을 입는가보죠? 예? 천사들이라뇨, 손님? 천사들은 대개 흰 옷을 입지 않나요? 예, 그렇죠. 호호, 하지만 손님은 천사가 아니시잖아요. 아니에요, 이제 천사입니다. 호호, 농담도 잘 하시네요. 손님, 그렇다면 이 하얀색 드레스 셔츠는 어떠신가요? 아, 이거 괜찮네요. 안 그래도 오늘 저녁 회의가 있어서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이걸로 주세요. 참, 바지와 자켓도 이와 어울리는 것으로 하나씩 주세요. 음, 구두도 하나 주시면 고맙겠네요. 이걸 다요, 손님? 예, 오늘 저는 천사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계산대로 가시죠, 손님. 셔츠 53만원, 바지와 자켓 141만원, 구두 55만원, 총 249만원 되겠습니다.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예, 이걸로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손님. 포장해 드릴까요, 손님? 아뇨, 여기 탈의실 있나요?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지금 갈아입고 가야될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손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직도 나는 천사가 되기에 부족하다. 뭘 얼마나 더 해야 천사가 될 수 있는걸까! 이 답답한 마음을 저 여자는 알까? 난 손님이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난 손님이다. 곧 천사가 될 손님.


 


해가 지고 있다. 더 이상 sunday morning이 아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싶다. 택시! 아저씨, 아저씨는 오늘 운이 참 좋은 거에요. 한강으로 가 주세요. 아, 아닙니다, 한강이 아니라 서강대교로 가 주세요. 아저씨 혹시 이 시계 아세요? 롤렉스라는 명품 시계에요. 자그마치 720만원! 제가 오늘 뭘 먹었는지 아세요? 설탕 덩어리와 검은 물을 7만원, 아니 8만원인가? 여튼 그 가격을 주고 먹었어요! 하하, 제 장은 8만원짜리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옷 좀 보세요. 참 새하얀 게 천사같지 않아요? 전 이제 곧 날아갈 것 같아요! 날아가기엔 거추장스러우니 이걸 아저씨께 드리고 싶네요. 에이, 사양하지 마세요. 무거워서 그래요. 저 같이 바쁜 사람에게는 이런 옷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랍니다. 자켓이… 얼마였더라, 에이, 모르겠다. 아저씨는 얼굴도 참 멋지신 게 어울리실 것 같네요. 그런데 이거 그냥 입고만 다니세요. 아, 시계도 드릴까요? 그런데 이 시계를 찰 때에 주의할 점은요, 시간을 볼 수 없다는 거에요! 무슨 소리냐고요? 참, 아저씨두. 분명히 째깍하며 돌아가고는 있지만 보세요! 어딜 봐서 시간이 보이나! 이건 그저 시계일 뿐이에요! 시간은 없죠! 하하,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세요. 아저씨 오늘 운 좋으시네요! 여기 13만원 입니다. 고맙습니다, 전 아저씨 덕분에 이제 천사가 될 수 있어요.


 


 


그래 강 바람은 차다. 더 이상 sunday morning은 없다. 이미 시계는 내 동맥을 찢었다. 속은 이미 없어. 눈도 이미 멀었고, 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난 어디에 있나? 난 어디에 있어야 하나. 영원한 선데이 모닝은 어디에 있나! 자아, 나도 이제 정말로 TV 속 사람이 될 것이다! 잘 있어라 어리석은 이들이여. 내일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건 속, 다른 이름으로, 그들의 농간에 놀아난 전화번호부 속의 한 사람 손님으로! 반갑다 아침아, 잘 가라 태양아!


 


 


 


 


 


-------------


maroon5의 sunday morning  (Questlove remix 버전) 을 들으며 읽으시면 좋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22 나스루딘의 모험 [6] 다르칸 2010.10.18 442
7721 일곱별 [6] 乾天HaNeuL 2010.10.17 868
7720 일곱별 乾天HaNeuL 2010.10.17 850
7719 일곱별 乾天HaNeuL 2010.10.17 871
7718 일곱별 乾天HaNeuL 2010.10.17 122
7717 일곱별 [3] 乾天HaNeuL 2010.10.17 1010
7716 일곱별 [4] 乾天HaNeuL 2010.10.17 230
7715 단군호녀 3화 [3] ♀미니♂ban 2010.10.17 357
7714 단군호녀 2화(표현부분 대사 수정) [2] ♀미니♂ban 2010.10.17 369
7713 단군호녀 1화(이름 수정본) [2] ♀미니♂ban 2010.10.17 394
7712 당신이 잠든 사이 [4] 윤주[尹主] 2010.10.15 317
7711 [게임판타지] Demi-God [3] 울투 2010.10.15 131
7710 당신이 잠든 사이 [2] 윤주[尹主] 2010.10.14 280
7709 [단편]성인식 [2] 악마성루갈백작 2010.10.13 279
7708 사라진 별 [4] 민희양 2010.10.13 257
7707 당신이 잠든 사이 [2] 윤주[尹主] 2010.10.13 198
7706 당신이 잠든 사이 [2] 윤주[尹主] 2010.10.12 238
» [순수/단편] Sunday morning [1] 핑거프 2010.10.11 271
7704 당신이 잠든 사이 [1] 윤주[尹主] 2010.10.11 205
7703 당신이 잠든 사이 [1] 윤주[尹主] 2010.10.10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