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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당신이 잠든 사이

2010.10.11 05:22

윤주[尹主] 조회 수:205 추천:1

extra_vars1 #4.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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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옛날 세상은 거대한 신이 남긴 유해로부터 만들어졌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그 거신은 온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생명, 단 하나뿐인 존재였다. 흙도 물도 없었고, 대기나 빛도 없었다. 오로지 그 혼자만 살아 숨 쉬는 어둠이었다. 그 속에서 거대한 신은 영겁에 달하는 세월을 홀로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거신은 처절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한 신의 시신에서 태어난 게 이 세계이기에,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마술은 반드시 희생을 필요로 한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선 씨앗이 필요하고, 건물을 짓기 위해선 흙과 자갈과 시멘트가 필요한 것처럼. 이선과 현아가 사는 집에 보내진 마술사는 바로 그 '희생 공식'을 남들보다 많이 아는 이였다.



 그런 그도 이선에게서 떨어져나간 심장을 다시 원상 복구시킬 공식은 알지 못했다. 최소한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선 어떠한 이도 그러한 공식은 몰랐다. 마술사는 최소한 인간들과 같은 기록이나 공동체를 그들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상황이 보다 나았을 거라고 한탄했다. 실제로는 마술사와 같은 이들이 공동체를 맺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그러한 재능이 대를 타고 전해지거나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찾아오고 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현재 마술사는 서른네 개 희생 공식을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식은 단 한 줄 공식도 평생 알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마술사의 아버지는 불과 세 개의 공식을 알았지만 아들인 마술사에게 전해진 것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희생 공식, 마술 공식은 그야말로 재능, 하늘의 선물처럼 여겨지는 게 당연하다.



 간혹 금세기 모든 마술 지식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곤 했다. 마술사가 말하는 '대사제'가 그것이었다. 대사제는 언제, 누가 될 지 아무도 몰랐지만 종신 호칭이었고 모든 시기에 단 한 명만이 존재했다. 지난 번 대사제는 450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그 기간 동안 그 말고는 어떤 이도 대사제가 되지 못했다. '사랑하는 딸'이 이번 대사제가 된 건 아마 지난 대사제가 죽은 직후였을 것이다.



 어떻게 그 방대한 지식이 동시대 단 한 사람에게만, 그리고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전해질 수 있는지는 마술사도 몰랐다. 세상이 원래 그런 식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거라고 그렇게 납득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겐 그 사실이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하필 왜 그 년인데!"



 설명을 들은 현아는 벌컥 성을 냈다. 그 앞에서 마술사는 그냥 날 죽여주소, 하는 식으로 자포자기하고선 앉아 있었다.



 "내가 연락 닿는 곳은 전부 알아봤어. 지금 이선을 살릴 수 있는 녀석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어. 다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할 뿐이야. 그 정도로 거창한 마술은 대사제나 가능할 거라고."



 그저 이런 식으로 현실을 납득시키는 것밖엔 할 수 없다. 마술사는 말을 마치곤 현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엄지손톱을 입에 넣어 깨문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선은, 일단 괜찮은 거지?"



 결국 그렇게 묻는다. 마술사는 조금 긴장을 풀었다. 이선에 대해 얘기할 때만큼은 현아도 조금은 화를 누르고 침착해졌기 때문이다.


 "너도 알지? 우린 심장이 잠시 없다고 해서 인간들처럼 쉽게 죽진 않아. 이선도 마찬가지고. 다만 우리 경우엔, 심장이 없으면 혼이 담길 그릇이 없으니까. 지금 이선은 살아는 있지만 단지 그것뿐이야. 말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먹고 마시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지. 그건 뭐 내가 돌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도 돌볼 수 있어."



 현아가 불만을 토해 보지만 마술사는 금방 그녀가 포기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 논다며?"
 "……."
 "내가 왜 이런 얘기 하는지 알아? 기왕 보복할 거면 다른 거엔 귀찮게 신경 쓰지 말라고. 기왕 갈 거면, 그 빌어먹을 년 잡아 무릎 꿇린 다음 여기까지 끌고 오겠단 자세로 나가라고. 그러기 위해 있는 거잖아, 넌."



 한참 동안 현아는 말이 없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술사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아 스스로 선택한 무모한 길이 그녀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걱정한단 말 대신 일부러 모진 소리를 한 건 현아가 이스(月)기 때문이다. 이소(日)를 지키는 전사, 오로지 그 하나만을 위한 전사.



 현아는 몸을 일으켜 이선이 누운 방으로 들어갔다. 마술사는 따라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현아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방을 나왔다. 다소 먼지 끼고 지저분해 보이지만 날렵한 맵시를 가진 은색 기병용 총이다. 그걸 본 마술사가 현아에게 물었다.



 "그건 또 어디서 났어?"
 "몰라. 몇 사람 거쳐서 얻은 거였어."
 "그거 발사는 돼?"



 제법 오래되어 보이는 외양 탓에 마술사는 의문을 품었다. 현아는 총 머리 쪽을 마술사에게 보여 주었다. 총신과 몸체가 분리되는 요즘 총과는 완전히 달랐다. 전장식 총일까?



 "총이 아냐. 마탄발사장치지."



 현아가 먼저 답을 주었다. 과연, 하고 마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총으로 쏠 수 있는 건 납과 탄환으로 된 실제 총알이 아니라 현아가 가진 마술과 살기일 것이다.



 "이번엔 제대로 해볼 모양인데?"



 마술사가 묻자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망할 년 끌고 올때까진 안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부탁 좀 할께. 현아는 이 말 꺼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부탁이라니, 폭군에겐 너무도 안 어울리는 말이잖아. 게다가 이 상황에 그런 말까지 해버리면 어울리지 않게 비장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현아는 자신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밥 먼저 안 먹고 기다린다."



 마술사가 먼저 눈치 채고 적절하게 대꾸해 준다. 현아는 속으로 마술사에게 감사했다. 이제야 전력을 다해야겠단 마음가짐이 잡혔다.



 "갈께."



 한 마디 짤막한 인사만 남기고 현아는 다시 집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마술사는 수차례 속으로 되뇌었던 말을 또다시 입 안으로 웅얼거렸다. 성공해라 그리고, 죽진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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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챕터, <마술사>는 다른 편보다 짧습니다. 한꺼번에 올리는 게 맞을 것 같네요.


 그리하여, 슬슬 이 글도 종반에 가까워오는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올라가는 (#5. 사랑하는 딸)이랑, 그 이후 한 챕터, 그리고 후일담 한 편이 남아 있네요...


 


 암튼, <당신이 잠든 사이>. 다음 주 올라올 마지막 파트를 기대해 주세요~


 참, 지난 번 시우처럼 님 물어보셨던 것, 야한 거냐 잔인한 거냐라고 물으셨을 때 그때 전자라고 답해드렸는데....죄송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후자 같아요;; 그다지 극적이진 않으니까 전자건 후자건 특별히 충격적이다, 라고 할 건 아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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