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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삼인삼색

2010.11.12 05:12

윤주[尹主] 조회 수:358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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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에도, 마녀는 마루에 누운 채로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누운 채라서 그녀의 시선에 하늘은 턱 아래 있었고, 흙바닥은 머리 위에 있었다. 저 천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아. 마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실제론 그다지 재미있어하지도 않았으면서.
 태어난 이후 그녀는 단 한 번도 재미있어본 적이 없었다. 안식에서 깨었던 바로 그 날, 마녀는 자신을 깨운 방울 소리를 따라 이 세계로 왔다. 거기서 만난 게 진연의 어머니 윤주였다.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어렸던 꼬마 윤주를 마녀는 차마 해코지하지 못했다. 자기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고, 그 대단한 힘을 통제할 줄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단지 공깃돌 놀이만으로 다른 세계에서 안식을 취하던 자신을 깨우고 이리로 불러왔단 사실에 그저 놀라고 또 슬펐을 뿐이다. 힘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윤주가 불러낸 자신에게 본래대로 안식을 되돌려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시피 했던 탓이다.
 수십 년간 마녀는 그렇게 윤주 곁에서, 마치 이 세계에 유폐된 신처럼 살았다. 세상사에도 간섭하지 않았으며 윤주에게도 별 관심 두지 않고 살았다. 그랬는데…….



 "윤주 이 망할 년아!"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화를 못 이기고 마녀는 고함을 질렀다. 감나무 위에 앉았던 참새 두 마리가 깜짝 놀라 파드득 날아올랐다.
 물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자기가 불러온 마녀를 본래 왔던 곳으로 되돌려놓지 못하고 윤주는 쉰 넷 나이에 잠든 듯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마녀는 이도저도 못하고 그대로 이 세상에 눌러 앉고야 말았다.


 


  *  *  *


 


 "무슨 일이에요?"



 별안간 정령이 화들짝 고개를 들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곁에 있던 진연이 이상한 듯 물었다.



 "방금 목소리 못 들었어요?"
 "소리요?"



 진연이 되물었을 때 정령은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 그녀는 다시 진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엇 때문인지 정령의 두 뺨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방금 신랑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맙소사, 진연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혼인한 부부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세상에 불과 4, 50분가량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환청까지 듣는 수준일 줄이야.
 진연이 정령을 보며 솔로의 설움을 한껏 느끼는 곳은 식당에서 얼마간 떨어진 한 액세서리 가판대 앞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눈에 언뜻 들어온 판매대가 시선을 끌어서, 뒤따라 나오던 정령을 데리고 와 함께 구경하던 중이었다.
 조금 장난기가 돋은 진연이 정령에게 일부러 토라진 듯 대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하나 사지 그래요? 그 좋아하는 신랑 선물로요."
 "신랑 선물이요……."



 진연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정령은 이내 진지하게 마녀에게 줄 액세서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진연은 왠지 옆구리가 시려졌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 아가씨 쓰던 그 칼은 어디 두셨어요? 아침에 잠깐 청소할 때 보니까 안 보이던데."



 정령이 만지작거리던 십자 모양 귀걸이가 아니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진연은 정령이 쓰는 검 '장미 가시'가 평소엔 집 안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렇다고 정령 아가씨가 항상 검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거든요."



 그러나 정령은 보기 좋게 진연의 추측을 무너뜨렸다. 입고 있던 코트 자락을 옆으로 살짝 들춘 정령은 진연에게 청바지 허리에 찬 작은 열쇠고리 같은 장신구를 내보였다. 고리 끝에 매어진 건 작은 단도 모양 장식처럼 보였다.



 "이게 그거에요? '장미 가시'라는?"



 진연이 신기한 듯 손을 가져다 대려 하자 정령은 들쳤던 코트 자락을 다시 내려 '장미 가시'를 가렸다. 진연이 어째서, 하는 표정을 짓자 정령은 고개를 한 번 좌우로 젓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진연 씨에겐 위험해요. 이건, 저주받은 검이거든요."
 "저주받은 검?"
 "전쟁에서 패한 한 전사를 꿰뚫어 봉인한 검이죠."



 그게 정령 자신의 얘기란 걸 진연도 모르지 않았다. 진연은 황급히 정령의 허리춤으로 뻗던 손을 거뒀다. 그런 진연에게, 정령은 담담하게 제 과거를 이야기했다.



 "봉인된 발키리 말고도 제게는 다른 별명이 있어요. 타락한 숲의 주인, 시체여공 등등."
 "아가씨랑 별로 안 어울리는걸요?"



 진연의 말에 정령 아가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들에게 봉인된 저를 구해준 건 리스트라는, 평범한 청년이었지요."



 눈과 얼음을 헤치고 말라빠진 시체로 변한 자신을 구하러 찾아온 순진한 청년. 정령은 그 어렴풋한 얼굴을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도무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자기가 직접 자른 은인의 목을 어떻게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저는…….그에게 구원받자마자 제 일인 양 기뻐하는 그의 목을 이 칼로 내리쳤습니다."



 물론 그것은 신들이 의도한 바였다. 정령을 봉인할 때부터 장미 가시는, 그것을 뽑는 자가 정령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하도록 설계된 저주받은 말뚝이었다. 더군다나 그 구원자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정령이어야 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정해진 대로였다. 그럼에도 정령은 자기가 죽인 리스트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리스트를 죽이고 당황한 저는 그 자리를 피해 최대한 멀리 도망치려 했어요. 이제 막 깨어난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그곳에 있었다면 미쳐버릴 것 같았는걸요.
 한참을 하늘을 가로지르다 몸이 버티지 못해 어느 숲 속으로 추락했답니다. 어느 운 없는 정령 아이가 하늘에서 떨어진 저와 부딪쳤어요. 저도, 그 정령도 그 자리에서 몸이 산산 조각났지만, 얼마 뒤 다시 하나로 되살아났어요. 이유는 몰라요. 저 때문인지, 정령 특유의 회복력 때문인지."



 그제야 진연은 왜 이 아가씨가 정령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정령과 뒤섞여 하나가 된 신의 전사. 순수한 영혼이었던 정령은 아가씨의 죄의식과 복수욕과 부딪쳐 타락해 버렸다. 타락한 정령에겐 육체는 있었지만 심장은 없었다. 두 사람의 충돌 때 심장만은 산산 조각나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한 탓이다. 심장은 없었지만 정령의 생명력과 아가씨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그 육체는 마치 악귀처럼 숲을 폐허로 만들고 주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광경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온 몸이 붉게 변해서, 사라진 신들에 대한 분노를 아무 죄 없는 인간에게, 생명들에게 잔인하게 분풀이했던 모습이. 어떤 숲은 지금도 풀 한 포기 안 나는 황야가 되어버렸고, 어떤 마을은 아예 지구상에서 사라진 채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했죠. 사람들의 비명과 흐느낌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봐야 가장 비참한 건 나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탓이겠죠."



 말을 마친 정령은 가판대에서 고개를 돌려 진연을 보았다. 진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진연에게 정령이 말했다. 이만 가죠.



 "네?"
 "다른 데도 한 번 구경해보고 싶어요. 괜찮죠?"



 정령의 말에 정신이 든 진연은 부리나케 그녀를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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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걸리네요...마녀의 속사정을 풀어내는 게 어려워서;;


 


 마녀 입장에서 보면 결국 진연네 세계로 차원이동 내지는 이계소환된건데,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회상투로 풀어내려니까 표현력이 딸립니다;; 제 스스로도 이미지를 정확히 못잡고 있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