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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삼인삼색

2010.11.13 07:32

윤주[尹主] 조회 수:426 추천:2

extra_vars1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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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에서 배를 채우고 난 뒤 마녀는 마당으로 나왔다. 햇살이 아직 기분 좋게 따사로웠다. 마녀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듯 자연스레 걸어 마당에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마녀와 정령이 사는 집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마을이라고 해 봐야 예닐곱 채 남짓 낡은 집들이 이 영유산 산비탈을 따라 모여 있을 뿐이긴 했지만. 두 사람이 사는 집보다 더 위쪽에 있는 건 무덤 한 기밖에 없었다. 진연의 엄마이자, 마녀의 어머니 윤주가 묻힌 곳이었다. 지붕에 걸터앉아 마녀는 그 무덤을 올려다보았고, 조금 후에 산 아래쪽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산 주위로 펼쳐진 논밭이, 논밭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며 이 모든 것을 산과 함께 껴안은 개울이 차례차례 그녀 눈에 들어왔다. 개울과 강변을 따라 집들로 이어진 길 위를 버스 한 대가 달려 마을 쪽으로 오고 있었다. 버스가 마을 어귀에 멈춰서고, 잠시 후 낯익은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렸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녀는 금세 그 둘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양 손에 짐을 잔뜩 든 두 사람이 언덕길을 올라 대문으로 들어서자 마녀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당에 들어선 두 사람도 마녀를 금방 알아보고 웃거나 화를 냈다.



 "저거 봐요, 다 보고 있었으면서 짐이라도 좀 들어 주지는."
 "보시다시피 난 이 위에 있고 너흰 그 아래 있잖니."



 진연이 투덜거리는 것을 듣고 마녀는 익살을 떨었다. 그러면서, 올라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당으로 걸어 내려왔다. 저래서야 무슨 핑계가 되겠어.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진연은 한숨을 쉬었다.



 "얘, 잠깐 이리 와. 아가씨가 줄 게 있다니."



 짐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정령 아가씨를 붙잡고서 진연은 마녀를 불렀다. 마녀는 의외라는 듯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려가? 좀 뜻밖인데?"
 "아가씨. 어서 꺼내 줘요. 궁금해 하잖아요."



 부끄러워하는 정령 아가씨를 부추겨 진연은 마녀 앞으로 그녀를 내보냈다. 진연에게 떠밀려 마녀 앞에 나선 정령은 고개를 들어 마녀를 보았다. 평소에도 자주 보는 얼굴이건만 어쩐지 그날따라 유독 마녀를 보는 게 쑥스럽게 여겨졌다.



 "신랑, 이거……."



 정령이 내민 작은 꾸러미를 마녀는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뚜껑을 위로 젖혀 열도록 된 작은 상자는 어딘지 낯이 익었다.



 "이건…….정말 의외네."



 상자를 열어 선물을 확인한 마녀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아직 뺨에 든 홍조를 채 지우지 못한 정령을 보고 그녀는 찡긋 윙크를 해 보였다.



 "신부가 반지를 해오는 법이 세상 어디에 있겠어?"



 장난기 다분한 힐난을 마녀가 건네자 정령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이 또 사랑스러워 마녀는 씩 웃었다.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어 쳐다보곤 마녀는 정령에게 다가가 그녀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고마워, 사랑하는 나의 반려."



 정령의 붉은 뺨에 입을 맞추며, 마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년을 함께 하면서 이제 이 아가씨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은 또 처음이라고. 이 수줍음 많은 아가씨가 반지를 챙겨줄 줄 누가 알았겠어.
 두 사람의 모습을 진연은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정령에게 반지를 사라고 권한 건 바로 진연 자신이었다. 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돈도 얼마간 대주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속 이야기가 생각났던 것이다.
 정령 아가씨와 오후 서너 시간을 함께 다니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자고 제안하던 어느 생쥐 이야기가. 정령 아가씨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반지는 일종의 방울인 셈이다. 행여나 불쌍한 생쥐를 고양이가 버려두고 도망치지 않도록, 영원히 곁에 붙들어 놓는 그런 방울.
 사실 조금 찜찜한 구석은 있었다. 저 괴상한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지, 그 작은 반지 하나가 얼마나 오래 마녀를 정령 곁에 붙들어 놓을지 진연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건 본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겠지, 하고 넘기려 했지만 이미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진연 자신이 발을 빼기엔 너무 저 두 사람 관계에 깊이 관여해 버렸다는 사실을.
 마녀는 지루함을 잊고, 정령은 불안감을 잠시 떨쳤다. 그리고 곁에서 진연은 이 모든 것이 그저 보기 좋게 분칠해 흠집을 감춘 것처럼 위태위태한 걸 안쓰럽게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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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인삼색은 이걸로 끝냅니다;;


 


 다음엔 좀 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생각해둔 건 있는데 아직 부족한 게 많네요; 결국 또 짧은 글로 먼저 올릴 것도 같습니다;;


 암튼 다음에 또 쓰게 되면 올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