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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퓨전 스트림 피닉스

2010.08.17 08:27

프리시스 조회 수:363 추천:3

extra_vars1 1. 까마귀 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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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코앞이라 그런 건지 해는 빠르게 저물었다. 백열전구를 닮은 황혼도 잠깐 사이에 사라져 버려서 전봇대가 적은 골목의 사이사이에는 어둠이 짙게 껴들었다.
앞이나 뒤로 오는 자동차도 없다. 앞이나 뒤로 오는 빛은 없다. 이 골목만은 어둠이 가득 차있다.
난 이런 어둠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어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흐름에 휩쓸리는 것이 특기인 나로서는 사람들의 흐름이 없는 이 어둠이 마음 편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골목을 걷는 것은 생각을 비우는 명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난 죽음에 위협받지 않는 괴물이라 그런 건지 어떤 중요한 일이라도 남들의 흐름에 맡겨버리는 일이 많다. 말하자면 휩쓸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휩쓸리기 쉽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귀찮고 싫기 때문에 휩쓸리기를 희망한다.
그 곳의 분위기에 휩쓸려 남이 원하는 일을 한다.
이를테면 허수아비. 이를테면 꼭두각시 인형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만.
이건 분명 헛소리겠지.
사람이란 의지가 있기에 비로소 사람이다. 나도 의지가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절대 죽지 않는 몸을 가졌지만, 괴물이지만, 그래도 난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은 해도 그 의지는 박약하지만.

그런,
의지박약에 분위기를 파도 타듯 휩쓸리는 내가,
지금 바로 이 순간 '도망치고자 하는 의지'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어떤 상대라도, 백악관 인사들조차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의지를 나도 놀랄 정도로 체내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그건,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여자에 의해서.
"………………"
그 남색을 강하게 눌러 칠해 억지로 검게 그린 수채화 같은 여자는 다른 어디서도 아니고 바로 정면에서, 어둠의 품에서 튀어나왔다.
물론, 단지 그것뿐이라면 난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두려움을 느끼고 이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릴 것도 없이 그냥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겠지. 뭐가 무서워서 길을 가다 만난 나보다도 작은 여자를 피할까.
하지만.
뭐랄까---- 그녀의 오른팔은 검이었다.
검을 든 것이 오른팔이 아니라 오른손 그 자체가 검이었던 것이다.
"아…… 그……."
당연하듯 할 말을 잃었다.
그 진남색의 군용 단검을 확대해서 팔에 그대로 가져다 붙인 것 같은 검은 분명 그녀가 입은 남색의 고딕 드레스와 어울려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일 정도지만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다.
분위기가--
"이건…… 뭔가 틀려먹었다고."
--틀려먹었다.
"틀려먹지 않았어요. 오히려 도리에 맞는다고 해도 좋겠군요."
그렇죠? 레지스탕스 씨, 하고 그녀는 도도하게 말했다.
어느새 인가 그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에 칼을 대고 있는 것과도 같은 예리한 긴장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심해와도 같은 차가운 목소리가 자신이 망설임 없이 공격할 것임을 냉정하게 통보하고 있다.
어째서 내가 레지스탕스라고 하는 평생에 인연이 없는 명칭으로 불려야 하는 건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내 안에서 그 우선순위가 현저히 낮다.
일단은 도망친다.
다른 포지티브한 경우라던가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단지 위험하다고 외치는 나의 본능에 응해 그렇게 결정했다.
아니, 누구라도 도망친다.
그대로, 뒤로 돌아, 전속력으로, 뛴다.
"도주…… 그렇게 나왔나요."
등 뒤로 몇 번 인가 발돋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속하는 소리. 분명 그녀도 뛰기 시작한 것이리라.
분명 죽이려고 뛰어오고 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불사신으로서의 미약하나마 잔존한 생존본능이 그것을 알리고 있었다.
물리적인 압력을 가지고 몰아붙이는 살기. 불사의 능력으로도 체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다가온다……!
"평범하게 뛰어서 도망치는 건가요. 으응~ 골목이라서 아주 지루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재미는 없네요. 좀 더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세요, 레지스탕스씨."
미안하지만 난 절대로 재미로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무력해지면 정말 단지 슬플 뿐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눈물이 날 정도로 두렵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 여자를 피해 전력으로 달리는 것 뿐. 그 이외의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다. 새끼 얼룩말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사자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그런 감각에 휩싸인다.
게다가,
"윽, 후-- 하--"
"어머, 벌써부터 숨이 차는 건가요? 실망인걸요."
"괘, 괜한 참견이야……!"
그렇다.
나는 절대로 죽지는 않지만 체력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이건 분명 뭔가 모순된 것 같다고 언제나 강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체력 단련으로 운동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몇 번이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던 것이 생각난다.
결국은 근성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얼마 뛰지도 못했지만 단숨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발이 느려지고 손이 허공을 무의미하게 헤치는 횟수가 늘어난다.
위험---- 하다.
"포기하는 쪽이 편할걸요. 저, 이래보여도 체력은 자신 있거든요. 1시간 정도라면 이 정도 스피드로는 숨도 가빠지지 않는 다구요? 하지만 그쪽은 꽤 힘들어 보이는데."
"크으…… 후-- 하--!"
이런 나의 모습에 기세를 더한 것일까. 재수 없는 말을 한 그녀는 발소리를 조금 더 빠르게 한다. 그건 나에게 있어서 인형의 입장에서 재봉틀로 바늘을 찌르는 소리와 마찬가지라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겨우 1분 남짓을 뛰었을 뿐인데 어느새 그 발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릴 만큼 그녀와의 거리는 가까워져 있었던 것이다.
"한번만 더 제안합니다. 포기하세요. 레지스탕스 주제에 '제로'의 레귤러인 저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폭력으로 마무리를 짓기 싫으시다면 순순히 '까마귀 곰'의 행방을 말하는 게 좋을겁니다."
"후-- 하--"
또박또박, 달리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목소리. 그 말하는 소리가 등을 떠미는 것 같다. 바로 등 뒤에 있는걸까. 언어의 압력이 강하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레지스탕스가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그건 의미가 없겠지.
그런 식으로 의심이 풀릴 만큼 사람의 뇌는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말한다고 해도 상황은 결코 호전되지 않는다. 죄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그게 진실이든, 누명이든 간에.
그걸 알기 때문에 여전히 도망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이제 대답할만한 여유도 없다.
그리고---- 혹시 등활지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려나.
불교의 용어인데, 나도 자세한 내용이나 유래까지는 모르지만 대강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처참하게 죽었다가, 찬바람이 한차례 부는 것과 동시에 살아난다. 그리고 또 처참한 형벌로서 죽지만, 다시 살아난다.
이것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 등활지옥. 확실히 일상생활에서 들을만한 단어는 아니다.
그런 단어를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꺼내는 건지 궁금해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명료. 궁금해 할 이유는 없다.
단지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난 확신 할 수 있다.
지금 그녀는 투항하면 순순히 무폭력으로 봐준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저 여자에게 잡히면 분명히, 확실히, 명백히, 정말로, 진짜로, 진실로 등활지옥을 경험한다.
죽지 않음으로서 무한히 죽게 된다.
그런 건 내가 아무리 꼭두각시 인형이라 해도---- 싫다. 뭐냐고 그건. 말 그대로 지옥이잖아. 누구라도 싫어하는 지옥이잖아. 절대로 피해야 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결국 답이 없으므로 요청은 거절당한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럼, 바·이·바·이. 다음 생애에서라도 절대 또 만나지 말자구요."
"?!"
바로 귀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깝다. 바로 뒤. 무슨 사람 속도가 이런 거야. 세계 선수 급 달리기 선수라도 되는 거냐고. 이런 속도라면 내가 이것보다 체력이 좋다 하더라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잖아. 아무리 뛰어도 바로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공포로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얼어붙는 듯 했다.
그렇지만 아주 약간 용기를 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면,
보이는 것은 내려치기 직전의 거대한, 비상식적인 팔과 이어진 남색의 군용단검과---- 사람을 죽이려 하는데도 털끝만치도 변함이 없는 얼굴.
뭐야. 어떻게 사람이 저런 표정을 할 수 있는 거지? 이 사람은 '사람'인가? 감정이라는 게 없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비정상.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선다. 세포 하나하나가 공포에 전율한다.
여기서 죽는다. 무한히 죽는다. 정신이 죽을 때 까지 끝없이 죽임 당한다.

그럴---- 터였다.
"엎드려!!"
"?!"
느닷없이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물론, 사람이란 그런 외침을 듣는다고 해서 순간적으로 반응 할 수 있도록 훌륭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엎드리라고 하는 것만으로 엎드린다고 하는 행위를 그 즉시 달성하는 사람은 실로 굉장한 신체를 가진 것이니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할 거다.
하지만 굳이 내 몸이 굉장한 신체가 아니라도 눈앞에 '뭔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 온다'면?
실제로, 내 눈 앞에는 뭔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전봇대로, 전봇대는 가·로·휘·둘·러·지·고·있·었·다.
"크, 크읏!"
엎드렸다.
외침을 들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반사 신경, 즉 눈앞에 다가오는 것에 대한 회피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에 넘어지듯 엎드렸다.
직후, 전봇대는 굉장한 속도로, 바람조차 가르며 내 머리 꼭지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우연히는 아닐 것이다.
분명히 의도하고, 노려서 실행한 일인 걸 테지.
그렇다. 반사라는 것이다. 반응차를 이용한 전술이었다. 내게는 눈 앞, 그것도 꽤 멀리서 다가왔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전봇대가 여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내 머리에 가려져 바로 앞에 다가올 때까지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피할 수 없었던 거다.
반사적으로 막아냈을 뿐.
"윽, 크윽!"
영화에서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금속음이 고막을 찢어버려는 듯 달려들었다. 전봇대와 검의 모양을 한 여자의 팔이 격돌하는 소리라는 건 굳이 어두운 골목에서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전봇대와 격돌한 후 그 충격에 의해 한순간 허공에서 멈춘 것 같았지만, 이내 그 정지 상태는 끝나고 그 데미지는 소리만큼이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여자를 무려 10m 가까이 날려버렸다.
날아가 버린 그녀는 데굴데굴 꼴사납게 구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하! 이게 무슨 유치한 어린애 장난이죠?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잔머리를 굴릴 줄은 몰랐습니다. 레지스탕스는 기습이 정석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전봇대에 스쳤는지 뺨 한쪽에서 피를 흘리며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자신의 검으로 겨우 가누고 있었다.
그녀는 거칠게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엎드린 나와 그녀를 가로막듯이 선 '소녀'는,
"불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책략이라고 해 줬으면 좋겠는데. 너라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로 정면승부를 걸겠다는 거야?" 라고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 다음은 문답무용. 소녀는 전봇대가 닿을 만큼만 여자에게 재빠르게 접근해서 자신의 '곰과 같은 형태의 오른손'으로 아무렇게나 끊어진 전선이 덜렁거리는 전봇대를 세로로 내려찍듯이 휘두른다.
다시 한 번 무시무시한 철과 철의 충돌음.
우위는 금세 가려졌다.
여자는 자신의 검 모양의 팔을, 금이 간 검신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단검을 거두며 뒤로 뛰어가듯 물러났다.
"크윽, 비겁한 까마귀 년! 기습 같은 걸 하다니! 죽여 버리겠어! 내 명예와 이름을 걸고 너를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하. 비겁하고 자시고 내가 먼저 진을 치고 있던 곳에 공에 눈이 멀어 자진해서 먼저 들어온 건 너니까 말이야! 피해망상을 일으키는 것 까지는 좋지만 그걸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마시지!"
소녀는 광적인 표정으로 분개한 여자의 말을 가볍게 받아치고 다시 전봇대를 그녀의 '곰과 같은 형태의 오른손'으로 들어올렸다.
애초의 전력이야 어찌되었든 압도적인---- 소녀의 우위였다.
그것을 파악한 것일까. 여자는 여전히 미간을 무시무시하게 좁힌 상태로 잇몸에서 피가날 정도로 이를 씹고는,
아무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져 버렸다. 그 외에 이 일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 마치 영화의 텔레포트 장치처럼 돌연 사라진 것이다. 그게 무슨 원리인지는, 나 따위 일개 고등학생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뭐, 그건 분명 신기한 현상이지만. 난생 처음 보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의 하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태평하게 신기해 할 정도의 현상은 아니었다. 아니, 신기해 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 맞을까.
나를 구해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라도.
이 소녀가 나를 적으로 인식하는 사람 중 한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조금 전에 텔레포트한 그 여자처럼 나를 레지스탕스인지 뭔지로 판단하고 공격할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 뿐 만이 아니라 소녀도, 곰의 오른손을 가진 소녀도 아직 한숨을 돌리거나 태평하게 말을 거는 일은 하지 않은 체 여전히 전봇대를 경계하듯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휘두르기 직전의 자세로.
여차하면 다시 이 저질체력의 몸을 끌고 도망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겨우10초 남짓.
결국 그 걱정은 기우로 끝나버렸다.
왜냐하면 그 소녀는,
원래의 형태나 색조차도 알아보기 어려운 누더기 옷을 입은 작은 소녀는,
그 존재가 너무나도 가냘파 건드리면 유리처럼 깨질 것 같은 작은 소녀는,
곰의 오른손을 원래 자신의 손 모양으로 되돌리며 지친 듯이 전봇대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눕듯이 쓰러진 작은 소녀는,
"배~고~파~"
라고,
완전히 경계심을 풀어버린 목소리로 배를 꼬르륵 거리며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