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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공포 피와 뼈 1. 각성(覺醒) (1)

2007.07.16 05:59

페이스리스 조회 수:1862 추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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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覺醒)


 


(1)




“앞머리는 7cm 이내로 눈썹을 넘지 않도록 한다. 윗머리는 4cm 이내, 구레나룻은 귀 끝까지, 옆머리는 귀를 완전히 덮지 않도록 한다. 뒷머리는 3cm 이내로 끝 부분은 단정하게 선을 만들어 보기 좋게 만든다. 파마, 염색, 왁스 등 머리카락에 화학적 물질을 사용하는 행위는 일체 불허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체벌이 이루어지며, 학생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청성고등학교 전체교직원회의에서 2012년 7월 3일에 재정(再定).


 


...앞머리는 7cm 이내로 눈썹을 넘기지 않도록...”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지긋지긋한 두발 규정을 읽으며 여러 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1열종대로 서 있었다. 그들의 머리모양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는데, 눈앞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를 가지거나, 일곱 빛깔 무지개 색으로 염색하거나, 보는 사람이 다 섬뜩해지는 펑키 헤드, 뒷머리가 어깨를 지나 허리 부근까지 오는 장발장 등등이었다. 참으로 개성적인 머리들을 앞에 두고 학생 주임이자 체육 담당 교사 김진철 선생은 3번 복창이 다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띠며 자신의 애봉(愛棒)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좋아, 여러분. 그럼 문제 하나 내지. 이 청성고등학교 두발 규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어느 곳인지 아는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겹도록 알고는 있지만 꺼내기조차 역겨운 이야기.


 


“바로 ‘이를 어길 시에는 체벌이 이루어지며, 학생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지. 왜냐고? 내가 지금 여기서 너희에게 무슨 짓을 강요한다 해도 너흰 내게 욕 한 마디 할 수 없다는, 소리니까!”


 


퍽!


 


실실 웃으며 야구방망이를 꺼떡거리던 진철이 갑자기 펑키 헤드의 어깨를 후려갈겼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쳤다.


 


“선생이 덕담을 하는데 학생이 그런 똥 씹은 얼굴을 하면 쓰나. 안 그래, 여러분?”


 


그러자 인상을 팍 구기고 있던 학생들이 자세를 바로 하면서 애써 얼굴을 폈다.


 


다시 야구방망이가 날아왔다.


 


퍽!


 


“악!!”


 


이번에는 무지개 색 머리가 배를 맞고 쓰러졌다. 그도 다른 학생들도 모두 왜 때린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진철을 바라보았고, 그는 즐겁게 말을 이었다.


 


“선생이 덕담을 하는데 ‘이 빌어먹을 돼지새끼’라고 욕하면 쓰나. 안 그래, 여러분?”


 


“아, 아니, 저는 아무 말도...”


 


“그렇게 태연한 얼굴로 있어도 이 선생님은 들을 수 있단다, 너희들의 ‘마음의 소리’를 말이지.”


 


그 말에 규정에 걸린 학생들은 물론이고 진철의 뒤에서 거들먹거리며 서 있던 선도부원들 조차 입을 쩍 벌렸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하지만 정말 별 거 아닌 이유 가지고도 야구방망이로 학생을 반죽음으로 만들어놓는 그였기 때문에 이런 일은 지금까지 숱하게 일어났고, 따라서 대놓고 반항할 정도로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자아, 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부터 즐거운 아침운동을 시작해볼까? 모두 엎드려...”


 


“저, 저기요 선생님...”


 


진철은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흥에 겨워서 막 방망이를 들고 팔을 걷어붙이던 참이었다.


 


“뭐야!?”


 


“저기, 저는 두발 때문에 걸린 게 아닌데요...”


 


학생 주임의 ‘즐거운 아침운동’을 방해한 그 학생은 확실히 주변에 서 있는 일곱빛깔 무지개, 펑키 헤드, 장발장 등과는 달랐다. 두발규정에 위배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깔끔한 머리에 조금 시대의 유행에서 벗어난 깔끔한 무테안경과 학교에서 지정한 교복까지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개성 없는 녀석’, ‘범생이’. 그래서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 바로 옆에 선 사람조차도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천하의 진철 선생도 갑작스럽게 나타는 그에게 살짝 놀라면서도 성난 멧돼지 같은 얼굴을 거두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그럼 뭐 때문에 걸린 건데?”


 


“...지각 때문에 걸린 건데요.”


 


오호라, 지각.


 


진철은 씨익 웃었다. 지각 좋지.


 


“너 이름이 뭐야?”


 


“시, 신상진인데요.”


 


“신상진 군, 두발 규정 바로 앞에 있는 규정을 한번 읽어보겠나?”


 


그러자 그는 학생수첩을 뒤져 두발 규정 앞에 적혀 있는 두세 줄의 문장을 읽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청성고등학교 학생 전원은 오전 7시 30분까지 학교에 등교, 7시 40분까지 교실에 입실한다. 이를 어길 시에는 체벌이 이루어지며, 학생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청성고등학교 전체교직원회의에서 2012년 7월 3일에 재정(再定).”


 


“좋아, 신상진 군. 아주 잘 읽었어. 그럼 문제 하나 내지. 이 규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어느 곳인지 혹시 아나?”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할 새도 없이 방망이와 함께 답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체벌이 이루어지며, 학생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거야 이 자식아! 죽엇!!”


 


퍽! 퍽! 퍽!!


 


 


*


 




언제였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학교를 쉬었다. 개교기념일이었다. 학교가 세워진 것을 기념하여 쉬는 거라고 선생님이 설명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교가 세워졌다. 쉰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은 학교를 쉬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놓고 서로 싸웠다. 어머니는 집에 혼자 있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냐 면서 옆집에 맡겨놓자고 소리를 빽빽 질렀고, 아버지는 애도 클 만큼 컸으니 혼자 집에 있어도 된다고 고함쳤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둘 다 출근시간 때문에 헐레벌떡 집을 나섰다.


 


결국 혼자 남겨진 나는 거실에 있는 TV를 켜고 커다란 소파 위에 누웠다. 마침 아침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는데, 출근하는 아버지가 배웅하는 딸을 어루만지고 뺨에 뽀뽀를 하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아버지도, 딸도 웃었다. 창문 밖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햇살이 그 가족을 환하게 비추었다.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회였던 것이다.


 


거짓말 하지 마.


 


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뽀뽀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앞에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젊은 욕정이 낳은 고깃덩어리 취급하면서 항상 어딘가에 떠맡길 궁리만 했다. 그들이 일하러 밖으로 나가 있는 동안 나는 학교에 있거나 아니면 영어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그들이 맞벌이를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집보다 배는 더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들은 자식보다 돈을 더 좋아했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고, 내가 본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단란한 가족 따윈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전부 TV에서 하는 거짓말이다.


 


TV는 내가 푹신푹신한 소파의 편안함에 슬슬 잠으로 빠져드는 동안 더욱 더 많은 거짓말들을 늘어놓았다.


어제 오후 9시 35분 지하철 1호선 종로3가 역에서 술 취한 노숙자 한명이 지하철 선로로 쓰러집니다. 열차가 다가오기 전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선로 위로 뛰어들어 여자아이를 구하고 그러는 사이 다른 사람이 오고 있는 열차에 신호를 보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고아출신의 연인이 결혼식을 올릴 돈이 없어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지하철 5호선에서 승객을 하객으로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한 승객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긴급 속보입니다!”


 


 




갑자기 커진 소리에 깜짝 놀랐다. 허우적대며 일어나려다가 결국 기묘한 자세로 머리부터 소파에서 굴러 떨어졌다. 거꾸로 된 TV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어떤 커다란 건물을 배경으로 기자 한명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각,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이 100층짜리 건물, 엠페러 빌딩에서 대량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범인의 신원은 알 수 없으며, 지금 범인은 엠페러 빌딩의 위로 올라가면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아, 저기 사람이!!”


 


쨍그랑!


 


화면이 엠페러 빌딩의 중간쯤에 있는 창문으로 옮겨졌다. 한 사람이 창문 밖으로 뛰쳐나와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발을 디딜 곳이 없어서 난간에 매달린 채 빌딩 아래와 창문 안쪽을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창문에 매달려 있습니다. 탈출을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아, 저기 보십시오!!”


 


창문에서 손이 나와서 탈출하려던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안쪽으로 확 끌어당기더니, 그 사람의 등에서 뭔가 날카로운 것이 튀어나왔다. 그는 괴로운 듯이 팔을 흔들다가 결국 온몸을 축 늘어뜨렸다. 멱살을 잡은 손은 그를 놓았다. 땅으로 떨어지자 사방에 피가 튀었고 빌딩 주위에 있던 기자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다시 창문 깨지는 소리와 함께 시체가 날아왔다. 마치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 같았다.


 


“범인입니다! 범인이 창문으로 사람의 시체를 던지고 있습니다!! 으악!!”


 


또다시 시체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말하던 기자의 머리 위로 떨어져 기자를 깔아뭉갰다. 흔들리는 카메라. 기자의 것인지 시체의 것인지 모를 피가 화면에 튀었다. 화면 옆에서 손이 튀어나와 기자의 몸을 흔들었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또다시 쨍그랑.


 


나는 그것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시체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빌딩 주위를 피로 물들였다. 기자들과 구경꾼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피가, 빌딩 창문에서 흘러내렸다. 화면도 사람들도 시체들도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춤추었다. 내 안에서 뭔가가, 어떤 거대한 것이 요란하게 고동치고 시작했다. 겁에 질린 얼굴, 불안하게 흔들리는 화면, 핏방울, 낙하하는 시체, 즐비한 죽음, 비명의 연속, 커다란 사이렌 소리, 두꺼운 얼굴의 경찰, 피로 물든 손.


 


범인의 눈.


 


그는 진짜였다.


 


TV에서 하는 거짓말보다 몇 십배는 더 리얼한 진짜였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고동치던 뭔가가 내 안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


 




[...다음 소식입니다. 술에 취해 말싸움을 벌이다 상대방을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20대들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김두식 기자의 보도입니다.]


 


머리가 띵했다. 시야가 흐릿했다.


 


나는 곰곰이 기억이 끊긴 부분을 떠올렸다.


 


자신의 ‘즐거운 아침운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악마 같은 얼굴로 체육 교사 겸 학생 주임인 진철 선생에게 야구방망이로 죽도록 타작당한 이후로는 그리 잘 생각나지 않았다. 온몸의 뼈가 욱신거리고, 성난 학생 주임을 능숙하게 말리는 선도 부원들, 구경났다는 듯이 창문으로 고개를 쑥 내밀어 쳐다보는 학생들, 부축, 발이 질질 끌리고, 누군가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 선생, 짜증나는데 그치?”


 


나는 뭐라고 입을 움직였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를 부축하는 사람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한번 죽여 볼까?”


 


거기서부터 기억이 새까매졌다.


 


[이른 새벽, 출근길 시내버스 안. 서울 하계동의 한 교차로 부근을 지나는 순간 승객들이 일제히 차 밖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희미한 뒷모습의 두 남자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길질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새벽 5시 45분 경. 20살 박 모 씨 등 2명이 52살 이 모 씨를 술병으로 내리쳤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 씨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면에 있는 벽에 시계가 걸려 있었다. 오후 4시 19분. 이제 곧 7교시가 끝날 것이다. 그걸로 일단 정규 수업은 끝이지만, 보충 수업으로 8교시가 있었고, 늘어지는 말투 때문에 사람을 저절로 피곤하게 만드는 생물 선생의 수업이었기 때문에 굳이 아픈 몸을 이끌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자니 보충 수업이 끝나고 담임의 종례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골치 아픈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럼 8교시 끝날 때까지 여기서 농땡이 피우자.


 


그래. 그렇게 하자.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이 씨는 결국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박 씨 등 2명은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으나 마침 옆을 지나던 시내버스의 CCTV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경찰은 박 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을 터인데 아직도 몸이 욱신거렸다. 하긴, 야구방망이로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맞았으니 어디 한군데가 부러졌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혹시 진짜로 어딘가 부러진 게 아닌가 싶어 나는 몸을 일으켜보았다.


 


“윽!”


 


오른쪽 어깨 부분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 야구방망이로 맞은 곳이었다.


 


“꺄악!”


 


느닷없이 침대 옆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도 놀랐다. 전혀 사람의 기척이 없어서 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


 


침대 옆을 가리는 커튼을 젖혔다.


 


왠 여자애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윤기가 나는 검은머리와 그와 대조되는 창백한 피부, 그리고 머리 안에서 찰랑거리는 고양이 귀걸이. 잘 생각해보면 기억이 날 것도 같았는데, 그녀는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막무가내로 나를 문 앞까지 질질 끌고 갔다.


 


“왜, 왜 그래?”


 


“빨리 나가.”


 


“왜?”


 


“빨리!!”


 


소리를 빽 질렀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물어보고 싶어도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필사적이고, 절망적인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 마치 낭떠러지 끝을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한편 피의자 중 한 사람인 김 모 씨가 과격인권단체 ‘리베르테(Liberte)’의 회원임이 밝혀지자 네티즌들이 ‘리베르테’ 공식 홈페이지에 심한 욕설을 올리는 등 한바탕 소란을 빚었습니다. TBS 뉴스 김두식이었습니다.]


 


“아, 알았어. 나가면 될 거 아냐, 나가면.”


 


별 수 없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문틈 사이로 그녀의 눈이 보였다.


 


아무런 희망도, 빛도 느껴지지 않는, 슬픈 눈이었다.


 


“미안해.”


 


탁.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났다.


 


이름은 성민희. 나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


 


나와 같은 반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제놈 전(前) 미 법무장관이 청성 시에서 열릴 타워 엑시즈의 완공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한국을 방문합니다. 2005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제놈 전(前) 미 법무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게 되며, 22일 타워 엑시즈의 완공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조영훈 법무부 장관과 사형제도와 관련된 주제로 회담을 가지고 귀국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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