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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기타 무적을 죽여야 한다

2010.09.29 18:51

윤주[尹主] 조회 수:132 추천:3

extra_vars1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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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적을 죽여야 한다>


 


 '무적'이 뭘까? 누군가가 무적이 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난 여태껏 살아오며 줄곧 그것만을 고민해 왔네. 그럴 수밖에. 나 자신이 무적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걸. 지금은 그렇지 않느냐고? 당연한 얘길세. 최근에 들어서야 나는, 스스로 무적이 될 수 없단 걸 깨달았으니까.



 왜냐고?



 어떻게 내가 무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저기 살아 걸어가는 '무적'이 분명히 있는데.



 생각해 보라고. '무적'은 고유명사야. 예전엔 그저 보통명사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특정한 사람, 세상에 단 한 명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지. 적어도 내게는 말이야, 무적은 고유명사야. 보통명사가 아니라.



 그걸 내가 깨달은 건, 무척 오래전 일일세.



 '저기 무적이 걸어간다.'



 갑작스런 환성과 소란. 그 와중에 누군가 이렇게 외치더군. 나는 고개를 돌렸네. 솔직히 깜짝 놀랐어.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사람이 있단 사실에. 생전 처음 보는 누군가가 무적이라고 인정하고 불러주는, 그런 사람이 있단 사실에.



 그 '무적'은 수많은 인파 한가운데 있었어. 운 좋게도 무적은 내가 있던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지. 그와 얼굴이 마주친 순간, 나는 적지 않게 실망했어. 내가 생각하던 무적과는 너무도 다른 인상이었거든. 난 말일세, 보는 것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거한을 생각하고 있었네. 언제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도 간단히 눌러버릴 수 있는, 그런 게 무적이라고 생각했단 거야. 그때 내가 본 건 전혀 달랐어. 사람들이 무적이라 부르는 그는, 내 눈엔 너무나도 빈약하고 노쇠해 보이는 한 영혼일 뿐이었거든.


 


 잠깐 내 자랑을 좀 해야겠네. 난 말일세, 단 한 번도 져본 일이 없어. 팔씨름이면 팔씨름, 달리기면 달리기. 무엇에서건 난 1등이었어. 그렇지만, 그때까지 그 누구도 날더러 무적이라 불러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네. 그럴수록 나는 더 힘을 기르고 기술을 익혔어. 아직 내가 부족할 뿐이라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언젠가 무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야.



 생각해보게. 무적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자신을 훈련시키는 누군가 앞에, 현존하는 진짜 무적,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적이 나타났다고 말일세. 그것도 정작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홀연히 등장했다고 말이야.



 그를 보고 있자니 참 가관이더군. 바짝 야윈 몸에 누더기 천조가리 같은 걸 걸치고 비실비실 걸어가는데, 아이 안은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뭐라고 말하는 거야. 들어보니 우스운 얘기야. 자기애가 버릇이 있는데 하지 말라고 야단쳐 주라나? 가만히 듣고 있던 무적이 싱긋 웃더니 아주머니께 이래. 며칠 후에 다시 오면 그때 얘기하겠습니다. 그 양반은 네다섯도 안 되는 아이에게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거야. 그래놓고 뭐가 무적이란 거지?



 나중에 무적은 정말 그 아주머니 댁에 찾아왔다더군. 아이 앞에서, 그는 아주머니가 부탁한 대로 나쁜 버릇을 고치라고 말해 줬다지. 야단이나 훈계 같은 건 아니었다더라고.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단 한 마디, 그 버릇은 고치라는 딱 한 마디 해줬을 뿐이야. 곁에 있던 누군가 하도 이상해 물었다네. 얼마 전에 아주머니께서 부탁하셨을 땐 왜 바로 얘기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적이 그랬다지. 그땐 나도 같은 버릇이 있었으니까, 자기가 그걸 고치기 전까진 애에게 고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노라고.



 그게 지금 살아있는 '무적'이야. 내가 닮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꼴로 나타나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 시대의 무적이라 불리는 이. 그에게서 내가 질투를 느끼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얘기 아닌가?



 '무적'이란 말을 문자 그대로 풀자면 단순히 '적이 없다'란 얘기야. 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말 그대로 무적, 그러니까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지 몰라. 내가 그를 질투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그는, 무적에겐 적이 한 사람 생긴 거지. 나는 무적의 적일세.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적. 적이 없다고 칭해지는 남자의, 단 한 명의 적.


 


 그때보다 조금 더 자라서 난, 무적에겐 생각보다 적이 많단 사실을 깨달았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질투하고 싫어했지.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도 많았어.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죽이고 싶어 하는' 거야. 난 그들 사이에 끼어 잠자코 무적의 행보를 지켜봤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정부와 몸 하나로 맞서는 것도, 매일 자리에 앉아 물레를 돌리는 모습도. 세상의 절반은 그의 편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의 적이었지만 그 사이에서 그는 태연자약하게 물레를 돌렸어. 실을 자아내는 그 시간이, 그에겐 마음의 평정을 찾는 시간이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을지 몰라. 난 그랬거든. 그가 실을 자아내는 모습을 며칠 동안 자세히 지켜보던 와중에 내게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어. 아, 이 사람이야말로 무적이 될 자구나. 사람들은 그가 이미 무적이고, 현존하는 유일한 무적이라고 말하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는 무적이 될 사람이지만, 아직 무적은 아니지. 그가 자아내는 명주실 같은 가는 인연 줄이 무적이 돼야 할 그를 사방에서 얽어매고 있으니 말이네. 무적이 실을 잣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깨달음은 점차 깊어졌어. 어느새 나는 깨달음의 가장 깊은 곳에 다다랐어. 칠흑 같은 심연, 사람들의 사고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면서 몸뚱이와는 항상 등을 맞대고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 살아있는 무적을 보는 그 때, 나는 머릿속으론 은밀히 무적의 죽음을 상상하고 있었다네.


 


 왜 모든 깨달음의 결말은 죽음일까? 먼 이방의 종교에선 신의 아들이 자기 죽음으로 전 인류의 죗값을 치렀다고 하고, 또 석가모니는 자신의 깨달음을 모두 전파하고 마지막에 제자들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하는 것처럼. 마지막 가르침을 전파하고 마호메트가, 천사에 이끌려 하늘로 올랐다던 것처럼. 긴 세월 자신을 단련한 무적이 최후에 상대하게 될 적이 바로 자신의 죽음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야. 무적을 완성시키는 화룡정점, 최후의 점 한 방울이 바로 죽음인 거지.



 무적이 '적이 없다'라는 뜻인 건 좀 전에 얘기했었지? 말 그대로야. 무적이 되고 싶다면 적이 없어야 해. 그런데 말이네, 솔직히 적이 없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주위를 둘러보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오늘날 이 좁은 땅에만 수억 명 인간들이 먹고 자고 숨 쉰다고 하지. 이 사람은 저 사람의 친구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적이고, 친구고, 혹은 아무도 아닐 수도 있고. 이승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내가 오늘 이 사람과 손을 잡으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열 사람의 적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지. 혹은 내가 한 사람의 적을 만들면, 동시에 다른 쪽에선 수백 명 아군이 생기는 건지도 몰라. 알겠는가? 이 세상에 적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이승에서 어떤 사람이 무적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걸세.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거야. 이승에서 산단 건 축복 아닌 저주라고.


 


 이제 곧 그가 탄 열차가 들어오겠지.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개중에 누군가가 또 소리쳐 줄지도 몰라. '저기 무적이 온다!'
 난 말일세, 무적 자신도 스스로 죽은 다음에야 무적이 되는 거라고 깨달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거대한 정부, 세상의 절반을 가진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큰 나라와 맨몸으로 맞설 결심을 하겠나? 죽음을 각오한 다음이 아니고서야…….



 단지 무적은, 뭐랄까, 불쌍한 걸세. 나라를 되찾고도 서로 화해하지 못하는 이 민족들이,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지 못하고 적대하는 인간들이 너무도 안쓰러운 거야. 모든 사람을 품에 안기 전까지 그는 결코 죽지 않을 결심을 한 건지도 몰라. 그가 무적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전부 우리 때문인 거네. 불필요한 집착을 최대한 줄이라고 설파하고 다니던 그가, 정작 자신은 우리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해서, 죽지 못해서 이 세상을 사는 거야.



 이제 갈 시간이네.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야겠지. 덕분에 홀가분해졌어. 저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나? '마하 트마.', 위대한 영혼.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걸세. 그는 진정 '위대한 이'란 걸, 더 이상 우릴 위해 이 세상에 머무르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몫을 다한 사람이란 걸.



 이제 그를 좀 편히 해줘야 하지 않겠나? 이 땅 수억 명 사람들이 이제 그만 그의 품을 떠나서, 무적이 되지 못한 그의 고통과 집착을 좀 덜어줘도 되지 않겠나? 위대한 영혼이, 진정 성자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축포 세례를 받아도 될 때 아닌가?



 이만 가지. 시간이 됐거든.



 무적을 죽여야 할 때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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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넘게 폐인처럼 살다가 서툰 글만 남기고 갑니다...


 오늘부터 좀 제정신 찾고 살아야죠;;


 


 저녁쯤에 다시 들어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