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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시나리오 계하의 기억 #20 ~ #36 (조금 수정 1)

2007.11.15 11:33

Evangelista 조회 수:1051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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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읍내 폐건물. 낮.


공장이었던 것 같다. 녹슨 기계 몇 기가 있고 나머지는 휑하니 비어 있다. 회색 벽이 우중충하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온다.


아현이 햇살이 들어오는 곳에 놓인 낡은, 팔걸이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 옆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재훈이 담배를 피운다.




이아현 재훈이.


최재훈 예.


이아현 오빠는 엘리트야. 예술계긴 하지만 하여간 그 쪽으로.


최재훈 그렇네요.


이아현 너도 엘리트지?


최재훈 전 건달입니다.


이아현 아버지가 두목이잖아.


최재훈 보스라고 하는 겁니다.


이아현 나 조금은 불안해서 물어보는 거야. 솔직히 대답해야 돼. 알았지?


최재훈 뭔데요?


이아현 성달이파 두목 장남 최재훈이는 왜 아무 볼 것 없는 여자애를 도와주는 걸까요?


최재훈 성달이파 아닙니다. 아버지 성함이긴 하지만.


이아현 아니야? 그럼 뭔데?


최재훈 오복이파랑 같이 얘기하긴 하는데 우린 달거리파예요.


이아현 볼거리?


최재훈 달건이 발음하면 저렇게 된다 그럽니다. 아무래도 상관없고 이해도 안 되지만. 제가 보스 되면 이름부터 바꿀 겁니다.


이아현 아아. 됐어. 물어본 거나 대답해 줘.


최재훈 주장중 씨께서 이 쪽 땅을 아버지께 팔아 주셨으니까요.


이아현 그랬어?


최재훈 아버진 신자셔서요. 거기 보육원을 지으시겠답니다. 곧 다 올라갈 거예요.


이아현 어중간한 건달이네. 그래서 오복이가 오빠한테 이를 가는 거야?


최재훈 안 그래도 아버지 참 싫어하죠.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고. 그런 이유로, 주씨 집안도 엄청 싫어합니다. 아버지한테 땅 팔았다고. 실은 제가 어떻게 안 해도 우리랑 오복이파랑 조만간 한 번 붙을 겁니다.


이아현 옛날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러면 정말 사람 죽어?


최재훈 그럴까요?


이아현 되묻지 말고. 뭐지. 담근다고 하잖아.


최재훈 아현 씨 입에서 그런 얘기 나오는 건 처음이네요. 매일 착한 말만 하시더니. 어제도 일규가가 이런 소리 했었죠?


이아현 나도 하자면 할 수 있어.


최재훈 그럼 하세요.


이아현 오빠가 싫어할 거야.




재훈이 담배를 창 밖으로 튕겨 버린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는다.




최재훈 아현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이아현 뭘?


최재훈 주세영 씨 말입니다. 사촌지간이니 결혼 같은 건 안 될 게 뻔하고 말이죠.


이아현 시끄러워.


최재훈 죄송합니다. 하긴 둘이 해외로 날아가 버리면 되겠군요. 그렇게 하세요. 연애조차도 제도에 묶여 버리는 이런 나라에서 뭘 하겠습니까?


이아현 아, 역시 대학생. 좀 재수 없는 얘기 했어.


최재훈 되는 대로 지껄인 것 뿐이에요.


이아현 오빠 보고 싶다.


최재훈 그거 아세요?


이아현 뭘?


최재훈 아현 씨는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아요. 느낌이.


이아현 나 귀신 아냐.




CUT. 모래밭에 쓰러져 있는 아현.




최재훈 (사이, 미소) 알아요.






#21. 산을 깎아 놓은 절벽 아래 돌밭. 낮.


고교 교복을 입은 일규가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고 있다. 뒤에는 건달 갑, 을, 병이 또한 엄청난 속도로 쫓는다. 곧 숲에 도착하고 일규는 재빨리 길 옆 풀숲으로 사라진다.




건달갑 이 개새끼 어디 갔어? 찾아!


건달병 예.




건달들 각기 흩어져 찾아들어간다. 잠시 후 들어간 곳에서 일규 그대로 나온다.




김일규 어, 그 짜식들 절라게 쫓아오네.






#22. 읍내 시장통. 낮.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시장 바닥이다. 생선 가게에 생선들이 진열되어 있다. 재래시장이라 겉에 보이게 드러내 놓은 냉장 시설 없이 스티로폼 박스에 소금과 얼음을 채워 생선을 올려 놓은 뿐이다. 명애가 생선을 고르고 있고 세영이 옆에 짐을 들고 서 있다. 생선 장수가 고등어 꼬리를 잡고 묻는다.




생선상 대가리 쳐 드리요?


하명애 그래 주세요.


주세영 뭐 하시게요?




뒤쪽으로 일규가 부리나케 뛰어가는 것이 보인다.




하명애 그냥 자반이나.




생선 장수, 도마 위에 고등어를 올리고 칼로 고등어 머리통을 내리친다.






#23. 읍내 폐건물. 낮.


아현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달리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지조차 않다. 재훈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중이다. 표정이 심각하다. 곧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왼손으로는 선글라스를 낀다.




최재훈 오복이네랑 곧 붙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아현 누구야?


최재훈 일규요. 오복이파 애들이 있길래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쫓아오더랍니다.


이아현 붙는 거야?


최재훈 아버지가 어떻게 하시느냐에 따라서요. 그리고 일규도 뭔가 죄 지은 게 있는 것 같고.


이아현 사람 죽어?


최재훈 (사이) 글쎄요.






#24. 마을로 들어가는 길 근처. 아직 개천은 건너지 않았다.


뉴프라이드 승용차에 세영과 명애가 타고 마을로 향하는 중이다. 둘 다 안전띠를 메고 있고 뒷좌석에는 장 봐온 것들이 세 봉지 놓여 있다. 둘이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다리 앞에서 세영이 갑자기 차를 세운다. 명애도 무언가 발견한다. 다리 쪽에 마을을 향해 가는 재훈과 아현이 있다. 아현은 캔디바를 핥아 먹으며 걷는 중이다.




최재훈 들어가시면 당분간 읍내로는 나오지 마세요.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시고요.


이아현 (재훈 쪽을 돌아보고) 할아버지한테도 말할까. (재훈의 뒤를 보고 표정이 굳으며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린다)


최재훈 (아이스크림은 무시한 채) 우리랑 어울리는 걸 알면 별로 안 좋아할 겁니다. 주장중 씨껜 아버지가 따로 연락하실 테고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어깨를 잡힌 재훈이 뒤를 돌아보자 세영이다. 명애는 차에 탄 채다.




최재훈 왜 그러시죠?


주세영 (생각해 보니 할 말이 없다) 저…….


최재훈 (아현에게) 그럼 조심하십시오. (오던 방향으로 가 버린다)


이아현 저기 있잖아.


주세영 누구야?


이아현 (시선을 피한다) 그냥 친구야.


주세영 그래? (한숨)




재훈이 프라이드 조수석 옆으로 지나가려 할 때,




하명애 당신, 달거리파 최재훈이죠? 무슨 일 있어요?


최재훈 별 일 아닙니다.


하명애 애한테 무슨 해꼬지 한 거 아니죠?


최재훈 제가 그럴 사람입니까. 오복이 돌아다니니까 괜히 트집 안 잡히게 조심하십시오. (간다)




다시 세영과 아현.




주세영 질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마라. 별로 안 좋아.


이아현 안 나빠. 착하다고.


주세영 입은 거 보니 조폭 같은데.


이아현 (고개 숙인다) 그건 그래도.


주세영 (사이) 남자친구냐?


이아현 (고개를 번쩍 치켜든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꽥 외치는) 아니야!




명애는 물론 저만치 가던 재훈도 그 쪽을 돌아본다. 아현은 뭔가 말하려다 홱 돌아서서 마을로 뛰어가 버린다.






#25. 뉴프라이드 차량 안.


세영과 명애가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다리는 이미 건넜고 대화하는 중 마을 입구를 지난다. 세영은 안전띠를 매지 않은 상태다.




주세영 (문득) 사실 그러다 날 때렸으면 오히려 어땠을까 생각도 들어요.


하명애 왜요? 맞고 싶어요?


주세영 그게 아니라. 내가 허튼 소릴 했으니까요.


하명애 무슨 말을 했는데요?


주세영 그 남자가 남자친구가 아니냐, 그랬죠.


하명애 하면 안 되는 얘기네요.


주세영 그렇죠? 너구린 저한테 너무 물러요. 사실 그랬을 땐 때리는 게 정석일 텐데.


하명애 (사이) 오만도 하셔라.


주세영 예?


하명애 아현이가 도련님을 좋아한다고 너무 믿고 있는 거 아닌가요? (세영 침묵) 잘 들어요. 당신들 사촌이에요.


주세영 (사이) 난 문제 없어요.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너구리가 그걸 깨우쳐야죠.


하명애 그게 오만하다는 거예요.






#26. 아현의 방.


다섯 평 정도 방에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책상 하나와 아무 것도 꽂히지 않은 책장 하나, 그리고 구석에 잘 개어져 있는 요와 이불 말고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맨바닥에 아현이 엎어져 있다.




이아현 아. (오른손을 뻗어 손가방을 뒤적거린다. 곧 담배갑을 꺼낸다) 음. (잠시 생각하다가 담배갑을 내던진다. 몸을 돌려 드러누워 버리며) 아아, 정말!




문 두드리는 소리. 아현, 재빨리 일어나 담배갑을 가방에 집어넣고 앉는다.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




주세영 (소리) 너구리.


이아현 왜?


주세영 (소리)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아현 (몸을 돌려 등을 보이고 앉으며) 어쩐 일이래?


주세영 화났냐?


이아현 (사이) 아니.


주세영 그래? (바닥에 앉는다) 너, 왜 이렇게 날 쫓아다니냐?


이아현 (조금 힘이 풀려서) 그건 왜?


주세영 옛날이랑 틀리단 말이야. 네가 할 일을 해. 나도 너만 봐 주면서 살 수 없어.


이아현 (작은 소리로 혼잣말처럼) 알아.


주세영 (못 들었다) 뭐?


이아현 (사이) 나가라고!




아현, 일어나 자기가 나가 버린다. 남겨진 세영, 그대로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따라 나간다.






#27. 어느 막다른 골목. 밤.


하나 서 있는 가로등이 고장나 어둡다. 수거해 가지 않은 쓰레기봉투와 몰래 내다 버린 대형 쓰레기로 골목 안은 매우 어지럽다. 담벼락 아래에 재훈과 일규. 둘이 담배를 물고 마주보고 있다.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둘 다 표정이 심각하다.






#28. 주택 마루. 다음 날 아침.


원영이 구두를 신으며 출근하려는 중이다. 안쪽에서 세영이 다가온다.




주세영 형. 어제 술 먹었지?


주원영 그래. 와?


주세영 계룡이랑?


주원영 아니. 회사 사람들이랑 묵었는데.


주세영 계룡이 못 봤어?


주원영 그저께 같이 퍼묵고 연락도 안 해 봤다.


주세영 이 인간 어제 밤부터 연락을 안 받아. 술이나 한 잔 하려 했더니.


주원영 뻗어가 디비 자나 부지. 내 갔다 온데이. 니 형수 나오믄 내 갔다 캐라.


주세영 알았어.




원영 출근한다. 세영은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전화를 건다. 방정맞은 컬러링.






#29. 개천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둑방 계단. 같은 시각.


휴대전화 하나가 떨어져 있다. 계속 벨소리가 울리고 있다. 어느 순간 멎는다.






#30. 주택 마루. #28에서 계속.


세영,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혀를 찬다. 위층에서 아현이 내려오다 세영을 보고 잠시 멈춘다. 그 사이 아현을 발견한 세영. 눈이 마주치자 아현은 도로 올라가려 한다.




주세영 (계단 쪽으로 걸으며) 너구리.


이아현 (무시하고 계단을 오른다)


주세영 야, 너구리. (아현이 계단 위에서 사라지려 하자) 미안.


이아현 (멈춰 선다)


주세영 (따라 올라가다가 중간쯤에서 멈추고는) 미안.


이아현 아냐. 나 피곤해서 그래. 좀 잘게. (다시 걷기 시작한다)


주세영 그러지 말고.




세영이 급히 쫓아가 아현의 옆에 선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멈춘다. 둘은 한동안 그대로다. 세영은 따라가긴 했는데 막상 서니 할 말이 없다. 결국 그는 돌아선다.




주세영 잘 자라. 너무 자진 말고…….


이아현 (선 채) 옛날 일 기억해?


주세영 기억하고 자시고 너한테 쫓겨 다닌 것 밖에 없어.


이아현 그거 말고.


주세영 말고 뭐? (사이) 내려간다.


이아현 그걸 왜 잊어? (기묘한, 혼이 빠진 듯한 웃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C. U) 아현을 등지고 있는 세영의 가슴 위, 갑자기 얼굴 굳어진다.




주세영 그냥 잊은, 잊은 거겠지? (돌아서 아현의 표정을 보고 딱 멈춘다) 뭐였는데?


이아현 (웃는 그대로 침묵.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별 거 아니야.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세영과 마찰이 있기 전의 순진해 보이는 표정이다) 너구리 기억해?


주세영 아아. 응. 그래, 그 인형?


이아현 그래서 오빠가 날 보고 너구리라고 하는 거지?


주세영 (따라 어색하게 웃으며) 뭐, 그런 것도 있고. 왠지 널 보면 진짜 너구리가 생각나서…….


이아현 그래? (웃는다)


주세영 조금. (표정을 펴고 웃는다)


이아현 (다가가서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댄다) 너무 긴장 푸는 거 아냐?




세영, 뒷걸음질쳐 계단 난간을 잡는다.




이아현 잘게.






#31. 개천 다리 아래. #30과 비슷한 시각.


다리 그늘 아래 사람 다리가 삐져나와 보인다.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다리를 건너던 중년 여성이 바구니를 내려놓고 다리 아래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그리고 그늘 아래를 살핀다.




동네人 으, 우에엑!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32. 원영이 일하는 서점.


열 평 정도의 넓지 않은 서점이다. 헌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 가질 않아 누래진 책들이 벽면 책장 전체에 빼곡히 꽂혀 있다. 매장 한가운데에 높이 일 미터 쯤 되는 낮고 넓다란 책장이 있고 거기에 또 책들이 꽂혀 있으며 위에 또한 수북 쌓여 있다. 원영이 관리용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들어와 있던 여대생이 원영에게 묻는다.




여대생 토익 책 아무거나 하나만 주소.


주원영 (돌아보지도 않고 참고서적이 꽂힌 책장을 가리키며) 저 있으니 집어가소.


여대생 아따, 치다나 보고 말하소.


주원영 아따, 내 시방 바쁜 거 함 보소.




여대생이 원영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책을 집으러 갈 때 서점에 전화가 걸려온다. 원영, 재빨리 전화를 받아 어깨와 턱 사이에 끼우고 여전히 게임을 하며 통화한다.




주원영 보광서점이오.


주장중 (소리) 나다.


주원영 아, 예. 무신 일인교?


주장중 (소리) 계룡이 그 놈 뭐 하고 돌아댕겼는지 혹시 아냐?


주원영 하긴 뭘 합니꺼? 기냥 일허고 댕긴 걸루 아는데예.


주장중 (소리) 그냥 일하고 다닌 놈이 왜 배때기에 칼침은 맞느냐 말이야.


주원영 (건성건성) 무슨 칼침을 맞습니꺼? (게임 화면에 원영의 캐릭터가 두들겨 맞고 있다) 칼침은 제가 맞게 생깄구만예.


주장중 (소리) 임마. 농담 아니야.


주원영 (사이, 바쁘게 놀리던 손이 멈춘다. 캐릭터는 죽어 버린다.) 계룡이 칼 맞았십니꺼?


주장중 (소리) 죽었다.


주원영 무신 소린교 그기? 금마 암만 생각해도 그럴 일 하고 댕긴 적이 없는디예.


주장중 (소리) 하여간 왠만하면 빨리 퇴근하고 들어와라.


주원영 예. 알겠십니더. (전화 끊는다.) 얼씨구, 뭔 일이가 이게.


여대생 (토익 참고서를 들고 와서) 계산해 주이소.


주원영 (신경질) 아 기냥 대충 돈 내고 가소! 알아서 계산할꺼니께!


여대생 이 아저씨가 어디서 지랄이야?


주원영 니 미칬나? 어따 대고 반말이고? 확 허리를 접어뿔까부다!






#33. 마을 입구. 낮.


파라솔 그늘이 진 나무 밑둥에 아현이 앉아 있다. 평범히 의자에 앉는 모습이 아니라 무릎을 접어 올려 감싸 안은 채이다.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반대쪽엔 경식이 앉았다. #4와 비슷한 느낌이다.




강경식 계룡이 행님 성격에 술 처묵고 건달한테 시비깐기라. 안 그라믄 저래 될 수가 읎다.


이아현 응.


강경식 그체? 안 글나?


이아현 건달한테?


강경식 달거리파랑 오복이파 모르나? 금마들 알믄 무서버서 여그 못 산다. 엔간해서는 다 알텐데?


이아현 그렇게 무서워?


강경식 하모.


이아현 귀신보다?


강경식 귀신은 있는지 없는지 헷갈리기나 하제, 건달들은 분명히 있다고 아니까는 더 무서운기제.


이아현 경식아.


강경식 어, 와?


이아현 건달들끼리 싸우면 사람 죽어?


강경식 마 내가 싸워 봤어야 알제. 죽긴 죽을끼라. 사시미 그래 박히고 안 죽을 놈은 시걸 행님 말고는 없다.


이아현 시걸?


강경식 (사이) 묻지 마라. 재미 읎는 거 안다.






#34. 시가 외곽의 고급 주택 마당. 낮.


마당은 잔디밭이고 작은 웅덩이가 있지만 물고기는 없다. 희고 예쁜 둥그런 테이블과 의자가 있지만 아무도 그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정자처럼 지어 놓은 지붕 달린 평상에 일규가 올라앉았고 재훈은 웅덩이 앞에 서서 가만히 물을 내려다본다. 뒤쪽에 일견 으리으리하게도 보이는 회색 돌벽 건물이 있다. 그것이 주택 본채이다.


여기는 조폭 두목 최성달의 집이다.




김일규 (평상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한 쪽 엉덩이를 살짝 들며 시원하게 방귀를 뀐다) 으어어어어.


최재훈 자식이 더럽게.


김일규 대포동 아입니꺼 대포동. 붕 한번 하면 바로 날라갑니데이. 마 달은 기냥 뚫어불고 목성 레코드판에 갖다 박는기라요. 쭉쭉 날라가는기요.


최재훈 네 머리통부터 날려주랴.


김일규 (머리를 감싸쥐며) 내는 이거 날라가믄 죽습니더.


최재훈 그리고 엘피판 달린 건 토성이지.


김일규 대학에선 그런 것도 갈키주딩교. 쥑이네.


최재훈 너스레 떨지 마.


김일규 하긴 내도 중학교 때 배았으니 머어…….


최재훈 그러니까, (심호흡 한 번) 아니, 됐다. 그것보다 애들한테 오복이가 사고 한 번 칠 것 같으니까 조심들 하라고 연락해.


김일규 행님이 말해주야 지들도 알아묵을낀데예.




건물 안에서 남자가 나온다. 탄탄한 몸에 딱 달라붙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다.




건달무 (일규를 보며) 야, 일규야. 큰행님이 도련님 보시잔다. (들어간다)


김일규 아, 예.


최재훈 나한테 직접 말하려는 놈들은 없군.


김일규 째까 분위기 이상합니더. 신경 좀 쓰시야겄습니더.


최재훈 일단 가자.






#35. 성달의 방.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유럽식 서재나 옛 귀족의 집무실 풍으로 꾸며 놓았다. 확실히 흑백 체크무늬의 바닥이라든지 속이 빈 벽난로라든지 벽에 걸어 놓은 박제라든지 창에 걸린 벨벳 커튼이라든지 그런 분위기가 충분히 난다. 문제는 책장이며 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 뿐이다.


문 바로 맞은 편 창가 쪽에 티크로 만든 고급 책상이 있고 그 뒤에 창을 등지고 성달이 검은 안락의자에 앉은 채다. 상당히 마르고 키가 큰 체형인 그는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고 있다.


선글라스를 정장 가슴 주머니에 끼워 넣은 재훈이 일규를 데리고 들어와 그 앞에 선다.




최성달 오복이가 드디어 미친 것 같다.


최재훈 무슨 일 있었습니까?


최성달 그 횟집 요리사 칼 맞고 죽었어.


최재훈 예에?




재훈이 어색해 보일 정도로 깜짝 놀란다. 그에 반해 일규는 그냥 듣고 있다.




최재훈 왜 우리가 아니라 주장중 씨네를 때린 걸까요?


최성달 내가 알 리 있냐. 하여간 영감님한테는 연락해 놨다. 어째도 한 판 까야 할 거 같으니까 애들 단속 잘 해라. 알겠지?


최재훈 예.


최성달 그래. 가 봐.


최재훈 예.






#36. 건물 2층 테라스.


탁 트인 정원이 보일……리가 없다. 마당이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니까. 대신 한편에 마을 끝자락과 한편에 읍내 끝자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를, 마을 쪽에 조금 치우쳐 흐르고 있는 개천과 다리도 보인다.


이 테라스는 2층 복도와 연결된다. 복도와 테라스를 경계 짓는 것은 유리벽과 유리 미닫이 문이다.


선글라스를 낀 재훈이 서서 담배를 피우는 옆에 일규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푸는 중이다.




김일규 오복이가 그칸 기네요.


최재훈 (사이) 난 가끔 얼마나 나쁜 짓을 해야 이런 집에서 살 수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


김일규 에, 그기야 제가 뭐라 말할 사항이 못 되구.


최재훈 (말을 자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냄새나는 집을 경찰이 안 터는지도 궁금해.


김일규 짭새 뜨봐야 지들이 뭘 우짠답니꺼? 신경 쓰지 마이소.


최재훈 (침묵. 한참 그대로 담배를 피우다가) 그래. 오복이가 그런 거겠지?


최재훈 하모요. 그라고도 남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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