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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시나리오 계하의 기억 #1 ~ #19 (조금 수정 1)

2007.11.15 11:32

Evangelista 조회 수:1496 추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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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하(季夏)의 기억






등장인물


이아현         21세.


주세영         26세. 아현의 고모의 아들, 세영에게 아현은 외숙부의 딸


주장중         74세. 세영 조부


최재훈         21세.


김일규         20세.


하명애         29세. 세영의 사촌형수


주원영         30세. 세영의 사촌형


심계룡         27세.


강경식         19세. 아현의 이모부의 친가 쪽 조카


최성달         50세. 조폭 두목.


양오복         44세. 조폭 두목.


건달갑         30대 중반. 오복이파 조폭.


건달을         30대 초반. 오복이파 조폭.


건달병         20대 중반. 오복이파 조폭.


건달정         40대 초반. 달거리파 조폭.


건달무         30대 초반. 달거리파 조폭.


건달기         20대 후반. 달거리파 조폭.


생선장수       40대 초반. 남성.


동네사람       50대 후반. 여성.


여대생         20대 초반.


TV앵커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고, 나이도 상관없고.


기타 조폭들   불특정 다수






#1. 촌 도로에서, 회색 뉴프라이드 차량 안. 한여름, 낮.


에어컨은 켜지 않고 창을 연 채 운전중인 세영. 약간 땀에 젖어 있다. 다문 입 위로는 보이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추측 외엔 알 수 없다. 뒷좌석에 놓은 쿠션에 십자수로 우스꽝스러운 스티븐 시걸의 얼굴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잠시 후, 신축중인 건물 앞에서 멈춰, 차에서 내리며 건물을 올려다본다. 검은 안경알에 태양이 비친다.






#2. 그 마을 입구, 커다란 나무가 베어져 남은 밑둥. 같은 시각.


입구 바깥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가 그렇게 드물게 다니는 것은 아니다.


- 아현도 마찬가지로 입 위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 밑둥은 입구 안쪽에 있다. 베어지기 전 줄기는 매우 굵었던 것 같다. 아현이 누우면 물론 허벅지 절반 아래는 삐져나오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이니 과연 엄청난 수령을 자랑했을 것이다. 하긴 지금 그렇게 제대로 눕기는 힘들다.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파라솔을 끼워 놓았으니까.


여하튼 아현은 거기 앉아 있다. 앉아서 캔디바를 혀에 대고 찬 느낌을 받으려는 듯하다. 녹은 아이스바가 원피스 치마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문득 돌아보더니 지금 정도, 세영이 도착한 마을 밖의 건물 쪽을 응시한다. 그 건물은 논 건너편에 아주 작게 보인다. 일직선으로 걸어가도 오 분에서 십 분은 걸릴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아현 응.






#3. 다시 뉴프라이드 차량 안.


조수석에 장중이 탔다. 그는 손자와 달리 안전벨트는 메지 않고 있다. 조금 마르고 눈빛이 또렷한 노인은, 올해 일흔넷으로 나이에 비해 정정해 보인다. 희게 센 머리는 뒤로 깔끔히 빗어 넘겼다.




주장중 논도 메울 거다.


주세영 예.


주장중 저 빌라에 네 작은아버지가 들어올 거다.


주세영 그렇게 됐나요.


주장중 사돈 가족들도.


주세영 어머니 쪽 말인가요?


주장중 거 말고 내 사돈이 어디 있나.


주세영 잘 하셨어요. 아니, 감사합니다.


주장중 한 번 맺은 연은 끊기 힘드니라.




마을 입구를 통과해 들어가는데 운전석 창 밖으로 아현이 보인다. 양팔을 쫙 벌리고 섰다.




주세영 저 너구리같은 녀석도 말이죠.


주장중 대학을 가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주세영 알아서 하겠죠.


주장중 애비 잘 있냐.


주세영 예.


주장중 어머니 보러는 자주 가냐.


주세영 요즘은 조금 바빠서요.


주장중 시간 날 때마다 가라. 안 그러면 한이 맺혀서 못 올라갈 거다.


주세영 예.


주장중 (백미러로 뒷좌석을 흘끔 보더니) 쿠션 바꿔라.


주세영 싫어요.






#4. #2의 나무 밑둥, 파라솔 그늘 아래.


앉아 있는 아현과 경식. 아현이 다 먹고 던져 버린 아이스바 막대가 주위바닥에 굴러다닌다. 그러면서 아현이 말하는 것이 들린다.




이아현 오빠랑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야. 아까 지나갔어. 차 새로 산 것 같았어. 할아버지랑 같이 가고 있었어. 무슨 얘기 했을까? 나, 오빠 온다는 얘기 듣고 가슴이 막 두근거려서, (사이) 소풍가기 전에 그런 거 있잖아. 며칠 동안 못 잤어.


강경식 누나. 내, 누나 볼 때마다 모르겠는긴데.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아현과 그 뒤통수를 향해 말하는 경식.




강경식 누구랑 말하는기고?


이아현 바람의 정령.


강경식 에어컨?


이아현 눈 세게 감았다가 뜨거나, 어느 순간 갑자기 보이는 거 있잖아. 쪼끄만 게 왔다갔다하는.


강경식 정신과?


이아현 (경식을 향해 보고) 혼난다.


강경식 내야 대충 아니까 그체, 다른 사람이 보면 진짜 정신병원 집어 여어 버릴지도 몰라.


이아현 에이, 안 그래.


강경식 모른다니까.


이아현 갈래. (일어선다)


강경식 어데? (따라 일어선다)


이아현 집에.




아현, 마을 안쪽으로 걸어간다. 경식은 따르지 않는다.






#5. 부지가 백 평은 되는 것 같은 꽤 큰 주택 마당.


세영이 계단 아래 숨어 있다. 지나가던 명애, 세영을 발견한다.




하명애 뭐 해요?


주세영 숨어있습니다.


하명애 왜요?


주세영 너구리 떴습니다.


하명애 어머. 못 봤는데.


주세영 너구리니까요. 어느새 슬슬 기어들어온단 말이에요.


하명애 그런데 왜 아현일 너구리라고 해요?


주세영 그럼 형수님은 뭐라고 하시겠어요?


하명애 예쁘장하니 착하고. 꽃순이?


주세영 형이 조카 이름을 짓겠다고 바득바득 우겨 줘서 다행이에요.






#6. 주택의 1층 마룻바닥. 저녁.


마루는 마당을 향해 트여 있고 미닫이 샤시문이 달린 구조이다. 안방을 포함해 방 두 개와 부엌이 연결된다. 다른 쪽의 복도를 통해 작은방과 화장실이 연결된다. 그 복도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2층으로 연결된다. 2층에 원영 부부의 방과 아현의 방이 있다.


세영과 원영이 사과를 먹고 있다. 세영은 원영과 얘기하며 점점 사투리를 섞기 시작한다.




주세영 진짜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렇게 말해도 형수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른다는 거야.


주원영 형수 마 다 좋은데 그기 문젠기라. 요즘은 빡촌 가도 그래 이름 안 붙인데이.


주세영 애는 잘 크나?


주원영 니 형수가 원체 잘 멕이노니, 내 앞으로 밥값 들어갈 거 떠오르면 미치불겄다카이.


주세영 멫 살이지?


주원영 세 살.


주세영 형수 요즘 일 나간다며?


주원영 몰랐나? 그만 뒀다. 아현이 쌔 돌아댕기가 집 볼 사람도 읎고.


주세영 맞나.


주원영 니 임마, 와 그래 가 안 좋아하노?


주세영 스토커가 따로 없다.


주원영 가만큼 착한 아도 읎데이.


주세영 착하니까 머라 카지도 몬하겠다 아이가.


주원영 얼라 때 을매나 니 좋다 졸졸 따라댕기쌌나. 니가 잘 해주야 된데이. 인자 가 니밖에 읎어.


주세영 내가 책임을 느끼야 하나? 와 쫓아댕기노? 붙지좀 마라- 안 그카는 게 어디고?


주원영 그라는 소리가 아이고. 마 됐다. 치아라. 니 시방 사투리 쓰고 있데이.


주세영 마아……. (작은 한숨)


주원영 인텔리 사투리 쓰믄 대빠 웃긴거 아나? 안경이나 벗고 써라.


주세영 (원래 어투로 완전히 돌아가 안경테를 만지작댄다) 그게 뭔 상관이야.




명애, 사과를 한 접시 들고 나온다.




하명애 사과 더 들어요.


주세영 아, 예. 잘 먹을게요.


주원영 여보. 배 터진다. 세영이 니 많이 묵어라.


하명애 막걸리는 동이째 들어가면서 사과 한 개가 안 들어가요?


주원영 술이사 묵자마자 싸지 안하나. 사과는 묵고 쌀라믄 낼 아침은 가 봐야지.


하명애 핑계는 좋아요.


주원영 하여간에. (세영에게) 니 사투리 쓰는 거 듣고 앉았자면 일본 아들 영어 씨부리는 것 같아서 아주 듣기가 뭐하다.


주세영 뭐 어때.


하명애 씻었어요?


주세영 좀 앉아 있다가 목욕탕이나 가려고요.


하명애 (시계를 보니 여덟 시) 지금 가면 사람 없을 거예요.


주세영 그래요? (일어난다)


주원영 앉아라. 사과 묵고 가라.


주세영 형 거 뺏어 먹으면 형수 화낸다. (걸어 나간다)






#7. 몇 분 후, 거리.


전봇대에 깜빡이는 가로등. 시골 거리다. 담 넘어 집들에 불이 들어와 있다. 세영이 슈퍼에서 나온다. 산 담배 봉을 뜯고 한 대 꺼내 피워 문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반대편에서 경식이 온다. 세영을 보더니 멈춰 선다.




강경식 행님요.


주세영 (잠시 서서 보다가) 아. 오랜만이다. 경식이?


강경식 예. 잘 지내싰는교?


주세영 잘 지내지 뭐. 넌 어떠냐?


강경식 모릅니다. 수능 봐야지예.


주세영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런데 너…….


강경식 누나 만나봤능교?


주세영 아니.


강경식 누나 좀 어찌 해보이소. 이상합니더.


주세영 하루 이틀 이상한가, 걔가.


강경식 요즘은 구신하고 노가리 깐다 아입니까. 그라믄서도 이쁜 척은 다 할라카지요. 아까도 뭐라카더라, 그, 바람의 정령하고 얘기한다고.


주세영 몰라. 간다.


강경식 어디 가는데요?


주세영 목욕탕.


강경식 아, 내도 가야지. 돈 좀 내 주이소.


주세영 싫어, 임마.


강경식 (들러붙는다) 아, 그라지 말고.


주세영 저리 안 가?






#8. 공중목욕탕.


탕 속에 세영과 경식이 앉아 있다. 다른 남자 두 명은 탕 밖에서 몸을 씻는 중이다.




주세영 너 대학 가면 다 받아낼거다.


강경식 잘 나간다카드만요. 서울서 내리와가 시골 촌놈한테 돈 뜯어 묵는교.


주세영 뭐가 잘 나가.


강경식 그림 팔아 묵었단 얘기가 고대로 들어왔구만.


주세영 그냥 판 거야.


강경식 그림 그려 인정받았단 소리 아입니꺼. 그라믄 잘 나가는기제. 한 개도 못 파는 환쟁이가 을마나 많은데.


주세영 웃기는 소리 마라. 그럼 만화가들은 떼부자겠다?


강경식 반은 맞는 얘기 아닌교. 때나 밉시다. 내도 때부자요. (탕에서 나간다)


주세영 들어와서 삼 분 만에 나가나. 때 안 밀려. 들어와.


강경식 (도로 들어간다) 등 밀어 줄끼지요?


주세영 네가 밀어라.




계룡이 들어온다. 탕 쪽으로 걸어오며,




심계룡 왔나? (탕에 들어가려 한다)


주세영 씻고 와.


심계룡 박정시럽기는. 친구 왔구만.


주세영 어떻게 알고 왔냐?


심계룡 느그 형수가 말해주대. 방금 나갔다카믄서.


주세영 거긴 네가 왜 가?


심계룡 간혹 보러 간다. 경식이 안녕?


강경식 누나 있등교?


심계룡 모르겠다. 듣고 쌔 날라온기라. (탕에 들어가려 한다)


주세영 씻으라니까.


강경식 행님 나오실 때 누나 없었지요?


주세영 없었는데.


강경식 이게 그긴기요. 이 밤중에 어데 돌아댕기는지 말이요.




그 틈에 계룡 발을 담근다. 세영이 급히 그 쪽을 돌아본다.






#9. 마을 입구, 그 시각.


얇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아현, 서 있다. 건설중인 예의 빌라 쪽을 바라본다. 밤이 되니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발을 떼어 마을 밖으로 나간다.






#10. 공중목욕탕


결국 계룡은 탕에 들어왔다. 머리가 젖지 않은 것을 보아 씻지 않고 그냥 들어간 것 같다. 계룡과 경식이 지껄이는 동안 세영은 좀 떨어져서 가만히 앉아 몸을 불리고 있다.




심계룡 개천 다리에 구신이 나온다카드만.


강경식 그거요? 구신 아닙니더. 중삐리들 다리 밑에서 담배피는기라예. 들은 긴데 우리 학교에 건달 같은 새끼들이 있는데 가들 담배 피는거 딱 보고는 건방지다카믄서 후드려 패뿠다 아입니까. 그 뒤로는 거서 핀다 얘기가 있습니더. 근데 내도 괜히 보러 갔다간 줘 맞을까봐 무서버 못 가겠심더.


심계룡 뭐가 무섭노. 내년이면 졸업 아이가, 니?


강경식 요즘 중삐리들이 중삐리가 아닙니더. 우리 반 일규가 중삐리 세 놈한테 처발리가 삼 주를 병원에서 못 나왔다 아잉교.


심계룡 일규 가가 누고?


강경식 있습니더, 복학한 놈.


심계룡 아, 마, 그라도 장중이 영감님 손자는 안 건들겄제. 고작 해야 중삐리들이.


강경식 세영이 행님이야 손자래두 내는 아니지예. 내는 대학 갈낍니더. 여기 남기 싫어서.


심계룡 내 밑에서 비늘이나 다듬자.


강경식 열심히 만드소. 내 그 회 다 묵어드릴게.




세영, 일어나 탕에서 나간다.




심계룡 야, 세영아. 때 밀끼가? 내 밀어줄까?


강경식 와요? 사시미갖다 밀구로요? 사람 비늘 다 뱃기집니더.


심계룡 주둥이 닫아라. 니부터 회 쳐먹기 전에.


주세영 자식들 더럽게 시끄럽네. (어깨를 주무른다)






#11. 마을 밖 개천 다리 위. 아홉 시 반 정도.


아현, 돌난간에 기대어 서 한 쪽 턱을 괴고 물이 흐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마을 입구 반대쪽 논 넘어 먼 곳에 시가지가 보인다. 불빛이 비쳐온다. 곧 불빛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재훈과 일규가 그 쪽에서 걸어온다.




최재훈 주세영 씨 왔다던데요.


김일규 여서 뭐 하요?




아현, 일규에게 한 손을 내민다. 일규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넨다. 입에 무니 재훈이 불을 붙여 준다. 한 모금 빨아 내뿜더니 일규 이마를 툭 치며. 그리고 계속해서 차분하고 거의 음조가 없는 목소리로 대화한다.




이아현 고등학생이 담배나 피우고 말이야.


김일규 아, 이마 치지 마소. 쇠빠따로 맞은 게 아직도 징징 울립니더.


최재훈 무슨 쇠빠따냐? 그걸로 맞았으면 죽었지.


김일규 대충 비슷한 걸로 맞았다 이 얘기지요.


이아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김일규 누님요. 억지로 말 이쁘게 할라 카지 마시고 기냥 말씀하소. 이빨 까지 마라 카믄 되잖습니꺼?


이아현 어쩌다 중학생들한테 얻어맞았어?


김일규 아니, 소문이 그리 퍼졌는갑네. 그기 아니라예. 길을 가고 있는데 오복이네 아덜이 우리 나와바리에서 자꼬만 깔짝대싸가지고 그거 뭐라 그캤더니 후드려 패는 기 아입니꺼.


이아현 자기들이 먼저 들어왔으면서 그래도 돼?


김일규 나중에 보니께 내가 멋도 모르고 걷다가 그쪽으로 가 부린 기요. 잘못했슴다, 허구 풀려났제.


최재훈 일 년 꿇어서 아직도 고등학생인데 학교에다가 건달들한테 털렸습니다. 할 수는 없었다는군요. 어차피 선생들도 다 아는데 말입니다. 뭐, 일규 얘기는 됐습니다. 왜 불렀어요? 얘는 수능 공부도 해야 되는데.


김일규 무신 수능입니꺼? 마 치우시소.


이아현 수능 봐.


김일규 아, 예에.


이아현 오빠 왔으니까 오복이 시비 걸려 할 거야. 못 하게 애들 끌고 막아.


최재훈 음지선도 힘든 겁니다.


이아현 고기 사줄게.


김일규 갈매기살 사주소.


이아현 갈매기살 사줄게.


김일규 아들 수만큼 사주소.


이아현 애들 수만큼 사줄게.


최재훈 그럼 저희 갑니다.


김일규 쉬시소. (둘, 가던 길로 가는데)


이아현 잠깐. (둘 돌아보자) 담배 주고 가.


김일규 받으소. (끼득대고 웃으며 담배갑 던져준다)






#12. 마을 입구 쪽.


세영이 담배를 물고 걸어 나가고 있는데 들어오는 재훈, 일규과 마주친다. 세영은 그냥 지나치고 일규가 나중에 뒤돌아보고 재훈에게 무언가 말한다. 재훈은 고개만 끄덕하고 대답이 없다.






#13. 개천 다리.


담배를 물고 시가를 바라보는 아현과 뒤에서 나타나 담배를 물고 아현을 바라보는 세영.




주세영 집에 가자.


이아현 (돌아본다. 반갑게) 찾으러 왔어?


주세영 끊어.


이아현 (피우던 장초를 한 손에 들어 올리고) 끊어?


주세영 당장.


이아현 응.




아현, 담배를 개천에 던져 버리고 폴짝폴짝 뛰어와 세영에게 매달린다.




주세영 (팔을 휘저어 떼어내려 하며) 너 담배 피우는 거 아무도 모르지?


이아현 (더욱 달라붙으며) 아무도 몰라. 슈퍼 아줌마 빼고.


주세영 남은 것도 버려.


이아현 응. (남은 담배가 든 담배갑을 꺼내 망설임 없이 개천에 던진다)


주세영 아직도 기억 안 나?


이아현 매일 오는데도.


주세영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손으로 밀어내려 하며) 그냥 미끄러진 거 아닌가?


이아현 아냐. 분명히 누가 있었어. (세영의 손가락을 살짝 문다)




세영, 떼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걷기 시작한다.




주세영 왜 누군질 못 떠올리는 거지?


이아현 몰-라.






#13. 4년 전. 밤. 개천 다리 아래.


다리 위쪽 시선에서, 아현이 아래 모래밭에 떨어져 쓰러진 것이 보인다.






#14. 술집. 그 날 밤.


그다지 넓지 않은, 테이블이 여섯 개 있는 술집. 민속주점이 아닌데도 여기저기 낡아 마치 민속주점처럼 보인다.


계룡과 원영,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 외에 두 테이블, 사람들이 있다.




심계룡 아현이 쓸 방을 내 주시면 된다 아잉교.


주원영 할배가 된다 해야 말이제.


심계룡 영감님 왜이래 쫀쫀하신교. 내가 이래봬도 영감님 젤루 아끼는 손자 세영이 불알친구에, 영감님 젤루 아끼는,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아현이 입원했을 때 수발 들어준 게 누군교? 그거 생각하면 영감님이 그래 몬허제.


주원영 갑자기 아부지가 서울서 내려오신다니 그렇제. 내도 어쩔 수 없는기라. 아부지 쫓까내고 니 들어와라 그칼 순 읎는 거 아이가?


심계룡 하긴 그렇지예. 그래서 내가 말 안 하오? 아현일 세영이 따라 서울 올려보내버리소. 가시나 반색하고 뛰어들끼라예.


주원영 올려보내믄. 세영이한테 시집을 보낼끼가, 뭘 우짤끼가?


심계룡 좋다카믄 시집 보내지요.


주원영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임마. 사촌끼리 결혼이 되나?


심계룡 안될 건 뭐 있소? 내도 이제 반지하에서 탈출해야겠소.


주원영 에라이 똥물에 튀겨죽일 놈아. 그리고 세영이가 별로 안 좋아한다. 그딴 소리 접고 내가 할배한테 말해 볼 거니께 잔말 말고 기다리래이. 알았나?


심계룡 뭐, 알겠소.


주원영 아덜한테 이상한 소리 하덜 말고!


심계룡 예.






#15. 주택 마루. 밤.


아현과 세영이 들어온다. 장중과 명애는 잠들었고 원영은 계룡과 술을 마시러 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다. 세영이 후 한숨. 아현이 종종걸음으로 부엌에 가 잠시 후 물을 컵에 담아 가지고 온다. 한 번에 마시는 세영.






#16. 주택 마루. 몇십 분 뒤.


세영이 앉아 멍하니 달을 쳐다본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화장실 쪽에서 나오던 아현이 그 어깨를 두드려 깨우고 작은방 쪽을 가리킨다. 세영,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가 문을 닫는다.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던 아현, 즐거운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간다.






#17. 세영이 자는 방. 심야.


불 꺼진 좁은 방, 세영이 요를 깔고 누워 자고 있다. 머리맡에 담배갑이 널부러져 있다. 근처 테이블 위에는 재떨이가 놓여 있는데 아까 도착해서 피운 것인지 꽁초가 몇 대 있다. 세영은 피곤해서인지 웃통만 벗은 채이다. 잠시 후 문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열린다. 네글리제를 입은 아현이 들어와 다시 조용히 문을 닫는다. 그리고 자는 세영의 머리맡 담배를 하나 집어 피워 물고는 쪼그리고 앉아서 가만히, 한참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작은 소리로 짧게 흥얼거린다.




이아현 산토끼 토끼야-. 식용일까요. (사이) 오빠. (사이) 세영 오빠. (일어서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다시 쪼그려 앉아 한참 내려다본다) 미안. 진짜 마지막. 이제 안 피울 거야.






#18. 다음 날 아침, 마루.


상을 펴고 아현, 세영, 장중, 원영, 명애가 식사중이다. 세영과 원영은 꽤나 피곤해 보인다. 원영은 술을 너무 마셔서 숙취인 것 같으나 세영은 왜인지 잘 알기가 힘들다. 몸이 무거운 듯하다.




주장중 너희 술 마셨냐.


주원영 계룡이가 사 달라 하도 졸라싸서예.


주세영 전 가위가 눌려서…….


하명애 많이 피곤했나보네요. 어떻게 눌렸는데요?


주세영 뭐가 계속 부르던데, 잘 모르겠네요.


주장중 피곤하면 밥 먹고 더 자거라.


주세영 아뇨. 괜찮아요.


주장중 원영이 넌 출근해야 될 놈이 무슨 술을 그렇게 먹냐.


주원영 얘길 하다 본께 말이지예.


주장중 또 방 달라 그랬지?


주원영 예.


주장중 계룡이 그 놈은 그래 가지고 어찌 장가나 들지 모르겠네, 원. 나도 하나 빼 주고 싶지만서도, 남는 게 없는데 어떻게 하나. 안 그러냐.


주원영 얘기는 해 놨심더.


주세영 (명애에게) 무슨 얘기예요?


하명애 계룡 씨가 지금 짓는 빌라에 한 세대 빼 달라고 했다나 봐요. 그런데 아버님 한 집이랑 아현이네 두 집 빼고 나머진 다 분양이 들어가서 남는 게 없는 거죠.


주세영 그 인간도 참.


주장중 아현이 넌 어쩔 거냐?


이아현 (주위 대화엔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먹다가) 네?


주장중 대학 갈 거냐? 네가 확실히 해야지.


이아현 잘 모르겠는데요.


주세영 내버려 두세요, 할아버지. 작년에도 재수 기껏 해 놓고 시험 안 봤잖아요. 올해는 공부도 안 했으니 뻔해요.


주장중 그럼 취직을 하던가.


주원영 저 출근하겠심더. (후다닥 일어나 나간다)


주장중 바로 도망가는구먼. 여튼간에 이 집은 빌라 다 지어 놓으면 팔 거니까 빨리 결정해라.


이아현 그럼 취직할까요?


하명애 할 데 있니?


이아현 (활짝 웃으며) 찾아보면 나오겠죠.


주세영 할아버지. 너구리 들어가는 집이 어떤 집인데요?


주장중 옥탑방이다. 혼자 살 테니까 그걸로 충분해.


주세영 쟤 삼촌 숙모는 어쩐다는데요? 데리고 살면 되지 않나요? 외할머니에, 외삼촌, 외숙모. 세 명에, 너구리까지 네 명.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하명애 그러기도 뭐한 게 말예요.


이아현 나 큰아버지 싫어.


주장중 그런 일이 있다. 같이 살면 서로 눈치 본다. 나중에 얘기하자.




아현, 다소 고개를 숙이고 표정이 좋지 않다. 세영이 곁눈질로 본다.






#19. 식사 후. 같은 자리.


아현과 장중과 세영. 아현은 원피스 차림으로 신을 신고 있다. 명애는 설거지 중이라 부엌에 들어간 상태이다. 장중과 세영은 차를 마시고 있다. 정확히는 장중이 녹차, 세영이 커피이다.




이아현 나갔다 올게요.


주장중 조심해서 갔다 와라.




아현, 신을 다 신고 나간다.




주세영 어디 가는지 안 물어 보세요?


주장중 그냥 나가 노는 거지. 젊은 애 집 안에 가둬 봐야 좋은 거 없다.




CUT. 전날 밤 다리 위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현.




주세영 뭐 하고 노는지 아십니까?


주장중 나쁜 짓 하고 돌아다닐 애는 아니다.


주세영 (사이) 무슨 얘기예요?


주장중 착한 짓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주세영 아니, 너구리 삼촌 얘기요.


주장중 그거……. 아현이 아비랑 에미가 자살했잖냐. 너 군대 가 있을 때.


주세영 들었지요.


주장중 아현이 삼촌한테 빚보증을 서 달래놓고 못 갚겠으니까 그런 것 같더구나. 집 팔고, 그래서 내가 집 하나 준 거다. 제 입장에선 불편하겠지. 아현이 보기는 싫을 텐데 빌라 받는 건 내가 걜 귀여워해서 그런 건 줄 뻔히 알고 있거든. 그 애도 그걸 아니까 같이는 안 살려는 것일 테고.


주세영 그런 일이었군요.


주장중 아현이가 대학 붙어서 다른 데로 가면 아현이 살 옥탑방 계룡이 줄 수도 있다. 너 서울 간 사이에 너 대신에 챙겨 주던 게 그 놈이야. 나도 미안해 죽겠다. 그런데 놀기만 하고 여기서 취직하겠단 소리나 하니 답답하지.


주세영 취직도 안 될 걸요. 너구리 성격에.


주장중 넌 대체 왜 이렇게 아현일 꺼리냐. 예전엔 안 그랬잖아.


주세영 그냥 그래요.




CUT. 모래밭에 쓰러져 있는 아현.




주세영 그냥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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