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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우산

2010.11.22 08:00

Yes-Man 조회 수:478 추천:4

extra_vars1 1. 토끼와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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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오는데 비가 오고 있었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가랑비도 아닌 잔잔하지만 꽤나 요란스러운 비였다. 순간 비를 맞으며 갈까 고민 했지만 나답게 전진하기로 했다.


‘에이 내가 언제부터 이것저것 피하며 살았다고.’


거리는 조용했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서로 그냥 스쳐 지나갈 뿐. 그래서 조용했다. 오늘은 왠지 비를 맞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떨렸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포근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병원에서 집까지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여러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지나 주택지를 거쳐 작은 언덕을 넘어야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냥 택시 타고 갈걸 그랬나.’


조금은 후회의 마음이 생겼지만 고개를 저었다.


‘좀 더 당당해져야지.’


연약함, 가냘픔과 같은 여성의 나약한 이미지가 싫었다. 그래서 좀 더 활동적이고 당당하게 강하게 지내왔다. 어느 날은 같은 과에 한 동기가 내게 좀 더 꾸미고 다니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래야 남자애들이 좋아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웃어 넘겨버렸다.


‘나를 버리면서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


곧 가을이라 그런지 비는 꽤 차가웠다. 몸조리 잘하고 좀 웃으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의사 주제에 꽤나 건방진 처방을 내줬다. 좀 웃으라니.


“조금은…”


“조금은 외로울지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10살 여름의 어느 날, 내 인생에 큰 별 두 개가 떨어졌다. 그리고 슬퍼했다. 검은 물결과 어둑한 그날의 초상[肖像]은 왠지 아직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오늘처럼 비라도 왔으면 좋았을 것을…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보지 않는 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지독하게 잘 알고 있어…”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평소 사람으로 붐비던 상점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발과 그 아래로 흐르는 빗물이 부딪혀 착착 소리를 냈다. 발이 빗물을 두드리는 것일까 빗물이 발을 두드리는 것일까.


‘어쨌거나 만나 두드리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걸음을 멈췄다. 거리 한 가운데. 몸을 숨기거나 피할 곳 없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비는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이제 한계일지도.’


눈을 꽉 감아버렸다. 얼굴로는 조금은 짠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비는 끊임없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비가 내 몸을 두드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렇게 어여쁘신 분이 비를 맞고 있으시나요.”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손수건을 건넸다.


‘이 사람은 누구지.’


남자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자신을 소개했다.


“같은 학교 같은 과인데. 모르겠어?”


‘뭐?’


몰랐다. 꽤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대학생활을 한 것 같은데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었다.


“혹시 선배세요?”


“동기인데.”


“아, 미안…”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약간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건 그렇고 손수건 좀 받아주지 그래? 팔 아픈데.”


“아, 미안…”


나는 그의 손수건을 받아서 얼굴을 닦았다.


“그런데 어디 가는 중 이었어?”


“집에 가고 있었어.”


“집이 어딘데?”


“저기.”


나는 가던 길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구나. 아쉽게도 나랑 길이 다르네.”


내 태도에 화낼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이 우산은 네가 써. 난 여기서 집이 금방이어서.”


“응?”


‘어째서?’


“난 집이 금방이니까 집이 멀어 보이는 네가 써. 내일 학교에서 돌려줘.”


‘어째서…’


어째서 모르는 사이인데 이런 친절을 베푸는 걸까.


“왜.”


“왜 우산을 빌려주는 건데?”


내 물음에 그는 약간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수건도 빌려줬지.”


왠지 조금 화가 났다.


“그러니까 왜!”


내가 화내자 그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금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 싶으니까.”


말도 안 된다. 모르는 사람에게 우산과 손수건을 그냥 빌려주고 자신이 비를 맞는다니.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화가 났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화가 났다.


“난 네가 누군지 몰라. 그래서 거절할게.”


“이런.”


“자, 손수건.”


“잠깐만 기다려 봐.”


“빨리 가져가. 이번엔 내 팔이 아프네.”


“잠시만.”


그는 손수건을 든 내 손을 잡았다.


“어느 날, 거북이는 토끼의 도발에 넘어가고 말았어.”


그는 잡았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경주를 하자고 토끼에게 제안했지. 꽤나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토끼는 받아들였고 경주는 시작 됐어. 그리고 토끼는 앞질러 나갔고 거북이는 천천히 열심히 결승점까지 갔어.”


“그런데 한참을 가던 거북이는 중간에 토끼를 발견한 거야. 그는 자고 있었어. 그리고 거북이는 생각했어. ‘나는 느리지만 여기까지 열심히 왔고 지금 토끼를 깨우지 않아도 나는 공정한 경기를 한 거야.’라고.”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야.”


“조금만 더 들어줘. 그래서 결국 거북이가 경주에서 승리했어. 그리고 토끼에게 다가가 말했어. ‘내가 이겼어. 그리고 네가 졌어.’ 토끼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어. 그리고 사라졌어. 그리고 거북이가 토끼와 다시 만났을 때는 토끼의 꼴은 말이 아니었어. 그리고 거북이는 깨달아버렸어. ‘내가 좀 더 정직했더라면 이런 엔딩은 없었을 텐데.’라고.”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거북이야. 그래서 그런 거야. 미안해. 하지만 나는 너무 이기적인 놈이라 이럴 수밖에 없어. 내 욕구를 위해 이럴 수밖에 없었어. 실례라는 건 알아.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어. 미안해.”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왠지 너무 슬퍼 보였다.


“그래서 이 우산은 잘 쓰고 가. 그 손수건도.”


그는 내게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그렇게 가버리려고?”


그는 멈춰 섰다.


“그냥 그렇게 가버리면 정말…”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토끼가 나쁜 놈이 되잖아. 같이 쓰고 가자.”


나는 우산을 그에게 씌어주었다.


“같이 쓰자.”


그는 내게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집은 생각보다 멀었다.


‘멍청한 사람.’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고 걷고 있었다. 우산을 든 팔이 내게 달 때 마다 살짝 놀라며 떨어졌다.


‘귀여워.’


“그래서 토끼가 사라진 뒤 어떤 일이 있었어? 토끼에게.”


“사실 나도 그 이야기는 잘 몰라. 단지 거북이는 다시 만났을 때의 토끼를 알 뿐. 하지만.”


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내 눈치를 봤다.


“거북이는 짐작할 수 있었어. 사실 거북이는 토끼를 찾아다니고 있었어.”


“왜? 미안해서?”


“아니.”


그는 입을 닫았다. 그는 약간 떨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졌다.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다시 물었다.


“왜 거북이는 토끼를 찾아다녔는데?”


“그건…때문이야.”


그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아,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작은 빌라였다. 크게 특징이 없는 빌라였다. 3층인 빌라 앞에는 자전거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 자전거들은 주인들에게 버림을 받았는지 비를 맞고 있었다.


“잠시 우리 집으로 들어와.”


그는 나를 그의 집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주방과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반 지하여서 그런지 조금 어두웠다. 그는 불을 켰다. 방안은 꽤 깔끔했다. 이불 정리도 잘 되어 있었고 책장에 책들도 잘 꽂혀있었다.


“꽤 깔끔하게 사는구나.”


사실 조금 놀랐다. 나는 집에 가보면 여기저기 쓰레기가 뒹굴 거리고 이불도 일어났을 때 그대로 놔둔 상태. 그리고 설거지거리는 항상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에 나는 조금 어이없어졌다.


“별로 깨끗하지도 않아. 요즘은 청소를 자주 못해서 먼지가 많이 쌓였거든.”


‘어디가?’


그는 머리만 감고 나오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책장을 둘러보았다. 소설책과 여러 시집, 전공서적 등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다. 그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낯이 익은 표지. 나와 같은 초등학교였다. 6학년 2반 29번. 내 어릴 때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다가 왠지 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사진을 찾았다. 6학년 5반 17번 이병민.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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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마 완결 안날듯요...


 


단편인데 걍 잘 안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