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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단편]성인식

2010.10.13 19:36

악마성루갈백작 조회 수:278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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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가 죽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죽였다.


 



차가운 바람이 진고동색 낙엽의 모습을 하고 소년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아직 초가을이고 초저녁이었지만 한겨울 못지않은 한기였다.
하지만, 소년은 춥다는 느낌 따위는 전혀 받지 않았다.
아니, 춥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조금씩 떨고는 있었지만, 결코 그것은 추위에서 오는 반응이 아니었다.


 



어제 친구가 죽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죽였다.
그리고.


 



“미안하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등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와 소년은 몸을 돌렸다.
자신에게 아버지라고 인식되어 있는 존재의 형상이 소년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소년은 성장했다. 아버지는 소년의 키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못했다.
아버지의 두 손에는 각각 단검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 중 오른손의 것을 소년에게 던졌다.
단검은 땅 위에 흩뿌려진 낙엽들을 꿰뚫고 아무 소리 없이 땅에 박혔다.


 



“허리를 굽히면 안 돼. 거기가 첫 번째 고비야.”


 



소년은 어딘가의 누구에게서 들은 내용을 기억해내고는,
한쪽 무릎만 조심스럽게 굽히며 땅에 박힌 단검을 뽑아들었다.
자신의 발 크기와 비슷한 길이의 날이 서 있는 단검.
한 번의 휘두름으로 사람의 존재를 잘라버릴 수 있는 단검.
소년은 가만히 그 칼을 보고 있다가, 오른손으로 그 손잡이를 꾸욱 붙잡고, 아버지를 향해 자세를 낮췄다.


 



“결국, 이 날이 왔군.”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후회하는가?”


 


“후회하지 않습니다.”


 


과연 그렇게 될까?


 



아버지가 눈을 지그시 감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소년은 순간 뒷발에 힘을 주고는 - 바삭 - 실수다.
칼날을 세우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숲을 두 동강 내는 듯한 듣기 싫은 금속음.
소년은 바삭바삭하는 소리를 내며 아버지의 뒤에 있는 낙엽 더미 위로 나동그라졌다.
소년은 재빨리 몸을 굴렸지만 차마 일어나지는 못했고,
한쪽 무릎은 꿇은 채 다시 아버지를 향해 단검을 겨누었다.



하아. 하아. 하고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거친 숨소리를 뿜기 시작했다.


 



“벌써 지쳤나?”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후회하는가?”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후회하게 된다. 오늘 이날을.”


 


“이것은 태초부터 전해져 온 신성한 의식입니다.”


 


“언젠가 오늘을 후회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죽이려고 칼을 들이대는 이 순간을!


 



아버지가 칼을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소년을 향해 달려왔다 - 파삭! - 순간 아버지의 시야가 진고동색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자신이 달려들던 방향의 땅 쪽으로 있는 힘껏 칼을 내리꽂았다.


 



푸욱


 



하늘에서 춤추던 낙엽들이 쉴 곳을 찾아 땅으로 내려왔고,
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은 재빨리 머리를, 그리고 몸을 반대 방향으로 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소년은 옷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낙엽을 털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귓불 끝에서 배어 나오기 시작한 핏방울의 귀걸이를 닦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낙엽으로 시야를 가렸군….  내 아들이지만 제법이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어째서 어른이 되려 하는 거지?”


 


“어른으로부터 억압받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도 어른이 되어 어린 자들을 억압하겠다는 말인가? 가당찮은 소리군.”


 


“최소한 하지 않도록 노력은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소년은 칼을 잡은 방향을 엄지 쪽에서 새끼손가락 쪽으로 바꾸고,
왼손을 가슴 앞에 대어 오른손의 축으로 삼았다.


 



“지금은 그들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의 저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소년이 그 자세 그대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 공격에 대비했다.
두 발짝 앞에서 소년은, 칼을 쥔 오른손을 놓았다.
왼손으로 칼을 되잡는 동시에 - 아버지의 칼을 쥔 손을 바깥으로 쳐냈다.
그리고 칼을 잡으려 뻗은 왼손으로 칼을 잡고는 그대로 내뻗었다 -


 



실패였다.
아버지는 소년이 칼을 쳐낸 순간,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쓰러뜨리듯 굴렸다.
소년의 칼은 힘차게 아버지의 오른쪽 가슴이 있던 위치를 지나갔고,
공격이 실패했다 - 는 것을 소년이 느끼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대로 한 바퀴 돌아 칼의 손잡이 부분으로 소년의 뒷머리를 강타했다.


 



이 싸움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둔탁한 신음 소리가 숲 속에 퍼졌다.


 



“힘든가?”


 


“힘들지… 않습니다.”


 


“아니, 힘들 거야. 힘들어야 해.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힘든 거다.”


 


“어른이 아닌 자들도, 매우 힘듭니다.”


 



소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아버지는 가만히 그를 보았다.


 



“무엇이 가장 힘든가?”


 


“억압입니다.”


 



소년은 작아져 가는 거친 숨소리 사이에 자신의 주장을 실어 보냈다.


 



“어른들은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그 속에 우리를 가둡니다.”


 


“울타리라면?


 


“학습, 규범, 관념. 그 외에 다수로.”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나?”


 


“어른들은 그 속에 우리를 가두어 놓고 남은 세상에서 서로 즐기겠죠.”


 


“어른들에게는 자유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자유는 고작 울타리 안의 아주 조그마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어째서 그 환상에 만족하지 않는가?”


 


“그런 편협하고 한정된 놀이터를 진정한 자유라고 이름붙여줄 수는 없습니다.”


 



바스락. 소년이 한 발짝 물러섰다.
똑같은 소리를 내며 아버지가 한 발짝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한 발자국뿐.
나뭇가지들의 입술이 일으키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의 사이로, 아버지는 한 나무의 옆에 섰다.


 



“어린아이들이 가장 착각하는 게 그것이지. 사실 어른에게는 자유란 건 없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희를 울타리가 아니라 밀폐된 방 안에 가두었다.”


 


“그렇다면 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 방에는 조그마한 구멍들이 있다. 너희가 보는 어른의 자유라는 건 그만큼 뿐이야.”


 


“믿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갇혀 있기는 마찬가지지. 스스로 만들어놓은 울타리에 말이야.”


 


“…울타리.”


 


“그 울타리는 너무나 단단해서 전쟁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부서지지 않아.”


 


“항상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어린 아이들을 타이르죠!”


 


“거짓말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만큼 힘든 거다.“


 




 



소리와 함께 나무에 매달려 있던 낙엽들이 마치 박쥐처럼 땅으로 날아내려 오기 시작했다.
소년이 뭔가 다른 자세를 잡아 보기도 전에 옆구리에 심각한 통증이 찾아왔고,
동시에 누군가가 소년을 내리눌렀다. 큰일이다.


 



소년은 아버지의 손목을 붙잡았다.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칼끝이 쇄골과 쇄골의 사이에서 느껴졌다.


 



“힘든가? 무서운가?”


 


“……….”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것보다 더욱 힘들고 무서운 일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자신의 보호해주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혼자가 된다. 그리고 세 가지 압박을 받는다.”


 


“세 가지라는 것은….”


 


“뭔가를 해야 하는 의무, 뭔가를 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


 


“그런 것은… 어른이 아니라도, 있습니다!”


 



소년은 목 밑에서 따끔한 것을 느꼈다.
파고들고 있다. 힘이 빠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어제 그 친구처럼.


 



“너희의 그 투정은 구멍을 통해서만 본 좁은 시각이야. 차라리 눈을 감아라.”


 


“우리에게도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있다고 치고, 그렇다면 아이들과 어른들의 차이는 뭐가 되는 거지?”


 


“그건….”


 


너희의 의무, 권리, 책임은 일종의 게임이기 때문이지.”


 


“게임…?”


 


“그래. 언제나 누군가가 뒤에서 서포트해주는, 연습게임 같은 것 말이야.”


 



푸욱.


 



또 칼이 땅에 박혀 버렸다.
소년이 있는 힘껏 칼을 옆으로 치우면서 목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다시 낙엽을 굴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손에는 칼이 들려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곧 자신의 옆에 칼이 또 하나 있음을 확인했다.


 



“무섭지 않나?”


 


“무섭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은 없어. 모든 것이 자기 의지대로야.”


 


“원하던 바입니다.”


 


“조금 돌려 말해 볼까? 아무도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지.”


 


“……….”


 


“일하지 않아서 굶어 죽는 것도, 죄를 지어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모두.”


 


“어른의 편협한 생각입니다.”


 


“너희는 행복한 거야. 일하지 않아도 굶어 죽지 않고, 죄를 지어도 처벌의 강도는 어른과 비교하면 격감하지.”


 


그런 것을 위해 계속 갇혀 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나갈 겁니다.”


 



소년의 목에 생긴 가로로 기다란 상처가 울기 시작했다.
그 피눈물을 가슴의 피부로 느끼며 소년은 서 있다가,
양손으로 주먹을 꼭 쥐고는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어른들은 모두 아이가 되고 싶어하지. 지쳐버려서, 보호받길 원하는 거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을 잃은 어린아이가 된다는 거지.”


 


“꿈…?”


 


“현실에 치여 공상은 할 수 없어. 오로지 자신의 의무와 책임만을 반복할 뿐.”


 


“……….”


 


“꿈이 없다는 건 삶의 이유를 잃는다는 뜻.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이 뛰었다. 아버지에게로 일직선.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적은 베는 것보다도 찌른다.
소년은 아버지의 칼을 겨드랑이 사이로 흘려 넣고,
재빨리 아버지 뒤의 칼을 집었다. 그리고 일어설 새도 없이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파삭


 



소리를 내며 아버지가 엎어졌다.
양 발목에 가로로 핏줄기를 머금은 채로. 소년은 거기에서 방심하지 않았다.
기다시피 달려가 아버지가 놓친 칼을 저 멀리 쳐 날려 보내고, 왼쪽 등으로 칼끝을 꽃아 넣었다.


 



“뭔가를 느꼈나?”


 



아버지가 물어보았고, 소년은 가만히 있다가 작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고통으로, 죄악으로 여겼다.”


 


“고통….”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어. 바로 나처럼.”


 


“그것이 이 의식…. 어른이 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것인가요?”


 


“하지만, 이 의식을 통과한 아이는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어.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며 기뻐하는 듯이, 혹은 비웃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회하는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말, 가슴 깊이 새겨 놓아라.”


 


“……….”


 


“마지막 부탁이 있다.”


 


“무엇입니까?”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아버지는 우상이셨습니다. 이것은 세상 모든 아들의 진심일 겁니다.”


 


“진심이라….”


 


“아니,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진심으로 변할 것이 확실합니다.”


 


“…내 등에 칼을 댄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다오.”


 



소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땀. 핏방울. 그것 말고 투명한 액체가 두어 방울씩 아버지의 등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약해지셨군요.”


 


 


 


 


 



조금의 시간 후,
핏물의 웅덩이에 비친 보름달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청년은 산에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