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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일반 사라진 별

2010.10.13 07:10

민희양 조회 수:257 추천:2

extra_vars1 마비노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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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에서 지낸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나는 버려진 아이였다. 그런 나를 이곳의 성주님은 구해주셨다. 성주님께선 나에게 종자를 시키셨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은인을 위해선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인식을 할 때 성주님은 나를 기사로 임명해주셨다. 가끔 성에 말을 타고 들어오는 기사를 보긴 했어도 내가 기사가 될 줄은 몰랐다. 소규모였지만 직속부대도 생겼다. 종자 시절 대련에서 항상 일등만 하던 내게 기사는 정말 맞는 일이었다. 마족에게 습격당하는 근처 마을을 몇 번인가 구원하러 간 덕분에 나는 국왕폐하를 알현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성주님은 나에게 성을 맡긴 뒤 여행을 떠나셨다. 결국 난 이 성의 성주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결혼하는 건 어떻겠냐? 나이도 찼고 말이다. 걱정 말거라. 데릴사위로 데려올 거니 여기서 나가지 않아도 돼.”
  언제나 아침식사는 딸아이를 설득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답을 한다. 엄격하게 가르친다는 것이 잘못돼서 밖에 나가는 것에 공포가 생긴 것 같다. 언제나 성에만 있길 좋아하니 나도 아이가 외출하는 행사는 금지하고 있다. 가끔 아내가 딸을 자극하려고 사교파티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해주는 듯 하지만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성의 집무실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가끔 특별한 일이 있긴 해도 이런 생활은 밖에 사는 시민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저에게 따님을 주십시오.”
  한 당돌한 청년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바로 앞에 서있는 잘생긴 그는 딱 보기에도 음유시인이다.
  “결혼하고 싶다면 딸아이와 함께 성에서 살도록 해. 그게 그 아이도 좋고 나도 편한 일이야.”
  “저는 음유시인입니다.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생활은 아니더라도 이런 새장 같은 곳에선 지낼 수 없습니다. 최소한 성 밖에서 살고 싶습니다.”
  “안 된다! 나의 조건이 아니면 결혼. 승낙 못한다.”
  내 마음 속에서 외치고 있다.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고… 딸을 보낼 수 없다고…
  “딸아이는 한 번도 성 밖에 나간 적이 없다. 세상물정모르는 아이를 데려가서 무엇을 하려하는가?”
  되지도 않는 말로 막아본다.
  “그렇다면 따님이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 승낙해주시겠단 것입니까?”
  “뭣이?”
  잃을 수 없다. 내 딸을 데려가게 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쟁 때 강제로 끌려가셨다. 내 유일한 친구는 병마가 데려갔다. 나는 길에 버려졌던 것이다.
  “경비병! 당장 저놈을 내쫓고 다신 못 오게 하여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남자를 포박한 뒤 집무실 밖으로 끌고 나간다.
  “전 따님이 성을 나가고 싶도록 할 겁니다. 물론 저와…”
  끌려 나가면서도 말을 이어나간다. 그 자가 나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온몸에 들어갔던 힘이 풀린다. 또 조건 안보고 신부를 구한다는 한 귀족 아들에게 급히 청혼의 전갈을 보낸다. 절대…넘겨줄 수 없다.




  나는 그 남자 뒤에 사람을 붙였다.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보고하기 때문에 그의 행적은 내 손바닥 위에 있었다. 그는 매일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고되기 때문에 그리 걱정되지는 않았다. 또 결혼 절차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딸은 결혼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다. 대충 결혼시키고 성에 딸 부부를 위핸 거처를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혹시 필요하다면 그 사위에게 성이라도 물려줄 것이었다. 그렇게 잘 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딸아이는 요즘 따라 저녁시간 이후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결혼준비 탓인지 하고 넘긴다. 그렇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딸아이가 결혼을 반대한 것이다. 절대 결혼할 수 없다며 단식에 방에서 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직접 딸아이에게 물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성 전체가 고요에 잠길 무렵 딸아이의 방으로 갔다. 방문을 노크하려 했다.
  ‘호호,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방안에서 딸아이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방문을 열까 했지만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넘겼다.




  그러고 난후 며칠이 더 지나간다. 나는 파혼된 것을 사과하기 위해 옆 마을의 귀족의 저택으로 찾아간다. 저택에 간 순간 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결혼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 귀족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더욱이 그곳에서 예전에 쫓아낸 음유시인의 뒤에 붙여둔 사람이 그 곳의 부자로서 살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묻고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다.




  집무실에 앉아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찾으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잘 생긴 얼굴에 등 뒤에는 리라라는 악기를 메고 있다.
  “내 딸과의 결혼 문제 말이네…승낙하겠네.”
  그는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곧 가다듬고 선다.
  “그 말, 확실히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장인어른.”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연다.
  “아 참, 자네 이곳에 왔던 게 내일이면 딱 1년인가?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내 방으로 초대하겠네.”
  그는 미소를 지은 뒤 나가버린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다. 내일 해치워야 한다. 내일밖에 시간이 없다. 그는 내 사람을 엄청난 돈으로 매수하고 나에게 오는 보고서까지 감독해왔다. 그는 내 딸을 데려갈 악마다. 그렇게 마음먹는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한다. 집무실이 아닌 내 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방에는 2인용 원형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위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을 밝히기 위한 초가 있다.
  “앉게. 내 사위 될 사람에게 할 말이 많네.”
  집사를 불러 음식을 내오게 한다. 특히 술은 그것으로 달라고 부탁한다. 음식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술을 받게. 20년간 숙성시킨 최고급 와인이지.”
  “감사합니다.”
  거리낌 없이 술을 받음에도 그 태도는 정중하다.
  “장인께선 드시지 않으시나요?”
  “술을 먹으면 손이 떨려서 말이지…”
  “아, 그러시나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한 뒤 돌아간다. 오늘 저녁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딸은 뜰에서 울고 있었다. 누군가를 바라보면서…그 앞에는 망원경이 있다. 딸이 그 놈을 붙들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나긴 했지만 이걸로 나는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좋은일일거다… 하지만 딸이 우는 것을 보고 있으니 죄책감이 느껴진다. 한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달랠까 생각했지만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양심이 말린다. 딸이 유일하게 좋아했을 남자를 죽였다… 나는 내방으로 돌아가 생각에 잠긴다. 한 시간이 지났다.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아까 식사 후 남은 와인 한잔을 마신다. 속이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침대에 눕는다. 누운 상태라 눈에서 나온 것은 볼이 아닌 관자놀이를 타고 내린다.
  ‘내일 일어나면 눈에 눈꼽낄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영원히 자면 되겠지…’
  하곤 마지막 성의 모습을 눈에서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