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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클레멘테의 수첩

2007.10.06 07:23

키투스 조회 수:732 추천:2

extra_vars1 <아말피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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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여정에 동참하는 인원은 3명이 되었다. 하루 만에 앞으로의 일생에 중대한 면이 될 친구와의 동행에 앞서 미운 행동과 고운 행동을 서로 나눈 주변 이웃에 대한 안부와 작별 인사를 나눠야했다. 나의 경제적 생명을 손에 쥐고 계신 선착장 관리인 쥬세페 아저씨와 심심하실 때마다 놀러 오시는 엔리오 영감님과 호기심 많고 타인에게 이해심이 깊은 로베르토군, 마지막으로 꾸중도 많이 하셔서 섭섭한 면도 많았으나 그 누구보다도 나의 건강과 안위를 생각하신 옆집 아주머니 피엔시아 부인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했고 모든 준비가 갖춰진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집 앞뜰을 나왔다.




조국 아말피는 대해를 지배하는 바다의 지배자였지만 도시의 규모도 그다지 웅장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생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회색의 돌로 이루어진 길거리의 구석엔 오물들로 넘쳐났지만 매일 아침마다 그것들은 누군가가 치워서 없어졌다. 뱃사람과 빵 굽는 소년, 빨래하는 아주머니들과 거지와 도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바쁘게 행동했다. 시민들은 베네치아나 피사, 제노바가 언제 추격해올지 몰라 걱정하며 힘겹게 살고 있었다.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지치고 지친 이들에게 가끔은 상상에서만 등장하는 신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위험한 모험을 위해 떠나야 할 정겨운 고향을 둘러보며 침묵을 지키는 나를 깨운 건 두 손을 잡고 주위를 빙빙 도는 파비안의 활기찬 목소리였다.




“호오호! 클레멘테가 나와 함께 주인님의 모험에 동참하다니! 주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어!”


나와 로스틱 자작 주위를 폴짝 폴짝 뛰면서 좋아하다가 내 앞에 멈춰 서선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 고마워. 널 얼마든지 도와줄게. 내 곁에 계속 있어줘.”


자작님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나와 친구를 번갈아보며 비꼬는 말투로 말하길,


“좋겠어, 마를로군. 네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친구가 달라 붙어있으니 말이야. 사귀는 것 같아 보이잖니!? 난 예전부터 혼자라 부러운 마음도 드는구먼.”


그러자 순진한 친구의 얼굴이 시도 때도 없이 빨개졌고 난 파비안을 떠밀며 다그쳤다.


“아, 알았다니깐! 사람들 눈에 거슬리니 빨리 걷자구!!!”


시간이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끈끈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즐거워지려는 찰나에 파비안이 고민에 빠진 듯 멈춰있다 깜짝 놀란 듯이 외쳤다.




“아뿔싸! 실은 말을 타려고 돈을 가져왔었는데... 식당에다 돈주머니를 놓고 와버렸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침엔 마차를 타서 겨우 아말피 시내에 올 수 있었는뎅... 말이나 마차를 타지 않으면 반나절은 족히 걸려버려... 내가 이런 실수를! 오오오옹.....”


난 파비안의 말을 듣고는 눈을 감으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가장 용납할 수 없는 녀석의 버릇을 떠올렸다. 사랑스러운 파비안의 가장 큰 단점은 툭하면 중요한 행동을 까먹어버리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기껏 잡아온 새끼 멧돼지를 놓치지를 않나 빵가게 주인에게 낼 과자 값을 내 집에 두고 오질 않나 뒷동산에 놀러갈 때 싼 도시락 안에 송아지구이 대신 올리브기름만 잔뜩 넣어 오는 등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생각이 났다. 결국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마차 빌릴 돈을 식당에 놓고 왔다니 순간 나의 시야는 먼 옛날, 동방을 다스린 다리우스 대제의 병사들이 쏜 불화살을 맞은 듯이 시뻘게지며 해롱거리기에 이르렀다.




“또... 또 시작이구나! 왜 그랬어! 이 바부야~!! 당장에 볼을 꼬집어 줄 테다!! 으이구!!!”


로스틱은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손을 내 어깨 위에 살짝 올리곤 차분하게 타일렀다.


“마를로군. 사람은 항상 실수를 하는 법이라네. 기왕에 일이 벌어지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게 최선의 방책이네. 그리고 파비안군.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 기쁜 나머지 이런 실수를 벌인 것 같은데,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게. 다만 내 앞에서 한번만 더 이런 실수를 보이면 크게 혼낼 걸세! 알았지?”


파비안은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약간 몸을 떨며 흥분한 나에게 애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모두 고생하게 생겨서... 무엇보다도 주인님이 오랜만에 주신 용돈인데 간식하나 못 살 형편이 되었어...”


세만 경의 충고를 듣고 내가 말하려는 찰나에 먼저 로스틱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파비안에게 건네줬다.


“돈 걱정은 하지 말게.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이걸 받게나. 이제부터 그 돈은 자네 것일세.”


두 주먹만 한 크기의 주머니를 받은 실수투성이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있었다. 아무리 세만 가 사람들이 선하다 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나도 놀라웠다.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세만 경은 우리에게 손짓하며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말이나 마차를 탄다 해도 지금부터 가게 되면 늦은 밤에 도착할게야. 시간을 절약하자는 의미에서 두 사람 모두 날 따라오게. 보여줄 것이 있네.”


우린 성령에 홀린 듯이 세만 경의 뒤를 졸졸 따르며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자작님이 보여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 것 같았다. 로스틱은 약간 넓은 골목으로 들어선 후 다시 뒤를 돌아 손을 자신의 가슴주머니에 넣어 뭔가를 꺼내들었다. 황금빛이 나는 가시막대기 형상의 물건이었다.


자세히 보니 막대기는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펜같이 생겼었다.


“다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는 말게. 자! 두 친구를 위하여 나와다오!”


자작님이 소리치며 막대기를 꽉 잡으며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시늉을 했다.




그 순간 번개가 끊임없이 내려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가 손짓을 할 때마다 바로 앞에서 밝은 빛이 나는 가는 선모양의 형체들이 줄을 긋듯이 나타난 것이다. 그 선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자작의 생각에 따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로스틱이 빠른 손짓으로 ‘보이지 않는 그림’을 그리자 주인의 명령을 들은 선들은 무서운 속도로 말 세 마리를 나타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개를 숙인 말들의 형상이 살아있는 듯이 꿈틀댔고 그 물체를 구사하는 주인이 막대기를 아래쪽으로 내리치면서 강한 바람이 불며 형상을 이루던 선들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우리 앞엔 진짜 살아있는 건장한 체격의 검은말들이 생겨나 있었다. 우리 둘은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세만 경! 이 능력이 바로...”


“로스틱님... 이 말들은...”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파비안이 놀라움을 뒤로 한 채 호기심에 빠져 로스틱의 능력(이게 과연 마법일까?)에 의해 생겨난 말들을 향해 걸어가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 중 왼쪽에 있던 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가운데에 서있던 말이 시뻘건 붉은 눈을 뜨며 고개를 들며 우람한 울음소리를 내자 친구는,


“에구에구! 어머나아아! 꺄아아아옷!”


함부로 내기 힘든 비명소리를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놀라는 모습도, 넘어지는 모습도 남다른 내 친구...


로스틱은 넘어진 파비안을 일으켜 세우고는 경쾌한 목소리를 내며 가운데의 말에게 가면서 말했다.


“이 정도 힘은 아무것도 아니네.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고 어서 파비안의 주인나리에게 가야지!”


눈앞에서 벌어진 기이한 광경을 두고 생각하는 것보다 마티우스 백작의 숙소에 가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나는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가 놀란 마음에 어수선해진 파비안을 왼쪽 말에 태우고 오른쪽 말의 안장에 사뿐히 앉았다.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은 버려도 괜찮을 거야. 말들이 뛰어가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의 파비안과 상황을 설명해주려고 기다리는 내가 출발할 준비를 마치자 로스틱은 주위를 한번 돌아본 다음 고삐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단지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면... 이 말들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 일까나!? 이랴앗!!!"


세 마리의 검은말들은 동시에 출발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택 수십 채를 거뜬히 지나갔으며 엄청난 속력으로 인해 생긴 바람으로 우리들의 머리칼은 이리저리 휘날렸다. 심지어 도로 옆에 누워있던 거지들은 우리가 지나가자 놀라 자빠지며 자기 몸에 불이 난 듯 겁에 질려 날뛰기도 했다.




숙소로 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세만 경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설명하겠다. 그가 꺼낸 작은 날개장식이 군데군데에 박혀있는 펜 모양의 막대기는 세만 가문으로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영물이었는데 ‘형상의 가시’라고 불렀다. 가문의 시조이자 여걸이었던 ‘율리니크’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작센 지역의 괴짜 과학자인 ‘베르켄슈타인’박사로부터 전해 받은 신비로운 펜이었다. 이 펜은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적을 후려치거나 자신이 상상하던 존재를 그대로 그림으로서 형상화시킬 수 있었다. 율리니크는 이 펜을 소지하면서 수련을 거듭하여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물리치며 가문의 입지를 다졌다. 베르켄슈타인은 어디서 구한건지 알고 싶은 신비로운 물건들을 자신의 연구실에 보관하고 있었고 그 중 몇 개를 세만 가문에 넘겨주기도 했다. 그 중 일부가 내 집의 보자기에 담겨있던 것들이었다. 잊어버리지는 않았는가? 내 옷 안에 들어있는 통칭 ‘가위검’과 ‘열쇠검’말이다. 로스틱 자작의 말에 따르면 이것들은 달나라와 얼음세상이 되어버린 남쪽의 대지에서 살던 사람이 베르켄슈타인 박사에게 전해준 무기들이라고 했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분명 열쇠검과 가위검은 이 세상의 것과는 다른 특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느새 나도 이 가문 사람들과 동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며 시가지를 떠나 좁은 바위 길을 달려갔다. 뒤를 돌아보자 도시는 조금씩 작아지며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다시 앞을 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면서 저 멀리 작은 집 모양의 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난 파비안에게 세만 가문에 대한 설명을 설명했고 그 말을 경청한 파비안은 자작님을 향해 동경의 목소리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로스틱 자작은 그런 소리를 듣자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고 소리 없이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며 맞받아 쳤다. 우리가 달려온 사이 앞의 점들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임시로 지어진 천막임을 알아차렸다.




“클레멘테! 바로 저기야! 벌써 도착한 거구나!!!”


파비안이 가리킨 곳은 내가 생각한 바로 그 곳이었다. 다행이도 저녁이 되기 전에 마티우스 백작의 임시 거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스틱은 나와 파비안에게 숙소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서 내린 다음 걸어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오솔길 옆쪽으로 이동한 다음 말에서 내렸다. 자작님이 다시 형상의 가시를 꺼내 허공을 후려치자 아까와 같은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말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친구와 나는 세만 가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눈앞의 광경엔 드넓은 공터에 세워진 많은 수의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화려하고 규모가 큰 건물들이었다. 천막 주위엔 갑옷을 입은 기사단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가죽옷을 입은 시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서류를 들고 어느 한 건물을 사이로 왕복하고 있었다. 그 건물은 다른 천막들보다도 훨씬 더 크고 웅장해 보였으며 곳곳에 화려한 고트족 양식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기가 마티우스가 있는 곳일 것이다.


가장 큰 천막 앞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보이는 누군가가 우리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흰색의 긴 머리칼에 주황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양손을 허리에 갖다 대고 있다가 팔짱을 끼는 모습으로 바꾸곤 했다. 조심스럽게 난 파비안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저 분이 마티우스 백작님이시니?”


파비안은 내가 지적한 사람을 쳐다보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에게 대답했다.


“음... 아니, 아니야! 저 분은... 저 분은...”


별안간 내 친구가 기쁜 표정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가며 큰 천막 앞에 서있는 사람을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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