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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클레멘테의 수첩

2007.10.02 06:37

키투스 조회 수:654 추천:3

extra_vars1 <아말피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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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서 파비안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와 헤어진 후 근 10년 동안 난 이웃들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내뱉은 헛소리들만 담겼다고 주장하는 고서적들을 연구하며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나 아무도 없는 고대 로마의 놀이터에 남겨진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느낌이 든 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기분이 들 때 나타난 파비안은 눈이 부시는 한 낮에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가지가 넓게 펴진 나무 한 그루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뜬금없이 세계의 정세가 뒤바뀌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그가 나에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자랑스러운 조국 아말피까지 찾아와서 애꿎은 인재들을 전쟁터에 내모는 파렴치한 위선자들을 향해 즐겁게 미소 짓는 친구의 모습은 나에게 좀 거북한 느낌이 나게 했다. 하지만 그 앞에서 바로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으니... 아니 안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너하고 점심 먹는 거, 도대체 얼마만일까?”


“호오호~. 무어인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 볶음을 하도 먹어서인지 어릴 때 매일 먹던 구운 생선 맛이 마치 처음 먹어보는 음식처럼 느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일까나~?”


나와 파비안은 이렇듯 특이하지만 그렇다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던 관계다. 이런 농담도 오랜만이라서 나름대로 생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더 이상 말이 안 나왔다. 이야기도 중요했지만 식사가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징어를 씹으니깐 평소보다 침이 더 많이 나오는 거 같아~”


“난 맛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찾아와서 먹은 음식이니 상관 말고 많이 먹으렴.”


순진한 말투와 몸짓으로 천천히 식사하는 친구의 모습은 고상하면서도 참으로 예뻐 보였다.


별로 식사량이 많지 않은 나지만 즐겁게 먹는 친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느낌이 났다. 참고로 이 오징어라는 녀석, 그리고 이것과 유사한 문어라는 물고기는 교황님의 땅 근처의 목욕탕 유적에서 나온 벽화에서 실감나게 본 적이 있었다.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놈이었다. 로마인들은 그 녀석들을 불에 구어 먹은 일이 잦았으나 요새엔 모두들 신부님과 주교님들이 악마의 물건이라고 겁을 주셔서인지 손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대단하고 또 무서운지 알 수 있었다. 우린 오징어뿐만 아니라 거대한 농어, 테베레 강의 메기, 잔가시가 많은 넙치 등의 다른 해산물을 즐겼다.




“최근에 ‘파르비즈의 카르미나’를 거의 다 읽어가고 있어. 달나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한 장군의 일대기가 마음에 들었어.”


“파르비즈라면... 네가 편지로 알려줬던 800년 전의 파르티아 사람? 나도 한번 읽고 싶다!”


“실은 그 남잔  남쪽의 이세계 여성이 쓴 것을 엮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어찌 간에 난 그런 일이 반드시 있었다고 믿고 싶어.”


“그런 경이로운 세계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주님의 권능이 크다는 것이야. 결코 사람들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권한이지!”


식사와 우정으로 다시 끈적끈적한 관계로 다져진 우리였다. 그런데 별안간 아까 전에 군인 모집을 위해 큰소리로 설교하던 주교의 시종이 안으로 들어와 식당 입구의 벽에 전단지 하나를 붙이고는 다시 밖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세상의 달들을 지배하는 태양, 우르바누스가 당신들에게-


해상을 지배하는 아말피 사람들이시여.


성지를 되찾아 더욱 큰 권세와 영광을 누립시다.


뜻이 있으신 분들은 일주일 이내에 항구로 모여 주십시오.






난 노골적으로 도시 사람들의 생활에 간섭하는 성직자들의 뜻이 담긴 저 글을 보고 눈이 찡그려졌지만 내 친구는 반대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와 함께 파비안의 행동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오르자 그것을 풀기위해 나도 모르게 그에게 질문을 해버렸다.




“..... 뭔가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찾아온 거 맞지...?”


“...호오호... 그 말투는...?”


“물건 파느라, 해적들 잡느라, 조국과 가족 먹여 살리려고 발버둥치는 젊은이들 끌어서 동쪽으로 내모는 꺼벙이들의 행동을 본 너의 모습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어찌된 거야? 저 녀석들 행동이 마음에 든 거야? 응? 뭔가 이유가 있지?”


그러자 파비안은 숨을 크게 내 쉰 다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양쪽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천천히 나에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는 건데... 답장 편지를 읽을 때부터 네가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았어. 솔직히 대답할게...”


귀여운 내 친구의 표정이 바뀌며 긴 문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밑의 쓰인 글이 나를 찾은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나의 터전이었던 안달루시아에 살던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살아왔던 나로선 설교자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속에서 뭔가가 우러나올 수밖에 없었어. 이베리아는 400년 전부터 거대한 초승달 깃발 아래에 짓밟혀서 허우적대고 있었단 말이야. 비록 내 힘은 없지만 나를 대신하는 누군가가 검을 들고 그들을 반드시 물리쳐서 괴로웠던 사람들이 진정한 정신적 부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랬었다고. 때 마침 동쪽에서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지. 세상을 다스리던 자가 한낮 썩어빠진 누더기 옷을 입은 포로로 전락한 순간, 우리들에겐 기회가 찾아왔어. 나도 느꼈지. 힘 있고 명망 있는 기사들이 너도 나도 나와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을... 내 주인님도 친한 동료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셨어. 난 다른 방법으로 그를... 아니 밀려오는 주님의 적들을 무찌르기 위한 위대한 여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돕기로 했어. 나 혼자만 가기엔 네가 여기에 계속 잔류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 그래서 이곳으로 다시 왔지.”


“너 참... 많이 변했구나. 변했어.”


나의 말투와 행동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내 성격 상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들보다 몇 배는 더 멀리 나가고 몇 배는 더 잘 뚫는 화살을 비 오듯이 쏴대는 놈들로 우글거리는 땅으로 가서 싸늘한 시신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센 민담의 구울이 되려고 작정을 하는 구나! 더구나 네가 그렇게 동경하는 기사란 것들이 실은 얼마나 더러운 것들인지 아냐!? 툭하면 술에 취해서 농민을 습격해서 목을 자르지를 않나! 길 가던 부인을 습격해서 희롱하지 않나! 쓰레기 같은 그 놈들은 분명 성지를 탈환하기는커녕 콘스탄티노플의 옥좌에 앉아있는 황제를 걷어차려고 발악을 할 게 분명해! 아무리 너라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안 될 걸세! 거절할걸세! 그리고 한마디 더 하지. 너도 가지마! 난 네가 죽고 싶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마를로... 마티우스 백작님이 네가 한 말을 듣는다면 참 서운해 하실 거야. 주인님도 너같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바라는 분이라고. 또 그분은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기사임을 자처하셔도 한 번도 나쁜 짓을 하지 않으셨어. 오히려 집사람분과 함께 가난한 이웃들에게 매달 무료로 식사를 지급하신다구!”


“아, 그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백작 말이지? 황제가 카노사까지 끌려와서 맨발로 굴욕을 당한 나라의 귀족나리!?”


파비안의 눈동자에 물기가 생기며 입가가 흔들렸다. 난 아랑 곳 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하긴 뭔 이유가 있든 카스티야 왕국까지 찾아와서 너랑 눈이 맞아 그대로 집까지 데려간 사람이니까 마음씨는 좋겠지. 깡패들과 위선자들을 좋아하는 너의 태도가 나를 실망시키는 구나! 그래, 너나 실컷 그 사람과 함께 가. 난 절대 가지 않겠어!”


평소에 내 독서를 방해하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하는 말투로 파비안에게 쓴 소리를 냈다. 프랑크인들의 더러운(우리나라도 만만치는 않지만)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광경을 자주 보고 들었던 난 그런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글을 읽고 쓰는 행동을 도저히 못할 거 같다. 결국 순수하지만 소심하기도 한 파비안은 울상이 되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내가 말하면 같이 갈 줄 알았는데...”


그는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싫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 체념하며 말했다.


“단순히 멀리서 용사들이 활약하는 것을 살짝 글로 적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도 싫어? 주인님이 아주 잘해주시겠다는 데도 안 된다는 거야...? 응...?”


내 친구는 모든 게 좋았지만 훌쩍거리면서 투정 부리는 것이 정말 싫었다. 얼굴이 빨개진 파비안은 고개를 살짝 돌려 후회하는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네가 앞으로도 신기한 책들을 마음껏 보고 그것에 대해 쓸 수 있도록 주인님께 부탁하려고 했는데... 너의 집이 앞으로 더 잘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는데 완전 물거품이 돼버리는 거잖아...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클레멘테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오랜 만에 만난 친구를 울리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맨 마지막 한 마디가 상황을 급반전시켰다.




“저, 정말로!? 너의 주인님이 나에 대해 그런 말도 하셨단 말이야?”


갑자기 파비안에게 한 행동이 너무나도 미안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항구에 사는 아저씨들을 도우며 일하면서 저녁 무렵에 공부하는 생활은 짜증이 나있었다. 파비안의 말은 그러한 생활을 순식간에 개선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기회인 셈이었다.




“파비안! 내가 좀 더 생각을 해봤어야 했어!” 침을 꿀꺽 삼키고.


“우, 울려고 하지 마! 옆 사람들이 놀린다고! 너 말을 이제야 이해했으니 날 다시 쳐다보게!”


그리고 중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또 아까 너의 주인님에 대해 말한 거에 대해 정말 미안하네.”




금세 파비안의 얼굴은 기쁜 표정으로 바뀌었다. 녀석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날 속일 인간은 아니다. 분명히.


“와하! 마를로가 나랑 함께 가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어! 주인님도 널 보면 기분 좋아 하실 거야!”


말 한마디로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는 소심한 내 친구. 난 이런 친구를 단짝으로 두고 있어 별난 사람으로 불릴 것 같다.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 친구에게 살며시 물어봤다.


“급하게 나를 기다렸던 것 같던데... 너의 주인도 혹시... 아말피에 온 거야...?"


파비안은 숨겨놓고 있던 비밀을 꺼내 듯 천천히 답변했다.


“우리 주인님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임시 숙소에 머물고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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