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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역사 클레멘테의 수첩

2007.10.01 03:41

키투스 조회 수:662 추천:3

extra_vars1 <아말피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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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태양이 중천에 떠있을 때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두가 다음 날을 위해 눈을 붙인 후에도 난 다른 이들은 생각도 하지 않는 몽상을 하느라 밤잠을 설치다 유령들이 제대로 우글거릴 것 같은 시간에 쓰러진다. 그러고는 아침을 넘어 점심식사를 위해 힘쓰며 서로가 떠드는 소리에 이끌려 흐느적거리며 일어난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다.




반쯤 감긴 눈을 서서히 뜨며 마을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무거운 쇳소리와 나이든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함께 들렸고 호기심 많은 청년들이 소리치며 달리는 소리도 들렸다. 오늘 낮에 들리는 이 이상한 소리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느낌이 다른 새로운 소리였다. 인생을 대충 사는 베네치아인이 만든 싸구려 유리로 이루어진 창문 밖을 쳐다보니 멀리서 청동제 종을 들고 기도문을 읽는 주교로 보이는 노인과 머리를 바짝 깍은 수도사 3명과 지나치게 쫄바지를 올려 입은 시종으로 보이는 청년이 십자가를 들고 이 도시의 청년들을 향해 설교를 하고 있었다.




앞 장에서 내가 이야기 한 것을 잊고 있었나보다. 그렇다. 위대하신 프린켑스들의 후계자, 이제는 바실레우스라 불리는 제국의 황제가 우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일말이다. 동쪽의 넓은 땅에서 나타난 미지의 존재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성지를 점령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용사들은 검을 들고 공포의 땅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비열하고 폭력적인 기사들이 아닌 가난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용기의 힘으로 무서운 투르크인들을 무찌르고 성지를 향해 진군 중이었다. 교황님은 더 많은 용사들이 달려가는 것을 바라며 세계 곳곳에 일명 ‘십자가의 군단’ 모집을 위한 설교에 주력하고 계셨다.




이 곳 아말피도 그 시간이 되었나보다. 포도색 빛깔의 옷을 입은 주교는 감정에 복 받쳐 집안의 잡문서 덩어리들에 처박힌 나를 포함한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호소했다.


“형제 여러분. 여럿이서 모이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노래만 불렀던 젊은이들은 이제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발걸음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다지 착해 보이지 않는 주교의 시종은 더 큰 목소리로 주위를 돌며 모집을 재촉했다.


“여러분들은 가만히 있으실 겁니까!? 로마제국 후예들의 고통을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기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농노라도 괜찮습니다. 저희에겐 그 누구라도 주님의 영광아래 하나가 되어 싸워나갈 수 있습니다. 어서 모이십시오! 투르크인들에게 주님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에 청년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쪽은 호기심이 봉사심으로 바뀌어 환호하며 달려드는 이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멀리서 설교하는 성직자들을 비꼬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들이었다. 나 역시 후자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님의 십자가 깃발 아래서 살육을 원하는 무식한 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모자라 반대편에서 몰려오는 초승달 군단과 싸우는 것보다는 이세계에 대한 책들을 연구하는 것이 더 빨리 하느님을 만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저들을 무시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두꺼운 사전을 펼치려고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하반신 전반이 부르르 떨리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의 식사는 반 그릇의 죽으로 연명해왔던 같았다. 내가 가난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단지 생각에 몰두하기 위해 먹는 것과 입을 것에 소홀한 것뿐이었다. 내 배도 욕심은 있는지 오늘 낮에는 맛 좋은 음식을 넣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난 잠시 몸단장을 하고는 살며시 집밖을 빠져 나왔다. 무언가를 원하면 다른 무언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된 것이었다. 더 많은 도구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을 먹을 것에 쏟아 부어야 하는 꼴이 되었으니 열 받기 짝이 없다!




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가게를 향해 촘촘히 걸어갔다. 여전히 설교자들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내 옆으로는 주황색 천을 뒤집어 쓴 사람의 뒷모습이 군인이 되기 위해 주교에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저들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는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오뚝이처럼 움직였다. 발을 조금씩 동동 구르는 포즈가 꽤 귀여워서인지 난 그에게 슬며시 농담 섞인 어조로 말을 걸어봤다.




“저들은 터번을 쓴 머리를 베면 천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군요~”


“호오호~, 그것보단 억압자들이 칼을 내려치기 전에 이웃들을 구하기 위한 생각을 할걸요!”


명랑한 목소리. 예전부터 기억나던 친근한 목소리였다. 더구나 맨 앞에 나왔던 말인 ‘호오호~’. 이건 어렸을 적부터 같이 조약돌을 던지며 놀았던 안달루시아 친구가 생각나던 말이었다.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존재와 갑작스레 조우한 것이 반사적으로 나의 이상한 취미를 입 밖으로 내뱉게 했다.


“땅 속과 달나라. 그리고 남쪽의 거대한 제국... 이상한 세계의 책들...”


“호오호~, 여전히 신비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네~”


말이 끝나면서 주황색 천을 뒤집은 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았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평소에 다니던 골목길에서 별안간에 금강석 덩어리를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맙소사! 파비안이 아닌가!




“쳇! 그 귀여운 말투는 여전하군!”


“네가 나올 줄 알고 있었어. 때를 맞춰 나도 이 시기에 아말피로 왔지.”


파비안은 허리에 양손을 괴고 마치 백과사전 한 권을 선물 받은 양 기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옛날과는 달리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났는지 갈색 머리칼은 부드럽게 꼬여있었고 탱탱한 볼과 푸른빛의 눈동자는 윤기가 흘러 넘쳐 보였다. 그의 말투와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한참동안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서있는 것 같았다. 여유 있는 목소리로 친구는 나에게 대답했다.


“오랜 만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어, 클레멘테. 내가 집에서 요리라도 해줄까~?”


“왜 벌써부터 고생을 하려고 그래? 그러지마~ 그냥 가만히 있어. 간만에 점심을 가게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운 좋을 수 없네.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고. 멀리서 온 너인데 내가 당연히 사줘야지. 사양하지나 말라구!”


이렇게 말하고는 난 왼팔을 슬며시 녀석의 허리에 감고는 함께 빠른 걸음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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