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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패러디 「고향」

2008.04.28 15:34

문학소년 쉐르몽 조회 수: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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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고향이 돌아 왔으나 고향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아니, 공포스러웠다. 나의 고향은 분명 평화로운 농촌이었다. 세상이 뒤바뀌자 그게 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이 서간도로 떠날 때에도 이곳은 그나마 평안했었다. 그런데 지금 남은 것은 뜬금없는 부서진 담과 집터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흔한 개새끼마저 돌아다니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와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에서 파낸 해골마냥 을씨년스러웠다. 가슴이 서늘하고 답답하여 그 빈터만 남은 고향땅에서 도망하듯이 읍내로 나섰다. 가슴이 답답하여 술이라도 속에 넣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읍내는 신선하였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음울하기는 하지만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나는 보기 좋게 지어진 일본식 가옥들 사이를 지나 술을 먹으러 주막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발을 멈춰 세운 무언가가 담 사이로 휙――하고 보인 것은. 나는 놀라 그 담에 바짝 붙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로, 예전에는 머리숱도 많고, 살도 통통하며, 얼굴도 희었으나, 지금은 머리숱도 없어지고 눈은 푹 들어간 움직이는 해골 같았다. 하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그녀가 확실했다. 그런 무의식적인 예감이 날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예감에 이끌려 크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점순아!”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이를 달래가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녀에게 크게 소리쳤다.


  “점순이 이 가스나야!”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눈이 커지더니 그 소눈망울 같은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시점에서 아이는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단지 그녀와 나만이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감격의 순간을 느끼며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아기를 방에 누이고 주인 내외에게 말을 한 뒤에 밖으로 나왔다. 나는 점순이를 품에 꽉 안았다가 아이와 놀아주듯 그녀를 허공에 띄워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나 그런 순간도 잠시, 우리는 우리가 시간을 뛰어넘어 만났을 뿐,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점잖게 그녀를 내려놓고 서로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먼저 말을 뗀 건 점순이었다.


  “내 오늘 새벽꺼정 시간 난다.”


  필시 주인에게 사정을 필사적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만난 다음날에는 필시 일에 치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나와 주었고,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울음을 꾹꾹 참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녀는 당황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째 이렇게 막 끌고 어데를 가는기가?”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지 않았다. 참은 울음이 퍽하고 터질 것 같아서였다. 그저 돌아보지 않은 채로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술, 마셔야 하지 않겄나. 오랜만쿠로 만났구마. 다음에 다시 만나거덩 몰래 술이나 한번 푸지게 마셔보자 안캈나.”


  그녀는 그 말에 우울한 얼굴을 날려버리며 깔깔 웃었다. 그 웃음이 듣고 싶었다.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그 청량한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에도 나의 허전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말했다.


  “야, 이눔 이거 물건이고마. 그기 나도 까묵은 옛야그구만 기억하고 있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점순이는 내 고개를 손으로 돌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곳에는 고생으로 점철된 점순이의 인생이 있었다. 그녀는 웃는 것이 아니라 울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티는 중요했다고 안카나. 요 구년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었구마. 그기 없었으면 난 지금까지 살 수 없었구마. 지금꺼정 니랑 고향 생각으로 버텨왔다구 안구마.”


  그러자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허다. 나는 니가 그렇게까지 생각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이렇게나 소중하게 여겨주는 그녀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딘가로 팔려갔지만 언젠간 다시 만나서 이렇게 소중하게 여겨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주머니에 있는 돈은 십 원밖에 없었다. 많은 돈이었지만 그렇게 좋은 대접은 해 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이끌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에게 점순이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주막은 그쪽이 아니다. 요쪽으로 가야 있구마.”


  나는 그녀를 보고 싱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말을 받았다.


  “아이다. 오랜만에 만난응께 좋은 데 가야헌다. 나 돈 의외로 많다 안카나.”


  점순이는 좀 놀란 눈치였으나, 순순히 날 따라왔다. 나는 그 주변의 일본 우동집에 들어섰다. 점순이는 나와 같이 한 자리에 앉아서 정종과 우동을 시켜 마주 보았다. 나는 그런 침묵이 어색하여 재빨리 말을 꺼냈다.


  “그라니께 우째 지냈노?”


  “별거 없었다. 팔린 지집이 뭐 그렇고 그렇지 뭐.”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늘을 읽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올라오는 우동 국물의 김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잔에 정종을 꽉꽉 눌러 가득 담아주었다. 그녀는 그 술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그걸 보고 있자니, 그녀의 입이 술술 풀리기 시작하였다.


  “팔린 뒤로는 지옥이었다. 애비가 원망스러웠다. 낮에는 지친 몸 끌고 간신히 자구, 밤에는 손님 받아서 몸을 팔았다. 그렇게 십년을 두고 주인 놈한테 이십 원을 다 갚았는데도 이런저런 비용으로 빚이 또 육십 원이 있다고 안카나. 속이 터져 죽을 지갱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몸이 너무 아프더니 비짝 말라버리지 않쿠로? 그리다가 주인 놈이 날 풀어준거라. 가치가 없어졌응께 말이시.”


  나는 할 말이 없었으므로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정종을 한잔 더 비우면서 말을 이었다.


  “그 후로 고향생각만 나더라. 그라서 가봤더니, 폐허만 남아있지 않더마. 가슴이 답답허구 앞길이 막막해서 읍내를 쏘아다니는데 왜 그 김씨 영감을 만난거라. 죽지 말란 법은 없는지, 거기서 십년을 창기질 하믄서 일본어 배운 걸루다가 아까 그 집구석에 식모로 딸릴 수 있었던거라.”


  그렇게 말하고 점순이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나도 정종을 한잔 때려 넣고서야 말문을 열 수 있었다.


  “내는 느 떠난지 두해만에 서간도로 도망하지 않았나. 그기도 마찬가지드라. 좋은 땅은 이미 다 다른 이가 가지고 해먹구 있더마. 제기랄, 우짜란 말이가. 그래도 살아보겄다구 소작을 받아도 일 년 지내면 또 빈손만 덩그리 남드라. 악에 받힌 세월이었다고 안카나. 그러다가 두해 만에 아부지가 덜컥 가버렸더라. 열아홉에 남의 땅에서 악착같이 벌었다. 근디두 가난하구 제기럴. 그러다가 도망 온지 사년 만에 엄니도 덜컥 뜨더마. 참, 지옥 같은 세월이었다 안카나.”


  점순이는 그 말을 듣고는 울분을 토하고 울지는 못하는 나 대신 눈물을 뚝뚝 흘려주었다.


  “모친꺼정 돌아가셨구마…….”


  나는 너무 답답하여 술잔을 버리고 물잔에 정종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물잔에 가득 찬 정종에 비친 내 얼굴은 반쯤 공포와 광기에 찌들어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기가 싫어 다시 속에 그 술을 전부 때려 넣었다. 마셔 주리라. 그깟 고난 따위는 후루룩 마셔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리라.


  “제기럴. 의원 놈이 영양부족이라고 하더구마. 게다가 너무 일을 많이 했다구 하더마. 우짜란 말이가. 나도 그리 하고 싶어서 그리 시켰겄나? 나만 해도 혼자 먹을 것도 거의 없었다. 근디도 어쩌란 말이가? 제기럴. 찢어지게 가난해서 엄니 가실쩡에 흰 쌀죽 한 모금도 못 해드렸더마. 씨양.”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점순이는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울분과 설움과 일상사를 꺼내 이야기하며 긴긴 밤을 정종 열병을 내리 마시며 버텨내었다. 그리고 술자락 끝에 점순이가 일어서며 말했다.


  “니, 그것 좀 고치구라.”


  “뭐 말이가?”


  “유랑한 건 알겠지만서두, 그 사투리 대체 어디서 쓰는거가. 너무 많이 쓰니께 근본 없는 놈처럼 보이는 거 아이가. 그냥 고향 말 쓰는 기 좋을 거 같다.”


  그렇게 말하고 점순이는 후일을 기약하지도 않고 술집을 나섰다. 바래다주고 싶었지만, 술에 너무 취한 몸은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깨고 보니 느즈막한 아침이었다. 그 길로 고향을 떠나기 위해서 대구에서 기차를 탔다. 그 안에는 젊은 인텔리로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나는 점순이가 일러준 대로 경상도 말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꺼정 가는기오?”


 


 


※ 아는 사람은 알만한 패러디입니다. 뭔지 맞춰보세요.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