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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5.26 11:46

Earthy 조회 수: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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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차티스가르 주 남부. 고타바리 강의 지류는 삼림 지역을 휘돌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그 그 강변의 어느 공터. 나무가 없이 바위와 잡목 수림만으로 이루어진 공터가 있었다. 지금 그 곳을 차지하고 있는 건 중장갑 4대.
 “여기서 일단 작전 지시 전까지 대기하라고 하는군.”
 현재 장갑을 한쪽에 모아두고, 네 사람은 각자 적당한 곳에 앉아서 휴식 중이었다. 엘런은 장갑에 있는 통신 기능을 바깥으로 돌려서 현재 지휘소로 사용되고 있는 조기경보기―정식 명칭,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3C AEW―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단독 전투 시 지휘 전술 훈련. 삼림 지역 기동 작전 훈련.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 정비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인도에 도착해있었다. 게다가 지휘부의 경우에는 일반 보병 부대에 비해 작전 반경이 넓기 때문에 독립된 지휘 통제 기능가지 만들어둔 상태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며 부지런히 주변 정보를 끌어 모으고 있는 AWACS의 E-3C 기종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정보 수집뿐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통신 및 지휘통제기능도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하늘의 지휘자. 꽤 먼 곳에서 야전 지휘소를 차리고 있는 중대 지휘부와 일선 부대를 직접 연결하는 역할 역시 하고 있었다.
 “저런 것까지 빌려와서 하는 훈련이라 대단할 줄 알았는데, 별 거 아니네요.”
 자신의 장갑에 기대서 앉아있던 이얼이 슬쩍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늘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다들 이얼이 이야기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우리한테는 별 거 아니지, 뭐. 어차피 이번 훈련은 지휘 쪽만 죽어날 테니까.”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건 잡목이 없는 풀밭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지에. 아직 오전이라 그렇게 강하지 않고 딱 좋을 정도의 햇살을 받고 누워있으니 잠이 오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면 안 된다―”
 “예, 예에.”
 물가의 바위에 조신한 자세로 앉아있는 애니가 풀밭에서 뒹굴 거리는 지에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물론 지에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냈지만.
 “그건 그렇고, 저건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에요? 우리 부대에 저런 비싼 녀석이 있을 리가 없는데.”
 전 군에 100대가 채 안 되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3C. 아무리 특무부대라고 하더라도 이런 녀석을 일개 중대 훈련에 투입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저게 아예 중대가 운용하는 기종일 리도 없으니까.
 통신을 마친 엘런이 풀밭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실제 작전에서야 어차피 우리 작전 반경 때문에 AWACS를 통해서 정보를 얻고 지휘를 알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우리가 투입될 정도의 실전, 특히 이런 야전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전면전일 수밖에 없고, 그 때는 당연히 조기경보기도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닐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 저렇게 펜타곤 직속 항공대에서 직접 빌려왔다고 하더군.”
 “대단하네.”
 그러면서 지에는 왼쪽으로 뒹굴, 오른쪽으로 뒹굴. 작전 개시 예정 시각은 인도 현지 시각으로 무려 14시. 아직 11시니까 3시간은 더 남아있었다. 미리 백팩에 넣어온 식료품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작전 개시 전까지 다시 한 번 장갑을 대충 점검해보는 것 빼고는 할 일도 없으니 그렇게 뒹굴 거려도 별 상관은 없었다.
 장갑에 머리까지 기댄 채 슬쩍 눈을 감은 이얼. 어쩌다 자신이 생전에 올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인도 중부의 고원 지대, 그 강가에 있는 걸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며칠 전 아침 점호 시간이었다.


 



 몇 사람에게는 정말 갑작스럽게 외부 작전 훈련이 발표되었다. 보통 훈련이라면 적어도 몇 주 전에는 미리 공표가 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갑자기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후발대로 상하이에 늦게 도착한 인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무심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점호를 마치고, 이얼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 기동 훈련을 위해 린든 조원들이 정비반으로 이동하는 동안 엘런이 이번 훈련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이거 본대 쪽에서는 서너 달 전부터 계속 준비하고 있던 거였어. 그래서 후발대는 그 쪽 관련 업무까지 마친 다음에 여기로 건너온 거지.”
 “덕분에 오기 전까지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여기서 그냥 내내 놀기만 했던 지에는 모를 걸?”
 애니의 그 말에 지에가 발끈하며 “나도 힘들었다고요! 실전까지 치렀는데!”라고 항의를 했지만, 그러던 말던 엘런의 설명은 계속 되었다.
 “어쨌든 이번 훈련은 생각보다 크게 진행될 것 같아. 인도에 가는 것도 단순히 삼림 적응 같은 게 아니라, 낯선 지형에서 작전 수행 능력을 전부 평가하겠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 안 그래도 중대급 훈련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을 공수한다고 하는데 뭔지는 잘 모르겠네.”
 “그런 훈련에 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이얼로서는 당연한 질문. 아직까지 완전히 장갑을 다룬다고 할 수 없는 입장이라, 훈련이 크면 클수록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괜찮을 거다. 어차피 이건 우리 전투원들이 아니라 지휘부가 수행하는 훈련이 될 테니까. 우리는 지휘부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주고 전투를 하는 시늉 정도만 내주면 돼. 기동 자체에도 무리는 없을 테니 참가한다고 해서 크게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처음으로 장갑을 움직여본 뒤로 겨우 2주일. 주말에도 개인 훈련 신청을 해서 계속 장갑을 착용하고 기동하는 연습을 해왔지만 아직 완전히 익숙하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처음으로 온 상하이라 주말에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엄청 많았지만, 지에가 옆에서 끝까지 붙어서 지도하는 열성, 혹은 압박을 보여준 탓에 결국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못 나가고 부대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아직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막상 주 무기인 저격총을 꺼내보지도 못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저격총에 대한 설명은 들었는데, 이얼로서는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쓰란 말이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녀석이라 과연 쓸 수 있을까 의심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저격용 소총-Sniper Rifle’이라니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차라리 ‘저격용 활강포’라던가 ‘저격용 무반동총’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
 애초에 사용하는 탄의 구격이라는 게 36mm라니, 그건 이미 총탄이 아니라 박격포용 포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실제 박격포는 최소 구경이 60mm는 넘으니까 별로 연관은 없지만.
 그 탄이라는 걸 하나 가져다 세워놓으니 자기 무릎 높이보다 더 긴 걸 보고는 어이가 없어질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아직 시제품이라서 이얼이 지속적으로 사격을 시행하면서 개조해나가야 한다는 걸 듣고는 납득했지만. 어쨌든 이 부대는 어디까지나 국방성의 연구소 산하에 있는 시험 부대인 것이다.
 “그런데 그 특별히 가져온다는 건 뭐에요?”
 지에의 관심은 그 쪽인 것 같았다. 훈련 자체야 어차피 ‘어떤 것이던 나랑 상관없잖아. 그냥 시키는 대로 뛰면 되지.’라고 생각을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훈련이 아무리 크더라도 어차피 말단의 전투원은 시키는 대로 전투를 수행하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막상 가져온다는 그것에 대해서는 엘런도 애니도 아는 바가 없었다. 물건이 다른 부대의 것인데다가, 철저하게 서류만 왔다 갔다 하는 행정상의 절차로만 대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전투원이 알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얼 군의 저격 훈련은 어떻게 하지? 훈련 중에 이얼 군 저격 시키는 건 꼭 있을 텐데 말야.”
 애니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펴서 아랫입술에 갔다대고는 말했다. 이얼이 2주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애니가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말할 때는 항상 저런 자세를 취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훈련 내용 중에 아예 실제 사격을 시킬 거야. 지금 여기에서 익힐 시간도 공간도 없으니 작전 훈련 중에 실시할 거라고 하더군.”
 “그, 그런 가요.”
 아직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데, 게다가 그 무식하게 생긴 걸, 그렇게 큰 훈련 중에서 실제 사격하라니. 이건 대체 어떻게 말해야하는 건지, 이얼로서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물론 하라고 명령하면 시키는 대로 하기야 하겠지만.
 그 뒤로 원거리 이동할 준비를 하고 정비반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휘 및 행정 관계 인원 전원이 먼저 수송기편으로 인도로 이동한 다음, 마지막으로 전투원들과 함께 최종 정비를 마친 강화중장갑들이 특별히 개조한 C-17 2대에 나눠 탑승하고 인도 북부로 이동, 하룻밤을 숙영으로 보내고 오늘 6시를 기해 인도 중부 차티스가르 주로 작전 투입된 상태였다.
 


 


 “물은 혹시 모르니 조금만 마시도록 해. 여기 오후 넘어가면서 꽤 무덥다니까 혹시라도 떨어지지 않게.”
 이얼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걸 보고는 전투식량에 있는 비스킷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있던 지에가 한마디 했다. 그 말에 터져 나오는 이얼의 볼멘소리.
 “벌써 이렇게 더운데, 나중에는 더 덥다고요?”
 이미 목덜미에 땀이 잔뜩 맺힌 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뜨겁게 먹어야만 하는 자신의 전투식량―쇠고기 볶음밥을 그야말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삼키고는 이얼을 혀를 길게 쭉 내밀었다. 개처럼 혓바닥으로라도 열을 식혀보겠다,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조금 뒤를 생각하니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 탓이었다.
 “그러게 그냥 먹을 수 있는 비스킷 같은 거 들어있는 걸로 하지 왜 굳이 그걸 가져왔대.”
 “저 때문에 일부러 8군에 연락해서 마련해왔다는 전투식량인데 안 가져올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서 계속 땀을 흘려가며 밥을 퍼먹고 있는 이얼을 보며, 지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물론 지에가 가지고 있는 MRE에도 주식량으로 뜨겁게 먹을 수 있는 게 들어있긴 했지만, 이 날씨에 굳이 그걸 꺼내서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오늘 훈련은 오후 6시 전에 마치고 바로 집결지에서 멀쩡히 식사를 할 수 있으니 비스킷만으로 참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굳이 다 부대에 이야기해서 공수해온 전투식량이 이얼의 것 말고도 또 있었다. 지금 애니와 엘런이 먹고 있는 구 영국군의 전투식량. 굳이 두개를 꺼내지 않고 하나만 열어서는 애니는 베이컨과 콩으로 만든 요리를, 엘런은 야채 커리를 나눠 먹는 중. 막상 안에 들어있던 참치 캔은 이얼이 반찬 대신 삼아서 퍼먹고 있었다.
 “나도 그냥 중국에서 만든 걸로 가져올 걸 그랬나…….”
 이 중에서 가장 빈약해보이고 왠지 없어 보이는 건 MRE. 물론 구 한국군의 전투식량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데워먹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지금 같이 무더운 기후에서는 MRE보다는 더 사정이 안 좋았지만. 한국 기후에서도 여름에 저걸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대충 점심을 먹고, 애니가 자기는 안 먹는다면서 건넨 초콜릿과 민트 케이크를 앞주머니에 넣은 채 주워 먹으며, 자신의 장갑을 간이 점검하고 있는 이얼. 점검이라고 해봐야, 이 근방까지 차량으로 수송되어오면서 혹시나 이상이 생긴 곳은 없나 점검하는 정도인데다가 이미 오전에 한번 멀쩡히 움직였기 때문에 크게 할 일은 없었다.
 아직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13시 5분 전. 적어도 작전 개시 20분 정도 전에는 준비해야한다고 해도 아직 30분은 넘게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장갑 저거 햇빛 받으면 나중에 뜨거워지고 그런 거 아니에요?”
 “응? 그런가? 안 그런 것 같던데?”
 “예? 금속인데 안 뜨거워진다고요?”
 “응. 작년 여름에 그 사막에서 타고 있어도 별로 뜨겁진 않더라. 그래도 좀 덥긴 했지만.”
 그렇게 대답하며, 지에는 들고 있던 플라스틱 나이프로 아무렇게나 자라있는 풀들을 뜯었다. 아까 점심 먹으면서 애니가 안 쓴다면서 옆에 대충 치워든 걸 주워들고는 계속 가지고 놀고 있었다.
 “뭐, 합금 어쩌고 그러니까 철하고는 다르게 열 잘 안 받나보지. 그 뭐냐, 전 뭐라고 하는 게 낮으면 잘 안 뜨거워진다, 그러던데…….”
 “전도율이요?”
 “응, 맞아 그거. 그게 낮은 거겠지. 게다가 따로 온도 조절 같은 것도 조금은 하는 모양이더라.”
 실제 장갑 내부에는 특정 용액을 전신에 돌리는 장치가 되어있었다. 여름의 열기를 완전히 식히거나, 반대로 겨울의 냉기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착용자의 전투력을 유지시켜주기에는 충분할 정도였다. 흔히 말하는 실내 적정 온도 정도는 맞춰주니까.
 슬슬 훈련 개시 시간이 다가왔다. 현지 시각 13시 30분. 작전 준비를 위해 주변을 대충 정리해두고 장갑에 올라탔다. 일단 뚜껑을 닫지는 않고 내부에서 기동 전에 마지막 점검을 먼저 했다. 아무래도 많이 더워진 탓에 그늘에 있다고는 해도 공기가 상당히 뜨거워서 바로 닫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더 흘러 13시 55분.
 “자, 모두 출입구 닫고 명령 대기. 통신 상태는 내부 무전으로 바꿔두도록. 부조장은 수동 탐색으로 동시에 명령 전달을 실시한다. 준비해!”
 “예!”
 작전이 시작되면 설령 연인인 애니라고 해도 엘런에게 철저하게 예를 다해서 대했다. 그런 만큼 서둘러 입구를 닫고 바로 통신 모드를 전환한 다음에 조기경보기와의 교신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 그야말로 군기가 넘쳐흘렀다.


 



 현재 조기경보기의 역할은 아무래도 지휘부와 일선 전투조와의 연계. 통신뿐만이 아니라 공중에서 레이더와 센서 등을 이용한 전투원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실시간으로 지휘부에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최전선에서는 북쪽으로 거의 50km 이상 떨어져있기 때문에 재밍도 없어 지휘부로서는 매우 정확하게 전투원 개개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움직이는 전투원의 움직임은 조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 단위로 매우 세부적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린든조의 한이얼 하사가 기본 총기를 들었다, 라던가 롯소조의 조장 알론조가 지원 병력과 함께 사전 지형정찰 중이라던가 이런 것들까지 확실하게.
 곧, 첫날 훈련 개시 시각인 14시가 되었다. 오늘의 상황 조성은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 후방 교란을 위해 침투한 특수병력 색출 및 격멸. 인도 고원의 삼림지역에 침투해있다는 가정 하게 각자에게 지정된 범위를 최대한 신속하게 수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오늘 훈련은 어디까지나 일과시간동안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3시간동안 할 수 있는 만큼만 수색을 해도 무방했다. 오히려 지금 주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역시 지휘부. 최초 명령을 음성이 아닌 화상으로 전송 처리한 뒤 리세는 “에휴.―”하는 한숨과 함께 몸을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수면용으로도 쓸 수 있는 의자라 거의 누워있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 정도의 각도까지 쑥 내려갔다.
 “저 사람들도 고생이네.”
 그대로 고개만 뒤로 살짝 젖히자, 스크린에 쿼터뷰-지면을 45도 각도 위의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시야각-로 떠있는 작전 지형과 거기에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전투원들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오퍼레이터들의 움직임도 체크하고 있었는데, 막상 리세는 그 평가에서 제외되어있었다.
 “그럼 전 자러갑니다―”
 리세가 맡은 것은 긴급 작전 시에, 지휘부의 최초 전개 태세에 관련된 항목들이었다. 즉, 작전이 시작되었다는 건 그녀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는 의미. 전날 밤부터 계속 그 평가관과 2대 1로 마주한 채, 아니 정확히는 리세 한 사람의 작업을 두 사람에 의해 뒤에서 관찰당하면서 엄청 고생을 했었다.
 여기서 잘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혹시나 평가관이 거기에 대해서 뭔가 안 좋은 평가라도 내려버리면 곤란했다. 이런 작전 훈련, 특히 그 중에서도 평가를 받는 훈련의 경우에는 어찌되었든 메뉴얼대로 하는 게 나았다. 그 메뉴얼에 따르면 리세의 취침 공간은 지휘부 천막 옆에 있는 세 개의 본부 인원 숙영 텐트 중에 가운데 있는 여성 오퍼레이터 전용 텐트. 철제 야전 침대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매트리스에다가,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 여름용이라기에는 두껍고 겨울용이라기에는 얇은 모포만 깔려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리세는 군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군무원이라 정복이나 전투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군무원이라면 적어도 대외비 이상 급인 군사 작전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훈련에 참여할 수가 없는 게 정상이었지만 부대 특성상 특무 인원으로 분류가 되어 참가를 한 입장.
 그것에 대해서는 평가관들과도 이미 이야기가 끝난 문제라, 평소에 가끔씩 입고 다니던 연구원 복장-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병기 연구 및 개발을 위한 부대이니 군무원이 훈련에 참가하려면 그 연구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있었던 것. 그러니까 리세의 특무, 특수한 임무는 어디까지나 병기 연구원이고 그런 만큼 그에 맞는 복장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가운을 대충 벗어서 옆에 임시로 마련해 둔 옷걸이에 던져 버리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본 부대에서 가져온 따끈따끈한 새 물건이었는데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흔들리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왜 그런 소리가 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리세가 갑자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이어트라도 해야겠네.”
 아직 결혼도 안 간-애초에 갈 생각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처녀가 하고 있을 복장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가운 안에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어차피 가운으로 가리고 있으면 보이지도 않는 거고 그래서 이렇게 입고 있다가 필요하면 지금처럼 가운만 벗고 움직일 작정이었다.
 아주 잠깐, 얼굴이라도 씻고 자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살짝 스쳐지나갔지만 어차피 저녁 시간 전에는 다시 일어나야하니 조금이라도 더 자야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그대로 머리를 베개에 묻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꽤나 큰 우연을 품고 있는 법이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리리―리리―
 유명한 마더구스 중에 한 곡. 마더구스, 그러니까 자장가로 쓰이는 곡인만큼 이럴 때 매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문제는 이게 리세의 휴대폰 착신 벨소리라는 것이었다. 위성을 통해서 세계 어디에서나 통화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이럴 때는 그저 귀찮을 따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비척비척 옷걸이를 향해 걸어가서는 가운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예, 드뢰넨입니다.”
 [저, 혹시 프레이야 님이세요?]
 변성기를 거친 건지 애매할 정도로 어린 소년의 목소리. 적어도 자신에게 이 전화로 전화를 걸어올 사람 중에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내뱉은 명칭은 그녀로서는 매우 익숙한 것. 그래서 피곤한 와중에도 모른 척 하지 않고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다행이다, 제대로 전화했어……. 저에요, 프레이.]
 “응? 프레이르― 에? 정말?” 그녀는 순간, 정말 그야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부대에 들어온 것은 1년 반 가량 전. 그 전까지는 매우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을 부르던 명칭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그 때도 한 번도 통화한 적 없었는데…, 언제나 메신저 채팅으로만 이야기했었잖아요.”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조금 안 좋은 방법으로 알아냈다고만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네요.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요.]
 말투가 왠지 주춤주춤한다고 할까, 머뭇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수화기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기도 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설마 인도는 아니시죠?]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에 잔뜩 경계를 하면서도, 일단 그 자체는 긍정하기로 했다. 자기가 아는 그 ‘프레이르’가 맞다면 절대 악의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아요, 인도에 있어요.”
 [아, 이런…….]
 상대는 그야말로 크게 낙심했다는 것을 목소리만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길게는 이야기 못 하는데, 아마 거기 꽤 위험해질 거예요. 내일이나 모레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그 부대에 대해서 직접적인 타격이 들어갈 것 같아요.]
 그 때, 리세는 뭔가 중요한 단어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곤해서 어지러운 머리를 억지로 돌려 그 단어를 집어냈다.
 “부대?”
 [아, 그게……, 죄송해요―!]
 그리고 끊어졌다. 순간적으로 전화기를 든 채 굳어버린 리세.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프레이야는 그녀가 이 곳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네트워크 전략게임에서 사용하던 아이디. 신화를 별로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대학 다닐 때 사귀었던 남자 중에 하나가 엄청난 골수 매니아라 이것저것 알게 된 게 많았던 탓이었다. 그 남자와 헤어진 이후에도 왠지 패스워드라던가 그런 게 필요한 장소에는 북구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사용했고, 그 중에서도 프레이야가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도 사용 중이었다.
 그 당시에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도 ‘프레이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을 보게 되어서 꽤나 재미있는 우연이다 싶어서 말을 걸게 되었다. 상대도 10위권 안에 드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전략 이야기를 하면서 메신저로 대화도 주고받고 쪽지 정도는 매일 같이 보내는 그런 사이가 되기도 했었다.
 중요한 점은 그러는 동안 단 한 번도 실제로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기는커녕 개인적인 정보, 본명이라던가 사는 곳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전혀 없었다. 채팅으로는 자신이 프레이야인 만큼 프레이르에게 오빠, 라고 하면서 놀았지만 막상 상대가 진짜 어떤 성별인지 나이인지 역시 알 수 있을 리가.
 “이거,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거지?”
 일단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당연히 보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어떻게 보고해야 할까. 괜히 자기가 기밀 유지에 실패했다고 어떤 문제에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어차피 자신은 군인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연구소의 직원으로서 들어와 있는 것이라 부대에 문제가 생기면 감싸주기는커녕 바로 버려질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라는 게 리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지금 너무나도 피곤했다. 누우면 곧장 잠들어버리리라. 그런 상태에서 굳이 지휘부 천막으로 가서 직속상관인 중대장에게 귀찮게 보고를 해야 할까. 게다가 이 전화 자체의 진실 여부도 솔직히 의심스럽고. 사실 이런 전화가 걸려온 것 자체가 이미 문제라기에 충분했지만 그걸 생각할 정신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일단 조금이라도 자고 나서 생각하자.”
 어차피 저녁이면 다시 일어난다. 무엇이든 그 때 해도 늦진 않겠지. 그런 생각에 전화기를 가운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고 그대로 침대로 가서 곧장 눕고, 바로 잠들어버렸다.


 



 롯소조의 담당은 가운데. 조가 세 개라 지역도 세 범위로 나누었기 때문에, 전투원들 중에 중심이 되는 롯소조가 그 가운데를 맡기로 한 것. 전투원 중에 알론조가 가장 계급이 높아서 유일하게 상사를 달고 있다 보니 그가 담당하는 조가 자연스럽게 중심이 된 것이었다.
 “우선 서쪽으로 이동한다. 혹시 모르니 사주경계 철저히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보고하도록.”
 [예!]
 삼림 지역이라고 해서 독일이나 북미 같이 나무가 빽빽한 그런 이미지가 있었지만 막상 여기 와보니 침엽수가 울창한 숲과는 전혀 달랐다. 활엽수로 이루어진 숲은 나무와 나무 사이가 상당히 좁은 느낌이 있어서 장갑을 착용한 상태에서의 움직임이라던가 주변 경계에 꽤나 어려움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미 열대우림 같이 나무들이 마구 엉켜서 어지럽게 자라있는 곳에서도 실전을 수행해본 경험이 있는 알론조에게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지형정찰을 위해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던 탓에 우선 밑으로 내려왔다. 어느 정도 평지인 곳에 도착한 다음부터 본격적인 시작.
 “아까 정찰해둔 그대로 간다. 다시 한 번 알파에서 델타까지 전 지역을 확인하라.”
 [예!]
 정찰하면서 지형에 직접 알파에서 델타까지 총 네 개의 수색 중심 지역을 정해서 입력했다. 그런 다음에 그 정보는 조원들에게 모두 전송해 시야에 직접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둔 상태. 시각 정보와 통신을 통해서 받은 지형도가 자동으로 연동되기 때문에 지형도에 입력을 하면 현재 시야에 그 입력 정보가 겹쳐져서 보이게 되어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바로 보이는 지형에 겹쳐져서 보이는 알파 포인트. 조원들은 진형을 유지한 상태로 알론조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숨을 고른 다음, 준비가 되었다 싶은 순간 바로.
 “작전을 개시한다! 전원 이동, 탐색을 실시하겠다!”
 [예!]
 곧장 가장 동쪽에 있는 알파 포인트를 향해 신속하게, 그러면서도 최대한 기밀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3미터에 육박하는 금속제 장갑을 착용한 상태의 움직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정도의 움직임. 괜히 롯소조가 중대 전투조 중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현재 린든조의 경우에는.
 “우와악!”
 [뭐하는 거야!]
 작전 개시 이후로 지금까지 이얼의 충돌횟수는 무려 7번. 어깨에서 팔까지가 4번. 다리가 2번. 그리고 지금은 머리 부분을 부딪친 상태. 카메라가 고장 나거나 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작전 수행은커녕 이대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지도 확실치 않을 정도였다. 나름대로 꽤 오래 연습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 장애물이 많은 상태에서는 장갑의 정확한 크기가 아직 몸에 익지 않은 탓에 충분히 통과했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몇 번씩이나 나무에 걸리고 말았다. 장갑의 힘으로 부러지는 가지라면 소리는 좀 나더라도 움직임에 크게 거치적거리지는 않겠지만, 나무 둥치 부분이라든가 수령이 오래되어 두꺼운 가지 같은 경우에는 그것도 안 되니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자꾸 저 때문에 작전이…….”
 [괜찮아. 어차피 그런 거 다 생각해서 범위 자체를 좁게 배정 받았으니까. 첫 실전 기동에서 완벽하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뒤로 벌렁 넘어져있는 이얼을 일으켜 세워주며, 애니는 가볍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다니……. 장갑이라는 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가보네요.”
 [세상에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 흔한가. 최대한 그 비슷하게 할 수 있게 노력하는 거지.]
 다시 진형을 잡는 동안 이번에는 엘런이 지나가듯이 말을 던졌다. 하긴 세상 어느 일이 그렇지 않으랴, 이렇게 생각하며 이얼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지금부터 움직일 곳은 그나마 다행히도 나무가 적고 움직일 공간적 여유가 있는 강변의 공터였다. 공터라기보다는 강가에서 흔히 보이는 턱 같은 곳이라고 할까, 그런 곳이라 적어도 강을 따라가는 동안은 크게 걸리는 것 없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거치적거리는 게 없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어라?”
 강이 굽이쳐 흐르게 되면 안쪽으로 굽어지는, 강의 유속이 약해 토사가 쌓이는 지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습한 지역이 아니라면 그런 공간을 채우는 곳은 모래. 그 모래에 장갑의 발이 들어가자 순간적으로 완전히 균형을 잃고 말았다. 쑥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제대로 체중을 실지 못한 것. 결국 강을 향해 시원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성대하게 구르고 말았다.
 [가지가지 하네. 그대로 굴러서 떠내려가 버리지 그래?]
 이얼의 어깨를 들어 물 밖으로 끌어내며 지에가 잔뜩 핀잔을 주었다. 하긴 이번에는 단순히 미경험자의 실수라고 하기에는 좀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렇게 인정을 한 이얼은 이번에도 그저 백번 사죄할 뿐. 이게 고스란히 지휘부로 올라가서 감독관들이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여차저차 움직여서 어느 정도의 범위를 수색하는 동안 그럭저럭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조금씩 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까처럼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아니고 끝을 스치는 정도. 은밀한 기동은 안 되더라도 속도는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우리 구역에는 없는 것 같군.]
 왼손을 들어 잠시 일행을 중지시킨 엘런이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애니도 거기에 동의.
 [하긴, 우리는 신참도 있고 아직 완전한 전력이 아니니까 우리가 담당하는 구역에 대항군을 두지는 않았겠죠. 어차피 시간도 다 되었는데, 복귀 장소로 미리 되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우리가 제일 먼저 수송되기로 했으니 먼저 가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 일단 지휘부에 수색 범위 내에 적이 없는 걸로 판단된다고 상황 보고 하고 대기 지점으로 돌아간다고 말 해둬.]
 [예.]
 그 대화를 들으며 이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평소 부대에서 장갑을 운용하던 때와는 다르게 마치 집에 돌아가는 것 같은 안도감이 가장 먼저 찾아온 것. 첫 실전이 이얼에게는 매우 큰 부담이 된 것이었다.
 이동하는 동작이 전부 기록되기 때문에 대기 지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이동할 수는 없어서 계속 탐색 대형을 유지한 상태. 좌우경계를 하는 시늉을 계속 하면서 숲 속을 신속하게 빠져나갔다. 그 때, 애니가 통신회선을 통해서도 느껴질 만큼 맥이 풀린 목소리를 냈다.
 [아아, 역시.]
 [무슨 일이야?]
 [대항군 전원 발각되어서 사살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금일 훈련 상황 종료이니 경계 풀고 대기 장소로 복귀하라고 하네요. 2소대에서 발견했답니다. 대항군을 운용하기로 한 현지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네요.]
 아무래도 대항군은 자기들 앞마당에서 움직이고 있던 것 같았다. 아마도 현재 3소대인 린든조가 맡고 있는 지역에서는 활동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을 테니 작전 범위를 크게 넓히지 못할 바에야 잘 알고 있는 부대 인근에서 움직이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였다.
 [뭐, 됐어. 작전 종료하고 전원 원대로 복귀한다. 대형 풀고 각자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하도록 하지. 낙오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이상.]
 어차피 조원이 4명밖에 안 되니 낙오될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얼은 엘런의 지시에 긴장하고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의미. 숙영지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대기 장소는 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도로. 수색이 끝난 지점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기 때문에 금세 도착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도로 한쪽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큰 트레일러 차량. 앞에서 멈춰서더니 곧장 뒤의 트레일러를 완전히 개방했다.
 장갑 네 대를 정해진 위치에 정확하게 놓자 자동으로 고정이 되었다. 그런 다음 모두 장갑에서 내려와 한쪽에 마련된 탑승자용 좌석으로 이동. 꽤 큰 트레일러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갑 네 대가 들어가자 꽉 찬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놓고 보니, 오늘 행동한 게 그대로 보이는군.”
 엘런의 말을 들은 모두가 장갑을 쳐다보았다.
 현재 장갑은 초록색과 갈색 계통을 기본으로 위장 무늬로 도색을 한 상태. 거기에 흙이나 흠집이 생겨있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유독 하나에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단순히 흙이 묻어가 긁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듬성듬성 벗겨져있었다. 다른 장갑들과는 아예 다른 작전을 수행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진짜 엉망이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지에. 반대로 이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다들 너무 그러지 마. 그러다가 이얼 군 땅 파고 들어가 버리겠어.”
 그래도 놀림감은 놀림감. 숙영지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진짜 트레일러 바닥을 파고 들어갈 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어이, 동무! 이기 왜 이 이래 돼있는 기야!”
 재현이 열 받아서 펄쩍펄쩍 뛰는 바람에 한참동안 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땀에 젖은 셔츠는 저녁을 먹기 직전에야 겨우 벗을 수 있었다.


 



 결국 리세는 전화에 대해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 원인이라면 귀찮기도 하고, 또 괜히 이상한 곳에서 문제가 생겨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하필이면 그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한 상대가 지에였다는 것도 한몫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오후 7시 30분 정도.
 전투원들 중 여자용 텐트가 하나고 남자용 텐트는 두개였다. 인원이 딱 남자가 8명, 여자가 4명이라 정확이 2대 1로 나누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텐트에서 자기 침대에 몸을 눕히고 있는 건 지에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리세가 들어와 버린 것.
 “응? 무슨 일이야?”
 “아니, 조금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다른 사람은 없어?”
 당연히 지에에게 상담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꺼림칙할 수밖에. 리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에는 표준적인 군인의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여러 사람에게 할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 기왕이면 누구든 상관없으니 1대 1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기에는 아무래도 피곤했다. 전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밤을 새고 오늘 4시간 정도 밖에 못잔 상태. 1분이라도 일찍 다시 잤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사실은 말이지―”
 낮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에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주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은 어찌 보면 당연히 지에가 할 말이라고 생각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귀찮잖아. 그냥 넘어가.”
 “역시 그게 낫겠지?”
 “그래, 그래. 뭐, 어때. 그런 거 하나 말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서 ‘막상 그 녀석이라면 큰일 날 거라고 말하면서 난리를 칠 것 같기도 하네.’라는 생각이 지에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물론 그거야 잠시 떠오른 잡생각이라며 무시하고는 계속 조언 아닌 조언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그런 거 말했다가 꼬투리 잡히면 이것저것 귀찮은 일 엄청 생길 거라고. 아무도 모르면 그냥 넘어가는 게 상책이야, 상책.”
 “너무 적당히 넘어가는 거 아닐까?”
 “뭐 어때. 어차피 언니 군인도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그럼 됐잖아. 그냥 넘어가. 장난 전화 같은 거 일일이 신경 쓰다간 주름이 두 배로 늘어날 걸.”
 그걸로 끝.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큰일 날 이야기였지만 하필이면 이 두 사람이라 결국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 이야기가 결국 어떤 일로 다가온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은 적당히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어땠나?”
 시무룩하게 침대에 앉아있는 이얼에게 알론조가 다가오더니 옆에 앉았다. 마침 바로 옆 침대를 쓰게 되어서 자기 자리로 가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울하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얼을 보고는 얼른 다가온 것.
 “아뇨, 오늘 실수를 좀 많이 해서요.”
 “실수라……,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네. 안 그래도 아까 정비부가 시끌시끌하더니, 여기저기 많이 부딪혔나 보지?”
 “예…….”
 그 순간, 알론조의 왼손바닥이 이얼의 등을 ‘짝!’ 소리가 나게 후려쳤다.
 “우왁!”
 “뭘 그런 걸 가지고 기 죽어 있는 거야? 솔직히 우리라고 뭐 하다가 그렇게 안 부딪히고 안 자빠졌을 것 같아? 어차피 자기 몸보다 큰 거 움직인다는 게 쉬운 게 아니라고. 차 운전하는 것만 해도, 솔직히 작게라도 접촉 사고 안 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 그런 거야.”
 “그런 가요?”
 “뭐, 그 중에는 처음부터 날아다니던 누구도 있긴 하지만, 다들 그랬지. 이 부대에서 내가 가장 처음 장갑을 착용한 사람 중에 하나니까 충분히 믿어도 될 거다. 음.”
 “예에…….”
 한두 번 정도는 그렇게 부딪혀가면서 배워가는 거라고 말해주고는 알론조도 자기 자리에 적당히 누웠다. 이제 곧 자야할 시간. 내일은 아침 6시에 바로 작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8시가 넘으면 전원 취침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던 것. 기상이 새벽 4시라고 하니 다들 알아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대로 주무시게요?”
 알론조의 차림은 전투복. 다른 사람들은 훈련 이후에 전부 활동에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지만, 알론조는 전투원 최고 선임이라 감독관들에게 보고 하기 위해 정복을 입고 있었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는 걸 본 이얼이 물었던 것.
 “뭐, 내일 일어나서 갈아입기 귀찮아서. 전투복 입었다가 다시 장갑수트 착용해야 되는데, 솔직히 귀찮잖아.”
 “그래도 그렇게 주무시면 불편할 텐데.”
 “괜찮아.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니고. 너도 원래 부대 있을 때 작전 들어가면 그 상태로 잠도 자고 별 거 다 하지 않았냐? 안 그래도 저격수 출신이라면서?”
 “그 때야 전투복 하나로 며칠씩 버틴 적도 있고 그렇지만, 오히려 그 부대에서는 편하게 있을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편하게 지내려고 했었어요. 평소에 원체 불편하게 생활하다보니 다들 무언가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전부 챙기려고 했거든요.”
 “그것도 그런가. 뭐, 일단 나야 이러고 자도 별로 상관없으니까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예에…….”
 이얼은 한 때,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에서 작전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는 기본적으로는 북쪽 연합군의 영역이었지만, 가끔씩 남부 지역에서 남쪽 적군의 도발 행위가 일어나는 일이 있어서 자주 작전이 벌어지곤 했다. 그 때 막 저격수 활동을 시작해서는 고생을 꽤 많이 했었다. 며칠씩 옷도 안 갈아입고 물도 아껴 마시다보니 넉넉히 못 마셔 입술이 바싹 마른 상태로 한자리에서 대기하기도 했었으니까.
 “차라리 지금이 나은 건가…?”
 앉아서 이러고 있는 걸로는 기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아서 잠시만 밖을 돌고 오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들어오는 엘런과 2소대의 하사 한명.
 “응? 어디 가나?”
 “잠깐 산책 좀 하고 오려고요. 아직 시간도 좀 있으니까. 괜찮을까요?”
 “음, 괜찮겠지. 늦지 않게 오도록 해.”
 “예. 취침 전까지는 돌아올게요.”
 그러고 나가보니 주변이 왠지 많이 어두웠다. 오늘은 틀림없이 보름. 맑은 날이라면 빛이 없어도 주변 사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빛은 있을 텐데 무슨 일일까, 싶어서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달을 가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드러나는 달 주위로 잔뜩 생겨있는 달무리. 아무래도 내일은.
 “비 오려나?”
 비가 올 것 같았다.
 잠시 산책을 하다가 시간이 다 되서 서둘러 텐트로 돌아와서는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낮에 이래저래 고생을 했던 게 꽤나 피곤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