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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5.07 11:32

Earthy 조회 수:1098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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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품과 후발진이 전날 밤에 도착했다.
 실제로는 오전 중에 도착해서 다음날 바로 이얼의 기체를 테스트 기동할 수 있게 조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품이 저녁 늦게야 도착하는 바람에 결국 정비부는 밤을 새야만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아침에는 장갑을 1차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8시 40분. 인원 점호가 끝난 다음에 드디어 이얼에게 새로운 군복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른 것도 주어졌다.
 “금일 부로 한이얼 병장의 진급을 명한다. 그에 따라 복장과 함께 하사 계급장 밑 약장을 수여한다. 이상.”
 30대 후반 정도. 붉은색 머리에 큰 체격과 단정한 인상. 누가 봐도 군인으로 볼 수밖에 없을, 그야말로 군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이얼의 앞에 서있었다. 계급은 소령. 하지만 그의 현재 직책은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의 중대장이었다. 부대의 특성상 대위에게 중대장을 맡길 수가 없었기에 소령 진급을 한 그가 이 직책을 맡게 된 것.
 그 중대장이 잘 개진 옷 위에 계급장과 약장을 올려서 이얼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 왼쪽 옆구리에 정자세로 낀 다음, 오른손을 펴 눈썹에 붙이며 거수경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수.
 “이걸로 진짜 우리 중대원이 되었군.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그럼 이걸로 마치지. 오늘 네 장갑도 기동할 테니 열심히 해야 할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진급 신고가 끝난 뒤, 보급부에서 여분의 정복과 전투복을 받고 우선 방으로 돌아와 갈아입었다. 어제 인사 담당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중대원들 중에서 전투원에 속하는 사람은 최하 계급이 하사로 맞춰져있다고 하는 듯 했다. 그래서 이얼도 처음 이 부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하사 진급이 예정되어있었던 것. 그렇다보니 옷에는 처음부터 하사 약장이 붙어있었다.
 “하사라……, 진급 한번 엄청 빨리 하네, 진짜.”
 처음에 군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상병-SPC, Specialist-도 될 수 없는 신분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가지 와버렸다. 실제로 부사관 3년이라고 해도 보직이나 임무에 따라서는 병장에서 끝날 수도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단한 승진이었다.
 “그런데, 2년 뒤에 이 생활을 그만둘 수나 있을까 모르겠네.”
 이얼의 계획으로는 3년 뒤에 전역을 하고, 그 때부터는 참정권을 비롯한 시민의 권리를 가진 상태로 공부를 하고 일자리를 얻어서 편안히 일생을 보내게 되어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를 상황이 되어버렸다지만. 이런 특수한 보직을 가진 병력을 군에서 쉽게 놔줄 리가 없으니까.
 옷을 갈아입고 막 나오는데, 비어있던 옆방에서 불쑥 사람이 나왔다. 조금 헝클어진 짧은 갈색 머리에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 차림. 갸름한 얼굴에 안경까지 쓰고 있어 조금은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기지개를 켤 때 흘끗 보인 복부는 근육이 그야말로 제대로 자리 잡혀 있었다.
 상대가 그를 슬쩍 쳐다보더니 “아, 네가 한이얼이로군.”이라며 말을 걸어왔다. 가슴에 있는 이름표를 본 모양이었다.
 “정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봤으면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런 모습으로 만나버렸군. 뭐, 상관없지. 만나서 반갑다. 네가 린든조 조장 엘런이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자신의 상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몸을 굳히며 큰소리로 인사. 그와 동시에 오른손이 바로 올라갔다. 그 경례에 손을 잠깐 이마에 대는 걸로 응답한 다음, 곧장 오른손은 내미는 엘런.
 “어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오늘 부득이하게 오전 중에는 휴식을 하게 되어서 말야. 원래는 네 진급 신고를 내가 받고, 그걸 중대장님께 보고해야 되는데, 맡겨버리는 꼴이 되어버려서야…….”
 “아…….”
 “일단 오전에는 지에 지시를 따르도록 하고, 오후에는 나하고 애니가 나가도록 하지.”
 “애니?”
 “음. 우리 조의 부조장. 아니타 밀러 중사 말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얼은 자신이 막상 자기 조의 조장과 부조장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 엘런의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린든이라는 성 밖에 모른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지만, 그 때는 갑자기 상관을 만나는 바람에 미처 거기가지 생각 못하고 넘어가버린 것.
 그 때, 엘런이 나온 방에서 다른 사람이 문을 살짝 열고는 상체를 쑥 내밀었다.
 “응? 나 불렀어?”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금발과 부드러운 인상의 여성이었다. 헐렁한 티셔츠 너머로도 드러나는 가슴이 유난히 눈에 띄는, 그야말로 미녀였다. 상체를 기울이고 있어 티셔츠가 반쯤 흘러내린 어깨에 아무 것도 없는 걸로 봐서는 속옷 상의는 입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아, 이번에 왔다는 그 녀석을 만나서 말야. 너도 인사하지 그래.”
 “음― 그럴까.”
 방문을 마저 열고, 느긋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똑바로 이얼의 앞에 서자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린든조 부조장 아니타 밀러. 애니라고 불러줘.”
 “한이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손을 맞잡고 가볍게 아래위로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역시 상하로 출렁이는 가슴. 고등학교 때는 꽤 잘난 얼굴 덕분에 나름 여자애들을 많이 만나고 다닌 이얼로서도 그런 건 처음 봤다. 마음속으로 ‘역시 서양인!’이라는 생각이 지나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얼른 꺼내보니 화면에 떠있는 건 첸지에라는 이름. 밖에서 기다린다더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상황을 설명하려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야, 너 뭐하는 거야! 벌써 20분이 넘게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옷 하나 갈아입는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걸리는 거야?]
 “옷은 갈아입었는데, 좀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 무슨 사정?]
 “조장님 만났어요. 린든 중사님.”
 [에? 지금 자고 있을 텐데? 하긴 옆방이니 볼 수도 있기야 하지만……. 잠깐 바꿔줄래?]
 얼른 “첸지에 하사 전화입니다. 잠시 바꿔달라네요.”라면서 휴대폰을 넘겼다.
 “음, 나다. 바로 옆방이라 복도에서 만나버렸네. 아아, 충분히 쉬었어. 늦게 도착했다고 해도 날짜 바뀌기 전에는 부대에 들어왔으니까 솔직히 오전부터 바로 나가도 별로 상관은 없을 것 같긴 했어. 흠, 그래도 명령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오전에 첫 기동 때는 네가 지켜봐줘. 그래, 내려 보내도록 하지. 아, 잘 부탁한다.”
 통화 끝. 엘런은 아예 휴대폰을 닫아서 이얼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얼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는 “오후에는 나가보도록 할 테니 오전 중에는 지에 지시에 따르도록 해.”라더니 그를 곧장 보냈다. 그리고는 곧장 방으로. 지에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직 피곤한 것 같았다. 엘런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 애니는 길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막사 건물을 나와서 지에와 마주치자마자 곧장 의문점을 물었다. 가장 중요한 의문은 바로 이것.
 “어째서 두 분이 같은 방에 있는 겁니까?”
 “같은 방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같은 침대일 걸. 싱글 베드가 두 개 있어도, 굳이 하나에서 같이 자는 사람들이니까 말야.”
 “두 분, 부부……는 아닌 것 같고, 연인 사이인 겁니까?”
 “음. 이미 가족들끼리도 전부 알고 있다고 그러네. 정말이지, 아주 짜증이 팍팍 날 정도라니까.”
 “예?”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지에의 불평. 이제까지는 쭉 조원이 세 명인 상태에서 자신의 상관들이자, 동시에 연인인 두 사람 때문에 꽤 쌓인 게 많은 것 같았다.
 가령 보고할 게 있어서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둘이서 대놓고 껴안고 있었다던가, 회식 자리에서 다들 자신이 속한 부서별로 놀고 있는데 자신만 1소대 롯소조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던가.―엘런과 애니는 무슨 기념일이라면서 아예 빠졌다고 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구구절절 한탄이 쏟아지는 동안 어느새 정비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마주친 건, 눈 밑이 검게 변해버린 재현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격용 총기를 수납한 백팩을 달고, 그에 맞춰 시스템을 전부 재조정한 다음 조종석에서 직접 가동이 되는지 시험하고 탄을 백팩에 넣은 다음 장전 여부와 탄환 자동 교환 여부를 모두 확인한 다음 그걸 메뉴얼에 규정된 과정 그대로 3회 테스트하고 나니 아침 9시였다고.
 등골이 오싹할 만큼 한기가 담긴 목소리로 “빨리 타 임마.”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결국 자신의 의자에 퍼져버렸다. 옆에서 그의 탑승을 위해 탑승 전용 복장을 가져다준 정비부 사람들도 마치 피곤이라는 양념에 푹 절인 채소 같은 상태였다.
 정비부 한 쪽에 있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정복을 벗고, 속옷 위로 곧장 입는 스타일. 게다가 상하의 구별 없이 일체형 옷은 처음이라 입으면서 상당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몸에 착 달라붙는 재질이라 민망하기도 했고. 그래도 다 입고 나서 탈의실 한쪽에 있는 거울을 보니, 갈색과 카키색 빛깔이 섞인 라이더 복장 같은 느낌이 있어서 나름 멋은 느껴졌다.
 탈의실을 나와, 자신이 착용하게 될 장갑 앞에 섰다. 지에가 옆에서 지시하는 대로, 우선 무릎을 밟고 열려있는 개폐부에 우선 오른쪽 다리를 올렸다. 그런 다음 개폐부에 있는 버튼을 눌러 하반신이 들어갈 공간을 만든 다음, 왼쪽 다리부터 집어넣었다. 오른쪽 다리까지 마저 넣고 다시 버튼을 누르자 공기가 들어가며 그야말로 하반신에 딱 맞게 조여들었다.
 “체격에 잘 맞췄나 모르겠군. 어떤가?”
 어느새 다가온 재현이 밑에서 질문했다. 이얼은 상반신을 잠시 움직여보고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개폐부의 다른 버튼을 눌렀다. 역시 ‘사악―’하는 소리와 함께 개폐부가 닫히고 동시에 사방의 디스플레이에 주변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단,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더 높은 곳의 모습이 비쳐서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글 쓰고, 통신부터 외부 송신으로 바꿔라!”
 고글을 쓰자, 곧장 시야가 바뀌었다. 고개를 돌리자 실제로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도 같이 움직였다. 밑을 내려다보자 잠깐 화면이 깜박이더니, 곧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재현과 지에, 그리고 다른 정비부 사람들이 보였다.
 “통신 모드 전환이……, 어디 보자…….”
 손가락을 뻗어보니 버튼이 무려 4개. 어떤 건지 몰라 물어봤지만 방음이 워낙 잘 되어있어 밖에서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밖의 소리가 들리는 건, 기체 여기저기에 달려있는 집음 마이크 덕분이었고.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몸에서 가장 가까운 걸 눌렀다. 그러자.
 등 뒤에서 커다란 철제 관이 튀어나왔다. 2단으로 적재되어있던 게 합쳐진 다음 단단하게 고정되고, 다시 앞쪽을 향해 꺾이면서 어깨에 있는 거치대에 놓이고 조임쇠가 맞물리며 마무리. 아무래도 저격 총기를 꺼내는 버튼을 눌러버린 것 같았다.
 “어, 어라…….”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총기 부분과 백팩이 연결된 부분을 따라 커다란 탄환이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장전까지 끝.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재현의 노성이 기체를 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통신 모드를 켜랬지, 갑자기 네 놈 무기를 꺼내랬냐! 제일 끝에 있는 걸 누르란 말이다!”
 재현이 말하는 버튼은 몸에서 가장 멀리 있는 버튼인 것 같았다. 그걸 쿡 누르자 시야 한쪽 구석에 [네트워크 내부 무전]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어쨌든 외부 송신 모드는 아니었기에 다시 누르자 이번에는 [외부 송신]으로 글자가 바뀌었다. 그걸 확인하고는 마이크를 입 앞으로 당겨 말을 해보았다.
 [아아, 외부 송신 모드 시험 중. 잘 들립니까?]
 “잘 들린다, 이 자식아!”
 재현이 장갑 다리 부분을 퍽 걷어찼다. 그리고는 정비부원들에게 손짓을 하며 “기동 시험 준비 안 하고 뭐해!”라면서 또 소리를 버럭. 잠을 못 잔 탓에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는 우 준위님 지시대로 행동하면 돼. 그대로 하다보면 조작법은 익힐 수 있을 거야. 나도 저기 가서 보고 있을 테니까, 잘 해야 된다.”
 [예.]
 “그리고, 저기 가면 무전 가능하니까 통신 모드를 내부 무전으로 바꿔둬.”
 버튼을 누르니 이번에는 [수동 탐색], 그 다음은 [근거리 통신], 그 다음이 바로 [네트워크 내부 무전]이었다. 각자 모드가 어떤 용도로 쓰는 건지는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마이크에 대고 다시 말을 했다.
 “내부 무전으로 바꿨습니다. 잘 들립니까?”
 [음, 잘 들린다. 좋아,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그 때부터 본격적인 최초 기동 시험의 시작이었다. 가장 처음 할 것은 걷는 것과 손을 움직이는 것. 우선 걸음걸이를 걷기 위해 필요한 것들의 지시가 날아왔다.
 [일단 다리를 들어봐. 무릎을 직각으로 세우고, 발을 앞으로 뻗는 거야.; 평소처럼 하면 돼, 평소처럼.]
 다리에 힘을 주고, 일단 무릎을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쉽게 움직여서 놀랐지만 어쨌든 쉽게 움직이니까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조금 뻗어 내리고 반대쪽 발을 똑같은 형식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 움직이자 슬슬 제대로 걷는 법도 알 수 있었다.
 “이거, 그냥 걷듯이 다리를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뭐, 일단은 그렇다고 봐도 될 거다. 실제로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건 하다보면 익히게 되는 거니 넘어가도록 하지.]
 평소에 걷듯이 걸어보니 다리가 별로 안 떠올라서 ‘터덜터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걸음걸이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실제 걷듯이 움직이려면 조금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긴 했다. 그건 앞으로 계속 익혀야할 부분이니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할 것 같았다.
 [우선 오른쪽에 있는 책상 쪽으로 가봐. 거기에 나이프랑 총이 있을 테니 그걸 들어 올리는 연습부터 하도록 하지.]
 이얼이 터덜터덜 책상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재현은 부하들에게 관절 부분에 달려있는 센서들을 제대로 체크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이얼은 몰랐지만 장갑에는 여기저기에 센서가 달려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험 기동 중이었기 때문에 점검을 위해서 붙여둔 거라 움직임에 방해가 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책상 앞에 와서 밑을 내려다보니, 확실히 어제 보았던 컴뱃 나이프와 라이플이 놓여있었다. 먼저 나이프를 들라는 지시가 내려와 손을 뻗었다.
 “우아…….”
 손을 장갑 안에 넣고 쭉 밀자 팔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밑으로 내려 나이프 손잡이를 잡기위해 손바닥을 쫙 폈다. 손과 팔의 움직임에 꽤 민감하게 작동해주다보니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달칵, 철컹, 땡그랑.
 무언가가 책상을 툭 치면서 넘어뜨리는 바람에 라이플과 나이프가 바닥에 흩어져버렸다. 아까 꺼내놓고 미처 집어넣지 않은 저격총대 부분이었다. 얼른 손을 빼서 버튼을 눌러 집어넣었지만, 이미 엉망이 된 상태. 하지만 오히려 재현은 잘 되었다면서 아예 허리 관절까지 점검하자며 허리를 숙여 집어 들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집으려 했지만 허리관절을 제대로 시험해야 된다면서 무릎을 곧게 편 상태에서 집으라는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기체 안에서 상체를 고정시킨 채 골반만 좌우로 돌려서 잠시 풀고는 곧장 허리를 숙였다.
 “유연함에는 자신 있습니다!”
 체력 검사를 할 때에도 허리 숙이기는 20cm는 너끈히 넘기던 몸. 기계 속에서 하반신이 고장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접히듯이 푹 숙여지자 오히려 장갑이 그걸 못 버티고 도중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이거 더 안 숙여지는데요?”
 [……, 거참. 그게 한계다. 그냥 나이프 잡기나 해.]
 관절 부분의 강도는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의 몸 마냥 한계도 없이 구부러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만들게 되면 방어력에 이상이 생기고 말 테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움직임에 최대한 맞출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인데 한계에 저렇게 쉽게 도달하다니, 이얼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는 틀림없었다.
 나이프 손잡이 앞에 손을 대고 주먹을 꽉 말아 쥐자 장갑의 손이 나이프를 천천히 잡았다. 그러다가 꽉 잡게 되자, 이얼의 손도 거기에서 딱 멈추었다. 조종간이 장갑의 손에 영향을 준다고 표현한다면, 반대로 장갑의 손이 조종간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지금 손에 뭔가를 쥐고 있다는 느낌은 있나?]
 “에, 뭔가를 쥐고 있다가 보다는 손가락 사이에 뭔가가 걸린 느낌이긴 하지만, 어쨌든 주먹을 쥐는 형태는 아니네요.”
 [물건을 들게 될 때 주먹을 쥐는 형태가 되어버리면 사용 시 움직임이 어색해질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만든 거다. 덕분에 손가락과 조종간의 연결 부분이 조금 불안정하긴 하지만 실전 테스트에서도 이상이 생긴 적은 없으니 신경 안 써도 될 거고…….]
 나이프는 오른쪽 허벅지에 넣는 걸로 마무리했다. 나이프를 세워서 그 옆으로 가져다대고 허벅지 근육을 조금 움직이자 수납구가 바로 열렸다. 거기에 나이프를 집어넣고 손을 들자 다시 닫혔고.
 다음에는 라이플. 이번에는 그냥 무릎을 꿇고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집어넣고 어깨에 견착하려고 했다가 그러기에는 총기가 너무 짧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탄창이 방아쇠보다 뒤에 위치하는, 불펍 방식으로 제작된 총기여서 같은 구경의 라이플보다 길이가 짧았다.
 그래서 적당히 가슴 쪽에 안정적으로 받혀두고 지시에 맞춰 사격 지시에 맞춰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틱.
 “어라?”
 방아쇠에서 난 소리는 말 그대로 ‘틱’. 탄이 들어있지 않더라도 적어도 방아쇠가 공이를 치는 ‘탁!’하는 정도의 소리는 나야했는데, 소리가 너무 작았다.
 [너, 사격 처음 해보냐―]
 재현이,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태도를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아 말했다.
 “예?”
 [노리쇠도 안 당기고 뭐 하냐, 응?]
 “아, 아하하…….”
 노리쇠 후퇴, 전진. 탄이 있으면 한발이 장전이 되면서 동시에 방아쇠가 젖혀지며 공기를 칠 준비를 하게 되는 것. 불펍식이라 노리쇠가 밖으로 들어났다가 앞으로 철컥, 다시 들어갔다. 이번에는 방아쇠를 당기자 ‘탁!’하는 소리와 함께 제대로 발사가 되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손가락 움직임은 이상 없군. 그럼 다음은―]
 그 목소리 너머로 “점심시간 다 됐어요― 나중에 해요―”라는 지에의 목소리. 그리고 거기에 맞춰 [하여간 근본 없는 녀석은…….]이라면서도 결국 남은 건 점심 먹고 오후에 하도록 하자는 재현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장갑을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서 뒤로 쭈그려 앉고 개폐부를 열어 장갑에서 내려왔다. 지에가 가져온 물을 마시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드냐?”
 “생각보다 힘들진 않은데요? 저는 진짜 움직이는 게 엄청 힘들어서 쓰러지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말이죠.”
 “움직이는 것만으로 그렇게 힘들다면 애초에 이걸 만들 이유가 없잖아. 고급 기동은 좀 힘들지만 그냥 움직이는 건 쉬워.”
 하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고 지쳐버린다면 애초에 이런 병기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노릇. 모름지기 좋은 도구란 사용하기 편하면서 성능은 좋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좋은 도구에 해당되는 녀석이라는 말과 함께, 지에는 점심 먹으러 가자고 이얼을 재촉했다.
 “그런데, 옷 갈아입고 가야돼요? 귀찮은데.”
 “당연히 갈아입고 가야지. 그 복장으로 식당 들어가게? 나야 좋은 구경거리니까 상관없지만.”
 “……, 갈아입고 올 게요.”
 이얼은 얼른 탈의실로 달려갔다.


 오후에는 엘런과 애니도 정비부로 나왔다. 이얼이 마음속으로 정복 차림을 평가하자면, 엘런은 티셔츠 차림일 때보다도 더더욱 유약해보여 ‘좋은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 공부만 하는 수재’의 분위기만 가득했다. 반대로 애니는 정복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예의 가슴만 돋보이는 바람에 시선을 마주하고 있기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이얼이야 지금 장갑에 타고 있기에 그런 부담감을 느낄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저 재현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면 될 뿐이었다.
 오후에는 다시 한 번 걸음걸이와 무기 사용 동작에서의 관절 움직임을 체크했다. 그게 끝나자 다음에는 조종석 내부 시스템 점검. 그 중에서도 통신 시스템부터 점검이 시작되었다.
 [통신 모드를 ‘근거리 통신’으로 바꿔.]
 “예.”
 통신 전환 버튼을 세 번 눌러서 [근거리 통신]이라는 글자가 보이도록 바꿨다. 그리고 바로 “바꿨어요.”라고 말을 했지만 상대는 묵묵부답. 근거리 통신이라는 게 근처에 있는 통신설비와 바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이건 뭘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시야에 누군가가 휴대폰을 들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지에는 자신의 휴대폰을 열고 메뉴를 열어 블루투스-Bluetooth- 기능을 켜고 귀에 가져다댔다. 그리고 곧장 오른손을 들어서 좌우로 붕붕 흔들었다.
 “야, 이야기해봐!”
 근거리 통신이라는 게 전화기랑 통화할 수 있는 그런 기능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냥 되는대로 아무런 말이나 던졌다.
 “우갸갸갸 우갸갸.”
 “……, 너 말야…….”
 “아하하하하…….”
 어쨌든 일단 휴대폰과 직접 통화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볼 차례였다.
 “근거리 통신이라는 게 휴대폰이랑 연결되는 거에요?”
 “아니, 그런 것보다 좀 더 굉장하다면 굉장한 거고, 단순하다면 단순한 건데……. 혹시 블루투스라는 거 알아?”
 처음 듣는 말은 아닌데 참 생소하게 들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반에서 첨단 통신 기기 쪽으로 매우 관심이 많던 녀석이 그걸 가르쳐준 것 같긴 한데, 싶어서 잠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자 대충 개념 정도는 머리에 떠올랐다.
 “그거 아니에요, 무슨 특이한 전파를 이용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기기들끼리 연결을 시켜주는 거. 친구 녀석이 유비쿼터스 어쩌고 할 때 들은 것 같긴 한데, 그 통신은 공짜라서 더 좋다고 그랬던가? 뭐, 그런 것도 들은 것 같네요.”
 “응, 그거 맞아. 나도 솔직히 뭔지 잘 모르고 우 준위님 설명만 들었을 뿐이라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대충 그런 걸로 알고 있어. 어쨌든 그걸 이용해서 이렇게 반경 일정 범위 안에 있는 통신 기기와 직접 교신하는 방법이 그 근거리 통신이라는 거래.”
 그렇게 하면 이렇게 근거리에서 함께 작전하는 아군과 교신을 할 수 있으면서도 떨어져있는 적군에게는 전혀 도청을 당할 염려가 없다는 것 같았다. 물론 상대측에서 근접한 다음 호환 가능한 통신기기를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런 짓까지 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도 했다.
 “그 이외에는 내부 통신하고 수동 탐색이 있을 텐데, 수동 탐색은 통신을 동시에 담당하는 부조장이 맡는 거니까 몰라도 돼. 일단 통신 점검은 마칠 테니까 다시 내부 네트워크로 바꿔둬.”
 버튼을 눌러 통신 모드를 바꾸고 보고하자 곧장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단, 재현의 목소리가 아니라 엘런의 목소리였다.
 “우 준위님은 휴식하러 가셨으니, 지금부터는 내가 맡도록 하지.”
 밤을 새고서도 오전 내내 기동 시험 지휘를 하더니 기어이 뻗어버린 듯. 오전 중에 쉬던 정비부 인원들이 오후에는 나온 덕분에 재현 말고 다른 인원들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어차피 시험 관련 자료는 전부 컴퓨터에 저장되니까 인원이 바뀌는 게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잠시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엘런의 지시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는 고속 기동 테스트를 할 거다. 잠시 시간을 줄 테니까 다리라도 풀어둬.]
 잠깐 개폐부를 열고는 내려오진 않고 걸터앉아 다리를 빙빙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했다. 움직이는 동안 가장 무리가 가는 곳이. 고관절과 무릎 관절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 곳을 위주로 확실하게 다리를 돌려 풀었다.
 다시 들어가서 다리를 고정시키고 상체 위치를 잡았다. 개폐부를 닫은 후 통신 확인하고 고글 착용 후 손을 장갑에 집어넣고 다리에 힘을 줘 장갑을 일으켜 세웠다. 살짝 허리를 돌려가며 아까와 같은 느낌으로 동작할 수 있는 지 확인해보는 동안 엘런의 첫 지시가 내려왔다.
 [일단 시험장 한쪽 끝까지 걸어가. 그런 다음 반대쪽으로 돌아서면 시작하도록 하지.]
 “예.”
 이제는 평소 걸어 다니던 것과 흡사하게 걸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그래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얼른 끝가지 가서 돌아섰다. 꽤 넓은 시험장 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끝까지 가게 한 걸로 봐서는 고속 기동 테스트 시 그 속도가 엄청나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얼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양 끝을 왕복하도록. 고속 기동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도보 하에서의 고속 기동이니,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겠지?]
 즉,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죽어라고 왕복 달리기를 실시하라는 이야기. 시험장의 끝까지 이동한 건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시작점으로 삼기 좋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걸을 때에 조금 어색한 점은 있어도 평소에 걸어 다니던 것과 거의 흡사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달릴 때에도 평소와 같은 느낌으로 하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힘껏 내달려버리면 기동 미숙으로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일단은 조깅을 하듯이 천천히 시작했다.
 가볍게 발을 내딛으면서 팔을 조금씩 흔들었다. 인간형의 장갑인 탓에 움직일 때에도 당연히 인간처럼 움직여야만 하고, 그 기본에는 걸을 때 균형을 잡고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서 팔을 흔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평소에 걷고 달릴 때처럼 하면 어느 정도는 안정된 자세로 달리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저속일 때뿐이었다. 자신이 직접 달릴 때보다는 힘이 덜 들어가면서도 훨씬 빠른 속도가 가능했기 때문에 금방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컨트롤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리고 이윽고.
 “어, 어라?”
 순간 균형을 잃었다. 시험장 한가운데라 막 속도를 내려고 다리를 뻗었다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바닥을 못 짚은 것. 발목이 접질리는 듯한 자세로 옆으로 휙 기울더니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거기까지. 일어나서 우선 여기로 복귀해라.]
 꽤나 거창하게 넘어진 것 치고는 다치거나 아픈 곳은 없었다. 하지만 까불면서 뛰어다니다가 넘어졌으니 혼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시무룩한 상태로 엘런의 앞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하지만, 엘런은 잠깐 내려서 쉬라는 말만 하고는 정비부 인원들과 함께 기체 점검을 시작했다.
 비어있는 의자 중에 아무 거나 골라 앉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슬쩍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뛴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균형을 잃고 넘어져버린 것이었다.
 “어때, 한번 넘어지고 나니까 좀 멍하지?”
 애니가 접이식 의자를 들고 오더니 이얼의 옆에 앉았다. “예, 뭐…….”하면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다가, 이얼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시야를 드는 순간 뭔가 불합리하다고 느낄 만큼 커다란 그 무엇인가가 가장 처음 보였기 때문.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애니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처음 저거 입고 뛸 때는 다들 넘어지고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 걸을 때는 잘 못 느꼈겠지만 실제 사람의 움직임과 조금 다른 부분이 확실히 존재하거든. 달릴 때는 그 차이가 더 커지다보니 그렇게 되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지.”
 “그, 그런가요.”
 여전히 고개를 못 들고 있는데, 그걸 다른 의미로 해석해버린 애니가 위로의 말을 한참동안 쏟아내었다. 요약하자면 “처음에는 누구라도 그런 실수를 하니까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였지만, 그걸 이렇게나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풀어놓을 수 있다는 걸, 이얼을 깨닫고 말았다.
 “적당히 해요, 적당히. 그 정도면 위로가 아니라 슬슬 잔소리로 넘어간다고요.”
 지에가 손에 이온음료 캔 3개를 들고서 옆에 앉았다. 그걸 하나씩 건네준 다음 가장 먼저 따서 한 모금 마셨다.
 “그래도 말이지, 이얼 군이 계속 고개를 푹 숙이고 침울해하고 있는 걸.”
 “애초에, 그런 걸 가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요.”
 “에? 뭐?”
 그 이상의 말은 문답무용. 그냥 이온음료를 한 모금 더 마신 다음에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 움직임이 영 아니던데요?”
 애니의 평과는 다르게, 지에는 고속 기동 훈련의 결과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애니가 “하지만,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라고 이얼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지에는 가차 없었다.
 “넘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힘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빨리 움직이면 기동부의 균형이 틀릴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치더라도, 아까 넘어질 때는 다리의 위치가 이상했다고요. 그건 허벅지에 힘이 없어서 제대로 앞으로 박차고 나가지 못한 것뿐이에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 뒤로 이어진 지에의 이야기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기동 시에는 사실 기술만큼이나 힘이 필요하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몸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 움직일 대보다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기동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달릴 때 다리에 힘이 있을수록 빠르고 힘차게 달릴 수 있듯, 장갑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는 것. 게다가 속도가 빠른 만큼 허벅지와 허리에 힘이 없다면 대번에 균형이 틀어지면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까지였다.
 “그래서 내가 허리랑 허벅지 운동을 그렇게나 시켰는데 말야.”
 “아니, 그런 것도 어쨌든 조금은 운용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전부 다 하라고 그러면, 어느 누구라도 안 된다고요.”
 “난 되던데.”
 “그거야 너니까 그러지!”
 아무래도, 처음 기동했을 때 많이 넘어져봤을 게 분명한 애니가 바로 발끈했다. 아무래도 지에가 워낙 센스가 좋다보니 처음부터 장갑 기동을 워낙 잘한 탓에 다른 사람이 기동에 곤란해 하는 걸 이해하기 힘든 것 같았다. 게다가 지에 밑으로 처음 들어온 후임이 이얼이라 더욱 그랬고. 그 전에 지에가 본 모습은, 다들 기동에 익숙해져있어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걸로 오늘 기동 테스트가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 차분히 하다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해. 처음부터 뭐든 잘 하는 사람은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노력하면 못 할 건 없으니까 말야.” 분위기를 애니가 열심히 수습하는 동안 점검을 마친 엘런이 돌아왔다. 충분히 휴식했는지를 묻고는 곧장 다시 재착용 지시. 들어가서 대기 장소로 가자 다시 왕복 이동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일단 가볍게 근육을 긴장시킨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역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해서, 조금씩 속도를 높여갔다.
 [좀 더 빠르게! 가능한 한 빠르게!]
 하지만 엘런은 그걸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듯 바로 최고 속도로 달릴 것을 요구했다.
 “괜찮으려나…….”
 이얼은 통신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하며, 다리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몸을 거의 달리다시피 앞으로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흐트러지는 균형감. 하지만 다리에 힘을 주고 억지로 다리를 원래 방향으로 꺾다시피 움직이자 휘청거리면서도 다음 걸음을 내딛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크윽!”
 하지만 그와 동시에 허벅지 근육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근육이 파열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충분히 무리가 갔다고 느낄 수는 있을 정도의 통증. 하지만 균형이 잡혀가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그걸 꾹 참고 계속 몸을 움직였다.
 그로부터 약 5분 후. 100m를 거의 5초가량에 끊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까지 장갑을 기동시킬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엘런이 “고속 기동 테스트를 종료할 테니, 이 곳으로 복귀하도록.”이라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장갑에서 내려오자, 바로 옆으로 다가온 지에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이얼의 허벅지를 짝 소리가 나게 쳤다.
 “우왁!”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어버린 이얼. 허벅지를 축으로 골반과 무릎에서 일제히 힘이 싹 빠져버린 탓이었다. 계속 달리면서 이 쪽 근육에 힘을 줬더니 금세 근육이 지쳐버린 것. 게다가 허리까지 조금씩 욱신욱신하는 게 상태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그것 지켜보는 지에의 입술이 비스듬히 올라갔다.
 “어때? 일어서지도 못 하겠지?”
 마치 가파른 산을 서너 시간 정도 쉬지도 않고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리가 풀려서 자신도 모르게 휘청대고 마는 그런 상태. 그래도 억지로 일어나니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금방 나아지는 것 같아요.”
 “그거야 당연하지. 근육을 오랫동안 쓴 게 아니라 한꺼번에 힘을 준 거라서 잠시 근육 전체가 풀려버린 것뿐이니까. 아마 한 시간 정도 계속 달렸으면 오늘 제대로 걷지도 못 했을걸?”
 “한 시간은커녕 10분만 달려도 그냥 죽겠는데 말이죠.”
 “뭐, 아직 요령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어떻게든 힘으로 버티는 게 보이긴 하더라. 솔직히 나는 두어 번은 더 넘어질 거라 생각했거든,”
 이얼이 “에―”하며 야유를 보내자 조금 멀리 있던 애니가 “나도 몇 번 더 넘어질 거라 생각했어―”라고 하며 그의 기운을 팍 꺾어버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다들 넘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무사히 해낸 건,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잘 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인식이 번뜩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참, 참고삼아 말하는 건데.”
 장갑을 정비부 직원이 가져가고, 환복을 지시 받은 이얼이 장갑 착용 전용 수트를 정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로 향하던 이얼에게 지에가 지나가듯이 던진 말.
 “오늘 네가 한 것 같은 기동 말야.”
 “예?”
 “그거, 정비부 사람들도 전부 할 수 있을 만큼 기초적인 기동이니까 너무 들떠있진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마 네 기체 점검이 완전히 끝나면 본격적으로 기동 훈련을 할 텐데, 그 때는 지금처럼 단순히 테스트 기동이 아니라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될 테니 장난이 아닐 거니까 각오해 둬.”
 “예에…….”
 꼭 사람 기분 좋을 때 저런 식으로 말해서 축 처지게 만들어야 되는 걸까.
 솔직히 어느 정도 들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대놓고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말이 자만하지 않고 다음 훈련을 위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얼,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
 “얼른 옷 갈아입고 와. 서로 제대로 인사도 할 겸, 저녁은 장교 클럽에서 먹자고 그러더라.”
 장교 클럽. 이얼은 군 생활이 1년을 넘어가는 동안, 그리고 간부로서 생활한지도 8개월이 넘어가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곳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계급에 대해서 많이 엄한 태도를 취하던 한국군을 바탕으로 하던 8군 시절에는 말 그대로 장교들만이 가는 곳이어서 애당초 갈 수가 없었고, 여기 와서도 특별히 용무가 없으니 식당보다 훨씬 멀리 있는 그 곳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이 부대의 장교 클럽은 아무래도 원래 여기에 주둔 중인 부대가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중국어로 서비스를 하고 있을 테니 한국어와 영어만 할 줄 아는 이얼로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고.
 일단 식당이나 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어떤 곳인지 몰랐기에, 거기에서 식사를 한다는 이야기에 꽤나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얼른 수트를 벗고 간단히 몸을 씻은 다음 정복을 후다닥 착용하고 얼른 밖으로 튀어나왔다.
 “……, 무지하게 빠르네…….”
 지에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몇 분 만에 정복으로 환복하고, 한손에 장갑 수트를 든 채 튀어나왔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그런데 이 옷은 어떻게 하죠?”
 “장갑 수트? 그건 일단 네 방에 보관하고 있어. 이 쪽에 사물함 하나 더 마련해서 네 자리 만들어 준다니까. 그런 건 미리미리 준비하면 될 텐데 꼭 이렇게 닥치고서야 준비한다고 난리라니까.”
 이얼이 여기 온 지도 시간이 꽤 되었으니 장갑을 착용하는 사람에게 사물함이 필요하다는 걸 보급계도 알고 있을 테니 미리 준비해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 지에가 투덜거릴 만도 했다.
 어쨌든 그걸 자신의 방에 가져다두고, 정복을 다시 고쳐 입은 다음 나와 보니 이미 조원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런이 몸을 입구 쪽으로 돌리며 “그럼 갈까.”하고 말하고는 앞장섰다.


 그런데 막상 장교 클럽이라는 곳에 가보니 그냥 중국 요리점과 칵테일 바, 그리고 당구장 정도가 고작이라 이얼은 적잖이 실망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