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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4.19 21:30

Earthy 조회 수:1248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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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점호를 마치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장갑을 정비, 보관하는 곳이었다. 부대 건물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돌아 들어가면 있는 곳인데, 좀 허름한 게 마치 군용 차량을 보관하는 차고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았다.


“응, 맞아. 여기에 다른 부대가 들어오면 일반 차량 들어가는 차고로 쓸 거야. 우리 부대야 차량보다 장갑이 중요하니 우천 시나 다른 비상시에 대처하기 좋은 이런 장소에 장갑을 두고 정비하는 거고.”


3m 가까이 되는 인간형 기계들이 몇 대나 서있는 건 나름 장관이었다. 그 앞에서 기계와 공구들을 가지고 계측과 정비를 하고 있는 정비사들의 모습도 꽤 멋있었다.


두 사람이 멈춰선 곳은 가장 오른쪽에 있던 장갑 앞. 다른 장갑들에 비해 금속광택도 더 강하고 잔 흠집도 없는 걸로 봐서 사용한 적이 없거나 거의 하지 않은 장갑이리라. 그리고 그 장갑에는 가는 선이 몇 개나 연결되어있고, 그 선들을 따라가자 옆쪽 책상 위에 있는 데스크톱 PC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PC모니터를 보며 눈을 가늘게 든 채 생각에 잠겨있는 작은 체구에, 백발 초로의 남성까지 시선이 닿았다.


그 사람에게 지에가 다가갔다.


“반장 님, 여기 신참 데려왔어요―!”


“으응―.”


무성의한 답변.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자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곧 장갑 여기저기에서 모터 구동음이 들리더니 꿈틀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강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에야, 이거 안 이상하냐?”


여전히 모니터를 노려보며 툭, 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이얼은 갑작스런 질문에 깜짝 놀랐지만 지에는 익숙한지 잠시 고개만 갸웃거리고는 바로 대답했다.


“괜찮은 거 같은데요? 오히려 내 거보다 잘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거 말고. 이게 저격용 아니냐. 저격총이 그 토우처럼 등 쪽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좀 이상한 거 같지 않냐는 거지. 어차피 방아쇠 없이 기체 자체에 견착이 되는 형식이라 어깨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생각보다 복잡하네.”


“글쎄요. 저야 그런 건 직접 타봐야 알 수 있으니까 말이죠. 장갑 착용만 하는 녀석이 눈으로 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전부 알 수 있다면 굳이 정비부가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고도 한 몇 십초 정도 더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그 남자는, 갑자기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며 허리를 폈다. 표정에는 짜증이 한가득인 게 누가 보더라도 기분이 매우 나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 이얼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지에가 쓴웃음을 지으며 남성에게 말했다.


“갑자기 그러니까 이 녀석이 겁먹었잖아요. 그 버릇은 진짜 어디 못 버려요?”


“짜증나는데 어쩌란 말이냐―! 아, 진짜 미치겠네―!”


“어차피 훈련으로라도 써먹으려면 1주일은 있어야 되잖아요. 부품도 나중에 올 텐데, 일단 잘 닦아만 놔요.”


그러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이얼의 등을 툭 떠밀었다.


“이 녀석이 이번에 온 신참. 아직 적응 못 한 건지 영 어벙해요.”


그 말에, 그제야 이얼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남자. 여전히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번에도 툭, 던지듯이 물었다.


“이름이 뭐냐?”


“예, 예! 한이얼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런 질문에, 어쨌든 상대방이 상관은 상관인지라 자세를 바로 잡으며 크게 대답했다. 그 말에 남자는 더더욱 짜증이 가득 차올라있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직 귀 안 멀었다―.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냐, 시끄럽게.”


“죄,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에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거의 숨이 넘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쾌하게. 주변에 있던 다른 정비사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바람에 이얼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벙하다고 하긴 했지만, 어떻게 이 정도일 수가 있냐, 정말―!”


“아니, 그게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니잖아요.”


여전히 웃음. 그리고 여전히 힐끔힐끔. 결국에는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서야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뭘 쳐다보는 거야! 네 놈들 할 일이나 해! 그리고 지에 너도 그만 좀 웃어! 이게 그렇게 웃을 일이냐!”


잠시 후에야, 이얼은 겨우 상대의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정비 반장. 4종 준위-Chief Warrant Officer 4, CW4-고 이름은 우.”


“우재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개할 때 성 이름 같이 부른다고 몇 번을 말해야 되냐.”


“뭐, 어때요. 재현이라고 안 하는 걸로도 다행이죠.”


“이래서 밑도 근본도 없는 녀석은 말이지…….”


이얼이 슬쩍 지에에게 다가와 재현에게는 안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준위면, 경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저 분 한국 분이에요?”


“경례야 원래 내가 근본이 없는 출신이라 안 해도 별말 없고, 한국 사람은 아닌 걸 아마.”


그 때, 재현이 “어이, 신참. 잠깐 와봐라.”라며 이얼을 장갑 바로 앞으로 불렀다. 그래서 얼른 갔더니 이상한 걸 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로 시킨 건, 자신의 손바닥을 향한 정권 지르기. 딱 열 번만 힘껏 쳐보라는 말에, 잠시 주춤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자세를 잡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재현의 손바닥을 향해 힘껏, 오른 주먹을 뻗었다.


퍽―!


그러는 동안, 재현은 대화를 걸어왔다. 그것도 한국어로.


“너, 남조선 아이지?”


명백하게 북쪽에서 사용하는 억양. 국가 개념이 사라지고 모두 통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어의 통일이 십여 년 만에 되는 건 아니라 남과 북의 억양 차이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다시 한 번 정권. 퍽―!


“북한 분이셨습니까?”


“음, 의주 사람이라. 너는 어덴가?”


“수원입니다. 경기도요.”


“말투가 거기 같긴 하네. 흠,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


“아, 알겠습니다.”


다시 퍽! 또 다시 퍽! 나름대로 운동을 꽤 많이 해온 이얼이 있는 힘껏 치는데도 불구하고, 재현의 굳은살 박힌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아니 오히려 얇다면 얇다고 할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은 장난이 아닌 듯 했다.


그렇게 열 번을 채우자, 이번에는 기마자세를 하고 허벅지에 최대한 힘을 주도록 했다. 그런 다음 손으로 몇 번 주물러보더니 탁 치면서 그만 됐다며 편히 서도록 했다.


“쓸 만하네. 몇 번 몰아보면 금방 써먹을 만 하갔어.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 이구만. 저기 있는 근본도 없는 녀석보단 훨씬 나아.”


“에, 가, 감사합니다.”


그러는 동안 지에는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정비부가 아니기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래도 그동안 직접 장갑을 운용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된 부분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아직까지 중요한 부품이 도착하지 않아서 기본 형태로만 점검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화면상에는 모든 추가 사항이 완전히 탑재된 것으로 가정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장갑에 달린 토우와는 확연하게 다른 형태로 탑재, 장착이 되는 새로운 장비. 그러고 보니 문득, 재미있을 만한 게 생각이 났다.


그래서, 재현과 이얼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지에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슬쩍 끼어들었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 하고 있는 거에요?”


“별 이야기 안 했어. 볼일 끝났으면 빨리 사라져.”


재현은 아무래도 지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지금 대답도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한다는 듯 툭 던지는 걸 보면서, 이얼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지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이거 진짜 조절이 안 되면, 이 녀석을 한번 태워보면 어때요? 직접 움직여 보는 게 저거만 계속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재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거 장착 허가 아직 안 났다―. 허가 있었으면 진작 내가 타고 직접 시험하지, 왜 이러고 있겠냐.”


“에이, 잠깐 탔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허, 또 근본 없는 티를……. 군인의 생명은 명령이란 말이다. 아무리 용병 출신이라곤 해도 명령마저 무시하는 그딴 말이나 하고…….”


“하여간 융통성이라곤…….”


거기서 끝.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휙휙 내저으며, 재현은 다시 시선을 모니터로 향했다. 그러면서 곧장 다시 인상이 잔뜩 일그러지는 게 곧 폭발할 것 같았기에 두 사람은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인사는 그냥 “그럼 가볼게요.”와 “용무 마치고 가보겠습니다.” 뿐.


“그런데 저게 제가 탈 기체에요?”


“내가 그것도 말 안 해줬던가?”


“예. 그냥 갑자기 데리고 갔었잖아요.”


“그랬나…….”


지에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이고는 히죽 웃어보였다. 그리고 답변,


“저게 네가 장착할 장갑 맞아. 타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장착이라고 해야 된다니까 기억해 둬. 안 그러면 위에서 뭐라고 그런다네.”


“어차피 그게 그건데……, 진짜 군대란 조직은 융통성이 없긴 없네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어? 어쨌든 우리야 일개 군인이니까 그걸 따를 수밖에 없으니, 혹시나 실수 안 하게 주의해.”


“예.”


 


현재 시각은 10시 30분.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많이 이른 시각이라, 지에는 이얼을 데리고 곧장 사격장으로 향했다. 물론 그 전에 사격장 사용을 허가받기 위해 작전부에 전화.


[장갑 중대 작전부입니다.]


“3소대 린든조 첸지에 하사입니다. 드뢰넨 치프 오퍼레이터 바꿔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치프 오퍼레이터라는 직책이 얼마나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사격장 이용까지 관여를 할 수 있는 걸까. 이얼의 경험상 ‘오퍼레이터’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무직이거나 통신 담당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일선 부대에는 애초에 오퍼레이터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지만.


마침 자리에 있었는지 잠시 수화기를 전환할 때 나는 비프음 멜로디가 나더니 곧장 ‘달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답변이 들려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허가가 필요한 게 있어서. 사격장 중에 장거리 타깃 있는 곳 있지. 그 제일 먼 타깃이 750미터였던가, 그랬던 곳.”


[있기야 있지. 왜, 이얼 군 스나이핑 사격이라도 해보게?]


“응.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한번은 봐야할 것 같아서. 조장 님 오신 다음에 해도 될 것 같긴 한데, 어차피 시간도 비니까 지금 하면서 카메라로 찍어놓고 그걸 보여줘도 될 것 같더라고.”


[음,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봐.]


다른 곳에 통화를 하는 듯, 다시 멜로디가 들렸다. 조금 길어지는 것 같아도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길 40여초. 멜로디가 끊기며 리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용하는 사람 없으니 언제든지 상관없다고 그러네. 그래도 관리하는 사람들 점심은 먹어야 되니까 식사 시간은 피해서 이용 바란단다.]


“OK. 고마워―.”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한테 촬영 도와달라고 하면 알아서 다 해줄 거야. 괜히 이것저것 건드리지 말고 사격만 하고 와. 알겠지?]


“예, 예.”


전화를 끊을 때 즈음에는 이미 사격장 바로 앞에 도착해있었다.


길은 두 갈래. 산을 끼고 밑으로 가는 쪽은 300m정도 길이의 일반 사격장. 그리고 위쪽으로 가면 산 위에서 밑을 향해 사격을 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장거리 사격장이었다. 당연히 장거리 사격장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에 막 위로 걸음을 옮기던 지에에게 이얼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총은 어디 있어요?”


“에?”


사격을 하려면 사격장이나 탄환도 필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격을 할 총기. 사격 솜씨를 보자면서 총기를 안 가져오면 그거야말로 넌센스였다. 게다가 총기도 보통 소총이 아니라 저격용 총기가 필요했다.


그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해결되었다.


“여기 사격 시험용 총기류가 따로 있습니다.”


사격장을 관리하는 병사가 탄약을 옮기기 위해 길을 내려오던 중에 우연히 두 사람을 본 게 다행이었다. 이미 사격장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은 건지, 안내해주겠다며 말을 걸더니 결국 사격장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총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냥 소총 말고 스코프가 달린 그런 것도 있는지 물어봐요.”


“안 그래도 물어볼 참이었어.”


문제는 이 병사가 두 사람과 같은 부대 사람이 아니라, 원래 이 곳 지역에 있는 11군 소속의 병사라 할 줄 아는 언어가 중국어 밖에 없었던 것. 이얼은 단기사병이 될 때, 영어를 할 줄 알면 영어가 필요한 보직에 뽑히기 쉽다는 걸 알고 미리부터 공부를 해두어서 할 수 있었지 보통은 군인이라도 영어가 능숙한 건 아니었다.


결국 대화는 중국어, 그 중에서도 상하이 인근에서 사용하는 상하이어가 가능한 지에가 전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에도 어디까지나 후난성 사람인데다가, 그 중에서도 시골에 있었기 때문에 상하이어가 그리 익숙하지는 않아서 조금 더듬거릴 수밖에 없긴 했지만.


“그냥 소총 말고, 에― 그 망원경? 그런 거 달린 거 있어요?”


“스나이퍼 라이플도 있습니다. 한 종류 밖에 없긴 하지만. 일단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이얼을 본다는 입장. 총기가 보관되어있는 창고로, 담당하는 다른 병사와 함께 들어갔다. 상당수의 권총과 소총들이 마치 전시라도 하듯이 죽 늘어서있었는데, 지역이 지역인지라 공산권 국가에서 사용하던 무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있는 두 정의 소총. 둘 다 스코프가 달려있고 구경도 다른 소총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커 보이는 게 전형적인 스나이퍼 라이플이었다.


“하나 밖에 없다더니 두개나 있잖아. 아까 그 사람은 여기 담당이 아니라 잘 몰랐던 건가?”


그 말에 대답한 것은 두 사람을 안내한, 총기 창고 담당 병사. 짧게나마 영어를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스나이퍼 라이플은 틀림없이 하나뿐입니다. 둘 중에 왼쪽의 건 스코프가 달려있지만 저격용으로 구별하지 않고 장거리 분대 지원 소총으로 구별합니다.”


“아, 드라구노프! 그건 실제로 스나이퍼가 아니라 분대의 샤프슈터-Sharpshooter-들이 사용하는 거라서 저격용으로 안 구별한다더니……. 그럼 오른쪽에 이건 SV-98인가요?”


두 총을 번갈아보고 비교하며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이얼. 그 병사가 짧게 “예, 맞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당장 SV-98을 집어 들었다.


“드라구노프는 사격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아예 처음 보거든요. 이걸로 할 게요. 안 그래도 반자동 소총보다는 볼트액션을 더 좋아해요.”


“아, 그, 그래…….”


스나이퍼 라이플을 앞에 두자, 농담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바뀌었다. 지에는 어색한 미소를 띤 채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SV-98은 7.62mm탄을 사용하는데, 러시아식-7.62×54mm-뿐만이 아니라 나토식-7.62×51mm-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래도 제조 시에 고려했을 탄은 러시아식일 테고, 마침 이 사격장에 있는 7.62mm탄도 러시아식뿐이었다.


잠시 후, 우선 영점을 맞추기 위해 장거리 사격장 한편에 있는 30m 영점 사격장에서 사격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가장 처음 한 일은 안전을 위해 장구를 착용하는 일. 방탄조끼를 걸치고 머리에 방탄헬멧도 썼다. 이것도 사이즈 별로 사격장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영점에 쓸 탄은 총 10발로 정하고 탄창을 꽉 채워 삽입했다. 혹시라도 사격이 되는 일이 없도록 조종간은 확실히 안전으로 바꿔두고 노리쇠를 당겼다가 풀어 한 발을 장전시켰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찬이 들어가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그 다음은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주변에 사격 사실을 알리는 일. 사격장 스피커와 연결되어있는 마이크를 잡은 병사가 북경어와 상하이어로 한 번씩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지금부터 사격장에서 사격이 실시되겠습니다. 주변에 계신 민간인과 군인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면서 서둘러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사격이 실시되니 주변에 계신 민간인과 군인은 자신의 위치를 알리면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방송을 한다고 해도 민간인 통제구역인 사격장 주변, 특히 사선상에 사람이 있을 리는 없으니 대충 확인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사격 시작하셔도 됩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병사가 통제실에서 내려오며 외쳤다. 이미 이얼은 총 다리를 내려 확실하게 고정시키고 엎드려서 사격을 준비 중. 지에는 사격하는 모습을 볼 겸 몇 걸음 뒤로 나와서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두발씩 세발씩 두 번, 두발 두 번 해서 맞출 게요.”


“뭐, 편한 대로 해.”


어깨 견착을 확인하고, 확실히 총을 고정시킨 다음.


“후우―.”


들이마신 숨을 적당히 내뱉었다. 그리고 눈을 스코프에 대고 표적의 가운데보다 조금 위쪽을 조준했다. 조금씩 흔들리는 걸 조정해가며 집게손가락으로 방아쇠를 천천히 당겨서 최대한 무의식중에 사격이 되도록 했다.


영점사격을 하는 방법은 이렇다. 최대한 사격의 정자세를 취한 상태로 어느 한 점―영점 사격용 표적의 경우 가운데에 조준을 위한 표시가 있어 그걸 이용한다―을 향해 일정 횟수 사격을 해서 탄착군을 확인하고 어긋나 있을 경우 조준점을 수정한다. 그런 식으로 수차례 반복해서 확실하게 목표로 한 점 주위의 일정 범위에 정확하게 사격이 되면 그걸로 마무리.


그렇다보니 당연히 사격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몇 번씩 같은 절차를 반복해야만 했다.


타앙―!


주변이 산이라 아무래도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미 큰 소리가 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야 몰라도, 모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들으면 깜짝 놀랄 만큼 컸다.


타앙―! 타앙―!


남은 두 발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런데.


“어…….”


지에는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그것도 이얼이 총을 안전하게 두고 표적을 확인한 다음, 돌아와서 조준점을 수정할 때까지. 그러다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너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그게 뭐가 제대로 하는 거야! 애초에 조준을 하긴 한 거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얼의 사격은 첫발 이후 단 1초 정도 만에 끝이 나버렸다. 그러니까, 남들이라면 사격 이후 반동을 받아 조준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그걸 수정 안 하고 곧장 당겨버리는 셈이었다.


“의심스러우면 가서 직접 확인해보시면 되잖아요.”


“음―.”


얼른 달려가서 확인했다.


표적의 오른쪽 위에 제대로 모여 있는 세 개의 착탄 자국. 저격소총이 아니라 반동이 적은 소구경 총기로 일일이 조준하고 쏴도 이렇게 모일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범위 이내에, 착탄 자국끼리 조금씩 겹쳐져있었다.


“확인하셨으면 빨리 들어오세요! 곧바로 다음 사격 할 거니까!”


“아, 으, 응. 그래야지.”


일단 다시 이얼의 뒤에 가서 섰다. 하지만 아까 전과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지금 지에가 중점적으로 보는 곳은, 바로 스코프 부분. 조준 여부를 파악하는 데에는 눈 부분이 총에 항상 같은 부분에 닿아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조준이 흐트러진다면, 눈과 스코프 혹은 조준자의 거리가 계속 달라질 테니까.


조종간을 다시 사격으로 바꾸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첫 번째 사격을 위해 다시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타앙―!


첫 번째 사격 이후, 당연히 총기는 반동으로 크게 움직이고 조준선이 흐트러진다. 이 때, 이것을 막기 위해 이얼이 쓰는 방법은 간단했다.


반동이 되는 만큼만 정확하게 다시 움직여서 조준을 바로 잡는 것. 사격할 때 총기를 0.1mm보다 작은 단위로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었다.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최초 사격 시의 자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총기가 움직여서 그 자세가 흐트러지는 순간, 얼른 원래의 자세를 취하며 총기를 강제로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져 세 번의 사격을 1초 이내에 해낼 만큼 빨랐고, 지에는 눈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단지 알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애초에 사격 후 반동이 없었던 듯 조준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영점사격은 단 5분 만에 끝이 났다.


“너, 굉장하잖아!”


“그런가요?”


가장 중요한 건, 막상 이얼은 자신이 그런 식으로 엄청난 속도의 조준을 해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냥 빨리 당겨도 정확하게 들어가니까 그렇게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일 뿐.


장거리 사격을 시작하려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11시 30분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슬슬 점심을 먹으러 가야할 시간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사격을 끝내고 가도 될 것 같다는 지에의 의견과, 점심 먹고 나서 하자는 이얼의 의견이 부딪혀 어떻게 할 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사격장을 관리하는 병사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사격이 길어져서 점심시간에 못 맞출까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보고는 결국, 그 병사를 위해서라도 점심시간 끝나고 와서 장거리 사격을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막상 장거리 사격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점심시간. 식당에 들어가다가 마침 마주친 알론조가 “두 사람에게 명령이 있을 거니까 점심 먹고 잠깐 대기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명령은 바로 ‘이얼의 장갑 기동 훈련 참관’이었다.


1소대 롯소조가 오후에 장갑 기동훈련을 하는데, 신참인 이얼이 아직 기동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한번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작전부에서 특별히 내린 지시였다. 안 그래도 그 때 이후로, 그 장갑이 움직이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얼은 그 지시를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아쉽네. 사격은 아무래도 조장님 오시면 해야겠다.”


반대로 영점 사격을 보고는, ‘꼭 이얼의 실제 장거리 사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지에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장거리 사격을 위해서 작전부 지시를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롯소조의 기동 훈련 장소는 부대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 어디까지나 기동 훈련이기 때문에 작전을 자서 연습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동작을 연습하거나 간단한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만 할 계획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장갑을 한 번도 움직여본 적이 없는 이얼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작전부의, 정확하게는 중대장의 생각이었다.


거리가 있다 보니 이동을 위해 차를 타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고 있는 지프를 지에가 운전해서 가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그야말로 뜯어말린 끝에 보급부 행정관인 병장 한명이 운전을 맡게 되었다.


부대 뒤쪽 문으로 나와 느긋이 언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자동차와는 명백히 다른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이얼이 뒤를 돌아보니, 장갑 네 대가 자세를 잔뜩 숙인 채 따라오고 있었다.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차량과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걸 보고 지에에게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물어보았다.


“다리 쪽에 구동용 바퀴가 달려있어. 평소에는 종아리 부분의 여유 공간에 수납해두고 있다가 장거리 이동을 하게 되면 그걸 사용하는 거지.”


“그러면 연료가 더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내장 배터리를 같이 사용해서 구동 시간을 늘린다고 한 것 같은데.”


“그건, 자동차와 같다고 보면 돼. 바퀴 구동 부분에 작은 축전지가 있어서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해놓는 거니까 말야.”


“흐음―.”


“저렇게 움직이면 포장도로에서는 최고 시속 80km 정도까지는 충분히 가능해. 물론 안전을 위해서 저렇게 허리를 잔뜩 숙여야 되니 오래 달릴 건 못 되지만. 뭐, 그래도 바이크 탄다고 생각하고 자세 잡으면 그리 힘들지도 않더라.”


곧 나무가 거의 없는 붉은색 언덕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덕 여기저기에 콘크리트 구조물과 사람 크기의 표적이 있는 걸로 봐서는 장갑뿐만이 아니라 다른 전술 훈련도 병행하는 곳처럼 보였다.


언덕 밑에 있는 공터에 차량을 주차하자, 그 뒤로 장갑들도 나란히 세워졌다. 우선은 훈련 전 브리핑을 위해 잠시 내려서 모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프를 운전해 온 병장이 작전부에게서 받은 훈련 계획서를 롯소조 네 명에게 갖다 주고, 조원들이 브리핑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세워져있는 장갑을 보고 있었다.


“내부는 제대로 본 적 없지?”


“예.”


대답을 하면서도, 이얼은 최대한 안을 들여다보려고 뒤꿈치를 든 채 목을 쭉 빼고 있었다.


하반신 부분은 거의 몸에 밀착되는 형태였다. 몸동작을 크게 할 때 하반신이 힘을 못 받고 떠있으면 그만큼 허리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으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와는 반대로 상체 부분은 어느 정도 공간이 있었는데 이것은 디스플레이와 장비 조작을 위한 것이었다.


“저기 위쪽에 고글 같은 거 있지? 저게 실제 장갑을 착용했을 때 눈 역할을 하게 되는 거야. 저걸 쓰고 얼굴을 움직이면 장갑 얼굴 부분이 따라서 움직이면서 그 전면부에 있는 카메라의 화상을 고글 안에 있는 디스플레이로 보내는 거지. 거의 눈으로 보는 거랑 비슷하게 인식되니까 위화감은 없을 거야.”


아울러 안면 부위에는 메인이 되는 카메라뿐만이 아니라, 턱 쪽에서 하단부와 머리 뒤쪽에도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장갑의 안면 부분이 움직이는 건은 구동 과절로 되어있었지만, 내부 방어를 우선시 하다 보니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있었다. 그래서 착용자가 밑을 내려다볼 때는 턱에 있는 카메라로, 뒤를 돌아볼 때는 안면 뒤쪽에 있는 카메라로 자동 전환이 되는 것.


아울러 고글을 벗더라도 밖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기 안쪽에 투명한 판들은 세 개의 카메라에서 비추는 화면을 연결해서 볼 수 있게 되어있어. 혹시나 고글이 고장 나거나, 아니면 움직이지 않고 주변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걸 쓰는 거지.”


“판이 쭉 붙어있네요.”


“응. 안면에 붙어있는 카메라들이 실제로는 시야각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촬영할 수 있거든. 그래서 이 디스플레이에는 360도 전방위를 볼 수 있도록 되어있어. 여기 뚜껑에도 저거랑 이어지는 디스플레이 판이 달려있는 거 보이지? 착용한 상태에서 눈높이에 맞춰 디스플레이가 전방위로 달려있는 거야.”


다음은 팔 부분. 안은 의외로 심플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장갑 형태로 되어있는 컨트롤러와 오른손 밑에 있는 버튼 몇 개가 전부였던 것. 장갑 형태의 컨트롤러라고 해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였기 때문에 버튼을 누를 때 손가락을 뺐다가 다시 끼워 넣는 게 어렵지 않아보였다. 천 같이 흐물흐물한 재질이 아니라서 손가락을 뺄 때 딸려오거나 구겨져서 다시 착용하기 어렵게 될 일도 없었고.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기체의 버튼은 단 두 개뿐이었는데, 지에의 설명에 의하면 착용자의 보직에 따라 네 개나 다섯 개까지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현재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조장인 롯소의 기체이기 때문에 통신전환용 버튼과 디스플레이 모드 전환용 버튼뿐이라고.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단순히 전방 주시뿐만이 아니라 야시 기능이라던가, 내부에 있는 콘솔과 연동해서 레이더나 전송 자료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거든. 전송 받은 자료에 따라서는 시야에 지도를 겹쳐서 보는 방법도 있어. 가령 목표물을 지형에 표시해서 전송해주면, 실제 보이는 지형에 그 목표물의 위치가 바로 표시가 되는 거지.”


“그런 거라면 신형 전자 스코프에도 있어요. 풍속과 습도 같은 걸 계산해서 수정치를 직접 표시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쓰지만요.”


“여하튼 현대 기술의 승리라는 거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건 생각도 못 했다고 누가 엄청 불평하던데 말야.”


“그런 거에 불평하는 구세대 사람이라 참 미안하네.”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것은, 브리핑을 마치고 이제 장갑을 착용하려는 알론조였다. 약간 뒤틀린 미소를 지은 채, 장갑에 올라타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나름 적응 잘 했잖아, 안 그래?”


“뭐, 그렇기야 하죠.”


다리를 끼워 넣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다리가 꽉 조일 듯 공간이 거의 없어서 들어가는 게 힘들진 않을까 했는데, 개폐 부분 밑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공기가 빠지는 ‘쉬익―’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넓어졌다. 들어간 다음 다시 누르자 또 같은 소리가 나더니 꼭 조여들었고.


“이거 원래는 개폐부 닫고 하는 건데, 이번엔 열어놓고 할 테니 잘 봐둬.”


“아, 예.”


“자 먼저, 고글 착용부터 하고―.”


고글을 쓰고, 거기에 달려있는 마이크를 구부려 입 앞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통신을 전환하고는 컨트롤러에 손가락을 끼고 구부렸다가 펴면서 상태를 점검했다. 장갑에서 가장 관절이 많은 부분이라 가동 시마다 테스트를 해줘야한다.


[아아, 통신 상태 점검. 모드는 외부 송신형. 잘 들리지?]


“우왁.”


“너무 잘 들리네요!”


얼른 귀를 막는 이얼과, 반대로 소리를 버럭 지르는 지에. 일부러 밖에 들리도록 통신을 외부 송신이 가능하게 해놓고는, 하필이면 스피커 앞에 있던 두 사람이 들으라는 듯 있는 힘껏 말해버린 것이었다.


두 사람이 얼른 거기에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이걸 열어놓은 상태로 움직여도 되지만, 그건 비상시에만 허가 되는 거라서 일단 닫도록 하지. 이걸 열어놓은 채 움직이면 무게 중심이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장갑에 무리가 간다니까 말야.]


개폐부에 있는 다른 버튼을 누르자, 유압으로 움직이는 건지 작게 ‘사악―’하는 소리가 나며 부드럽게 닫혔다. 개폐부는 수동으로 개폐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역시 장갑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비상시에만 허가 된다고 했다.


드디어 기동을 시작했다. 우선 각각의 관절 부위를 점검하기 위한 동작부터. 양팔과 어깨를 구부리고 돌려본 다음, 다리를 한쪽씩 들었다가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관절이 있는 허리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잔뜩 앞으로 숙였다가 반대로 등 쪽으로 쭉 폈다. 그 모습이 무슨 체조를 하는 것 같아, 이얼은 가볍게 웃었다.


[자, 준비됐으면 시작하도록 하지. 그리고 오늘은 참관인이 있으니 다들 통신을 외부로 돌리고 수신에 신경 써주기 바란다. 알겠나?]


[예!]


짧고 굵은 대답. 롯소조의 조원 중에는 여성도 있었는데, 따로 목소리를 구별해내지 못할 정도로 낮고 두꺼운 저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근육질에 터프하게 생긴 여성분이라 그런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제일 첫 기동 훈련은 걷는 거하고 달리는 걸 거야. 숙련자는 생략하는 과정이지만, 오늘은 참관이 있으니 빼먹지 않고 전부 하겠지.”


“걷는 거랑 달리는 거에도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가요? 처음 봤을 때 그건 진짜 엄청 많이 봤는데, 별로 특별한 건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맞아, 별로 특별한 건 없어. 솔직히 말해서는, 착용해보지 않는 이상 동작하는 걸 아무리 본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될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 나는. 그래도 구동 한계라든지 이런 부분을 보는 건 도움이 될 거야. 자신이 실제로 착용하게 됐을 때 무리하지 않으려면 그런 걸 미리 봐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알론조의 장갑이 아주 자연스럽게 걸음걸이를 시작했다. 곧 이어 다른 기체도 그 뒤를 따랐다. 네 대 모두 조금 육중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사람이 걸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대형을 짜고 고속 기동을 실시하겠다. 우선은 일렬종대, 신속 기동!]


[예!]


알론조가 아닌 다른 장갑이 먼저 앞장을 섰다. 다음이 알론조, 그 뒤로 나머지 두 대가 나란히 붙었다. 그리고 바로 몸을 살짝 숙인다 싶더니, 말 그대로 튀어나갔다.


“저 때 진동이 조금 클 거야. 네 기록을 봐서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기록이요?”


“여기 오기 전에 병원에서 여러 가지 테스트 했잖아. 진동 적응도를 보니까 전 대원들 중에서도 상위권이니까 고속 기동 할 때도 멀미가 나거나 할 일은 없을 거야.”


“아아…….”


그 때 검사가 이것을 탈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검사였다는 걸 이얼은 그제야 깨달았다. 하긴 그 때 지에가 찾아와서는 검사 과정을 보다가 이얼의 결과가 생각보다 좋게 나왔다며 놀라기도 했었다.


경사가 진 언덕을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알론조의 지시에 따라 잠시 대기 후, 이번에는 등 뒤에서 전에 보았던 박스형 라이플을 꺼내들고는 서로 전후좌우 네 방향은 나눠 맡은 채 사주경계를 하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경계 자세이다 보니 아무래도 저속기동이라 올라갈 때보다는 훨씬 시간이 걸렸다.


“저렇게 움직이는 걸 보니, 진짜 사람 같은데요? 발을 땅에서 거의 안 떼고 걸으면서도 풀에 스치는 소리를 없앨 수 있을 정도의 기동이 가능할 줄은 몰랐네요.”


“저 정도 움직임을 보이려면 적어도 2개월 이상 바짝 훈련해야 돼. 그래야 평지에서 저소음으로 움직이는 것 정도는 겨우 할 수 있어. 그것도 장갑을 착용하고 움직이는데 다른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아마 너라면 그리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노력하면 빨리 할 수 있겠지.”


언덕을 다시 내려온 다음에는 횡대로 서더니 곧장 다음 지시가 내려졌다.


[개별 기동. 목표는 정상부. 서로의 동선이 얽히지 않도록 주의하라. 실시!]


[실시!]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개별 기동이란 게, 전방에 적이 있을 때, 그 대응을 일시적으로 흐트러뜨림과 동시에 반격을 실시하는 방법이라 일직선으로 곧장 뛰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정상부에서 모이자 곧장 무릎을 꿇고 사주경계. 다시 지시에 따라 산개하며 언덕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몸을 날리며 최대한 낮은 자세로 전방 경계를 실시했다. 그야말로 보통 각개전투에서 몸을 엄폐하며 사격을 실시하는 모습 그 자체. 이얼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장갑을 입고 있다고 해도 사람과 똑같이 움직일 수 있네요. 무게가 있을 테니 묵직한 느낌으로 움직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네요.”


“물론 그러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이 괜히 1소대가 아니야. 우리 중에서는 가장 먼저 장갑을 접하고 지금까지 훈련해 왔다는 거고, 그건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 중에서 가장 베테랑들이라는 이야기잖아. 착용해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이런 기동을 하는 게 쉬운 건 아닐 거야. 처음에는 아마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걸?”


“그래도, 빨리 해보고 싶어지네요.”


언덕을 다시 내려온 다음부터는 각각 장갑의 기동 훈련이었다. 우선 알론조가―


[지금 부터는 각자 기동훈련을 실시하겠다. 기동훈련을 하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휴식을 취하면서 훈련하는 인원의 움직임을 체크해줄 수 있도록.]


이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가장 먼저 라이플을 꺼내들고 언덕으로 뛰어올라갔다.


조장은 기본 장비만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동 훈련이라고 해도 방금 전까지 하던 팀 훈련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기동 중 엄폐를 하고 사격을 한다든가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 정도.


자신의 기동훈련을 마친 알론조가 장갑에서 내려와서 허리를 푸는 동안 다음 인원이 장갑을 착용하고 바로 언덕으로 올라갔다.


“부조장은 컴뱃 나이프 두개를 가지고 근접전을 하는 훈련을 하게 될 거야. 더블 나이프 파이트도 잘 봐두도록 해.”


어느새 두 사람에게로 다가온 알론조의 조언. 실제로, 20mm 중기관포를 이용한 짧은 사격 자세 훈련에 이어, 양쪽 허벅지에서 두개의 컴뱃 나이프를 꺼내서 화려한 검무를 시작했다. 부조장은 예의 그 여자 조원. 겉모습으로는 왠지 중화기를 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화려하면서도 효율적인 나이프 파이팅을 보여주기에 이얼은 약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몸을 숙이고 근접하는 걸로 상대의 대응 사격을 무효화 시키고, 왼손에 든 나이프로 상대의 손 위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찌른 다음, 곧장 목을 노렸다. 그 공격이 막혔다는 가정 하에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속 동작. 결국 상대를 제압하고 확실하게 목을 찌르는 것으로 나이프 파이팅은 끝. 하지만.


“그런데 저건 대인용(對人用) 아닌가요? 장갑은 저런 식의 훈련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물론 저건 어디까지나 장갑 기동 한계 테스트를 겸하는 개인 훈련일 뿐이야. 자신이 실제로 자신 있는 동작은 장갑을 입은 상태에서도 해보는 거지. 가령 지에라면 관절기 훈련을 한다던가, 그런 거지.”


“헤에…….”


‘지에 씨의 특기는 관절기로구나.’ 이얼은 이런 내용을 별 생각 없이 그냥 머리 한쪽 구석에 입력해두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장갑을 착용한 상태에서의 나이프 파이팅을 시작하니 잘 봐두도록 해. 처음에는 우선 일반 병사를 상대하는 방법이로군.”


알론조의 말대로, 나이프가 노리는 위치는 장갑의 허리보다 조금 밑 부분, 사람의 키라면 가슴에서 머리 정도에 해당되는 부분들이었다.


어떤 동작이던 제일 처음에는 나이프보다도 장갑 자체로 공격을 하는 게 우선인 듯 했다. 가령 로우킥을 이용해서 상대를 우선 제압한 다음 그 회전을 그대로 이용해서 반대쪽을 베고, 마지막으로 상대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위치에 내리 찍었다. 그러면서도 혹여 땅에 박힌다던지 하는 문제로 다음 동작이 방해 받지 않도록 끊어서 찍는 형태.


경사 위의 적을 공격할 때에도 우선은 나이프보다 장갑을 먼저 이용했다. 몸을 위로 던지면서 적군의 중심부에 뛰어들었던 것. 그 다음은 양손에 있는 나이프를 가운데서 좌우로 펼치듯 휘둘러 적을 쳐내고 다시 체술과 나이프를 섞어서 사용해 적을 제압했다.


마지막에는 도주하는 적을 향해 허리춤에 있는 라이플을 빼서 조준 사격으로 마무리.


“역시 굉장하네. 진짜 저 정도 나이프 달인을 실전에서 근거리 조우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것 같지 않아?”


지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이얼도 그 말에 매우 동감한다는 뜻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대답이 없었던 건, 화려한 전투 모습에 넋이 나가있었기 때문.


“다음은 대병기(大兵器) 전투를 상정한 기동 훈련이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일 거다.”


이제는 아예 바닥에 반쯤 드러누운 상태로 설명을 하는 알론조. 지에의 미묘하게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여유롭게 휘파람까지 불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얼은 여전히 전방에 집중 중. 방금 전과는 다르게 장갑 공격 없이 회피 동작 다음에 곧장 나이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 그 궤도를 따라 병기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상당한 높이로 점프를 한 다음 횡으로 휘두르고 나이프를 놓으면서 내려온 다음, 옆으로 떨어지는 나이프를 낚아채는 동작. 실제로는 나이프가 떨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목표에 박힌 상태로 버리는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즉, 공중에 있는 상대―헬리콥터 같은 목표를 대상으로 하는 동작이었다.


다음은 반대로, 바닥에 있는 목표에 대한 공격. 단, 상대는 위에서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설정인 것 같았다. 옆으로 회피하다가 일순간 뛰어올라 있는 힘껏 밑으로 내리찍었기 때문. 그런 다음 옆으로 긋고 꺾어서 다시 긋는 식으로 구멍을 내고 라이플을 든 다음 내부를 향해 사격 자세. 장갑차 같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동작이었다.


이런 식으로 몇 가지 동작을 더 수행해보인 다음, 그녀도 공터로 돌아왔다. 사용한 무기를 정리하고 뒤로 주저앉은 다음 장갑에서 내려왔다.


“개별 기동 훈련 마무리했습니다.”


“음, 두 사람 끝날 때까지 쉬고 있어. 마치면 돌아가도록 하지.”


“예!”


적당히 몸을 풀면서 다시 자신의 장갑 옆으로 돌아가는 그녀. 어깨를 돌릴 때마다 울룩불룩한 근육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이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머리도 짧게 밀었기에, 멀리서 보면 남자로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른 두 사람은 대구경 기관총 사수와 유탄고속발사기 사수. 지원화기에 속하는 쪽이다 보니 주로 기동 중 경계 사격을 하거나 돌발 상황 발생 시 위치를 잡는 걸 위주로 훈련을 하고는 내려왔다.


모든 훈련이 마무리된 시간은 오후 4시. 훈련 결과를 대충 기록한 다음, 다시 기지로 되돌아오기 위해 장갑을 착용하고 차에 탔다. 운전은 역시 보급계 행정관. 갈 때는 자기가 운전하고 싶다고 지에가 꽤나 졸라댔지만, 알론조의 만류와 행정관의 필사적인 거부로 결국 올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뒷좌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온 뒤에는 다른 걸 할 시간도 없이 저녁, 그리고 휴식. 하지만 별로 할 일이 없어 침대에서 뒹굴 거리던 이얼은, 결국 지에에게 끌려가 ‘낮에 못 했던’ 근육 트레이닝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러닝을 안 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