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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기동중대 -

2008.04.17 08:00

Earthy 조회 수: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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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푸동 공항. 원래는 민항기만이 이용하는 국제공항이었지만 전쟁 이후 근처 군용 공항의 포화로 인해 민/군 겸용 공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활주로 위에 국방성 소속의 C-17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입구 앞에서 짧은 머리의 동양계 여성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 대구로 가는 거 아니었어? 그 녀석 8군 소속이라며.”


[원래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그 쪽에서 되도 않는 짓을 해버렸더라고. 본부에서도 지금 난리야, 난리.]


“무슨 일인데?”


수화기 너머에서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진짜 원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8군 사령부에서 자기들 인재 빼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나봐. 그래서 우리 쪽에서 정식으로 요청하기 전에 인도네시아 지역에 보르네오 섬으로 보내버렸어. 그리고 바로 작전에 투입한다나 보더라.]


“보르네오? 최전방이잖아, 거기.”


[그러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장갑(裝甲)을 챙겨 가야할 것 같아서 대기하라고 한 거야.]


본래 계획은 현지 시각으로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대기 명령이 내려왔고, 그와 동시에 본래 인솔 팀이 이용하려던 민항기가 아니라 부대 소속 수송기를 타고 가야한다는 것도 함께 전달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강화중장갑 수송용으로 개조해놓은 C-17이 푸동 공항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줄일 수는 있었다. 부대에서 트레일러도 강화중장갑 4대를 가지고 와서 싣는 대로 바로 출발할 작정이었다.


“뭐, 어쨌든 작전에 투입한다고 해도 설마 별일이라도 있겠어?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남 줄 바에는 버린다, 라던가 그런 식의 생각은 안 할 거 아냐.”


[그거야 그렇지만…….]


실제로는 확실하지 않은 정보만이 있는 상황에서 작전을 보내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지만.


“지금 오네. 나중에 보르네오 도착하면 다시 전화할게.”


[아니, 굳이 전화할 필요야 없고……, 보고나 잘 해줘.]


“보고는 내가 하는 게 아니잖아. 뭐, 알았어. 금방 가서 그 녀석 데리고 와버리면 되는 거니까.”


[그래, 그렇지. 그럼 기다릴게요―]


통화를 마치고, 그녀는 수송기에 올랐다. 어차피 트레일러에서 강화중장갑을 내려서 수송기에 옮겨 싣는 인원은 따로 있으니까,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


자신과 같이 가는 인원은 총 여섯 명. 이 중에 강화중장갑 전투인원은 4명. 나머지 2명은 행정 업무를 위해서 동행하는 것으로서, 해당 인원의 병역을 아예 옮겨야하기 때문에 인수 부대의 감독관 대리 정도의 입장이었다.


“그 쪽에서 꽤나 골치 아프게 한 모양이군. 우리는 이래저래 미움만 받는 것 같은데?”


하얀 얼굴에 높은 콧대, 그리고 조금 두꺼운 입술. 몸매도 적당히 근육질이 잡힌 몸에, 제복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입은 남자가 그녀에게 말하며 씩 웃어보였다.


“어쩔 수 없죠, 뭐. 게다가 우리가 인원을 차출할 때는 실제 임무가 아니라 다른 명목으로 불러오는 것도 원인이기도 하고요.”


“하긴, 나는 국방성 수뇌부 전담 경호 요원으로 뽑힌 줄 알고 신나서 왔었지.”


“저야 민간 용병에서 특채로 들어온 거니 그런 사정은 없지만요.”


격납고와 탑승석을 구별시켜두고, 탑승석은 민항기 수준으로 만들어둔 C-17이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앉아서 창밖을 볼 수 있었다. 민간 공항답게 많은 사람과 여객기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잘 거야?”


“글쎄요.”


곧 수납이 완료 되었는지 조종석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륙할 테니 착석해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2분 후, 모두가 착석한 걸 확인한 다음 활주로로 이동, 길지 않은 거리를 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현지 시각으로 저녁 7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C-17은 예의 보르네오 섬 정글에 있는 활주로 한편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탑승하고 있던 팀원들은 인접 숙용지에 있는 소대의 본부 텐트 앞에 서있었다.


인솔 담당으로 와있던 행정관이 서류를 들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게 말이 됩니까!”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온 일갈.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가끔씩 화나면 걷잡을 수 없는 행정관이라서 간혹 이런 일도 있었다. 이번에 행정관을 화나게 한 건 대체 무슨 일일지, 다들 궁금해 하면서도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


황급히 그를 진정시키는 여성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 그렇게 명령을 내리는데 거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는 그의 인사이동 명령이 있었던 것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보가 없는 작전 지역에 병력을 투입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냔 말입니다!”


“납득 이전에 명령이었지 않습니까.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저희로서는 저 쪽에서 명확하게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상대 측 여성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이쪽의 요청을 일부러 무시하는 듯이 행해진 명령이라는 게 훤히 보이다보니 행정관으로서도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결국 1소대 롯소조 조장인 알론조 롯소가 들어가서 정리해야만 했다.


우선 명령을 받은 인수 대상자 - 한이얼이 지금 위치하고 있는 곳을 알아냈다.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다행히도 그 근처에는 C-17이 착륙할만한 또 다른 임시 활주로가 있다는 듯 했다. 그래서 결국 모두 다시 수송기에 탑승. 연료를 확보해서 채우고 출발하려고 하니 이미 밤이 깊은 상태였다.


“한밤중이라 비행도 힘들 텐데 굳이 지금 가야 돼요?”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겠나. 3소대 린든조 소속의 첸지에는 그런 생각에 차라리 휴식을 취하고 가면 안 되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아직도 머리에 열이 올라있는 행정관은 그 의견을 단칼에 잘랐다.


“당장 가서 데려오면 그만이야. 조종사들이 야간 운행에 아무런 문제없다고 하니까, 저 얼른 타라고.”


지에는 떠밀리듯이 탑승석으로 올라와서는 보르네오로 올 때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쩔 수 없잖아.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 지도 모르는 거니까 얼른 가봐야지.”


알론조가 약간은 불만이 있는 그녀의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지에로서도 그건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지만……, 왠지 상대한테 끌려 다니는 것 같잖아요.”


“뭐, 그럴 지도 모르지. 저 쪽에서는 우리 쪽을 엄청 싫어할 테니까.”


“어차피 결국에는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자존심 때문에 이게 뭐에요, 정말.”


“그 자존심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특히 별을 달았으면 이미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나 다름없으니 더더욱 그렇겠지.”


지에가 불만이 있는지 어떤 지와는 상관없이, 수송기는 다시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나마 가까우니까 빨리 도착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비행기를 타고 있으니 많이 피곤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잘 목적으로 눈을 감았다.


“나도 좀 자둘까.”


반대편 좌석에서 알론조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지에와는 다르게 몸을 누이지 않으면 잠이 영 안 온다나 어쩐다나.


 


확실하게 포장이 되어있는 활주로에 내린 것은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 무렵. 거기서 다시 목표로 하는 부대까지 들어가는 건 거의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보르네오에서도 최전선인 곳이라 정글 깊숙한 곳에 거점을 지키기 위한 소형 부대만 존재하고 있어서 들어가는 게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이 녀석들은 놔두고 갑니까?”


알론조가 비행기 뒤에 있는 화물석을 가리키며 행정관에게 물었다.


“그래야겠지. 지금 이걸 탈 수 있게 다시 정비 확인하고 가져갈 거면 시간도 걸리고 다른 문제들도 있으니까 들고 가긴 힘들어. 타고 갈 수 있는 차량도 지프 두어 대 정도 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적당히 무장만 챙겨서 갈 수 밖에 없어.”


“비상시를 대비해서 들고 왔더니 막상 쓸 데도 없잖아, 이거. 여하튼, 진짜 실전 상황에서 쓸 수는 있는 거야?”


그렇게 투덜대며 혀를 차는 알론조. 그러면서 서있자니 다른 사람들이 지프를 두 대 몰고 왔다. 지프 한대의 운전석에는 행정관을 따라온 행정병이 타고 있었고, 또 다른 한대에는 지에가 타고 있었다.


“어느 쪽에 탈거에요?”


지에의 그 말에 알론조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 이미 행정관을 포함해서 다들 행정병의 차량에 타는 바람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지에가 운전하는 지프의 조수석에 올랐다.


“알론조 씨 말고는 다들 저기로 가버렸네요.”


“……, 왜 그런 건지 엄청 불안한데.”


특히, 지에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봤던 2소대 소속의 하사 한명이 알론조를 매우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걸 보니 더더욱 불안해졌다.


어쨌든 지프는 곧 출발했다. 지도를 가지고 있는 행정병의 차량이 앞에 섰다.


“앞에 차만 따라서 느긋하게 갈……거지?”


“저야 길을 모르니까요.”


하지만. 출발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콰과과곽!


“우아아악!”


지프의 엔진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건지, 타이어가 땅에 연기를 내며 헛돌다가 튕겨나가 듯이 출발했다. 순간적으로 뒤로 확 젖혀져버린 목을 부여잡고, 알론조는 앞 창 옆에 달린 손잡이를 슬쩍 잡았다.


틀림없이 같은 차량에 같은 속도. 그런데 이상하게 앞의 지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멀쩡히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몸은 좌로 우로 마구 흔들린다.


“조, 조금만 스무스―하게 안 되냐―?”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그러면서 커브길이 나오면 끝에 끝까지 몰아붙인 다음에 마지막에 핸들을 꺾어 휙휙 돌려댔다. 당연히 차는 휘청휘청. 그럴 때마다 몸이 마구 휘둘리다보니 입에서 나오는 건 그저 우왁, 하는 외마디 비명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앞에 가던 지프가 멈춰 섰다. 지프에 달린 위성 전화로 행정관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핏 들려오는 목소리로 봐서는 꽤나 놀란 것 같았다. 잠시 후, 한 명이 차에서 내리고 행정병은 차를 다시 뒤로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되돌아가랍니다!”


지에가 운전하는 지프까지 다가온 2소대 소속의 하사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되돌아갔다.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어보니 일단 다시 활주로에 도착하면 이야기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가야한다는 말도.


그 말에 알론조가 황급히 지에의 팔을 잡았다.


“굳이 빨리 안 가도 될 것 같지 않아? 응?”


목소리가 떨리는 걸로 봐서는, 이미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이미 지에의 스위치는 켜진 상태였다.


“무슨 소리에요. 자, 꽉 잡아요!”


차가 앞으로 튕겨 나가더니 마치 레이서가 운전하듯 타이어가 바닥을 끄는 먼지와 함께 뒤로 빙글 돌아갔다. 그리고 그 기세로 곧장 발진. 엄청난 속도로 비포장 길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 제발 조금만 살살 가자고―!”


이제는 뒤에서 가게 된 지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알론조의 그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건 당연히 저격. 그렇다면 이런 정글에서도 그것이 유용할까. 그 대답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이미 자신과 같이 온 병력들은 모두 정리가 된 듯 아군 진지가 있던 방향에서는 더 이상 총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즉, 자신이 여기서 저격을 하게 된다면 위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M4 소음기가 있으려나…….”


전투 조끼에 달린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다행히도 야간 작전이라 관측병이 소음기를 챙겨둔 상태. 얼른 M4카빈 앞에 장착했다.


지금 숨어있는 곳은 정글 속 어딘가. 나무뿌리 밑으로 흙이 무너져 내린 공간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주변 경계에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몸을 숨기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지금 중요한 건, 우선 들키지 않는 것일 테니.


쉴 틈이 생긴 참에, 아까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확하게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그걸 생각하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조금은 보일 것 같았다.


“우선은……, 대체 그 진지에 있었던 건 뭘까.”


틀림없이 낮에는 보초가 지키고 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밤에도 그 곳으로 들어가는 인원이 있던 걸 관측병이 작게나마 보았고, 그에 따라 사격했다. 하지만 결과는 폭발. 그리고 그 인근에 있던 상대측 저격수가 관측병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건 대체.


“애초에 함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네.”


이 쪽을 확실하게 치기 위해서, 유인책을 사용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멋지게 걸려든 결과가 이것일 테고. 이 유인책을 위해 며칠 동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적군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 처음부터 밤에는 따로 보초가 서 있지 않았고, 간부―혹은 간부인 척하고 순찰하는 시늉을 한 병사가 밤마다 정시에 거기에 들어가는 척을 하면서, 그 안에는 위장용 인형 같은 걸 움직였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공격 신호가 될 폭발물을 넣어두고 사격하면 어떤 식으로든 터지게 만들었을 테고.


매일 밤 그 시각마다 순찰을 도는 건 둘째 치고, 아군이 숨어있을 진지 근처까지 와서 매복을 하고 있던 병력이나, 대저격수 저격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을 저격수가 진짜 굉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거에나 걸리면서 무슨 에이스냐…….”


인도에서 그냥 몇 가지 얻어 걸리다시피 해냈다고 우쭐거리면서 다녔던 건 아닐까. 실제로 자신은 단 한 번도 몇 시간씩 기다려가며 목표물을 기다린다던가, 그런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실수로 부하인 관측병이 죽었다. 물론 이건 명령을 내린 상부의 실수, 혹은 멋지게 속아 넘어간 이 곳 부대 측의 잘못이 훨씬 컸다. 하지만.


“이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동료랄까, 아군이 죽는 건 보았다. 직속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상관이 죽는 것도 보았다. 인도, 그 최전선에서 싸우면서 아무도 안 죽기를 바라는 건 사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 죽은 적은 없었다. 자신의 부하, 혹은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죽은 적은 없었다.


잠이 들지 않으려면, 우선 눈을 감아선 안 된다. 하지만 이얼은 눈을 뜬 채 앞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볼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게 바로 죽어버린 관측병의 전투 조끼이니까.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았지만, 그냥 기분이 좋진 않았다. 마치, 죽어버린 상관 옆에서 하룻밤을 새던 때와 같은 기분이랄까.


곧,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수송기에 올라탔다. 단, 이번에는 탑승석이 아니라 화물석. 강화중잡갑이 실려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도 상당수의 사람이 서 있을 공간은 충분했다.


“아마 그 지역에 바로 투입이 되어야 할 것 같군.”


“공중 침투라도 하는 겁니까?”


“음, 그러라는 명령이야.”


알론조는 초조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공중에서 이것과 같이 뛰어내리는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로 수송되어 공중에서 내려온 녀석을 찾아서 탑승한 적은 있었지만.


“애초에 저희가 따로 가있는 상태에서 이것만 내려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전선 한가운데에서? 이것 채로 뛰어내리는 것보다 그게 훨씬 위험하다는 게 작전부의 판단이야. 직접 지휘는 못 하지만, 적어도 작전은 책임져 주겠다면서 이렇게 명령했네. 따라야지, 별 수 있나.”


“그건 그렇지만…, 에휴.”


다른 사람들은 명령이라는 말에 일단 탑승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라고 해도 실제로는 정비부 사람들을 도와서 장갑 점검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자네가 임시조장으로 지휘를 해야 하니까, 작전부랑 통신 제대로 해둬.”


“도착할 때 즈음 되면 알아서 연락하겠죠. 그것보다도, 점검 끝나려면 해가 뜰 때는 되어야 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그 친구한테 달렸지. 저격수에다가 여기에 선발될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지 않겠나. 안 그래?”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알론조로서도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 정비사를 도와서 자신의 기체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기동하는 거라서 생각보다 점검할 부분이 많았다. 그동안 정비사들이 지속적으로 정비하며 기동했었지만, 실제 운용하는 사람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정비가 끝나고 나니, 벌써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 30분경. 이미 밖은 훤히 밝아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제대로 착석도 못 하고 출발해야할 정도였다.


곧, 작전부와의 위성 화상 통신이 시작되었다. 화면에 나온 것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구불구불하게 긴 금발의 여성. 눈매가 조금 사나워서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인상을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탓이었다. 알론조를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늘 상태가 진짜 최악인데?”


[당연하잖아요. 나 일어나자마자 왔다고요.]


“그러고 보니, 너 저혈압이라고 했던가?”


[예, 그래요. 덕분에 아주 죽겠어요.]


그래도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워낙 진지하다보니 그 동작이 장소에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작전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가장 중요한 건, 최전선 근처로 가면 화상 통신은 불가능하다는 것. 양쪽에서 서로 재밍-jamming-을 걸다보니, 퀄리티를 낮춘 음성으로 통신을 하는 건 어떻게든 가능했지만 그 이상을 무리라는 듯. 그렇기 때문에 작전 지역의 지도는 미리 전송받으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걸로는, 현재 해당 인원의 위치 파악이 힘들다는 것. 인식표에 위성 추적이 가능하도록 장치가 되어있긴 하지만 역시 재밍 때문에 위성에서 그 정보를 탐색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위성에서는 불가능해도, 근처에서 직접 전파를 찾으면 가능할 거에요. 그 내용도 같이 전송할 테니까, 근처에 가면 자동으로 동작할 거에요.]


알론조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이미 장갑에 데이터 전송이 시작된 상태였다.


[필요한 정보는 전부 장갑에 직접 입력해둘 테니까, 탑승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뭐, 갑작스런 일이라 정보라고 해도 별 건 없겠지만요.]


“솔직히 최전선에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바라는 건 사치니까. 장갑 가지고 보병들끼리 전부하는 데 들어가는데, 우리가 정보까지 쥐고 있으면 그건 반착이지 않겠어?”


[전쟁에 반칙이 어디 있나요. 뭐……, 우선 여기까지 할게요. 작전 지역 들어가도 음성으로 지원은 가능하니까. 그것보다 거기 지에 있죠? 잠깐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알론조는 데이터가 전송되는 걸 팔짱을 낀 채 보고 있는 지에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며 터덜터덜 걸어오던 지에에게 그는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지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리세 언니―!”


그리고는 수다 시작. 이거 공용 라인인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애초에 그런 거에 신경을 안 쓰는 성격이라 알론조도 가볍게 웃으면서 장갑 쪽으로 걸어갔다.


“아침에 힘들 텐데, 좀 어때?”


[어떻긴, 말도 마. 아주 죽겠어. 그것 그렇고 지금 바로 적잔 들어갈 수 있겠어?]


“그거야 뭐 별 문제없어. 내가 좀 튼튼한가. 작전부 쪽은 좀 어때? 갑자기 이렇게 되서 다들 정신없을 것 같은데.”


[내가 너랑 잡담하고 있을 시간이 있을 정도야. 평소보다 좀 이르게 시작해서 피곤하기야 하겠지만, 의외로 여유 있는 걸?]


“헤에, 부럽네.”


곧 데이터 전송도 끝나고 수송기가 출발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끝내고 이륙을 위한 대기 자세에 들어갔다. 탑승석까지 가서 앉을 시간은 없고, 그렇다고 여기에 남는 자리도 없으니 결국 고정되어있는 자신의 장갑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지만.


활주로를 짧게 달린 C-17이 공중으로 뜨고 고도를 높여서 안전한 지점에 이르자 수평을 유지하며 안정된 비행으로 접어들었다. 화물석 여기저기 달린 붉은색 등(燈)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우선 다시 기체에서 내렸다.


앞으로 약 한 시간, 그 때까지만 이얼이 버티면 이들이 머리 위로 등장해주실 예정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잠이 들다니, 이건 진짜 큰 실수였다. 이미 적들이 근처까지 와있는 건 아닐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끊임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지만 사람이 풀을 헤치며 걸어가는 소리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적인 발소리와 함께 풀이 걷어지면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야하는데, 이건 그저 동물 같은 게 풀을 헤치지 않고 움직이는 소리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곧, 이얼의 눈앞에 멧돼지같이 생긴 짐승 하나가 풀숲 사이에서 나오더니 그가 있는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후우―하는 안도의 한숨.


“벌써 아침이네…….”


현지 시각으로 맞춰둔 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시간은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잠이 들어있는 동안에 걸리지도 않았고, 근처에 적들이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목이 말라 수통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남은 물의 양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장비를 다시 확인하고, 천천히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완전히 나와서 우거진 수풀에 몸을 숨긴 다음, 자신이 있던 곳을 슬쩍 돌아보니 생각만큼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깊이 몸을 묻으면 은폐를 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대번에 들통이 나버릴 만큼 허술하다고 할까. 어쨌든 오래 있을 곳은 아니었다.


적들이 어디에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근처에 있는 나무 중에 독특하게 생긴 녀석을 발견했다. 비탈을 향해 크게 기울어져있으면서도 윗부분은 똑바로 자란 덕분에 올라가기 쉬우면서도 높이는 충분한 형태로 자라 있었던 것. 그 위에서 상황을 살필 수 있다면, 또 저격이라도 할 수 있다면 유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위를 계속 살피며 천천히, 정말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포복을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몸을 낮추어서 발소리가 안 나도록 이동하다보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나무 임에도 불구하고 밑에 도착하는 데에만 5분은 족히 걸렸다.


그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을 굳혔다. M4카빈을 어깨에 둘러메고, 바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중간까지는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기울어져있는 나무라서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하면서도 금세 잎이 무성한 가지 위에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올라와보니 생각만큼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네.”


주위에 있는 나무들도 잎이 워낙 무성하다보니 비슷한 위치에서는 주변을 관측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밑에 있을 때보다는 나은데다가 적에게 들킬만한 위치도 아니니 썩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봐도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안 보인다고 해도, 안 들린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한 10분 정도 기다리자 조금 먼 거리에서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이내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내용은 다행히도 영어라서 알아듣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저 쪽에 가면 나무뿌리 밑에 공간이 있으니까, 거기 한번 살펴 봐.”


틀림없이 이얼이 새벽에 숨어있던 곳을 두고 하는 말임이 틀림없었다. 만약 계속 잠이 든 상태로 지금까지 거기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도 모르게 오싹해졌다.


천천히 몸을 돌려 자신이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나무가 우거져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추 관측은 되는 위치였다. 아마 밑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으리라. 그래도 몸을 최대한 나무에 바싹 붙인 채 계속 관찰했다.


곧, 한명이 천천히 그 나무뿌리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곧 세 명이 그 쪽으로 걸어왔다. 상대가 한명 뿐이라는 것 때문인지 별로 주변 경계도 안 하고 어슬렁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걸음걸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속사로 하면 전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 쪽으로 간 게 맞긴 한 건가? 솔직히 도망치려면 자기네 진지 뒤로 도망갈 거 아냐, 안 그래?”


“그렇긴 합니다만, 혹시 모르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저희로서도 이 쪽으로 오는 게 낫고.”


“하긴 저 쪽에 초소로 가는 녀석들이 진짜 위험한 거니까 말야. 어차피 뭐라도 해야 되면 이게 낫겠지.”


그러더니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앉으라고 하자 다들 따라 앉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지휘자인 것 같아, 우선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겨누었다고 해도 지금 당장 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발각되기라도 하면 즉시 대항해야할 테니까, 기왕이면 지휘자를 노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때, 지휘자가 옆에 앉아있는 병사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저기 저 나무, 위에 올라가면 여기가 잘 보이겠지? 혹시 모르니까 한번 올라가봐라.”


그가 가리킨 것은, 현재 이얼이 올라와있는 바로 그 나무였다.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무슨 일이, 지금 벌어지는 참이었다. 이젠 쏠 수밖에 없다. 지시를 받은 병사가 일어나서는 막 이 쪽으로 걸어오려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M4카빈은 관측병의 총기였고 당연히 이얼이 영점을 맞추진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맞출 자신은 없었다. 머리를 노리고 쏘면서도 착탄 지점을 확인하면 곧장 오조준을 해서 재사격을 할 생각이기도 했고.


픽. 소음기를 장착했다고 해도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주변에 큰 소음이 없다면 이 정도 거리라도 충분히 들릴만한 정도는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움직이던 적의 발걸음에 정확하게 맞춰진 덕분에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맞은 곳은 심장 인근의 가슴. M4카빈에 소음기까지 달아서 유효사거리가 짧기 때문에 즉사를 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부위였다. 머리를 노리고 쏘는 것도 기왕이면 확실하게 즉사를 노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일격에 끝났다.


“뭐, 뭐야!”


“어디야!”


채 두리번거리며 찾기도 전에 바로 다음 사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저격수로서는 극히 드물게 엄청난 수준의 속사가 가능한 것이 이얼의 장점. 킬 마크 넷이 의미가 있는 건, 적의 작전부에 있는 간부 네 명을 단 5초 만에 연사 수준으로 사격을 해서 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빗나간 거리만큼 정확하게 오조준을 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대응을 하기도 전에 바로 다음 사격.


이번에는 제대로 머리를 날렸다. 방탄모를 쓰고 있었지만 그걸 정확하게 관통하며 즉사. 약간 비스듬한 각도에 있던 다른 한명의 얼굴에 피와 뇌수가 쏟아졌다.


“히, 히이익―!”


그리고 그 표정 그대로, 바로 이어진 이얼의 사격에 미간이 뚫리며 뒤로 넘어갔다. 거기까지 걸린 시각은 단 6초. 조준점을 내리며 서있는 마지막 한명을 노리는데, 그 순간 정글을 울리는 소총 소리가 쏟아졌다.


두두두두두두―.


패닉에 빠진 나머지 아무 방향이나 대로 자동으로 갈겨버린 것. 상대를 찾느라 사격에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하던 이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음기를 단 이유가, 다른 적에게 들키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아예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다.


“젠장!”


얼른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당연하다는 듯이 머리가 뚫리며 쓰러진 상대. 하지만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저 먼 곳이 시끄러워졌다.


“야――― 저기―――!”


정확하게는 들리지 않지만, 이 쪽에서 총성이 들린 걸 인식하고 몰려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 이상, 여기에 있으면 무조건 죽는다. 얼른 나무를 뛰다시피 기어 내려와 땅에 서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길이 내리막이라 엄청난 속도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미치겠네―!”


달려 내려가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의 머리가 보였다. 곧 그 시선과 마주치고, 상대가 뒤를 향해 “찾았다―!”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바위 뒤로 몸을 날렸다.


이제는 이판사판. M4카빈의 소음기를 떼어내고 유효사거리를 길게 할까, 생각했지만 거리가 좀 미묘할 것 같아 그냥 던져버리고 등 뒤에 메고 있던 바렛을 바닥에 거치했다. 자신의 속사로 내려오는 녀석들을 일일이 상대해주겠다, 그렇게 작정한 것이었다.


“그래, 와봐! 다 날려버리면 될 거 아냐!”


밑에서 위로 저격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만 바위의 형태가 교묘하게 그것이 가능하게 되어있었다. 두개의 바위가 겹쳐져 그 중간에 총을 거치할만한 공간이 생겨있었던 것. 하지만 위에서도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반대로 공격을 당할 위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남는 건.


당하기 전에 먼저 날려버리면 된다! 어차피 상대라고 해도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네댓 명씩 조가 만들어져 있을 테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얼른 바렛을 바위 사이에 거치했다. 그러면서 슬쩍 살펴보니 언덕 위에 있는 건 단 네 명. 급히 뛰어내려오다가 역으로 당할 걸 염려하는지 몸을 엄폐한 채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 바렛 앞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는 행동이었다.


발을 뒤쪽 나무에 대며 몸을 단단히 고정 시키고, 스코프에 눈을 댔다. 미리 파악해둔 적의 위치에 맞춰 정확하게 조준을 맞추자 총구가 저절로 습도와 풍속 등을 파악해서 오조준되었다. 마지막으로 호흡을 고르고 당겨야 하지만 이얼에게는 그 호흡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근거리 저격, 그냥 어깨 힘으로 버티면 그만!


“하앗!”


콰앙―.


단순한 총성이 아니었다. 바렛의 소리는 근거리에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들으면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져버릴 정도로 굉장한 녀석. 그리고 그 파워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 두셋 정도는 충분히 가릴만한 둘레를 가진 나무가 단 한방에 밑동이 반쯤 날아가 버렸다. 그 정도의 위력인 만큼 뒤에 숨어있던 상대가 멀쩡할 리가 없었고.


목 위가 아예 사라진 채 잡아 뜯긴 듯 너덜너덜한 나무 둥치 위로 쓰러지는 동료의 모습을 본 이들은 일제히 동요하고 말았다. 물론 그 중에 한명은 채 동요할 시간조차 없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바렛을 엄청난 속도로 재장전하고 속사해버리는 이얼의 능력 탓이었다.


이번에는 작은 바위가 산산이 부서지며, 그 뒤에 있던 병사가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는 밑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Shit!"


“What the hell!"


소리를 지르든 말든, 바로 다음 사격이 또 이어졌다. 이번에는 복부가 뻥 뚫린 채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남은 두 사람은 결심을 굳혔다. 단, 그 결심은 서로 달랐다.


뒤쪽에 서 있던 병사는 얼른 몸을 돌려 뒤로 달려갔다. 앞쪽에 있던 병사는 반대로 이얼이 있는 바위 쪽으로 소총을 난사하며 마구 앞으로 달려왔다. 물론 그 결과는 뻔했다.


“그래 어디 와 봐라!”


달려오던 병사의 몸이 순간 뒤로 붕 떴다. 가슴 부위를 맞으면서 그 충격으로 거의 5미터 가까이 날아가 버린 것. 그 틈에 도망을 치던 병사는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젠장…….”


조금 있으면 지원 병력이 몰려올 텐데, 여기서 도망을 쳐야할까. 그것을 고민하는 동안 이미 언덕 위에 새로운 병력들이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이얼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갈 때까지 가 보자!”


자세를 바로 잡으며, 다시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바로 가장 앞에 있는 적을 조준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모두 준비해!”


알론조의 목소리가 화물석에 크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초록색 등이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었고 정비사들과 행정관은 일단 대피했다.


“내려가자마자 신호부터 확인하고, 즉시 수색한다! 주위 경계 철저히 하고, 발포는 완전히 허용하니까 자신이 임의대로 시행하도록! 문 열어!”


뒷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푸른색 하늘. 그 하늘의 오른쪽은 떠오르는 해로 인해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걸 보면서, 차례대로 문 앞으로 가서 섰다.


화물석과 바깥의 기압 차이로 인해 안쪽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 들어왔다. 하지만 키만 3미터에 육박하는 장갑을 입고 있는 팀원들은 그 바람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곧, 양쪽 기압 차이가 없어지고 대기가 안정되자 붉은색 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가 초록색이 되었다. 그것을 확인한 알론조가 장갑 내의 마이크를 입 앞까지 끌어올렸다.


[OK, Let's move out! Go!]


가장 앞에 있던 2소대 하사부터 뻥 뚫린 하늘을 향해 몸을 날렸다. 뒤를 이어 지에와 다른 한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론조까지. 거대한 장갑 기체가 차례차례 목표점을 향해 낙하를 시작했다.


[모두 지형 확인! 목표점이 보이나?]


지에가 몸을 활짝 편 채 밑을 내려다보았다. 장갑 얼굴 부위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지상의 모습. 그 위에 덧씌워지듯 초록색의 큰 원이 그려졌다. 그 원이 미리 예정되어있는 낙하 목표점이었다.


[예! 보입니다!]


[우선 저 지점을 목표로 하고 낙하한다! 단, 타깃 위치가 파악되면 그 쪽으로 목표를 바꾸는 걸 허가한다! 이상!]


여기서의 이상은 단순히 지시의 끝이 아니라, 그 순간 바로 낙하산을 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낙하산의 가장 윗부분은 튀어 나와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고, 알론조의 지시에 따라 전원의 낙하산이 공중에 활짝 펴졌다.


뒤로 젖혀지는 느낌을 받으며 다시 한 번 낙하지점을 확인했다. 그 때, 그보다 조금 시야 밑쪽에 노란색 점이 생기며 'Target'이란 글자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지에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타깃 발견! 낙하지점 번경 할게요!]


장갑의 손이 낙하산 줄을 당겨가며 방향을 조절하자 곧 지에만 남쪽으로 조금씩 밀려나며 타깃 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걸 확인한 알론조가 역시 낙하산 줄을 조절했다.


[우린 먼저 남쪽으로 가 있을 테니, 두 사람은 원래 예정 지점으로 내려가서 남하해주기 바란다.]


[Yes, sir!]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땅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얼은 바위를 등진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비행기가 지나가는 게 보였기 때문. 이미 반 토막이 나서 저기 멀리 떨어져있는 바렛을 보며 부지런히 M4카빈의 소음기를 도로 떼어내는 중이었다.


상대측에서 나타난 것은 예의 저격수로 보이는 녀석.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언덕 너머에서 등장하자마자 그를 향해 대놓고 총신이 긴 저격총을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스코프로 살펴본바 아마도 Gepard Anti-Material Rifle, 통칭 제파드 대물저격총으로 보였다. 이얼도 바렛은 여러 번 봤지만, 제파드는 사진으로 딱 한번 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파드라고 확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마침 그 전에 한발을 쏘면서 두 번째 열 발 탄창이 다 소모된 바렛으로는 더 이상 적을 노릴 수 없었기에 그것만 확인하고는 그냥 몸을 숨겨버렸다. 그 직후에 바위 파편과 함께 그야말로 반 토막이 난 바렛이 저 멀리 튕겨져 날아가는 걸로 봐서는 그 선택이 옳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 "그냥 뛰어가서 죽여 버려!"라는 외침과 함께 언덕 위가 소란스러워지는 걸 보니 이미 옳은 선택 따윈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래도 일단 싸워보겠다는 생각으로 M4카빈의 소음기를 떼어내고 있는 순간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4초 뒤, 그 비행기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점점 이 쪽으로 다가오며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건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지금은 우선 목숨이 중요한 순간. 아주 살짝 아까와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내밀어 딱 한발을 쏘고는 다시 바위 뒤로 들어왔다.


두우――웅!


이얼보다 조금 앞쪽에 있는 나무가 날아갔다. 미리 노리고 있었던 듯 매우 신속한 대응사격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내미는 순간 바로 쏘지 못 한걸 보니 이얼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예측하고 있었다면 총을 한발이라도 쏘려고 하는 순간 날려버릴 자신이 이얼에게는 있었다.


뭐, 지금은 그런 자신이 전혀 소용없는 순간이긴 했지만.


“야, 저, 저거―!”


“뭐, 뭐야!”


상대 쪽이 시끄러워졌다. 그 소리에 이얼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까 자신 쪽으로 떨어지던 물체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매우 놀랐다.


“로, 로봇?”


인간형의 거대한 물체 두 대가 막 지상으로 착지하고 있었다. 그 손에 들린 건 탄열이 총기 안으로 수납되는 형태의 네모난 박스형 라이플. 단, 그 구경은 장난이 아니었다. 얼핏 봐서는 적어도 .50BMG 수준. 즉, 지금 이얼이 쓰던 바렛과 같은 탄을 사용한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그보다 더 큰 구경의 탄이 사용될 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상에 착지하면서 그 충격을 무릎을 굽히는 걸로 완전히 완화시켰다. 중량도 상당해 보이는데 그걸 자체 동작만으로 완전히 없애다니,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지만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대체 지금 전장과 잘 어울리면서도, 존재할 리가 없는 병기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먼저 생각날 따름.


그 거대 인형 병기가 사용했던 낙하산이 등 부분에 있는 공간으로 말려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확인하듯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이 휘익 주변을 둘러보더니, 총구가 즉시 적군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사격.


투콰과과과!


굳이 표현하자면 이런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초토화되는 정글. 마치 전투기가 강하하며 기총 사격으로 전장을 긁어대는 그런 모습이었다. 당연히 한참 달려 내려오고 있던 적들은 그 단 한 번의 연사에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굉장……하네.”


일단 그 로봇 두 대는 아군인 것 같았다. 물론 확신을 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은 M4카빈으로나마 경계 자세를 취했지만, 솔직히 소용이 없다는 사실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거의 적군을 쓸어버린 로봇. 하지만 그 중 한대의 얼굴 부분을 향해 예의 저격수가 제파드로 12.7×107mm탄을 박아 넣었다. 그 대구경의 대물저격총에도 큰 손상은 받지 않는 건 대단했지만, 순간 뒤로 물러나며 주춤거리기에는 충분했다.


설마 저 저격총이 먹혀서 당하는 건가. 그런 생각에 이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전방 카메라가 나갔어! 이거 뚜껑 벗지도 못 하잖아!]


[제가 처리할 게요!]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기본 총기로도 충분히 닿겠지만,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을까. 지에는 솔직히 총기를 다루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걸 하기로 했다.


[토우 사용할 게요!]


지에의 장갑에만 특별하게 장착되어있는 그것이 등 뒤의 상자에 세워진 형태로 있던 게 좌우로 튀어나왔다. 3m 가까운 장갑이라고 해도 얼굴 높이를 넘어갈 만큼 엄청난 크기의 상자 속에 담겨있던 그것은 1.5m가량의 횡 3열 발사기였다.


튀어나온 것은 바로 토우 발사기. 횡 3열의 발사기가 좌우로 달려있으니 총 6발의 다연장 발사기였던 것. 그나마 토우 중에서는 가장 길이가 짧은 TOW 2B―121.9cm―이다보니 운용이 가능했다고 할까.


일반적으로는 토우는 다연장으로 사용할만한 물건이 절대 아니었다. 유선유도 방식이라 사수가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을 보며 계속 조작을 해야 했기 때문. 차량 거치형으로도 사용하지만 그런 형태에서도 다연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에의 등 뒤에 달려있는 것은 억지로 개조시킨 6발의 토우 미사일. 물론 지금은 그 중 하나만 사용해도 되는 상황이라 가장 왼쪽에 있는 걸 사용하기로 했다.


미사일이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저격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그야말로 날 잡아먹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는 것. 그래서 토우 발사기가 나오는 즉시 그녀는 불규칙한 지그재그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토우 조준을 위해 십자선상에 저격수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맞추고, 바로 발사했다.


토우의 속도는 초속 360m 전후. 상대가 있는 곳까지는 1.5초도 안 되어 도착했다. 계속 움직이면서도 끈질기게 조준을 맞춰가며, 지에는 토우 미사일을 정확하게 원하는 위치에 꽂아 넣었다.


현존하는 모든 탱크의 장갑을 부술 수 있다는 대전차 미사일의 대표답게, 폭파하면서 주위를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의 저항도 완전히 사라졌다. 곧 그 언덕 위에 다른 두 대의 장갑이 등장하며 이런 무선이 날아왔다.


[와우, 여긴 화려하네요!]


[이 쪽에 있던 병력도 전멸 시켰습니다.]


그걸로 이 전투는 일단 끝이 났다. 장갑 네 대가 동원되고는 단 1분여. 일반적인 보병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이 압도적인 강함을 새삼 느끼며 지에는 장갑 안에서 혼자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되어있는 장갑의 얼굴 부위도 같이 좌우로 흔들렸기에, 전체적으로 투박하게 생긴 기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이 되고 말았다.


 


그 로봇이 고개를 좌우로 휙휙 젓는 것을 보면서, 이얼은 완전히 주저앉았다. 상대는 전멸했고, 로봇들은 더 이상 전투를 진행할 생각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아군이 틀림없었으니까.


곧 이얼의 가장 근처에 있던, 미사일을 발사한 로봇이 미사일 발사기를 집어넣고는 이얼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이얼의 시야 앞에 들어서자 그 가슴 부분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승용차 재떨이가 열리듯 앞으로 열렸다.


“어이, 괜찮아!”


그 안에서 등장한 것은 검은색 단발머리의 여성. 단아한 인상에서 묘한 매력이 느껴져, 이얼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어―이, 괜찮냐고?”


“…….”


“뭐야, 완전히 넋이 나갔잖아. 뭐 상관없어. 타깃, 확보 완료했어요.”


곧 주변에 있던 장갑들도 모두 다가와서는 역시 가슴 부분이 열리며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중에 한명은 경계를 시킨 후, 갈색 빛갈의 머리에 흰색 피부, 그리고 느끼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기체에서 뛰어내려 이얼에게로 다가왔다.


“한이얼 병장, 맞나?”


“아……, 예, 예에. 그렇습니다만……?”


“자넨 지금부터 국방성 직속 국방연구소 산하 무기 개발단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소속으로 발령 받았다. 따라서 그에 의거, 즉시 이동해주기 바란다, 이상.”


이건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말투로 바로 반문하는 이얼.


“예?”


알론조는 단호한 표정으로 알아듣기 쉽게 제대로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너 이제부터 우리 부대 소속이니까 그냥 따라오라는 거다, 알겠냐?” “예, 옛!”



잠시 후, 이얼은 알론조의 장갑 팔위에 다소곳하게 앉은 채, 예정되어있는 회수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계속 흔들려서 결국 멀미 증상으로 뻗어버린 건 그냥 넘겨도 되는 부차적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