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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전쟁 L.S. 특무강화중장갑보병중대 -

2008.04.16 07:53

Earthy 조회 수:1227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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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지역의 보르네오 중앙부. 정글 중간을 개척해서 만든 활주로에 지금 8군 소속 표시가 된 C-130H 수송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내부에 탑승하고 있는 건 8군 사령부 직할 특전여단 저격소대원들. 총원 56명이라는 애매한 인원 탓에 CN-235가 아니라 이 수송기로 이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지속적으로 군용기가 드나드는 활주로이기 때문에 포장공사는 안 되어있지만 관리 상태는 양호해서 착륙할 때 큰 충격은 없었다. 활주로의 중간을 조금 넘는 지점에서 성공적으로 멈춰선 수송기가 따로 마련된 공터로 이동을 하자, 곧 탑승 병력들이 차례차례 내려왔다.


전시 이동이고 필요 물품을 모두 받아서 온 탓에 모두 커다란 군장을 메고 있었다. 저격수들은 그나마 총기가 따로 실려 온다지만, 소총수들은 개인총기까지 모두 지참한 상태였기 때문에 많이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모두 내리자 부소대장 상사-Master Sergeant, MSG-가 모두를 불러 모았다. 급히 마련된 듯이 보이는 단상 위에 소대장 중위-First Lieutenant, 1LT-가 서있는 걸로 봐서는 한마디 할 생각인 것 같았다.


크흠, 거리며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모자를 고쳐 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 이동 기간 동안 대단히 수고 많았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여긴 인도네시아, 즉 최전선입니다. 전면전 상황은 물론 아니지만 여전히 간헐적으로 국지전이 일어나는 곳이고 우리 역시 그런 국지전 등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실전인 만큼 당연히 위험하겠지만,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님의 말씀대로, 죽을 각오로 싸워 살아 돌아갑시다. 이상.”


부대원들 대부분이 상당한 경력의 부사관인 부대. 그렇다보니 임관 2년이 채 안 된 소대장으로서는 부대원들 앞에서 시원시원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결국에는 준비해둔 걸 죽 읽는 것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어차피 특기 부사관이 가득한 이 소대에서 특기 없이 자리보전용으로 앉혀놓은 소대장에게 진지하게 지휘력을 원하는 부대원도 없으니 별 상관없지만.


이얼은 저격 관측병인 자기 부하를 데리고 텐트를 치기 위해 10분 정도 떨어져있는 숙영지로 향했다.


“저, 한 병장님.”


지금 이얼의 계급은 병장-Sergeant, SGT- 병사 중에서는 최고인 장이라는 의미의 단어이긴 하지만 실제 편제로는 부사관에 해당하는 직급이었다. 즉, 3년 단기 병 복무로는 당연히 불가능한 계급이라는 의미.


“왜?”


“실전이라고 해도 그렇게 안 위험하겠지 말입니다.”


“글쎄. 뭐, 3개월 전에 인도에서 한 일주일 있을 때는 보병 작전 지원이라서 상대측에 저격수도 없고, 뭐 별 일 없이 살아오긴 했지.”


“킬 마크도 거기서 얻으신 겁니까?”


“아아, 뭐.”


이얼의 킬 마크는 넷. 소대원들 중에서는 극히 적은 숫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도 한 수(數)였다.


미리 확인해둔 위치에 텐트를 펴기 위해 군장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관측병이 차고 있는 무전기에서 노이즈가 들렸다. 어차피 무전 교신 같은 것도 전부 그 쪽에서 하니까 그냥 계속 군장을 뒤집어 텐트를 막 집은 찰나.


“박 병장님, 호출인데 말입니다.”


“호출? 나?”


“예. 소대 본부에서 지금 와달라고 합니다.”


“왜?”


“이유는 모르겠고, 일단 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숙영지 편성을 하기도 전에 호출을 받다니, 그렇게 급한 일이 있었나 하며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어차피 가지 않으면 모르는 일. 텐트 치는 걸 관측병에게 맡기고 소대 본부가 있는 숙영지 중앙으로 향했다.


“어이, 에이스― 어디 가냐―?”


역시 숙영지에 자기 텐트를 치다가 이얼이 지나가는 걸 본 하사-Staff Sergeant, SSG-의 말에, 그냥 호출 받았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얼른 끝내고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대 숙영지 중앙에 있는 소대 본부는, 이전에 이곳에서 부대 편성을 하고 있던 부대가 남기고 간 설비를 그대로 이어받은 덕분에 이미 완성이 되어있었다. 행정병 둘이서 컴퓨터 본체와 LCD 모니터를 천막 안으로 들고 들어가자, 이얼도 그 뒤에 곧장 따라 들어갔다.


작전 지시용으로 마련해두었던 걸로 보이는 탁자 앞에서, 부소대장이 머리를 묶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가볍게 말없이 가볍게 거수경례를 했다.


“병장 한이얼, 호출 받고 왔습니다.”


“음, 빨리 왔네. 한창 바쁠 텐데, 도착하자마자 불러서 미안하게 됐어.”


“괜찮습니다. 그것보다도, 무슨 일입니까? 혹시 벌써 임무가 있다던가 하는 겁니까?”


부소대장은 잠깐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맞아. 벌써 임무가 생겨버렸어. 그것도 적어도 여단 지휘부, 혹은 그 이상의 상급부대에서 너를 지명해서 내려온 거야.”


“여단에서 저를 말입니까?”


“아, 역시 저번에 인도에서 워낙 활약을 해준 바람에 그렇게 된 거겠지. 너하고 그 관측병하고는 소대랑 따로 움직이게 되어서 말해주려고 부른 거야.”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가서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걸 마다할 수도 없는 노릇. 군인이라는 신분인 이상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였다.


다시 경례를 붙이고 몸을 돌려 천막을 나오려는데 부소대장이 그를 다시 불렀다.


“일단 군장품은 전부 여기 내려놓고 갈 거야. 숙소 같은 건 오히려 작전 지역이 더 나을 테니까. 그리고 총기도 지금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로 바꿀 거니까 가기 전에 조준점 잡아놓고 갈 시간 줄 테니 잘 해봐.”


총까지 바꾼다는 말에 이얼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격수가 총을 바꾸다니. 아니, 실제로는 저격수가 총을 바꾸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얼이 써본 총이 그것 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총기랑 탄약은 보급계한테 가서 말하면 줄 거야. 관측병하고 같이 연습 좀 하다가, 그 쪽에서 보냈다는 사람 도착하면 바로 출발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천막을 나와서, 이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일단 관측병이나 부르러 가자는 생각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얼이 쓰던 저격 화기는 Stoner Rifle-25(통칭 SR-25). 그 중에서도 최신 개량형인 Mk. 11(마크 일레븐) Mod. 0라고 불리는 총기로 5kg 남짓의 가벼운 편에 속하는 반자동 저격 총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연히 대인용(對人用)이고, 유효사거리는 700m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끌어안고 있는 총은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M82A1 Barrett, 통칭 바렛이라 불리는 총기로서, 일단 무게만 해도 13kg 남짓. 게다가 7.62mm(NATO)탄을 사용하는 SR-25와는 달리 12.7mm(NATO)―‘.50 BMG’라고도 함―탄을 사용하고 유효 사거리도 1,800m에 달하는 엄청난 저격용 총기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SR-25와는 달리 바렛은 대물(對物) 저격총이라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대인용뿐만이 아니라 건물 벽 뒤나 비행기 유리창 안, 헬기 공격 등에 사용되는 굉장한 위력의 총기였다. 8군 직할 특전 여단의 저격 소대는 어디까지나 대인 전투 지원 부대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편제되지도 않을 화기였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이 작전이 매우 특이한 상황이거나, 사람이 아닌 상대를 만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혹은 원거리에 있는 적을 저격하는 일일 수도 있었고. 그걸 또 다르게, 매우 간단하게 말하자면.


원래 저격 소대의 임무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그 사실을 인지한 관측병의 얼굴은 지금 흙빛이 되어있었다.


“아까 봤지?”


“예?”


“이 총 사격하는 거. 내 옆에서 직접 봤잖아. 위력이 어마어마하지 않아? 나무 둥치에 표적을 달았더니 박살이 나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아, 예에…….”


긴장을 풀어주고, 또 이 총의 위력이 대단하니까 임무도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으라고 일부러 꺼낸 이야기였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얼은 잠시 관자놀이를 긁으며 고민을 하다가, 그냥 평소처럼 하기로 했다.


“야 임마!”


“커헉!”


정확하게 관자놀이에 손목뼈가 닿는 완벽한 헤드락. 뒷좌석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신음 소리가 들려오자 지프의 조수석에 타고 있는 백인 병사-3군 소속-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 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 하하하.”


그 병사가 헤드락을 걸고 있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한 병장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왜 그러긴, 네가 한심해서 그런다, 왜?”


한 번 더 꽉 조인 다음에 느슨하게 풀어주며,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 실전 경험 있는 거 알지?”


“예…….”


“거기 가서 느낀 게 하나 있는데, 뭐냐 하면, 죽을상을 하고 있는 녀석은 진짜 죽어버린다는 거야.”


“…….”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그러디?”


“에, 에이스라고 했지 말입니다.”


“그래, 에이스라고. 내가 이 소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에이스이기 때문에 특별히 뽑혀서 여기 있는 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진짜 네가 죽을 확률은 벼락 여섯 번 연속으로 맞고 죽을 확률보다야 조금 높은 정도라고. 알아들었냐?”


“…….”


묵묵부답. 하지만 굳이 긍정의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얼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매우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내가 살릴 거다. 나 같은 뛰어난 저격수가 관측병이 죽게 내버려둘 것 같아?”


“…….”


“뭐, 일단 이 정도로만 할까. 실전에 처음 나가면서 긴장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도착하는 건 적어도 내일 아침은 되어야 된다고 했다. 그나마 차량이 쉽게 다닐 수 있게 닦여진 비포장 길과, 오프로드 차량이 아니면 절대 못 달릴 것 같은 험한 길이 번갈아가며 계속 나오는 길을 밤새도록 달려야한다는 이야기. 그래도 눈을 붙여두는 게 좋다는 조수석에 있는 병사의 말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로 했다.


“너도 잠이나 자도록 해. 내가 뒤쪽에서 잘 테니, 너는 여기서 자면 될 거다.”


“예…….”


“대신에 뒤에 있는 모포는 내가 써도 되겠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얼른 뒤로 넘어가서 모포를 둘러쓰고 드러누웠다. 이동 중에 수면을 취할 준비를 미리 해둔 듯, 짐칸임에도 불구하고 모포 한 장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몸을 고정시켜 줄 벨트도 있었고.


심하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한참을 흔들이다가 다시 평탄한 길로 나오자 그럭저럭 편안히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지프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해당 지역 시간으로 오전 10시경. 작은 부대 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운전을 한 병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거수경례만 한번 하고 곧장 막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을 지휘소-Command Post, CP-로 안내한 건 조수석에 앉아있던 병사.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다양한 축척의 지도와 통신설비를 포함한 기게들, 그리고 두 명의 병사가 있었다. 관측병이 무장을 포함한 짐 일체를 한쪽에 내려놓는 동안, 이얼은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의자에 앉았다.


“여기 지휘관은 어디 있지?”


경례를 한 다음, 역시 의자에 앉은 두 명 중 왼쪽에 있는 흑인 병사(상병-Corporal, CPL)가 대답했다.


“지금 이 곳의 지휘관은 저희입니다. 원래는 장교 1명과 부사관 3명이 있었지만 모두 적에 의해 사살 당했습니다.”


“사살? 전투라도 있었나?”


“아닙니다. 전원 저격당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대는 원래 방어선에서 물러나 이 부대 근처에 최종저지선까지 밀려나 있습니다. 그리고 지휘는 저희 선임 분대장이 임시로 맡고 있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이얼을 안내한 병사가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진행되었다.


저격은 오로지 간부급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이틀 전 행정담당 병장이 죽은 후 방어선을 후퇴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저격은 잠잠해졌고, 지금은 최대한 최종저지선을 방어하며 후방 지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럼 그 저격수를 처리하기 위해서 내가 온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가 그 저격수를 찾기 위해 수색 작전을 펼치는 중에 매우 특이한 포인트를 발견했는데, 그 곳에서의 작전을 위해 1급 저격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특이한 포인트?”


“예. 지형은 언덕 위에서 상대를 내려다보는 형태인데,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적의 방어진지 중에서 중요한 곳을 바로 직사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 장소를 저격해 달라는 말. 그런데 자신은 원래 쓰던 SR-25가 아니라 바렛을 받아왔다는 건 그 거리가 상당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거리를 물어보았다.


“저희 관측으로는 약 1.5km 정도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장거리 저격이 가능한 인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 상황에서 적의 방어진지가 내려다보이는 저격 포인트가 있고, 굳이 저격수를 여기에 보냈다. 그 이야기에서 이얼은 매우 간단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설마 나한테 리벤지를 하라는 건 아니겠지?”


“아마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사실 지휘자를 먼저 지원해달라고 했는데, 저격을 하실 분이 먼저 오신 걸로 봐서는 상부의 의지가 확고한 듯합니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이얼이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왠지 기분 나쁜 임무로군. 뭐, 일단 좀 쉬었으면 하는데 자리는 있나?”


“예. 숙소도 마련해두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죽은 부대장의 방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아아, 상관없어. 어딘지 안내나 해줘.”


새삼스레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예민하진 않았다. 그리고 시체 바로 옆에서 매복하며 저격을 한 적도 있는 만큼, 이 정도는 별 일도 아닌 축에 속했다. 단지, 들어가는 도중에 관측병의 방은 죽은 사람의 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확인했다.


지금도 상태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 마당에 죽은 사람의 방에서 잔다고 하면 진짜 패닉에 빠져버릴 지도 모르니까.


문득, 이번 임무 잘 할 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걸 고개를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가로저어 넘겨버리고는 막사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일단 해당되는 장소를 살펴보기로 했다. 바렛을 설치할 방향과 각도도 잡아야하니까 장비는 모두 들고 가는 건 당연한 일. 그나마 탄을 비상용으로 몇 발 정도만 들고 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13kg이나 되는 총을 메고 가려니 꽤나 힘들었다. 그나마 근처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도착한 다음에 올라갈 언덕에는 보통의 반 정도 깊이 밖에 안 되고 바닥도 제대로 안 닦여진 교통호를 따라 올라가야만 했다.


정글 속에, 큰 나무들을 피해서 만들어진 교통호. 그 구불구불하고 바닥도 제대로 안 닦여져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다가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 경사도 가팔라서 진짜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며 겨우 정상 근처까지 올라갔다.


“자, 여깁니다.”


정상보다 조금 낮은, 8부 능선 정도에서 옆으로 돌아서 가다보니 꽤 신경 써서 만든 진지가 나왔다. 적진이 있다는 방향을 향해 조금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지형 위에, 관측하기에 적절한 형태로 잘 만들어져있는 진지. 그리고 총을 겨누고 엎드린 채로 사격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져있었다.


“우선 만약을 대비해서, 여기서부터 진지 안으로는 몸을 숙이고 들어가야 합니다. 나무들도 가려놓기는 했지만 관측당할 위험이 충분히 있으니.”


안내는 분대장 중에 한명이 하고 있었다. 다른 한명은 부대 지휘자로서 지휘실에 남아있었고. 또 그 분대장의 뒤를 따라, 여기에서 적진을 관찰한다는 병사도 같이 와있었다.


진지는 넓어서 네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조금 오른쪽 편으로 보면 적의 진지가 보입니다. 위장이 되어 있어서 잘 보이진 않을 텐데, 이걸로 보시죠.”


분대장이 내준 것은 스테이너-Steiner- 쌍안경. 규격은 7×50. 특수부대에나 지급되는 물건인데 이걸 일개 부대 분대장이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대놓고 물어보았다.


“지급품이 아니라, 제가 따로 산 겁니다. 취미가 천체 관측인데 작전 지역마다 천체망원경을 들고 다닐 수는 없다보니…….”


어쨌든, 관측병이 들고 있는 M24 쌍안경(후지논 7×28 규격)보다 왠지 성능은 더욱 좋은 듯 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기본 배율이 7배인 점은 똑같겠지만, 렌즈가 2배에 가까운 탓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여기에서 적진 관측을 한다는 병사가 가리키는 대로 조금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돌렸더니 초록색만이 가득한 시야에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때마침, 이라고 할까 진지를 지키는 병력이 교대를 하는 중이었다.


“야간에는 순찰을 도는 듯 한 인원도 있습니다. 자세하게는 안 보이지만 지휘관이나 간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낮이라 진지 바깥쪽에 서서 경계 중이지만 야간에는 진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붕이 있다 보니 야간에는 관측이 어렵긴 하지만, 쌍안경으로도 간부의 머리 부분이 보이는 걸로 봐서 저격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이 위치에서라면 진지 내부에 있는 사람도 저격이 가능하겠군. 야간에 간부가 순찰을 돌 정도라면 나름 중요한 진지일 텐데 이렇게 사각 관리가 허술하다니, 머리에 총 좀 맞아도 뭐라고 못 하겠지, 안 그래?”


이얼은 슬쩍 관측병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도 긴장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말입니다.”


관측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격을 해야 하는 위치가 상대에게는 사각에 가까운 곳이고, 또 임무 자체가 간단하다는 걸 알고 나니 많이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바렛을 놓을 위치를 몇 번에 걸쳐서 확실하게 잡은 다음, 우선 물러나기로 했다. 간부가 순찰을 도는 시간은 새벽 1시경과 4시경에 한번 씩. 그리고 지금은 오후 3시. 저녁도 먹고 수면도 취한 다음 새벽 3시경에 다시 자리를 잡는 걸로 정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교통호를 따라 조용히 이동했다. 몸을 가릴 만큼은 아니어도 길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인근 지역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에 낮처럼 소리를 내며 이동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지만, 밤이라 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사방 수 킬로미터까지 들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유용했다.


낮과는 다르게 분대장 한명을 포함해서 10여명이 이얼과 함께 이동 중이었다. 저격 이후에 만약 위치가 드러난다면 이얼을 보호하며 신속히 빠져나가기 위한 예비 인원이었다.


진지 인근에 도착하자, 모두 조를 짜서 흩어졌다. 그리고 이얼과 관측병은 낮처럼 몸을 숙이고 기어가 바렛을 포인트에 장착했다.


“신호, 부탁한다.”


“예.”


정해진 위치에 목표가 위치하면 관측병이 신호를 보내고, 그에 맞춰 바로 방아쇠를 어긋나지 않게 당긴다. 스코프를 들여다보며 풍속이나 습도에 따라 약간씩 각도를 조정했다. 야시 능력이 있는 스코프가 아니고, 단지 풍속과 습도를 통해 오차 자동 계산을 하는 정도의 인텔리전스 사이트이다 보니 직접 조준 사격은 무리고 미리 준비해둔 포인트에 정확하게 사격하는 용도로 쓸 수밖에 없었다.


관측병은 평소에 쓰던 것과는 다르게 야간 투시 장비인 Phantom150이라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군용 물품은 아니고 뉴콘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민간용 일반 야간 투시 장비로 이번 작전을 위해서 급히 구하다보니 이런 걸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관측병은 야간 투시경을 눈에다 대고 배율을 무조건 최대로 하여 진지 쪽만 쳐다보았다.


“확실히 쌍안경처럼 확실하게 보는 건 힘든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움직이는 거라고는 그 녀석들 밖에 없을 테니 구별은 될 거야.”


소곤소곤. 바싹 붙어있는 두 사람이니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로 딱 이 말만 주고받았다. 대화를 길게 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상대에게 발각될 수도 있으니까. 1.5km가 약간 넘는 거리라고 해도 밤중에는 목소리가 들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엎드려서 기다리길 약 30분여. 관측병의 시야에 드디어 진지를 향해 움직이는 매우 작은 물체가 잡혔다. 약간씩 흔들리면서 움직이는 게 뚜벅뚜벅 걸어 올라오는 형상임이 분명했다.


“왔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이얼이, 얼른 자세를 잡았다. 움직이지 않게, 정확하게 미리 조준해둔 대로 사격한다. 이 생각만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인영이 진지 뒤로 돌아가더니, 곧 이 쪽에서 보이는 틈새로 지금가지와는 다른 새로운 그림자가 들어왔다. 이얼이 노리고 있는 바로 한가운데로.


“지금!”


흔들리지 않게, 미리 호흡을 조절해둔 상태. 바로 당겼다. 타―――앙,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만한 커다란 총성이 대기를 갈랐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우와악!”


순간, 목표진지가 폭발했다. 그리고 야시경으로 진지 쪽을 보고 있던 관측병의 눈에 아주 잠깐이지만 과다한 빛이 들어왔다. 차단 기능이 있어서 즉시 기능이 꺼지긴 했지만, 엄청난 광량을 눈에 담고야 말았다.


반대로 이얼의 시야에는 이제 진지 쪽의 상황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폭발과 함께 치솟아 오른 불꽃이 주변을 밝혀준 덕분이었다. 그런 그 시야에 믿기 힘든 모습이 들어왔다.


폭발과 함께 날아간 인영(人影)은 인간이 아니라 무생물, 마네킹 같은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일제히 밝혀지는 불빛. 또 마지막으로, 정확히 이쪽을 향하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건――


“엎드려!”


몸을 옆으로 굴러 진지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관측병은 무슨 일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 하고 멍하니 서있는 상태. “얼른!”하고 소리를 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관측병의 무릎 밑을 힘껏 걷어찼다. 앞으로 넘어뜨려서라도 피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퍽.


아주 약간 옆으로 쓰러진 관측병의 몸이 심하게 튀어 올랐다가 진지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단, 그것은 몸 뿐. 머리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버려, 아주 약간 남아있는 턱뼈 위로 피가 쿨렁쿨렁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젠장……!”


순간, 이번에는 진지 뒤쪽에서 연이어 총성이 들려왔다. 이미 포위당한 상황에서 지원을 위해 온 병력이 공격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과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얼은 진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관측병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의 무기를 챙기기로 했다. M4A1카빈과, 전술 조끼에 들어있는 탄 75발 및 장전되어있는 15발. 그리고 수류탄 2개와 야간 작전을 위한 섬광탄 1개. 서바이벌 나이프는 이얼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넘어가고, 야간 투시경도 고장이 난 건 아니라 챙겼다.


이얼이 가지고 있는 건 바렛과 그 탄 9발. 10발 박스탄창에서 한발을 사용한 상태였다. 그리고 P.Beretta M-9 권총과 탄 15발. 약실에는 장전이 되어있지 않아서 그것뿐이었다. 장전이 된 상태로 가득 찬 탄창을 꽂았다면 16발이었으리라.


잠시 생각한 끝에, 우선 자신이 입고 있는 전술 조끼를 벗었다. 어차피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서 M-9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안 들어있었기 때문에 관측병의 무기를 일일이 빼는 것보다는 통째로 갈아입는 쪽이 나았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벗겨서 자신이 입는 동안, 뒤에서 들리던 총성도 거의 사라져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동해야 하는 상황. 중요한 건, 바렛을 들고 가야 하는지, 버리고 가야 하는지 이걸 결정해야 했다.


13kg에 육박하는 무게,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기 유리한 총은 누가 뭐래도 저격총이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 바렛을 뒤쪽으로 메서 고정시키고, M4카빈을 총구가 앞쪽을 향할 수 있도록 비끄러매었다. 마지막으로 원래 자신이 입고 있던 전술 조끼에서 M-9을 빼내 지금 입고 있는 전술 조끼에 적당히 쑤셔 넣은 다음.


진지 앞 벽을 뛰어넘은 다음, 경사를 이용해 굴러 내려갔다. 진지에서 조금 왼쪽으로 내려가면 곧장 숲이 있었기 때문에 저격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반은 구르고 반은 달려 내려간 다음, 평지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 그것만 생각하며 최대한 신속히 적도 아군도 없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