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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SF Hotel Epitar

2010.11.19 07:15

윤주[尹主] 조회 수:414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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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삶에 찌든 사람들은 모두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 동안 뜬구름 같은 소문으로만 치부하던 나 또한, 녹초가 된 몸과 그 몸보다 더 낡고 초라해 노새 같은 중고 자동차를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지금의 캘리포니아를 본다면 구시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난 수 년 사이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발달한 주가 되었다. 그 정도는 수도인 워싱턴조차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같은 번영을 낳은 건 오렌지도, 유명한 실리콘 밸리도, 전 세계 오락 영화를 쥐어 잡는 할리우드도 아니라는 사실 또한 옛 사람들에겐 깜짝 놀랄 법한 일이겠지. 그렇다. 모든 건 다 저 빌어먹을 원반 때문이다. 젠장맞을. 라스베이거스 무색하리만치 소문만 무성한, 지상 위의 유일한 낙원. 다만 70층 이상 빌딩 위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것도 지상 위에 있다고 인정해준다 치면.



 원반은 우주에서 왔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에서 찾아온 인류 최초의 낙원이라고 하는 게 옳을는지도 모르겠다. LA 시 절반을 그림자로 덮을 정도로 거대한 원반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전 지구가 마치 옛날 영화에서처럼 발칵 뒤집혔었다. 뭐였더라? 제목이,<인디펜던스…>. 암튼 독립 관련된 이름이었던 건 분명하다.



 다만 영화에서와 달리 실제 지구를 첫 방문한 외계인들은 무척이나 친절하고 또 예의발랐다. 핵미사일이 조준 장전되고 각 기지에 흩어진 비행기들이 이륙 준비를 막 마친 그 때에 외계인들은 지구인들의 통신을 이용해 그들에겐 악의가 없으며, 어디까지나 지구인과 평화적인 통상을 바랄 뿐이라고 얘기해 왔다. 아울러 이를 증명하기 위해 비무장 상태인 사절단을 지구인들이 지정하는 장소에 먼저 전송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뒤의 일은 어떻게 되었냐고? 제길, 내가 알 게 뭐야? 내 집 카우치에 몸을 반쯤 파묻고 앉아 TV로 지켜봤을 뿐인데. 끔찍한 나의 집. 음침하고, 칙칙하고, 벌써 한 달 가까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여편네 싸구려 향수 냄새가 지겹도록 가시지 않는 그 놈의 집구석. 좋다, 뭐 이젠 내 집도 아니지. 재작년 여편네 극성에 못 이겨 집수리한답시고 대출받은 돈 대신 은행에 담보로 넘겨버렸으니까.
 암튼 여차저차해서 디트로이트 시를 도망치듯 나온 뒤, 고속도로를 타고 정신없이 달려 온 곳이 이 캘리포니아다. 낙오자들의 천국, 지상 낙원. 인류가 선심 쓰듯 외계인들에게 떡 하니 떼어준 LA 도심 한 빌딩은 이제 '에피타르 호텔'이라는 간판을 떡 하니 로비에 걸어놓은 채 머나먼 우주에서 온 이들의 대사관이자 교역소역을 하고 있었다. 뭘 교역하느냐고? 글쎄, 그게 난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말이지.



 "저희는 여러분의 환상을 사기 위해 이 별에 왔답니다."



 빌딩 로비에서 나를 반가이 맞아준 여자 외계인(물론 외계인들의 성별 구분이 인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 여자다. 다만 외모에 대한 외계인들의 미적 감각은 인간과 크게 차이가 없는 모양인지, 그 '안내원 양'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웠다.)은 저렇게 말했다. 환상을 산다고? 어쩐지 아리송한 얘기다.



 "저희의 연구에 따르면, 한 문명의 수준은 그 문명이 거래하는 품목의 종류에 따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러분 지구인들은 물리적 물품 이외에도 지식이라던 지, 아이디어 같은 것들도 거래한다고 하더군요."



 저작권이라던 지, 지식사회라는 말도 있으니 아마 그럴 거다. 장담하진 못해도.



 "저희 문명은 이미 10여 세기 전에 물리적 물품의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모든 물질은 개인의 필요에 따라 거의 무한정으로 제공됩니다. 따라서 쓸데없이 사고 팔 필요가 없지요. 한편으론, 지식이나 아이디어는 저희 역시 아직까지 거래하고 있습니다. 즉 어떻게 하면 비행선이 더 정확하게 목표지까지 자동 운항할 수 있을까, 혹은 우주상 공간 좌표를 읽어내는 보다 쉬운 방법은 없을까 같은 것들 말예요."



 그런 건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면서 안내원 양은 매력적으로 웃었다. 아랫도리가 묘하게 근질거렸다.



 "수 세기 전부터 저희는 새로운 거래 대상을 찾아냈습니다. 개개인이 가진 환상, 꿈, 이야기 같은 것이죠. 어떻게 보면 당신들에게도 이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만은 아닐 겁니다. 영화라던가, 소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사고 팔리는 것과 비슷하니까요."



 다만 저희는 보다 세련된 수단을 사용합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저희가 환상이나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가 필요 없지요. 그저 거래소에 가서 직원에게 용건을 얘기하기만 하면 되요. 그러면 직원이 내부로 안내해주고, 여러분 자신조차 잊고 있던 은밀한 환상, 머릿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이야기까지 모두 꺼내어 재생시킬 겁니다. 그러면 수십만, 경우에 따라선 수십억이 다 함께 그 환상을 보고 공감, 스릴, 쾌락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당신도요. 물론 당신이 자기 환상을 팔겠다고 결정한다면, 다른 이들 같은 심리적 만족감 외에도 적잖은 보수를 받겠지만요."



 보수는 얼마나 되요? 내가 묻자 그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그럼 내 경우엔 어떻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기기를 품에서 꺼냈다. 수첩처럼 네모반듯한 판 위에 손으로 무언가를 끼적이던 여자는 잠시 뒤 내게도 그 수첩 같은 기기 앞면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나타난 건 내게도 익숙한 아라비아 숫자였다. 한참 동안 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갑자기 이 여자가 내게 아라비아 숫자를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 답이 떠오름과 동시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 마이 갓! 그 무색투명한 판에 떠오른 아라비아 숫자가 내 생각대로 보수라면, 난 단 한 번 꿈을 팔아 주택 담보 대출을 다 갚고도 넘칠 돈을 손에 만져보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갑자기 안내원 양은 목소리를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당신의 꿈은, 여자를 품에 안는 것이지요?"



 속을 들킨 나는 깜짝 놀라 안내원 양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띠고, 매혹적인 시선을 보내는 그녀 앞에서 나는 첫 경험을 앞둔 총각처럼 잔뜩 졸아 있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해왔던 이상형 그 자체였다. 갸름한 얼굴, 그렇다고 너무 마르진 않은, 적당히 풍만한 몸매, 무엇보다 그 입술! 안젤리나 졸리조차 그녀 입술 앞에선 빛을 잃게 되리라.



 "당신 꿈을 팔아요. 그럼 우리는 쾌락을 얻고, 당신 또한 나를 안고 돈을 받겠죠. 새 출발을 하기엔 충분할 만큼의 돈을."



 아무렴, 그렇고말고. 그 허름한 돼지우리 따위 은행에서 가져가건 말건 마음대로 하라지. 난 안내원 양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도리어 제 손으로 내 손 위를 덮었다. 곧 우리 두 사람은 다정한 연인의 포즈로 환상을 거래한다는 방으로 사이좋게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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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생각만 해놓고 쓰진 않았던 글입니다.


 짧지만 일단 두 회로 나눠 올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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