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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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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현아는 바에서 나와 골목길을 걸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서 현아가 걸친 얇은 코트만으론 찬바람을 다 막을 수 없었다. 현아가 마른 재채기를 하자 남자는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현아 목에 둘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현아는 훨씬 따뜻하다고 느꼈다. 현아는 상대 남자 얼굴을 보았다.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꽝이다 싶은 얼굴은 아니었다. 뭐 좋아, 나름 매너도 있고, 제법 여자 배려해 줄줄도 아는걸. 한 시간 가까이 혼자 되게 놔둔 건 봐줄 수 있지. 술값도 대신 내줬는데, 속는 셈 치고 한 번 데려가는 데로 따라가 버려?
 이런저런 묘한 생각들이 현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술기운 탓이고, 또 마녀 덕분에 기분이 다소 풀렸기 때문이리라. 그 바람에 이선에 대해 가졌던 무거운 책임감도 훨씬 줄어 있었다. 평생 단 한 번 남자를, 그것도 인간을 사귀어본 적 없긴 했지만 뭐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 원나잇 정도는 가볍게 생각할 정도로 바를 나서는 현아 기분은 적절히 유쾌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즐거웠던 기분은 순식간에 산산 조각나 버렸다.



 "여, 아가씨. 아까 그 친구들은 어디 갔나봐?"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현아는 삽시간에 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남자에게 기댔던 몸을 똑바로 세우고 뒤로 돌아 상대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그보다 먼저 누군가 자기 팔을 붙잡고 홱 잡아당기지만 않았더라면.



 "꺅!"
 "아악!"



 자신을 잡아당긴 상대를 확인하기 전에 현아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현아를 데려온 남자를 둔기로 내리쳤다. 남자는 신음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상대방은 몇 차례인가 더 그를 향해 둔기를 휘둘러댔다.



 "그러지 마요!"



 현아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를 잡고 있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손 좀 봐주는 거뿐이니까. 근데 아가씨. 우리 이 남자한텐 용건 없는데? 아까 그 친구들인가 하는 년들 말이야. 그 년들 지금 어디 있어?"


 


 목소리는 틀림없이 아까 바에서 치근덕대던 그 치들이었다. 아까 망신살 뻗친 분을 여기서 푸는 거야? 현아는 어처구니없어했지만 일단은 순순히 대답을 했다.



 "몰라요, 저도. 그 사람들 저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아가씨 아깐 친구라며. 근데 왜 지금은 거짓말을 해?"
 "그건 그러니까."



 현아가 대답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자 다시 쓰러진 남자에게 몇 차례 폭력이 더 가해졌다. 현아는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그녀 손목을 잡은 남자가 놓아줄 리 만무했다. 현아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넨 참 웃기는 족속이야."



 현아가 뱉은 말을 듣고 남자는 다른 동료들에게 멈추라고 눈짓을 보냈다. 바닥에 누운 사내를 두들겨 패던 그들은 손을 멈추고 잠시 물러서서 남자와 현아를 보았다.



 "뭐라고? 다시 말해보지?"
 "사내새끼란 것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교양 없고, 인정머리 없고, 철딱서니 없고. 그래서 웃기다고 했는데. 왜? 꼽냐?"



 대답 대신 남자는 현아의 멱살을 쥐었다. 현아는 그 손을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다른 손을 들어 현아의 뺨을 때렸다. 현아는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입 안에선 이상한 철분 맛이 느껴졌다.



 "그래, 마침 기분도 꿀꿀했는데 잘 됐지 뭐."



 현아가 좀처럼 기세를 굽히지 않는 걸 남자는 이상하게 여겼다. 다음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멱살을 쥐었던 손을 놓아야 했다. 손아귀 안에 겨우 들어갈 정도 커다랗고 시커먼 거미 한 마리가 현아의 목을 타고 올라와 남자 팔을 타고 올랐다.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자 다른 녀석들도 하나 둘 현아와 남자 쪽으로 다가오려 했다. 그들은 곧 몸을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없단 사실을 깨닫고 당황했다. 무색투명한 가는 실 같은 것들이 여러 가닥 그들의 몸을 옭죄고 있었다.


 


 "너희 인간은 너무 오랫동안 약조를 잊고 지냈어."



 그들 사이에서 현아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어느 누구도 현아에게 다가가거나 입을 열어 비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입은 전부 하나같이 새하얀 실뭉치같은 것에 덮여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찌 보면 그것들은 간혹 풀잎이나 나뭇가지에 친 거미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도를 지킨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넘어설 안 될 선이 어떤 건지도 모르지. 심지어 우리가 있단 것조차 잊고 사는 것 같아.
 불쌍한 아해들아. 너희 조상들이 우리와 약속을 했거든? 인간은 이 세상에서 정도를 지키고, 우리 야수들은 저 세상에서 정도를 지키기로. 그래서 정도가 지켜지고 있단 사실을 서로 잊지 않기로."



 현아의 두 눈은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사내들은 겁에 질려 있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오직 단 한 사람, 현아를 데려온 술친구 하나만 무사했지만 그는 진작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정신 차리자마자 부리나케 도망간 것이다. 현아는 그것을 깨닫고 씁쓸히 웃었다. 지금 같은 기분으로는, 도저히 이 사내들에게 공정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근데 말이지. 정도는 진작 무너져 버렸어. 경계도 무너져 버렸고, 심지어 우리 자체도 잊혀 버렸어. 근데 내가 너네한테 지켜야 할 의리가 아직도 남아 있긴 한 걸까?"



 현아가 가볍게 손짓을 한 번 하자 어디서부턴가 다시 투명한 끈 여러 줄이 날아와 사내들의 목에 감겼다. 한 사람당 수십 가닥씩, 그 끈 뭉치들은 사내들의 두꺼운 목에 감겨 단단히 조르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애를 썼지만 하나둘 정신을 잃고 거품을 물며 쓰러져갔다.
 그런 그들에게 현아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주(蜘蛛)가 뭔지, 너네가 알긴 하니?"



 당연지만 대답은 아무에게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축 늘어진 남자들을 보며 현아는 한숨 쉬며 다시 손짓을 했다. 사내들에게 감겨 있던 무색투명한 실들은 전부 사방으로 흩어져 형체 없이 사라져 버렸다. 더러는 간신히 숨이 붙어 있고, 또 더러는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시신이 되어 다 같이 널브러진 사이를 현아는 태연자약하게 통과했다. 집에 가는 길로는 그 골목을 지나는 게 가장 빨랐다.


 


 


 현아가 다녀왔어, 하면서 대문을 연 건, 그로부터 10여분쯤 지난 후였다. 어김없이 현아는 곧바로 죽은 척하는 이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쪽 벽에 기댄 체 축 늘어져선, 웬 끈으로 목을 조르듯 묶은 모습이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현아는 이선 곁에 나란히 기대앉았다. 여전히 무표정하고, 움직임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시체를 보면서 현아는 한숨을 쉬었다.



 "있지, 오늘은 이상한 애들을 만났어. 할로윈 마녀라고 하면서, 아 그러고 보니 금방 할로윈인가? 암튼 그 사람이 그러더라? 네가 이렇게 매번 죽은 척하는 거, 어쩌면 나름 감정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넋두리처럼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더니 현아는 잠깐 이선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다. 현아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떠보았다.



 "정말이야, 그거?"



 한참이 지나도 이선은 대답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혼인이란 주술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는 근 한 달간 체험해온 현아가 잘 알았다. 결국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 현아는 피식 웃으며 이선의 차갑고 힘이 완전히 빠진 손을 그녀 다리 위로 올리곤 그 위에 자기 손 양쪽 모두를 겹쳐 올렸다.



 "아,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남자란 놈은 겨우 그깟 거에 겁먹고 도망쳐 버리고, 시비 트던 녀석들도 사실은 약해 빠졌고. 괜히 힘만 낭비했지 뭐야.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우리 이해해줄 인간 따위 없단 건. 그렇지, 이선아?"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다. 이선의 한 손을 잡은 채 현아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조금 쉬면서 이선이 깨기만을 기다릴 참이었다. 기대하지 못한 낯선 느낌에 놀라 눈뜨기 전까지는.



 "!!"



 현아는 믿기지 않는단 듯 이선의 다리 위를 보았다. 현아의 두 손이 이선의 왼손을 감싸 쥐고 있던 건 방금 전과 같았다. 달라진 건 이선의 왼손을 위에서 덮은 현아의 오른손 위로, 이선이 제 오른손을 올려놓은 것뿐이었다.
 현아는 곧장 바깥부터 확인했다. 아직 해가 떠오르려면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번엔 다시 이선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하고 생기 없는 얼굴이다. 이선이 아직 깰 시간이 아닌 건 분명했다. 그럼 어떻게 그녀는 제 손을 움직여 현아의 손을 붙잡은 걸까?
 너무도 의외였던 탓에 현아는 처음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현아는 자기 손을 덮은 이선의 손에 서서히 익숙해졌다. 이윽고 그녀는 자기가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곤 이선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댔다.



 "역시, 나 알아주는 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뿐일 거야."


 


 마녀 말이 옳았을지 모른다.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지독히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여전했다. 한때 현아도 그들 사이에 누군가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선 확실해졌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잠시 피해가지도 않으면서 계속, 영원히 함께일 수 있는 건 이선 외엔 없었다. 한두 번 술이나 사준답시고 접근하는 사내들에겐 애초부터 무리였고.
 매일 밤 이선이 죽은 척하는 것도, 또 현아가 매일 밤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 사랑을 나누는 형태일진 모르는 일 아닌가. 비록 남들 보기엔 다소 이상한 형태라도 현아는,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것 아니겠냐고 여겼다. 아마 이선 역시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으며.
 맞잡은 손을 통해 현아는 묘한 경험을 했다. 두 사람에게 따로 나뉘어져 각자 다른 박동으로 뛰던 심장이 서로 손으로 이어진 그 순간 서서히 박동을 조절해가더니 이윽고 상대와 완전히 같은 박동수를 맞추어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착각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혼인으로 저주받은 자신의 사랑이 여전히 건재하단 증거라며 현아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때에 멀찌감치서 동이 터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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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선지 그녀는 매일 밤 죽은 척한다> 이걸로 완결짓습니다;;


 괴상한 제목이고 내용이지만, 사실 소재는 다른 데서 빌려온 거에요. 아래 링크만 올려놉니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80E0BC78314DD2E1D989BBC72B7A66561CB9&outKey=V128262a048067127397364baedd96bed6a22849e45735e8a51a464baedd96bed6a22


 


 노래가 너무 좋아서 참고해 봤는데, 아무래도 글 내용이 많이 엇나가죠? ㅎㅎ


 그럼 또 다른 글 쓰면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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