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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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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마친 현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녀가 힐끔 눈치를 보곤 칵테일 세 잔을 시켰다. 하나는 마시지도 못하는 반려 몫, 다른 두 개는 자신과 현아의 몫.
 바텐더가 내려놓은 칵테일을 현아는 확인도 않고 들이마셨다. 마녀는 제 잔을 받고 제 반려 몫을 빤히 쳐다보다가 마치 그 움직이지 않는 반려가 신경이라도 쓸 것처럼 슬쩍 제 것과 반려 것을 맞바꿔놓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반려에게 갔던 잔을 입에 대었다 내려놓으며, 마녀는 현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게 고민이란 말이지?"



 현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녀는 다시 한 모금 제 칵테일을 들이켰다 내려놓았다. 이미 마녀의 잔은 절반가량이 비어 있었다.



 "글쎄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네 여친은 간단히 말하면 그냥 관심 끌고 싶었던 거야. 왜, 가끔 있잖아? 자살 소동을 벌인달지, 어린 애들이 손목을 긋는달지 하는 일들. 결국 어느 정도는 다들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거든."
 "제가, 이선이 걔를 잘 못 돌보고 있다는 건가요?"



 탕, 주먹으로 바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 누가 봐도 현아는 지나치게 발끈했다. 마녀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태연스럽게 대응했다.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했네요. 성질 급한 아가씨야."
 "전요, 정말 누구보다 걔를 사랑하거든요? 진짜 단 한 시라도 그 애 생각을 안 해 본 적이 없어요."



 이건 거의 술주정인데? 횡설수설 떠드는 현아를 보며 마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가 비운 잔이 적지 않다는 건 직접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한 마녀가 더 잘 알았다.
 마녀가 웃는 줄도 모르고 현아는 거의 얼굴이 테이블에 달라붙었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숙인 채 고개만 살짝 기울였다, 모로 돌렸다 하면서 곁눈질로 마녀를 보며 말을 계속했다.



 "알았다. 저 혼자 이러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죠? 치, 모르는 소리 말아요. 전엔 이선이 걔도 자주 여기 데리고 오곤 했어요. 둘이 같이 나란히, 전 여기에 앉고, 이선이 걘 거기! 지금 당신 앉아있는 그 자리에 앉고. 근데! 바에만 오면 왜 그렇게 치근덕대는 사람이 많냔 말이야! 딱 보면 임자 있는 줄 몰라? 괜히 한 번 찔러나 보자 식으로, 이쪽에서 한 번, 또 저 쪽에서 한 번."
 "아무래도 좋으니까 제발 딴 사람들 시비만 걸지 말아주라?"



 반쯤 농담으로 마녀가 현아에게 말했다. 현아는 두어 번 더 테이블을 탕탕, 내리치기만 할 뿐 별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저 하던 이야기만 계속할 뿐이었다.



 "내 사람, 내 여잔데 누가 치근덕대는 거 보고 있기 싫었어. 그것보다 보기 싫었던 게 뭔 줄 알아! 그러~엏게 이쁜 얘인데, 왜 남들처럼 웃지를 못하느냐고. 전에는 그런 수작도 장난처럼 웃어넘기고, 또 나 보면서 질투하느냐고 놀리고, 깔깔대고, 그래도 제일 사랑한다고 얘기도 해줬는데. 이젠 아무 것도 못하지. 웃지도 않고, 놀리지도 않고, 사랑한단 얘기를 해 주지도 않아. 겨우 여기까지 데려 왔는데, 멀뚱하니 걔 혼자 인형처럼 앉아 있으면 얼마나 보기 흉한지 알아?
 마녀 언니, 뭐라고 불러야 좋을 진 모르지만 그냥 언니라고 부를게.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딴 혼인을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에라도 가능하다면 싹 취소해 버려요. 진짜 언니가 저 여자 사랑하는 거면, 이건 진짜 못할 짓이래두? 이게 무슨 사랑이야. 그냥 괴롭히고, 괴롭게 되고. 둘 다 괴로워지는 것뿐이지.
 내 평생 혼인만큼 후회스러웠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건 자신할 수 있으니까."



 마지막 말까지 해놓고 현아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도 마녀는 토닥여주거나 달래지 않고 그 상태로 놓아두었다. 그저 자기 술잔만을 홀짝여 비우고, 또 아직 한 모금도 비우지 않은 제 반려 술잔을 힐끔 곁눈질로 눈독들일 뿐이었다.


 


 


 바 안에 손님들은 많이 사라지고 없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중 몇몇은 현아가 울기 시작한 때부터 조용히 하나둘 자리를 떴다. 남 신세 한탄이나 술에 취해 볼썽사납게 우는 장면만큼 봐주기 힘든 모습도 없을 테니까.
 여태껏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현아와 마녀, 그리고 마녀의 반려를 제외하곤 한 개 테이블뿐이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중년 남자 한 사람이 그 테이블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바텐더는 일부러 그 손님을 깨워 쫓아 보내지 않았다. 손님 없는 밤, 어차피 빈 테이블에 그런 사람 한 명 정돈 있어도 문제없겠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현아에게서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을 무렵, 그때까지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유일한 인물인 마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해. 우리 반려, 사랑스런 단짝이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할까 하고."



 그건 너랑 같다? 현아를 보며 마녀는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잘은 모르지만 이선인가? 걔도 마찬가지일 거야. 답답하고, 지루한 건 당연하리라 생각해. 그런 걔지만. 아니, 오히려 그런 상태라서 그 얘도 일종의 자극이, 놀이가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자기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짝인 너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말이야."



 고개를 푹 숙인 채 바 테이블에 머리를 기댄 현아가 그 얘기를 듣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마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가 듣던, 듣지 않던 마녀는 그저 단순히 떠들고 싶어 했던 건지도 모른다.



 "다만 평범한 놀이론 안 돼. 그래선 12시간 가깝게 지루하고 답답했던 기분이 풀리지 않을 테니까. 그 애가 원하는 건 특별한 자극이고, 조금 모험이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어야 해. 얘, 그럼 적절한 선택 아니니? 죽음만큼 자극적인 게임이 어디 있겠어? 비록 진짜 죽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죽은 척만 한다고 해도 말이야."
 "언젠가부터 계속 집에만 두고 다녔어요. 이선이, 걔 말예요."



 어느 순간부터 정신이 들었던 건지 갑자기 현아가 입을 열었다. 고개는 여전히 숙인 상태라 마녀는 그녀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런 몸으로 매번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생각해보니 부담스러울 것 같고, 이런 데 와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못 견뎌 해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아까 했던 말들, 치근덕거리는 놈들 때문이라거나 걔 모습 보기 불편해서 데려오지 못했다는 게 다 거짓말이었단 건 아녜요."



 아니지, 어쩌면 오히려 그게 더 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아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을 바꾸었다.



 "어쩌면 사실 부담스러웠던 건 그 애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을 하고 현아는 어째선지 마녀 쪽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는 현아 스스로도 몰랐다. 갑자기 얼굴이 후끈거리고, 잔에 비친 자기 얼굴이 삽시간에 눈에 띄게 붉어진 게 문득 보였다. 방금 전까지 마셨던 술기운이 갑자기 한꺼번에 올라온 것뿐이야. 현아는 애써 자기방어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아. 이선이 걔는, 그냥 자기 나름대로 감정표현 한 것뿐이라고."



 일부러 현아 얼굴을 확인할 생각은 없는지, 마녀는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현아에겐 말을 건네기만 했다. 이따금 술을 마시고, 생각나면 한 번씩 제 반려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면서 그녀는 그저 자기 생각나는 대로 떠벌려대기만 했다.



 "네가 알아채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 왜냐면, 그건 그 애에게도 나름의 사랑과 관심 표현이니까. 아울러 이런 뜻이기도 하겠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네게도 사랑받고 관심 받고 싶어 한다는.
 지금 네가 고민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몰라. 오히려 네가 그럴 거라는 걸 이선 그 얘도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 얘, 생각해보렴. 혼인하기 전엔 서로 오해하고 상처입어본 적 단 한 번도 없었니? 그렇진 않을걸?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지금 너만큼 오해도 하고 상처도 입어. 밤낮이 서로 바뀌어 제대로 얘기조차 못 하는 우리들이 아니라, 매일 같이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커플들조차 말이야.
 그래도 결국 서로가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건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 사실 하나 뿐일걸? 난 이선 걔가 네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으로선 그런 일그러진 행동이 최선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어. 바쁘고 떨어져 있는 와중에도, 항상 서로만 생각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럴까요?"



 현아가 마녀에게 물었다. 진짜 그럴까요? 고민할 필요 없는 걸까요? 단지 이선 걔는 여전히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뿐일까요?
 마녀는 확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단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옴짝달싹 못하는 반려를 일으켜 옆에서 부축하듯 안고 서서 현아 등을 향해 마지막으로 딱 몇 마디만을 던져두고 떠났다.



 "그건 네가 직접 확인할 일이야."



 그 두 사람이 떠나고 놀랍게도, 사라졌던 술친구가 돌아와 잔뜩 취한 현아를 곁에서 부축해 주었다. 마녀가 왔다간 걸 모르는 그는 혼자 마셨다기엔 지나치게 많은 술값에 화들짝 놀랐지만 제법 신사답게 계산을 해 주었다. 몽롱한 와중에도 현아는 그 모습을 보곤 그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였다. 다음번엔 꼭 내가 살께.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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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차 올립니다.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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