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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혈액 중독자와 패배한 에란드 보이즈

2010.02.15 19:32

losnaHeeL 조회 수:339 추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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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5(1)을 좀 더 길게 끊어야 하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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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월의 부모는 매번 새로운 기술로 현월을 괴롭혔다. 새롭고 기묘했다. 기묘하고 역겨웠다. 역겹고, 그리고, 현월에게는 내심 기대하는 마음마저 생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창적이었다.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미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항시 새로운 것을 자신의 아들 앞에서 보이고자 함은 일종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항상 고문 도중에 즐거운 표정으로 즐겁게 수다를 떠는 것은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부모가 실천하고 있는 가족간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 아닐까. 이쑤시개로 이를 닦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현월이 내심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기대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월이 갖가지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끝내 깨달은 것은 그 행위에 사랑 따윈 깃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라면 아마 사랑보다는 자랑일 것이다. 그저 자신들의 역겨움을 자랑하고 싶을 뿐이다. 미소와 담소도 그 행위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아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디너타임 따위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생각한 뒤로 현월은 부모님이 신기술을 자랑하는 환청을 듣게 되었다. 현월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한마디씩 머릿속에서 제거해나가야만 했다.


 


오늘은 함께 차를 마시자꾸나.”


 


이런 말을 듣고 현월은 자신의 과거, 사랑의 존재를 착각한 것과 그 후에 겪어야만 했던 끔찍한 환청을 떠올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오늘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지우고 거실로 향했다.


 


준비된 것은 뿌연 김을 뱉어내며 쉰 소리를 내고 있는 주전자와 쿠키를 반죽하고 모양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갖가지 모양의 성형틀이었다.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상의를 벗고 개처럼 네발로 엎드리라는 신호였다. 현월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지시를 따랐다. 현월의 등은 기본적으로 하얗고 나이에 걸맞게 부드러웠지만, 온갖 종류의 흉터들은 그런 사실을 무참히 지워버렸다. 뜯기고, 찢기고, 찔리고, 어떤 방법으로 생긴 것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자잘한 흉터들이 그의 등을 뒤덮고 있었다. 현월은 자신의 등에 기생하는 흉터들이 오늘 일어날 일을 미리 예견하며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등이 간지러웠다.


 


아버지는 조용히 엎드린 현월의 등에 쿠키틀을 얹었고, 어머니는 말없이 주전자를 손에 들었다.


 


오늘은 녹차를 마실 거란다.”


 


아버지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녹차가 몸에 그렇게 좋다잖니.”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까이 다가와 주전자를 기울였다. 주전자가 울컥하고 물을 쏟아냈다. 뜨거운 액체가 현월의 등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수증기와 함께 현월의 피부가 벌겋게 상기됐다. 틀이 등에서 멀어졌다. 미지근해진 물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별 모양 쿠키틀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현월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한동안 말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틀을 얹고, 물을 붓고, 틀을 제거하고, 틀을 현월의 눈앞에 던져버리고, 다른 틀을 집어 들었다.


 


별 모양에 이어 달 모양, 곰돌이 모양, 잎사귀 모양, 클로버, 하트, 다이아, 스페이드 모양, 네잎클로버, 해골까지 다양한 모양의 틀이 쌓여갔다.


 


곧 현월의 등에는 물집이 잡혔다. 현월은 별 모양, 해골 모양 물집이 잡혔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현월의 등을 수놓은 귀여운 모양의 물집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말없이 이 방향 저 방향에서 관찰하던 그들은 이내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짓고 박수를 치며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까지 꺼내 온 부부는 현월의 등에 잔뜩 플래시를 터뜨리고 안방으로 사라져버렸다.


 


뭐가 그리 좋을까. 평소 그랬던 것처럼 혼자 남겨진 현월은 여전히 엎드린 채로 실소를 흘렸다. 아팠지만, 오늘은 덕분에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방으로 돌아온 현월은 등에 생긴 물집을 처리하기 위해 거울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등에 난 상처를 혼자서 처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동안 등을 더듬던 그는 결국 거울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리고는 방안을 서성이다가 침대에 뛰어들어버렸다. 바르게 누운 탓에 그 충격으로 물집 두세 개 정도는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미지근한 물이 현월의 등과 침대시트에 스며들었다.


 


현월은 평소처럼 칼날을 손등 위에 올렸지만, 생채기를 내거나, 피를 마시지는 않았다. 자신의 손등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째서 여태까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지 의아해하면서, 커터칼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스스로 낸 손등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 버리는 것일까? 현월의 등과 팔, 다리, 심지어는 입 안쪽마저도 크고 작은 흉터로 가득했다. 손등에도 자잘한 흉터들이 남아있었지만, 자신이 낸 상처는 단 한 개도 남지 않았다.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통해 흘러나온 피를 핥고, 그 피에 취해 꿈을 꾸고 나면 항상 손등은 상처를 내기 전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있을 리가 없는데도 여태까지 그 기이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은 어째서일까.


 


생각해보면, 피를 마시는 것으로 환상을 보고 정신적인 쾌감을 느낀다는 것부터가 충분히 괴상한 일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련의 불가능함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인지, 의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증식했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현상을 경험하고, 그런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편했기 때문인 것일까? 꿈을 꾸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상처가 사라지는 일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 와서 의문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까지나 아마도 라는 말을 붙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일이다. 확실한 이론 따윈 존재하지 않는 그런 현상이었고, 어떻게든 초월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순간, 현월은 운요의 말을 떠올렸다.


 


어떻게 알려지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수집자들이 네 존재를 눈치 챘어. 널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들이 노리는 것은 아마도 이 환상과 재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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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