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영웅의 발자취 1 - 도래(到來)

2010.08.11 05:57

비벗 조회 수:238 추천:3

extra_vars1 (그림은 릴리아입니다.) 
extra_vars2
extra_vars3 134942-1 
extra_vars4
extra_vars5
extra_vars6
extra_vars7  
extra_vars8  


아가씨들은 천진난만하게 떠들었다. 일행에게서 조금 떨어지자 릴
리아의 말수가 훨씬 많아졌다. 평소에 말이 없는 이유를 물어보자
그녀는 부끄러워했다.


 


“서투르니까. 다른 학자들이, 웃어서, 싫어.”


 


음. 소녀의 마음이로세.


 


유리에의 수다와 릴리아의 질문에 성실히 대꾸해주며 한 식경쯤
길을 걷자, 평평한 곳에 야영지가 하나 보였다. 먼저 몇 차례 이 길
로 왕복한 왕궁 기사들이 야영했던 곳이다. 일행은 그 곳에 짐을 풀
고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유리에는 작은 체구 어디에 그렇게 힘이
넘치는지 말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저 쪽에 가보자~ 아까 엄청 큰 나무가 있었어! 그치, 릴리아? 푸
로리, 같이 보고 오자, 응?”


 


“에이, 일행이랑 떨어지면 안 된다니까요? 마물이라도 나오면 두
분 다칠 수도 있어요.”


 


“다쳐도 된다니까?”


 


“안 돼요, 그럼 제가 죽으니까.”


 


유리에는 여태 말을 타고 오면서도 저걸 보러 가자느니, 잠깐만
더 있다가 가자느니 제멋대로인 요청을 해 댔었다. 나는 그녀를 말
리고 끌고 하느라 지쳐서 벌써 녹초였고. 자기 딴에는 이제 자리를
잡았으니 좀 돌아다녀도 되겠거니 싶었겠지만, 흥, 그렇게는 안 되
지.


 


내가 자리에 푹 주저앉으니 유리에는 울상을 지었다.


 


사실 혼자서라도 가겠다면 나로선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만, 그렇
게는 하지 않는 나름대로 착한 아가씨다.


 


그 착한 아가씨는 릴리아가 말에서 내리자 쪼르르 달려가서는 내
욕을 시작했다.


 


“푸로리가 나무 보러 안 간대에~ 나쁜 푸로리, 말도 안 듣구.”


 


그러고 나니 왠지 릴리아도 아쉬운 눈치를 보인다. 열여섯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가련한 소녀가 작은 찡그림을 얼굴에 그렸다. 그녀
의 저 표정은 왠지 내 양심을 쿡쿡 찔렀다.


 


“푸로리, 저기, 같이 가면, 안 돼?”


 


흐음. 저 나무인가?


 


다시 보니 그리 먼 곳은 아니다. 잠깐 갔다 와도 괜찮을 것 같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유리에가 내 손목을 잡
아끌었다. 그러면서 불퉁댄다.


 


“쳇, 푸로리는 릴리아 말만 들어.”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주 공정하게 다수결에 의거해 결정한 거
거든요?”


 


“피, 말도 안 돼.”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 일단 식사 준비를 빠진다는 메리트가 있
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조용히 쫓아오던 일드는 어쩔 줄 모르고
날 쳐다보고 있다.


 


“밥 준비 잘 해라~ 나 학자 두 분 모시고 잠깐 저기 다녀온다고
얘기하고.”


 


미안하지만 너까지 데려가는 건 4기 애들한테 미안한 일이라서.
내 이 인자한 마음씀씀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드는 울상을 지었다.


 


 



“네, 네, 레이디.”


 


커다란 떡갈나무에 다가가며, 몇 번짼가 이어진 유리에의 질문에
몇 번짼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녀는 날 째려
본다.


 


“푸로리, 너 왜 나한텐 그냥 ‘레이디’야? 페넬로페한텐 ‘레이디 클
라시에’ 하고 부르면서어.”


 


이런 억지쟁이가 또 없다.


 


“레이디의 성을 모르니까요. 저한텐 아직 안 가르쳐 줬잖아요?”


 


유리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날 봐서, 나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어? 몰라? 모른다고……?”


 


혼란스러운 듯하다. 자길 몰라보는 사람이 퍽 생소한 모양이다.
아, 어쩌면 이 아가씨, 노루스에서 굉장히 유명한 가문의 딸일까?


 


“죄송해요, 레이디. 전 평민이고, 용병이잖아요. 레이디가 어느 가
문의 영애신지 몰라요.”


 


그제야 유리에는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실수했어. 푸로리는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내 소개를 제대로 해야겠네.”


 


내가 멈춰서 공손하게 서자,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반가워! 노루스 앰린 대공의 차녀, 유리에야. 앞으로도 잘 부탁
해.”


 


어라? 앰린 대공은 세계의 유일한 대공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
면 노루스 공국의 주인이란 거다. 그 앰린 대공의 차녀라는 건 공왕
의 따님이시란 거다. 어라?


 


“뜨어억! 모, 몰라뵈었습니다!”


 


내가 폭삭 바닥에 엎드리자 유리에는 불만스럽다는 듯 쳇쳇 거렸
다. 화가 난 듯하다.


 


“일어나! 내가 언제 엎드리랬어? 빨리 일어나서 악수하자구!”


 


음, 아까 내민 손은 정말 악수하잔 뜻이었나? 이 아가씨 정말 별
나다. 우리나라로 치면 왕녀인데! 어떻게 자랐길래 저렇게 혈기왕성
하지?


 


어쨌든 계속 엎드려 있긴 뭐해서, 벌떡 일어나서 손을 툭툭 털었
다. 그 모습에 유리에는 씨익 웃는다. 나도 마주 씨익 웃어줬다. 그
리고 우린 악수했다. 용병들이 하듯이 소리 나게 탁!


 


거 참, 별난 아가씨다.


 


별난 아가씨는 작은 가슴을 쭉 펴고는 기쁜 듯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난 릴리아의 성도 아직 모른다.


 


내가 돌아봤을 때 그녀는 뒤돌아선 채 골똘히 뭔가 궁리하고 있
었다. 다가가서 혼잣말을 들은 나는 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 반갑습니다, 하늘의 첫 밝음이 있을 제, 그, 그, 찬란한? 찬
미한? 이름이 있었듯이 오늘 그대를 만나 미욱한? 미려한?”


 


“레이디. 그거 귀족들 간에 나누는 인사말 아닌가요? 갑자기 왜
연습하세요?”


 


“응?”


 


뒤에 서 있는 날 눈치 채곤 뱅글 제 자리에서 도는 릴리아. 밝은
금발이 흩날리며 햇살에 눈부셨다. 그리고 그녀는 굉장히 당황한 표
정으로,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아아, 나쁜 건 쉽게 물드는 법이야, 정말로.


 


“유클리드, 리힐딘 후작가의, 릴리아. 반가워. 저기, 루포리 일스
터.”


 


모쪼록 너무 물들어서 유리에처럼 되지는 말란 뜻에서, 난 방금
전관 다르게 두 손으로 릴리아의 손을 모아 쥐고 한 쪽 무릎을 꿇
었다.


 


“용병 루포리 일스터, 레이디 리힐딘을 뵙습니다.”


 


잠깐 그러고 있는데 무언가 등을 토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릴리
아의 손을 놓고 살짝 뒤를 돌아보니, 유리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 등을 때리고 있었다.


 


“나랑 전혀 다르잖아아~ 푸로리 미워!”


 


아아, 난 죄 많은 남자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믿지 못하시겠지, 내가 ‘앰린’을 울렸다면 말이
야.


 


 



“우와아, 크다아~”


 


유리에가 감탄한다. 릴리아도 놀란 표정으로 내 소매를 잡았다.


 


“무슨 나무? 어떻게, 이렇게 커?”


 


“저흰 ‘떡갈나무’라고 불러요. 원래 이렇게 큰 나무는 아닌데, 어
쩌다 이만큼 컸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가까이서 본 떡갈나무는 심히 거대했다. 살면서 소나무도 마흔 길
(40m)이 넘는 건 별로 못 봤는데, 이 떡갈나무는 쉰다섯 길(55m)은
되어 보인다. 자연의 신비로세.


 


“헤헤, 올라가 볼까?”


 


유리에가 터무니없는 욕망으로 두근거리며 나무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동안, 릴리아는 품속에서 작은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서 상태가 좋은 떡갈나무 잎을 몇 개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 널따란 잎들을 꽂기엔 책자가 너무 작았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아가씨들이 떠들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물
끄러미 바라본다.


 


난 아주 오랜만에, ‘귀족’이란 존재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저 아가씨들은 무척 천진난만하고 착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게도 무척 친절하다.


 


아우렐리에 아가씨는 너무도 아름답다. 외모만이 아니라 그 마음
이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평민에게도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


 


데니스는…… 음, 신분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는 친구 같다. 그
만능·완벽의 반대급부일까, 성격적으로는 ‘경멸’이나 ‘천시’같은 부분
이 결여돼 있는 듯하다.


 


페넬로페 아가씨도,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귀족 청년들도 참
마음씨 좋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집단은 정말 특이한 귀족들만 모인 집단이다.


 


애초에 친분이 있는 학자들끼리 모여서 답사대를 꾸렸다고 한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그러니, 아마 이들이 전부가 아닐까?


 


이 임펠런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는 귀족이란 건 말이다.


 


 



---------------
-예, 일요일부터 연재재개입니다.
-오늘은... 화요일이군요.
-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