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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영웅의 발자취 1 - 도래(到來)

2010.08.09 06:05

비벗 조회 수:321 추천:1

extra_vars1 제 1 장 - 도래(到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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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너의 기사도이냐?”


 


제 마음이 가는 바일 뿐입니다.”


 


너의 마음은 오로지 기사일 뿐이지 않더냐?”


 


저는 이토록 이기적이고 편협한 기사도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인류의 기사도는 아닐 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은 분명 너의 기사도이다. 너는 인간의 기사이다.”


 


 


 


신과 기사의 대화


 


 


 


 


 


 


흐음.


 


“헤헤…….”


 


으음.


 


“에헤헤…….”


 


점심 무렵이 다가오며 나는 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일드야. 너 몇 대 맞을래?”


 


“헉! 5기 15번 일드 에손, 주의하겠습니다!”


 


흐음.


 


“으헤헤…….”


 


이 이상한 상황을 부연하자면 이 자식은 지금 망상에 빠져 있다.


 


사실 아름다운 귀족 학자 아가씨에게 새벽녘 깨워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부터가 이놈에겐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련만, 그 아가씨가
나와 대화를 나눈 후 일행의 유일한 닭살 커플로서 급부상했고, 그
리고 그 커플이 식사를 마친 후 곧장 날 찾아와 사의를 표했다. 그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일드는-


 


지금도 숭배하는 눈길로 날 훔쳐보며 실실 웃고 있다. 사내놈의
그런 눈길 받아 봐야 안 기쁘다니깐!


 


난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일드의 착각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어떤 고생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든 간에 겉모양만은 일드가 본
그대로다. 거짓말로 변명하기도 뭣하고…… 그냥 두고 며칠 지나면
이놈도 시들해지겠지.


 


아침나절부터 힘겹게 골짜기 하나를 지나, 이제 여로는 산등성이
에 접어들어 있었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작게 뚫린 산길을 걸어간
다. 나무 사이사이로 얼핏얼핏 산과 들이 아름답게 드리워졌다. 목
적지는 가깝다. 이 능선을 따라 산을 넘으면 다음 산자락의 초입에
영웅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일드, 영웅기사님 생가가 발견된 지 몇 년 됐는지 아냐?”


 


일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웅기사님 생가요? 모르는데요?”


 


이 자식 혹시……


 


“너 지금 우리가 어디 가는지는 아냐?”


 


“지금요? 모르는데요?”


 


이이, 멍청한 녀석!


 


“우리가 가는 데가 영웅기사님 생가다! 발대식 할 때 졸았냐? 재
작년에 심마니들이 영웅기사님 생가를 발견해서 발굴대가 몇 차례나
파견됐고, 이번엔 젊은 학자들의 체험학습으로 소규모 답사대가 꾸
려져서 왕궁 기사들이 오지 않고 우리 용병대가 호위에 임하게 된
거라고 선배님들이 다 설명해 주셨잖아!”


 


“아아, 맞다, 들은 것도 같네요. 그러고 보니 그랬어요.”


 


하나도 기억 못한 표정이다.


 


“휴…… 상식이니까 좀 알아둬라. 임펠런의 영웅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니까.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일드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세요. 멋지고 강하고 똑똑하시기까지……
존경합니다, 선배님!”


 


커흠. 사실 내가 좀 멋지고 강하고 똑똑하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
고 말하니 민망하다.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린다.


 


앞 쪽을 보니, 마침 페넬로페 아가씨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날
보더니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드는 마녀 아가씨. 난 허겁지겁 몸과 말
을 밀착시킨다. 왠지 보이지 않는 화살이 날아올 것 같았다. 슬그머
니 고개만 들어 보니, 마녀 아가씨 옆에서 유리에 아가씨가 손짓하
고 있다. 저 제스쳐는 오라는 건가?


 


슬금슬금 말을 몰아 그 쪽으로 다가간다. 가다 보니 일드가 꼬리
를 물고 따라온다.


 


“어디 가냐?”


 


“예? 선배님 따라서요…….”


 


흐음. 뭐 안 될 건 없지만 이놈을 달고 다니려니 간이 오그라든
다. 설마 귀족들 앞에서도 입방정 떨까 싶긴 하지만.


 


“따라오는 건 괜찮은데, 학자 분들한텐 공손하게 인사하고, 말거
는 분 없으면 조용히 있어야 된다?”


 


“네엣!”


 


앳돼 보이는 통통한 얼굴이지만 이놈도 성인이다. 알아서 처신하
겠지. 난 그렇게 꼬리를 하나 달고 아가씨들이 모여 있는 일행의 중
심으로 다가갔다. 네 분 아가씨와 데니스가 거기에 있었다.


 


“오, 루포리! 어서 와.”


 


“어서 오렴.”


 


백작가 커플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우렐리에 아가씨의
눈인사가 내겐 더 반갑지만 신분상의 법도란 게 있어서, 여러 귀족
이 있을 땐 그 중 가장 높은 분께만 인사해야 한다.


 


“푸로리이~”


 


유리에 아가씨는 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내 쪽으로 말을 몰았
다. 왠지 릴리아 아가씨도 따라온다.


 


조금 겁을 집어먹고 있자, 빨간 아가씨가 쭈욱 손을 뻗어 내 머리
를 쓰다듬었다. 으응?


 


“예쁘다, 푸로리. 잘했어~”


 


이잉?


 


머리에 손이 하나 더 닿았다.


 


“푸로리, 잘했어.”


 


왠지 릴리아 아가씨까지 푸로리다. 확실히 듣기 좋은 어감이긴 한
데, 아무래도 사람 이름이 아니잖아, 그거! 강아지 이름이잖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멍청히 있자 릴리아 아가씨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미안. 그렇지만 루포리, 이상해. 루포리, 안 돼.”


 


내 이름을 다르게 부른 걸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역시 착한 아가
씨다. 난 그런 릴리아 아가씨가 이렇게나 ‘루포리’를 꺼리는 까닭이
궁금해졌다. 단순히 이상하다고 놀린 게 아닌 듯하다.


 


“레이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루포리’가 제국어로 무슨 뜻인
지 알 수 있을까요?”


 


릴리아 아가씨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난 내 이름이 제
국에서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대충 눈치를 챘다. 유리에 아가씨가
확인사살한다.


 


“아하하, 푸로리 이름은 제국에서 많이 쓴다? 응…… ‘루폴’이 여
기 말로…… ‘여보’거든!”


 


아버지, 소자 아무래도 강아지 이름으로 불리는 게 나을 것 같습
니다.


 


그렇게 운명에 순응하고 있는데 머리에 있던 손이 이젠 내 손을
잡았다. 유리에 아가씨였다.


 


“히히, 루폴~ 밥은 먹었어요?”


 


말은 빨간 아가씨가 하고 얼굴은 노란 아가씨가 붉힌다. 스무 살
도 안 된 작은 아가씨들에게 놀림 받는 내 신세가 어쩐지 처량해졌
다. 날 구해준 건 내 여신님이셨다.


 


“유리에, 장난이 지나치면 허물이 되는 법이에요. 착한 청년을 괴
롭히면 나중에 벌을 받게 되겠죠?”


 


“몰라아~ 푸로리 놀리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철없는 유리에 아가씨. 하기야, 이 아가
씨는 이제 열다섯이나 됐을까 싶은 모습이다. 이렇게 장난치고 키득
거리는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


 


하는 짓은 전혀 다르지만, 왠지 여동생이 생각난다.


 


“레이디 필모어, 아마 괜찮을 겁니다. 사실 전 착한 청년이 아니
거든요.”


 


진실을 고백하자 유리에가 기뻐한다. 이젠 숫제 내 팔짱을 끼려
든다. 좀 위험하다 싶어 팔을 빼 내려고 토닥토닥 실랑이를 벌였다.
빨간 아가씨가 빨갛게 상기돼선 애원한다.


 


“푸로리, 팔 줘어~”


 


“안 됩니다. 그러다 떨어지시겠어요.”


 


냉정한 대답에 울상이 된 채 그녀는 내 곁에서 말을 몰았다. 맞은
편엔 금발 아가씨가 말을 몰고 있다. 양 손에 꽃이다. 그녀들이 평
민 아가씨였다면 나도 순수하게 기뻐하련만!


 


어쩔까 싶어서 눈치를 살살 본다.


 


그런데 눈치가 빤하다. 다른 용건이 있는 분은 없는 것 같고, 유
리에 아가씨가 그냥 놀자고 날 부른 것 같다. 귀족 아가씨와 농담
따먹으며 놀아도 되는 건지 좀 고민을 해 본다. 물론 다른 걸 따먹
으며 노는 것보다는 건전하지만……


 


“루포리.”


 


아우렐리에 아가씨가 다가오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난 찔끔
해서 허리를 폈다.


 


“옛, 용병 루포리 일스터!”


 


“응, 루포리. 바쁘지 않다면 두 분 아가씨와 함께 있어 줘요. 두
분 다 당신과 있는 게 즐거운가 봐요. 그래줄 수 있나요?”


 


어, 가만. 말을 낮춰달란 얘기, 어제 깜빡 했구나!


 


흠칫하며 둘러보는데, 어째 내가 생각하던 반응이 없다. 오히려
페넬로페 아가씨는 날 보며 반응을 기대하는 눈치다. 흐음…… 장난
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좋아, 그럼 기대에 부응해 보자.


 


“으아악, 레이디 필모어? 비천한 제게 말씀을 높이시니 몸 둘 바
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맹렬하게 눈짓을 -말 좀 맞춰 줘요- 보냈지만 아우렐리
에 아가씨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페넬로페 아가씨가 킥킥거리며 대
신 대답한다.


 


“너무 놀라지 말렴. 리에는 집안의 하인들에게도 하대하지 않으니
까. 더 친해지기 전엔 어림도 없단다?”


 


헤에……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나저나 친해지면 존대
를 면할 수 있는 건가? 뭔가 복잡하다.


 


아무튼 아우렐리에 아가씨를 등에 업은 유리에 아가씨는 신이 났
다.


 


“푸로리, 푸로리!”


 


문득 궁금해졌다.


 


“레이디. 혹시 ‘푸로리’는 노루스 말로 무슨 뜻이 있나요?”


 


“뜻? 그런 거 없는데. 그냥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야!”


 


진짜 강아지였어!


 


좌절하는 내 곁에서 유리에 아가씨가 계속 떠들었다.


 


“엄청 착하고 커다란 강아지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거든. 그래
서 너도 푸로리야. 괜찮지?”


 


눈을 빛내며 물어보는 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난 조용히
곁을 따르는 릴리아 아가씨에게도 물었다.


 


“레이디도 ‘푸로리’가 더 낫겠지요?”


 


“…… 응.”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는 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냥, 예명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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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좀 점검하고,


다음주 일요일부터 연재 재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