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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도시 기록보관소

판타지 루블리에 (l'Obier)

2010.01.16 09:58

AirLord 조회 수:421 추천:2

extra_vars1 1장. 운명, 다시 뛰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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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운명, 다시 뛰기 시작하다.




< 1막. 세디스 혹은 발리엔져 >




 이 땅의 어느 음유시인은 말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악'이라는 이름의 어둠을 주셨다. 그리고 또 하나, 이를 회개하고 치유할 시간을 주셨으니, 이는 '새벽'이다.'




 새벽의 몽환은 이를 보는 사람을 감성의 세계로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적막의 어둠속에 핀 차가운 빛의 잔상 아래로 뜨거운 빛이 고개를 내밀고 이는 점차 온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로 인도한다. 새벽은 세상의 모든 곳에 그 몽환을 드리운다. 왕의 정원에도, 잔잔한 파도가 아침을 깨우는 어느 해변가에도, 평온한 시골농장의 마굿간 한켠에도, 심지어 미천한 빈민가의 쓰러져 가는 천막 지붕 아래에도 새벽의 스산한 공기는 조용하게 스며든다. 




 '똑...똑...'




천막 지붕 위 골 사이로 물방울이 모인다. 모인 물방울은 곧 투명함의 군집을 이룬다. 그 중 가장 먼저 도착한 물방울이 천막의 끝자락을 잡고 아래로 낙하할 준비를 한다.



'똑...' 




 또 하나의 물방울이 지붕 위로 떨어진다. 파르스름한 물방울이 사내의 얼굴로 떨어진다.




 "으...음"




 물방울이 전달해주는 차가운 감각이 사내의 오감을 깨운다. 사내는 밤새 쉬고 있던 자신의 의식을 깨운다. 이 나라에선 흔하지 않은 잿빛 머리에 한눈에 보아도 이 빈민촌의 일원임을 알 수 있게 만드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20대 중반의 남자는 그렇게 하룻밤의 꿈에서 깨어났다. 오늘도 악몽을 꾸었다. 벌써 열흘이 넘도록 연속으로 악몽을 꾸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잠시 잠에서 덜 깬 멍한 상태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레브라허 남서쪽 하수로 근처에 자리잡은 빈민가의 가장 구석에 그의 천막이 있었다. 그 차갑고 낡은 천막 아래에서 맞이하는 새벽은 그에게는 아직 너무나도 낯선 것이었다. 기억을 잃고 패닉 상태에 빠진 그가 본능에 이끌려 이 곳 레브라허 내의 빈민촌에 발을 들인지도 어느새 한 달 남짓. 무엇하나 가진 것 없던, 심지어 과거의 기억 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던 그가 숨쉴 수 있는 곳은, 한줄기 빛조차도 잘 들지 않는 천막 지붕아래의 한 평 남짓한 공간 뿐이었다. 그나마 깨어났을 당시 입고 있던 청색 셔츠와 짙은 밤색의 바지는 이 곳에 사는 조건으로 '제린' 이라는 남자가 입주비 명목으로 빼앗아 가버렸다.




 제린은 군인 출신의 32살의 청년으로 전쟁으로 인해 아내와 외동딸, 그리고 자신의 왼손을 잃고 3년전 이 곳으로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7년간 격투기선수를 했던 경력과 2미터에 달하는 큰 키, 험악한 인상 덕분에 곧 이 곳의 '실세'가 되었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는 곧 이 곳의 룰이 되었고, 한뼘의 발 뻗을 공간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또 하루의 시작...인가. 지옥같은... 하루의...'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 곳에 사는 대부분이 장애인, 정신지체자, 비관론자, 범죄자, 참혹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주한 노예 등 세상에서 소외받고 대중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자 들이었다. 물론 천성이 게을러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숙자 생활을 택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다. 때문에 그들의 삶 속에는 희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직 버려진 건축 자재 등을 이어만든 다 쓰러져 가는 천막지붕과 그 아래 주어진 좁다라한 그늘뿐이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목표이자 가장 큰 행복인 곳... 바로 옆에서 자식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고 한 겨울 밤의 혹독한 추위에 견디지 못해 싸늘한 시체가 된 이웃을 발견하여도 그 누구도 이에 동요하지 않는 곳... 그는 바로 그 곳에 있었다.




 게다가 그가 깨어났을 당시 헤르아 주를 강타한 폭풍우는 가뜩이나 처참한 이 곳의 광경을 그야말로 지옥을 연상케 할만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낡은 천막집들은 칼날같은 바람과 쏟아지는 폭우속에 여지없이 찢겨지고 무너졌다.


그 끝을 모르고 불어난 하수도의 구정물이 이 곳을 덮쳤고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에 휩쓸려가 실종되었다. 하지만 더욱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져나가자 더 큰 휴유증이 그들을 덮쳤다. 바로 질병이란 이름의 저승사자였다. 가뜩이나 위생상태가 최악에 가까운 터라 빗물과 하수도의 물은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삽시간에 열병과 식중독이 퍼졌고 쥐와 해충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 흔한 백신도 소독약 같은 간단한 위생도구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부모가, 자식이,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바로 어제만 해도 '바르하' 라는 이름의 13세 소년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이 곳을 떠났다. 사인은 흔히 '로비프티스'라고 불리는 전염성 열병때문이었다. 그렇게 폭풍우가 그친 3주가량의 짧은 기간동안 6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이렇듯, 참혹한 상처를 안겨준 폭풍우였지만 그나마 위안거리가 되는 한 가지를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바로 일자리였다. 도시 전체를 할퀴고 지나간 폭풍우의 여파는 빈민촌에 해당된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정도는 덜하였지만 레브라허 시가 입은 피해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교량이나 간판 같은 도시 곳곳의 시설물이 붕괴되고 침수되었으며 수많은 가정집의 창문이 깨어지고 담벼락이 무너졌다. 심지어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집도 있었다. 갑작스런 폭풍우에 대비하지 못한 이들은 거친 비바람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이처럼 피해규모가 크다보니 복구를 위해 일손도 많이 필요했다.


 평소 위생 등의 문제를 핑계삼아 빈민들의 사회활동을 꺼려하며 이를 제한했던 시청이었지만 이번만은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밖에 없었다. 신흥공업 도시로써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는 레브라허였지만, 그 수요는 대농장들의 쇠퇴로 인해 도시로 대거 유입된 인구로 인해 충당되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인 빈민들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폭풍우는 이들이 오랜만에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보수는 기껏해야 일반 노동자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금액 이었지만, 빈민들에게는 쉽사리 만져볼 수 없는 큰 돈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을 수 없었다. 폭풍우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슬픔 그리고 자신들의 목을 죄어오는 죽음이라는 공포앞에서 태연히 웃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만에 찾아온 일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병이 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 한 첩의 약이라도 구하기 위해,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옷 한벌이라도 입히기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한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기 위해 돈은 꼭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는 모든 이는 일터로 나갔다. 하지만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먹는 그들에게 노역은 너무도 힘든 것이었다. 어제는 끊어진 도시 동쪽 다리의 난간부분을 복구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오늘은 끊어진 중간 부분을 이을 것이라고 한다. 분명 어제보다 더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어이, 신참. 혼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갑자기 두고온 애인 기억이라도 떠올랐나? 하하하"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상념에 잠겨있던 청년을 깨웠다.


  아무렇게나 기른 듯한 백발에 덥수룩한 흰 수염. 어림잡아 6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인상 좋아보이는 노인이었다. 피가로라는 이름을 가졌고 남자의 바로 옆의 천막에 살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한낱 힘없은 늙은이에 불과 하지만 한때는 꽤 잘나가는 도적단의 핵심멤버였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정도 부귀영화가 따랐던 그 곳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15년전 레브라허로 흘러 들어왔다. 워낙 오랜 시간동안 이 곳에서 살았고 포용력이 있는 성격이라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아서, 빈민촌 내의 장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제린도 피가로에 대해서는 함부로 터치 할 수 없었다. 기억을 잃은 이 청년을 생활에 적응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도 피가로였다. 그가 없었으면 지난 한달의 시간은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뇨. 아직...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너무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게. 차차 생각이 떠오를꺼야. 혹시 아나? 왕궁에서의 호화로웠던 기억이라도 떠오를지? 그렇게 되면 잘 좀 부탁하네. 하하하."




 피가로는 그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웃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지워져버린 기억이었다. 살아온 것을 기억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았다. 기억은 과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근원이 된다. 그 것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농담으로 아무 생각없이 던진 말에 청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멋쩍어진 피가로는 당황하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아니 말이 그렇단 말이지. 하하~ 어쨌든 걱정 말게나. 세디스군."




 세디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위해 붙여준 이름이다. 이름조차 기억을 할 수 없었던 그를 부를 호칭이 필요했고 집시 출신으로 별자리점과 작명에 일가견이 있는 네파르라는 노파가 이름을 지었다. 세디스라는 이름은 고대집시의 언어로 '폭풍우'라는 뜻인데, 그가 이 곳에 오던 날 폭풍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졌다.


 하지만 세디스라는 이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폭풍우가 가져온 상처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세디스가 폭풍우를 불러왔다고 생각하며 욕을 하며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피가로가 없었다면 이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이다.


 세디스를 정신병자나 치매환자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실제로 빈민촌 내에는 많은 정신이상자들이 살고 있었고 세디스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미치광이라는 빈민촌 내 속어인 '발리엔져'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도 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아니지만 '세디스'라는 이름이 싫지는 않았다. 자신의 심리상태를 대변해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머리 속을 폭풍우와 같은 무언가가 휩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 지금 그가 느끼는 막연한 감정이었다. 이 폭풍우가 잠잠해질 쯤이면 예전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다. 그게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단지 그가 살아온 인생을 끄집어 낼 그 무언가라면 충분할 것이다.




"자, 이거 하나 들게나. 내가 제린 몰래 빼놓아 둔건데 맛이 괜찮을걸세."




 피가로가 내민 것은 작은 크기의 초콜렛 케잌이었다. 꽤 귀해서 일반 서민들도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이 아니었기에 세디스는 놀라며 물었다.




"아니. 이런걸 어디서..."




"걱정 말게. 훔친건 아니니까. 며칠 전 받은 일당으로 몇 개 사두었던 걸세. 어서 먹게나. 곧 일하러 가야하니. 아, 이 우유도 같이 마시게나."




 별다른 친분도 없고 만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풀어주는 피가로가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고마운 감정이 앞섰다.




"잘 먹겠습니다."




 꽤 배가 고팠던 터라 먹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금새 케잌과 우유를 먹어치운 그는 일하러 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채비라고 해봐야 시청에서 지급받은 낡은 목장갑을 챙기는 것이 다였다. 빈민촌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안전 장비도 주어지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어느새 일어나 주섬주섬 일하러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동은 막 터올라 황금빛으로 주변을 물들여가고 있었다. 폭풍우로 피폐해진 빈민가를 치유하기라도 하듯 황홀한 태양빛이 둘러싼다. 세디스 혹은 발리엔져라는 불리는 의문의 사내는 태양을 마주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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